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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건축가, 금녀의 벽을 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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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건축가, 금녀의 벽을 넘다

2014.05.12 16:13

한쪽 어깨에 화통을 메고 다니며 도면과 스케치를 쓱쓱 그려내는, 드라마나 영화 속 건축가의 모습은 낭만 그 자체다.  신경선 건축사사무소 에스앤디아이 대표 역시 이런 낭만적인 모습을 꿈꾸며 건축공학과에 지원했고, 누구보다 열심히 전공 공부를 했다.

 

하지만 졸업 후의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지원하는 건축설계사무소 마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불합격 통보를 받았고, 어렵게 취업한 이후에는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철야작업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신경선 대표는 "건축만의 나의 업"이라 자신있게 말하며 자신의 분야에서 당당히 인정받고 있다.


친구 따라 건축공학과에 가다

신경선 대표 - 신경선 대표 제공
신경선 건축사사무소 에스앤디아이 대표 - 신경선 대표 제공

“친구가 건축공학과에 간다고 하기에 저도 지원했어요. 이공계 전공 중에서 건축학과가 여자에게 가장 적합해 보였거든요. 그리고 건축 일을 하는 여성에 대한 동경도 있었죠.”

 

막연한 생각만으로 시작하게 된 건축학이었지만, 전공에 대해 알면 알수록 '이것이 나의 운명'이라 느낄 만큼 건축 공부는 재미있었다. 신 대표는 과제와 수업은 물론이거니와, 다양한 건축 공모전에도 열심히 참가했다. "설계실이나 작업실에서 같은 과 사람들과 밤새 과제를 하고 새벽을 맞을 때가 가장 행복했다"라는 말로 그 시절을 회상하는 그녀는 마음 속에 가득했던 20대의 열정을 각종 건축 공모전을 준비하며 오롯이 쏟아냈다고 한다.


여자라는 이유로 높았던 취업 장벽

신 대표는 학부 3학년 때부터 건축설계사무소에서 실습을 했다. 당시 건축학과 학생들은 대부분 실습이 끝난 뒤 실습했던 곳으로 취직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실습했던 사무소로부터 특별한 이유도 없이 불합격 통보를 받아야 했다. 나중에 들어 보니 현장에는 남자밖에 없는데다가 거의 매일같이 철야 작업을 해야 했기 때문에 여자는 버틸 수 없다는 게 불합격의 이유였다.

 

“한 남자 선배가 말하기를, 지방 출장을 가도 여자 직원이 있으면 방 두 개를 빌려야 하고 철야근무할 때는 다 줄담배를 피우는데 어떤 건축사무소가 불편하게 여자를 뽑겠냐고 했어요. 정말 서러웠죠.”

 

여러 번의 좌절 끝에 그녀는 마침내 첫 직장에 취직을 하게 됐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건축사무소가 문을 닫게 되었고, 두 번째 직장은 불합리한 대우 등이 문제가 되어 계속 다니지 못했다.

 

20대 후반에 그녀는 결혼과 함께 새로운 직장을 얻었다. 설계실 직원만 250명 남짓 되는 국내에서 알아주는 건축사무소였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동료들의 무관심을 견디지 못하고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다.

 

“처음 두 달간은 매일 혼자 밥을 먹어야 했어요. 아무도 같이 밥 먹자고 해주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나중에 알고 보니 회사 전용 식당이 있었는데 아무도 저에게 말해주지 않았더라고요.”


건축사무소 대표가 되다

IMF가 터진 뒤, 다니던 건축사무소가 문을 닫게 되면서 신 대표는 남편을 따라 제주도로 떠났다.

 

“3년 동안 건축 일과는 떨어져서 지냈어요. 편안한 생활을 즐기다보니 건축 일이 지긋지긋하게 느껴졌죠. 거의 매일 밤샘 작업을 하며 아기도 돌봐야 했고, 월급도 적었던 그 시절은 생각하기도 싫었어요.”

 

하지만 신 대표는 자신의 운명과도 같았던 건축을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스쿠버다이빙을 배우다가 본 바다 속 모습에서 건축에 대한 영감을 떠올렸다는 그녀는 결국 3년간의 제주도 생활을 정리하고 서울로 돌아와 재취업을 했다. 그 후로 몇 번 직장을 옮겼고, 마침내 개업을 결심하게 됐다.

 

신 대표는 “개업을 결심할 무렵에는 그동안 받기만 하던 월급을 내가 줘야 한다는 생각에 두렵고 막막했지만 이제 와서 돌아보면 개업하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뿌듯한 마음을 드러냈다. 개업을 통해 보다 많은 기회를 얻었고, 더 넓은 세상을 보는 시야를 키웠기 때문이라고.


오랫동안 기억되는 건축물을 설계하고파

요즘 신 대표는 설계뿐 아니라 인테리어, 건물 감정, 대학 강의, 한국여성건축가협회와 서울특별시건축사회 활동 등 다양한 일을 도맡아 하며 20대 시절보다 훨씬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다. “사회 초년생 시절에 고생을 많이 하면서 다른 여성 건축사들은 어떻게 일을 하는지 궁금했고, 의지할 동료가 필요하다 느꼈다"라고 말하는 그녀는 무엇보다 여성 건축가를 위한 일에 열심이다.

 

신 대표의 꿈은 많은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는 건축물을 만드는 것이다.

 

“먹고 먹히는 이 정글 같은 세상이 아름다운 건 도전할 가치와 정복할 수 있는 목표가 있기 때문이에요. 저 역시 힘든 순간을 여러 번  겪었지만,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제 안에 있는 건축을 향한 뜨거운 열정 때문이었어요. 그게 짝사랑이든, 이룰 수 없는 사랑이든 저는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신 대표는 자신과 같은 길을 걷고자 하는 후배들에게도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행여나 힘든 일이 있더라도 자신이 직접 겪은 경험들이 많아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넓어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후배들이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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