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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행동의 진화] 열대어의 화려함은 투쟁의 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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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행동의 진화] 열대어의 화려함은 투쟁의 산물

2021.01.24 00:00
픽사베이 제공
Pixabay 제공

산호초 군락 사이를 헤엄치는 열대어의 화려한 자태를 보고 있노라면 넋을 잃는다. 어떤 화가도 흉내 낼 수 없는 오색찬란 형형색색의 물고기다. 


그냥 아름다운 자연의 신비라고 얼버무리고 넘어가곤 하지만, 동아사이언스를 읽는 독자라면 머릿속에 커다란 물음표가 둥실 떠오를 것이다. 도대체 왜 산호초 군락의 열대어는 이렇게 화려한 것일까? 


보호색? 경고색?

 

생물 시간에 배운 적이 있겠지만, 보통 화려한 색은 위장색으로 알려져 있다. 포식자를 피하려는 목적이라는 것인데, 산호초가 화려하니 물고기의 비늘도 화려해졌다는 것이다. 그렇구나. 그러나 뭔가 이상하다. 그렇다면 산호초 색이랑 똑같아야 한다. 하지만 분명 산호초와 열대어의 색은 아주 다른다. 종종 색의 대비에 의해서 눈에 더 잘 들어온다. 


게다가 어린이 백과사전의 다른 장을 펼치니, 정반대의 설명이 나온다. 고등어 떼는 열대어보다 훨씬 칙칙하고 비슷비슷한 비늘 색을 가지고 있는데, 포식을 피하기 위한 목적이란다. 아니 알록달록한 것도 보호색이고, 칙칙한 색도 보호색이라고? 뒤에 산호초가 화려하므로, 알록달록한 색이 보호색이 된다는 설명도 궁색하다. 정신이 사납기는 하지만, 오히려 호기심이 나서 더 열심히 보게 되지 않는가. 


반대로 경고색이라는 주장도 있다. 독을 가진 물고기를 흉내 내는 것이란다. 그렇구나. 하지만 이내 드는 의문 하나. 그러면 독을 가진 물고기는 처음에 왜 화려해졌는가? 풀리지 않는 질문이 이어지지만, 소년소녀학습백과는 그 이상 설명하지 않는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배울 줄 알았다. 그러나 대학원에 다닐 때까지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공격성의 원인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GIB) 제공

동물이 공격성을 보이는 이유는 아주 다양하다. 먹이를 포식하거나 혹은 포식자에 대항하거나. 물론 잠재적 짝을 두고 경쟁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공격성은 ‘겉으로는 다 똑같은 공격’으로 보이지만, 사실 상이한 내적 상태에서 기인한다. 


수조에서 헤엄치는 우럭을 한 마리 골라 주문하는 철수. 행동의 동기와 목적은 포식자의 그것과 다름이 없다. 하지만 철수의 마음에는 불같은 분노와 타오르는 공격성 같은 것은 없다. 펄떡이는 우럭을 바라보면서, 곧 찾아올 만족스러운 행복감을 예상할 뿐이다. 


포식자에 대항하는 공격성도 다르다. 기본적인 포식 회피 반응은 도주다. 도망칠 수 있다면, 일단 줄행랑을 치는 것이 현명하다. 불안과 공포의 정서다. 막다른 상황에서야 어쩔 수 없이 포식자에 대항하기도 하는데, 분노와는 다른 감정이다. 최후의 발악은 공포와 절망, 무력감이 섞인 막막한 정서 상태가 일으키는 행동이다. 


짝을 두고 하는 경쟁도 마찬가지다. 번식기마다 수컷의 맹렬한 시합이 벌어지는 종이 적지 않다. 그러나 대개는 치명적 수준에 이르지 않는다. 처음부터 번식과 생존이 목적이다. 상대가 미워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다음 기회도 있다. 인간 사회의 운동 경기나 노래자랑도 어떤 의미에서는 성 내 짝 경쟁의 문화적 확장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역시 목숨을 걸고 경기하고 노래하는 이는 없다(물론 그런 각오로 한다는 상투적인 말이 있지만, 정말 목숨을 걸지는 않는다). 축구를 하다가 느닷없이 상대의 숨통을 끊어버리거나, 노래 대결에서 패배했다고 그 자리에서 할복하는 사람은 없다. 경기 후에는 대개 웃으며 악수를 나눈다.


사실 이 밖에도 변종의 공격성이 좀 더 있지만, 대충 이 정도로 하자. 아무튼 겉으로 보이는 공격성도 실은 ‘진짜 공격’은 아닐 수 있다. 대개 그렇다.


그런데 그럼 뭐가 진짜 공격성인가? 공격성의 사전적 의미에 대한 논쟁은 일단 접어두자. 같은 하늘을 이고 살아갈 수 없다는 불구대천의 공격성에 대한 것이라면, 오로지 동족 간에만 일어난다. 다른 종 사이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 늑대는 아주 공격적인 동물 같지만, 매년 늑대에 물려 죽는 사람은 고작 열 명 남짓이다. 인간을 가장 많이 죽이는 종은 바로 인간인데, 매년 40만 명의 인간이 호모 사피엔스의 손에 목숨을 잃는다. 에이, 늑대의 개체 수가 적으니까 그런 것 아니냐고? 물론 그렇지만, 분명 매년 10마리 이상의 늑대가 늑대의 주둥이에 물려 죽을 것이다. 늑대는 늑대에게, 인간은 인간에게 최대의 적이다. 심각한 공격성은 주로 같은 종 안에서 관찰된다. 

 

나비고기의 공격성

 

네점나비고기.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콘래드 로렌츠는 수족관에 사는 나비고기에 관한 이야기를 언급하면서 “어류는 다른 어떤 것보다 자기와 같은 종에 대해서 훨씬 더 공격적”이라고 말했다. 

 

사실 바다에 사는 물고기에서 종 내 공격성을 관찰하기는 쉽지 않은데, 이유는 간단하다. 바다는 아주 넓기 때문에 싸우기보다는 널리 흩어지는 편이 유리한 것이다. 


그러나 산호초에 매여 사는 물고기는 다르다. 산호초 군락은 영양소가 아주 풍부한 곳이다. 햇빛이 풍부하고, 수온이 따뜻하다. 플랑크톤이 많이 사는데, 플랑크톤을 먹는 작은 물고기와 갑각류, 그리고 이들을 먹는 조금 큰 물고기, 또 이들을 먹는 더 큰 물고기 등이 모여들어 거대한 생태계를 이룬다. 


산호초를 벗어나면 좀처럼 생존이 어렵다. 같은 먹이를 원하는, 같은 종의 개체가 어쩔 수 없이 좁은 곳에서 같이 살아야 한다. 달리 피할 곳도 없고, 산호초 군락 밖으로 도망칠 수도 없다. 산호초를 들고 이사를 갈 수도 없다. 어떤 물고기에게 먼 바다는 ‘사막’이나 다름없다. 맹렬한 공격성이 일어난다. 먹이와 서식지를 두고 벌이는 필사적 싸움이다. 


어항에 열대어를 키워 본 적 있는가? 야생의 열대어라면, 종종 같은 종의 물고기를 단 한 마리만 키워야 한다. 종종 어느 하나가 죽을 때까지 싸우기 때문이다. 좁은 수족관과 산호초 군락은 어디로도 도망갈 수 없다는 점에서 서로 비슷한 생태적 조건이다. 


화려한 색의 진화

 

로렌츠가 묵었던 호텔 근처의 방파제에는 ‘한 마리’의 보 그레그리, ‘한 마리’의 작고 검은 천사어, ‘한 마리’의 나비고기가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그는 이에 대해서 ‘동족은 동족을 피한다(Like avoids Like)’라는 속담을 들어 설명했다. 좁은 공간에서 같은 종의 물고기 두 마리가 평화롭게 살고 있다면, 그건 영구적인 배우자 관계일 경우에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종을 식별하는 기준 중 하나는 색깔이다. 그래서 같은 종에 속하지 않더라도, 색이 비슷하면 오인 공격하는 일이 자주 벌어진다. 

 

“흰색과 금색으로 된 나비고기와 흰색과 검은 색으로 된 두 종의 나비고기가 있었다. 그리고 종을 알 수 없는 나비고기가 있었는데, 흰색과 금색과 검은 색으로 된 나비고기였다. 두 종의 중간색이었다. 그런데 이 나비고기는 두 종의 나비고기를 균등하게 공격했다. 다른 색을 가진 물고기를 물어뜯는 일은 없었다.” - 콘래드 로렌츠, 《공격성에 대하여》.

 

동족 간의 공격은 대개 끝을 볼 때까지 지속한다. 어느 하나가 피를 봐야 평화의 때가 오는 것이다. 그런데 주변 다른 종의 물고기와 비슷한 색을 가진 물고기는 억울하게 공격당하는 일이 많다. 동족 간의 전투도 힘겨운데, 다른 종의 ‘오인 사격’까지 받는 것이다. 


점점 다른 종과 분명하게 구분되는 비늘 색과 지느러미 모양을 가지도록 진화했다. 열대어의 찬란하고 아름다운 색깔은 동족 간의 목숨을 건 전투라는 투쟁적 과정을 통해서 진화했다. '나는 분명 너의 종이 아니라고!'라는 색채 신호를 분명하게 보내는 녀석일수록 아들딸 많이 낳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인간도 그럴까? 연구는 거의 없다. 그러나 연구를 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 인간도 자신과 ‘비슷한 색’을 가진 동족과 주로 싸운다. 인간은 다양한 생태 환경에서 다양한 직업과 신분, 계급을 가지고 살아가는 종이다. 각자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리고 호모 사피엔스는 자신과 세력권이 겹치는 개체에 엄청난 공격성을 보인다. 


아니, 인간은 외집단에 더 가혹하지 않느냐고? 물론 그것도 맞다. 하지만 같은 집단이라고 해도 생태적 적소가 겹치면 공존하기 어렵다. 만약 소위 ‘조화로운 리더십’을 키워주겠다면서, 한 반에 반장을 두 명 뽑아보자. 원래 친했던 두 명의 관계가 갑자기 서먹해진다. 물론 사장이 두 명 있는 회사나 대통령이 두 명 있는 국가도 불가능하다. 물리적인 벽이든 혹은 규정과 제도의 벽이든 칸막이를 세워서 서식지를 나눠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목숨을 걸고 싸우게 된다.

 

혹시 당신을 이유 없이 미워하고 공격하는 사람이 있는가? 왠지 서먹하고 어색하고, 잠시라도 같은 공간에 있으면 불편한가? 갈등의 원인은 원체 다양하지만, 어떤 갈등은 서로 너무 닮았기 때문에 일어나기도 한다. 만약 그런 상황이라면, 좀처럼 극복하기 어렵다. 열대어가 수억 년 간 계속된 동족 간의 전투를 멈추고, 드디어 항구적인 평화 협정을 맺었다는 뉴스를 본 일이 없다. 


그러나 인간은 열대어와 다른 점이 있다. 산호초 군락이 아니더라도, 어디든 이동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자신의 색을 스스로 바꿀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열대어처럼 혼자서 영역을 독점하려고 전전긍긍한다. 어떤 사람은 잠재적인 경쟁자를 볼 때마다 눈을 부라리고 송곳니를 드러낸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색을 잘 숨기며 주변에 맞춰 살아간다. 어떤 이는 미지의 산호초 군락을 향해 모험을 떠난다. 열대어만큼이나 인간의 색도 오색찬란하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진화인류학 및 진화의학을 강의하며, 정신장애의 진화적 원인을 연구하고 있다. 동아사이언스에 '내 마음은 왜 이럴까' '인류와 질병'을 연재했다.  번역서로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 《진화와 인간행동》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 《마음으로부터 일곱 발자국》, 《행동과학》, 《포스트 코로나 사회》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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