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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현대문명의 역설과 팽목항의 어버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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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5월 07일 18:05 프린트하기

전준범 기자
전준범 기자

  지난해 독일 올림피아사는 1992년 생산을 중단한 타자기 ‘트라이엄프 아들러 트웬 180’ 20대를 특별 제작해 러시아 연방경호국(FSO)에 제공하기로 했다. 다른 나라 정보기관의 정보 수집과 해킹 활동을 원천봉쇄하겠다는 러시아 정부의 요청을 올림피아사가 받아들인 것이다.

 

  슈퍼컴퓨터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재래식 타자기를 배치하는 일은 과학기술의 발전 측면에서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오타가 있어도 수정할 수 없는 타자기를 두드린 뒤 종이 문서를 둘둘 말아 보관해야 하는 직원들의 업무 효율을 생각하면 말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을 자양분 삼아 성장해 온 현대문명의 역설을 드러낸 이 사례에서 문득 수백 명의 사람 목숨을 담보로 한 우리나라의 사건·사고들이 떠오른다. 

 

  1993년 페리호 침몰과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최근 발생한 세월호 침몰사고와 연이어 터진 지하철 2호선 추돌사고 등 인명 피해를 야기한 사고들을 주기적으로 목도하고 있노라면, 앞서 언급한 러시아 마냥 우리 나라도 뗏목과 말을 타고 이동하던 시절로 돌아가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인류의 삶을 윤택하게 한다는 과학기술로 인한 고통을 반복적으로 감수해야만 하는 것일까.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맞닥뜨리는 일련의 사고들이 과학기술 자체보다는 이를 제대로 다루지 못한 인간에 의해 발생한다는 점이다. 배가 오뚜기처럼 중심을 잡고 다시 일어나는 복원력 기준을 지키지 않은 것도, 지하철 신호체계 모니터링 업무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도 모두 인간이었다.

 

  물론 더 완벽한 형태의 과학기술력이 인간의 이 같은 부족함을 보완해 줄 날이 언젠가 올 수도 있다. 그러나 우선순위는 그 날에 대한 기다림이 아니다. 가슴 아픈 사고의 교훈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 먼저다. 과학기술의 발전 위에는 이를 다루는 원칙과 기본이 반드시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6월 4일 전국동시지방선거를 비롯해 브라질 월드컵, 인천 아시안게임 등 올해만 해도 세간의 이목이 집중될 대규모 행사가 줄줄이 예정돼 있다. 이미 TV에서는 잠시 결방했던 예능 프로그램들이 다시 방송되기 시작했다.

 

  잊을만 하면 반복되는 문명으로부터의 재앙이 또다시 반복되길 원하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 함께 지금의 아픔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여전히 실종 상태인 30여 명의 부모가 맞이하는 팽목항의 어버이날은 그 어느 때보다 슬프다.


bbe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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