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바로가기본문바로가기

동아사이언스

존재의 이유, Y염색체의 경우

통합검색

존재의 이유, Y염색체의 경우

2014.05.20 18:00
인간의 X염색체(왼쪽)과 Y염색체는 큰 차이를 보인다. - SPL 제공
인간의 X염색체(왼쪽)과 Y염색체는 큰 차이를 보인다. - SPL 제공

  ‘네가 있다는 것이 나를 존재하게 해~
  네가 있어 나는 살 수 있는 거야~’

 

  필자가 20대이던 1990년대 중반 유행한 ‘존재의 이유’라는 노래의 가사 일부이다. 당시에는 누가 내 삶의 의미가 되는 ‘너’일지 곰곰이 생각했지만, 지금은 써놓고 보니 가사가 오히려 낯간지럽게 느껴진다. 나이 사십 넘어서도 타인에게서 내 존재이유를 찾는다는 건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물론 내가 타인에게 존재의 이유가 되는 것도 꽤나 부담스러운 일이다.

 

  이와는 다른 관점에서 필자를 포함해 인류의 절반을 차지하는 남성에게는 자신들의 성정체성을 위해 존재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Y염색체다. ‘이 필자 이상한 사람이네. 여성 정체성을 위해 존재하는 X염색체는 왜 얘길 안 하나?’ 이렇게 생각하는 독자도 있을지 몰라 덧붙이자면 X염색체의 경우는 얘기가 좀 다르다. 남성도 X염색체가 하나는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몸은 기본적으로 여성이 되도록 설계돼 있다. 즉 여성은 태아 발생의 ‘디폴트 모드’라는 말이다. 드물게 X염색체 하나만 있는 사람이 있는데, 생식력 등에 문제가 있지만 아무튼 겉으로는 여성이다.

 

  반면 Y염색체만 있는 사람은 없다. 즉 X염색체는 존재의 이유가 성정체성보다는 다른 상염색체와 마찬가지로 개체의 생존 그 자체에 있다는 말이다. 결국 남성은 X염색체의 바탕 위에 Y염색체가 더해지면서 ‘변주’가 일어나 태아발생 과정에서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다. 모든 남성은 이런 의미에서 성전환자다!

 

●Y염색체 없어도 유전자 두 개면 충분?

 

X염색체불활성화의 대표적인 사례로 털의 얼룩무늬가 꼽힌다. X염색체상에 존재하는 유전자의 변이로 나오는 삼색털얼룩고양이로, 암컷에게만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 위키피디아 제공
X염색체불활성화의 대표적인 사례로 털의 얼룩무늬가 꼽힌다. X염색체상에 존재하는 유전자의 변이로 나오는 삼색털얼룩고양이로, 암컷에게만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 위키피디아 제공

  학술지 ‘사이언스’ 1월 3일자에는 다른 관점에서 Y염색체의 존재의 이유를 밝힌 논문이 실렸다. 즉 Y염색체는 정세포(spermatid)를 만드는 데 필요한 유전자 두 개를 담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

 

  바꿔 말하면 세포에 이 두 유전자를 따로 넣어줄 수 있다면 Y염색체가 없어도 생식세포를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연구자들은 Y염색체가 없는 변이 생쥐(XO)에 두 유전자를 넣어줘 만든 정세포를 난자에 주입해 새끼가 태어나게 하는데 성공했다는 실험결과를 발표했다. 결국 엄밀히 말하면 남성성 발현은 Y염색체가 아니라 이 두 유전자의 ‘존재의 이유’인 셈이다.

 

  사실 Y염색체의 ‘퇴화’는 오래 된 주제로 언젠가는 Y염색체가 사라질 거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로 포유류 가운데는 정말 Y염색체가 사라진 종이 있다. 설치류인 두더쥐들쥐 2종과 일본의 고슴도치 2종이다. 이들이 XY염색체 시스템을 버린 뒤 어떻게 성정체성을 획득하는지는 아직 모르고 있다. 2006년 학술지 ‘셀’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1000만 년 뒷면 사람의 Y염색체도 소멸한다고 한다. 이제 사람 Y염색체는 사망 날짜까지 받아놓는 신세일까.

 

  이런 추측은 Y염색체의 진화를 분석한 결과 나왔다. 즉 3억 년 전 우리 조상은 오늘날 파충류처럼 성염색체가 따로 없었다. 그런데 어느 시기 한 염색체에 수컷을 결정하는 유전자가 나왔고(SRY유전자), 이 유전자가 있는 염색체(Y염색체의 조상)와 없는 염색체(X염색체의 조상)가 따로 갈 길을 가면서 더 이상 염색체쌍을 이루지 못하게 됐다는 것.

 

  그런데 Y염색체의 조상은 웅성을 결정하는 유전자가 특화되면서 다른 유전자들은 급격히 퇴화해 오늘날 왜소한 상태가 된 것이다. 참고로 사람의 경우 X염색체는 1억5500만 염기쌍에 유전자가 2000여개나 되지만 Y염색체는 5900만 염기쌍에 유전자도 78개에 불과하다. Y염색체가 지난 3억 년 동안 퇴화한 속도를 반영하면 앞으로 수명이 1000만 년이라는 것.

 

●X염색체불활성화의 예외

 

  이처럼 점점 더 위축되던 Y염색체가 모처럼 어깨를 펴고 활짝 웃을 연구결과가 ‘네이처’ 4월 24일자에 실렸다. 성전환 역할이 Y염색체 ‘존재의 이유’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사실 이건 X염색체가 하나뿐인 여성에게서 나타나는 비정상적인 현상을 보면 짐작할 수 있는 것이었다. 똑같이 X염색체가 하나인 남성에게는 이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Y염색체가 X염색체의 기능 일부를 수행하고 있다는 뜻이다. 무슨 말인지 약간 헷갈릴 텐데, 이를 이해하려면 먼저 ‘X염색체불활성화(X-inactivation)’부터 살펴봐야 한다.

 

  여성은 XX, 남성은 XY다. 그리고 X염색체에는 전체 유전자의 10%에 해당하는 2000여개의 유전자가 있다. 자 이제 유전자의 발현을 생각해보자. 쌍으로 존재하는 다른 염색체에 있는 유전자의 발현양은 남녀 차이가 없다. 둘 다 한 쌍씩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X염색체에 있는 유전자의 경우 여성은 쌍으로 있으므로 발현양이 하나뿐인 남성의 두 배다. 유전자 산물(대부분 단백질)에 따라 양이 큰 상관이 없는 경우도 있지만 민감한 경우도 있다. 따라서 무려 2000가지 유전자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발현양이 두 배일 경우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포유류는 성염색체 진화(Y염색체 퇴화) 과정에서 놀라운 장치를 개발해 이 딜레마를 해결했다. 바로 X염색체불활성화다. 즉 암컷의 경우 X염색체 두 개 가운데 하나는 불활성화돼 작동을 하지 않는 것. 따라서 X염색체가 쌍으로 있어도 유전자 발현양은 X염색체가 하나뿐인 수컷과 별 차이가 없다.

 

  X염색체불활성화는 배아발생과정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어떤 X염색체(즉 모계냐 부계냐)가 불활성화가 될지는 임의로 정해진다. 일단 정해지면 그 세포가 분열한 딸세포는 불활성화 계열을 유지한다. 바꿔 말하면 포유류 암컷은 사실상 모두 모자이크 개체인 셈이다. 즉 어떤 세포는 부계의 X염색체가 활동하고 어떤 세포는 모계의 X염색체가 활동한다. 이를 잘 보여주는 예가 삼색털얼룩고양이로 털색을 결정하는 유전자가 X염색체에 있는데, 모계와 부계의 유형이 다른 결과다.

 

X염색체가 하나뿐인 결과 나타나는 터너증후군은 X염색체불활성화로 설명할 수 없다. 실제 불활성화된 X염색체에서도 일부 유전자가 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터너증후군의 염색체. - 위키피디아 제공
X염색체가 하나뿐인 결과 나타나는 터너증후군은 X염색체불활성화로 설명할 수 없다. 실제 불활성화된 X염색체에서도 일부 유전자가 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터너증후군의 염색체. - 위키피디아 제공

 

 

  그런데 X염색체불활성화가 설명하지 못하는 현상이 있다. 바로 X염색체가 하나뿐인 여성이 보이는 비정상적인 상태다. X염색체불활성화에 따르면 어차피 X염색체 하나면 충분하므로 X염색체가 하나뿐이라도 정상이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런 수정란은 대부분 발생과정에서 죽고 드물게 생존해 태어나도 발육부진, 성기능상실 등 특유의 증상이 나타난다. 바로 터너증후군(Turner syndrome)이다.

 

  지난 수년 사이 과학자들은 터너증후군이 일어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현상을 발견했다. 즉 X염색체불활성화가 X염색체상의 모든 유전자에 작용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즉 사람의 경우 X염색체 유전자의 15~25%는 불활성화된 염색체에서도 발현된다는 것이다.

 

●2500만 년 전부터 퇴화 멈춰

 

  이번에 ‘네이처’에 실린 논문을 보면 Y염색체에 존재하는 36개의 유전자가 바로 X염색체에서 불활성화의 예외인 유전자라고 한다. 즉 이들 유전자는 여성의 경우 X염색체 두 쌍에서 모두 발현하고 남성의 경우 X염색체와 Y염색체에서 발현한다. 그 결과 남녀에서 발현양이 비슷하다.

 

  반면 터너증후군인 여성의 경우 X염색체 하나뿐이므로 이런 유전자의 발현양이 절반이고 따라서 문제가 생겼다고 볼 수 있다. 즉 Y염색체는 단지 수컷이라는 성정체성 확립에 필요할 뿐 아니라 성염색체로 진화하기 이전의 상염색체로의 기능 일부도 여전히 수행하고 있다는 것.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퇴화속도를 근거로 1000만 년 뒤에는 사라질 거라는 주장은 바뀌어야 할까.

 

  이번에 ‘네이처’에 실린 논문을 보면 답은 ‘그렇다’이다. 스위스 로잔대 헨드릭 케스먼 교수팀은 포유류 15종의 Y염색체 염기서열을 비교분석한 결과를 실었는데 무척 흥미롭다. 포유류는 알을 낳는 원수아강(原獸亞綱, 오리너구리 같은 단공류)과 새끼를 낳는 수아강으로 나뉘고 수아강은 다시 태반포유류와 유대류로 나뉜다.

 

  그런데 게놈을 면밀히 조사한 결과 오늘날 인간으로 이어온 Y염색체 진화는 수아강에서부터 일어났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즉 Y염색체의 기원은 기존의 3억 년(포유류와 조류가 갈라진 이후)이 아니라 약 1억 8100만 년 전(약 2억 년 전 원수아강과 수아강이 갈라지고 한 참 뒤)로 바꿔야 한다는 것. Y염색체의 역사가 3분의 1 이상 짧아진 것이다.

 

  SRY유전자를 갖는 초기 Y염색체가 등장한 직후인 약 1억8000만 년 전 태반포유류와 유대류가 갈라졌고 그 뒤 Y염색체의 급격한 진화(퇴화)가 일어났다. 그런데 약 9000만 년 전 설치류와 영장류가 갈라진 뒤 특히 영장류에서 Y염색체의 퇴화가 급격히 느려졌다. 특히 약 2500만 년 전 갈라진 인류와 붉은털원숭이는 공통조상이 갖고 있던 Y염색체의 유전자를 온전하게 보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Y염색체의 퇴화가 멈춘 상태라는 말이다.

 

  앞으로 인류의 진화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겠지만 Y염색체가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포유류 성염색체의 진화. 원래 상염색체 한 쌍(위 맨 왼쪽)에서 웅성을 결정하는 유전자(SRY)가 한 쪽에 생기면서 Y염색체가 되고 이게 퇴화하면서 현재 인간의 Y염색체(위 맨 오른쪽)가 나왔다. 아래는 조류와 포유류에서 일어난 진화 과정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 - 네이처 제공
포유류 성염색체의 진화. 원래 상염색체 한 쌍(위 맨 왼쪽)에서 웅성을 결정하는 유전자(SRY)가 한 쪽에 생기면서 Y염색체가 되고 이게 퇴화하면서 현재 인간의 Y염색체(위 맨 오른쪽)가 나왔다. 아래는 조류와 포유류에서 일어난 진화 과정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 - 네이처 제공

이 기사가 괜찮으셨나요?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댓글 0

10 + 5 = 새로고침
###
    과학기술과 관련된 분야에서 소개할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 고발 소재 등이 있으면 주저하지 마시고, 알려주세요. 제보하기

    관련 태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