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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에볼라 역병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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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에볼라 역병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2014.08.04 18:00

  어머니는 늘 저에게 ‘웅변은 은이고 침묵은 금’이라고 가르치셨죠. 하지만 전 차마 말로 할 수 없는 광경을 너무나 많이 보았습니다.
- 페터 피오트, 에볼라 바이러스를 처음 관찰한 바이러스학자.

 

  필자가 단골로 가는 카페에서는 주인장이 커피 마니아라서인지 매주 스페셜 커피를 내놓는다. 지난주에는 르완다 원두였는데 맛이 꽤 좋았다. 보통 핸드 드립 카페에서는 아프리카 원두로 에티오피아와 케냐, 탄자니아가 메뉴에 올라있는데 뜻밖이었다.

 

  그런데 문득 ‘르완다면 예전에 학살이 있었던 곳 아닌가?’하는 생각이 떠올랐다(1994년 내전으로 인구의 10%가 넘는 100만여 명이 살해됐다). 뒤이어 ‘커피 농장 노동자들의 하루 임금은 지금 이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겠지…’라며 감상에 젖다가 최근 서아프리카 세 나라를 휩쓸고 있다는 에볼라로 생각이 넘어갔다. 정말 아프리카는 시련의 대륙인가.

 

  인터넷에서 기사를 검색해보니 올해 3월 발생한 에볼라로 7월 28일 현재 기니,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에서 1202명 감염돼 673명이 사망했다고 한다(8월 3일 현재 명 1440감염, 826명 사망). 그리고 기사 중간에 에볼라가 처음 발생한 건 1976년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에볼라가 바이러스 질병이고 치사율이 90%에 이르는 무시무시한 병이라는 정도만 알고 있던 필자는 ‘40년이 다 돼 가는데 세계 보건 당국은 뭘 하고 있었던 건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불현듯 오래 전에 ‘The Coming Plague’라는 책을 샀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역병(疫病)의 도래’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는데, 20세기 등장한 신종전염병을 다루고 있다. 당시 재미있을 것 같아 샀다가 분량도 방대하고(본문만 620쪽이다) 글자도 깨알 같아 얼마 안 읽고 질려 내팽개쳤다. 그런데 이 책에서 별도의 장을 할애해 에볼라를 다루고 있었던 것 같다. 집에 와 찾아보니 책장 한 귀퉁이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꽂혀있다.

 

  책을 꺼내 물 묻힌 휴지로 먼지를 닦아낸 뒤 커버를 여니 1994년 발간된 책으로 필자가 1995년 구매했다. 무려 19년 만에 다시 책상위에 놓인 것이다. 차례를 보니 필자의 기억이 정확했다. 5장에서 53쪽에 걸쳐 1976년 에볼라가 등장하던 상황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다른 장들 곳곳에서도 에볼라를 언급하고 있다. 이야기가 너무 심각하고 긴박해서 ‘손에 땀을 쥐며’ 읽었다. 

 

 

미국의 과학저술가 로리 가렛은 1994년 출간한 ‘The Coming Plague’에서 에볼라의 첫 창궐 과정을 상세히 묘사했다. 가렛은 에볼라에 대한 보도로 1996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 강석기 제공
미국의 과학저술가 로리 가렛은 1994년 출간한 ‘The Coming Plague’에서 에볼라의 첫 창궐 과정을 상세히 묘사했다. 가렛은 에볼라에 대한 보도로 1996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 강석기 제공

  과학저술가라는 저자 로리 가렛(Laurie Garret)이 어떤 사람인가 궁금해 검색해보니 1976년 자이르(현 콩고민주공화국)의 에볼라 발생과정을 용기있게 다룬 업적으로 1996년 퓰리처상까지 받았다. 즉 ‘The Coming Plague’의 노른자가 바로 에볼라인 셈이다. 아쉽게도 이 책은 번역되지 않았고 검색을 해봐도 1976년 에볼라 등장을 상세히 다룬 문헌이 없는 것 같아 이 자리에서 이 책의 5장을 요약해본다.

 

●미지의 출혈열 사망자 속출

 

  현재 에볼라 창궐로 심각한 곳은 서아프리카 세 나라이지만 1976년 에볼라가 처음 보고된 곳은 중부 아프리카에 있는 콩고민주공화국이다. 아프리카 나라들은 몇 나라를 빼면 어디에 있는지 몰라 지도를 보니 탄자니아 서쪽에 있는 큰 나라다(면적이 한반도의 10배가 넘는다). 그리고 두 나라 사이에 소국 르완다가 있다!

 

  콩고민주공화국과 르완다의 역사는 겹치는 면이 있는데, 먼저 두 나라 다 벨기에의 식민지였다. 콩고민주공화국은 1960년, 르완다는 1962년 독립했다. 그리고 극도의 국정 혼란 속에서 내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것도 비슷하다. 1965년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모부투 세세 세코는 1971년 나라 이름을 자이르(Zaire)로 바꿨는데, 1997년 반군세력이 32년 독재자를 축출한 뒤 국명을 콩고민주공화국으로 돌려놨다. 따라서 1994년 출간된 책에는 자이르로 돼 있다.

 

  이야기는 1976년 8월 26일 자이르 북부 붐바 지역(Bumba Zone)의 얌부쿠(Yambuku, 5장의 제목이다) 마을에 있는 선교 병원에서 시작한다. 인근 마을에 사는 마발로 로켈라(Mabalo Lolela)라는 44세 남성이 8월 10일에서 22일에 이르는 긴 휴가로 북쪽 중앙아프리카공화국과의 국경 지대를 여행하고 온 뒤 미열을 느껴 말라리아에 또 감염됐다고 생각하고 병원에 와서 치료제인 퀴닌 주사를 맞고 간 것. 이 병원에는 의사가 없고 벨기에인 수녀 간호사 네 명이 의사 노릇을 하고 있었다.

 

 

에볼라 발생 지역. 1976년 자이르(현 콩고민주공화국) 북부의 얌부쿠(Yambuku)와 수단 남부 은자라(N
에볼라 발생 지역. 1976년 자이르(현 콩고민주공화국) 북부의 얌부쿠(Yambuku)와 수단 남부 은자라(N'zara)에서 거의 같은 시기에 처음 발생했다. 그 뒤 수년 간격으로 발생했는데(지도는 2008년까지 데이터) 올해에는 서아프리카 3개국에서 최악의 사태로 발전해 전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동그라미 크기는 환자수에 비례하고 색깔은 바이러스 아형(subtype)으로 빨간색은 자이르 아형, 녹색은 수단 아형, 노란색은 코트디부아르 아형, 파란색은 분디부교 아형이다. - 위키피디아 제공

  이틀 뒤 서른 살 남성이 심한 설사를 호소하며 병원을 찾았다. 인근 얀동기(Yandongi) 마을에서 왔다는 이 남자는 피가 섞인 설사를 하고 코피를 흘렸는데 입원 이틀 뒤 홀연히 사라졌다. 9월 1일 마발로는 다시 병원을 찾았다. 말라리아 주사가 효과가 없었는지 열이 38도를 넘었다. 며칠 더 쉬라는 얘기를 듣고 집으로 돌아온 마발로는 상태가 급격히 악화돼 5일 다시 병원으로 들어왔다. 구토와 설사로 탈수가 심각했고 눈이 퀭했다. 그리고 코와 잇몸에서 피가 흘러 나왔고 토사물, 설사에도 피가 섞여 있었다.

 

  당황한 수녀들은 항생제, 말라리아 약, 비타민, 수액 등 갖고 있는 모든 약을 처방했지만 마발로는 8일 사망했다. 훗날 밝혀졌지만 7일 욤베 농고(Yombe Ngongo)라는 16세 소녀가 집에서 죽었고 9일 9살짜리 여동생 유자(Euza)가 죽었다. 이 자매는 마발로가 방문한 9월 1일 병원에 있었는데, 언니가 빈혈로 수혈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이 주에 젊은 부부가 집에서 죽었는데, 역시 9월 1일 아내가 말라리아 증세로 병원에 있었고 남편이 수발을 들었다. 

 

  한편 마발로는 전통 장례 풍속에 따라 아내 소피와 처제(또는 처형) 기지, 어머니가 맨손으로 입과 항문에 손을 넣어 장속의 음식과 배설물을 제거했다. 수일 뒤 세 사람도 같은 증세를 보였고 마발로의 어머니는 20일 사망했지만 자매는 살아남았다. 장례를 도운 마발로의 장모도 사망했다. 훗날 조사한 결과 마발로의 친구와 친척 가운데 21명이 발병했고 18명이 사망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병원은 비슷한 증상의 환자들로 가득 찼고 공포가 퍼지기 시작했다. 환자들은 울부짖고 옷을 찢고 아내나 남편, 자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한편 9월 12일 베아타(Béata) 수녀가 증상을 보였다. 미리엄(Myriam) 수녀와 에드몬다(Edmonda) 수녀는 무선통신(햄)을 통해 도움을 요청했다(당시 전화도 없었다). 9월 15일 얌부쿠 병원을 방문한 붐바 지역의 의사 응오이 무숄라(Ngoi Mushola) 박사는 처참한 광경에 전율했다. 마음을 다잡고 이틀 동안 조사를 마친 무숄라 박사는 17일 붐바로 돌아가 수도 킨샤사(Kinshasa)의 관리들에게 아래의 보고서를 보낸다.

 

 

  9월 15일 얌부쿠 병원에서 긴급 연락을 받았습니다. 1976년 9월 5일부터 그 지역에 심각한 상황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 방문했습니다.
상황: 증상은 39도 내외의 고열과 소화된 검은 피를 자주 토하고(몇몇 환자는 붉은 피를 토하기도 했습니다) 설사는 초기에는 피가 섞인 정도이지만 죽기 직전에는 붉은 피로만 이뤄져 있습니다. 수시로 코피를 흘리고 가슴과 배 통증을 호소하고 인사불성이 됩니다. 양호한 상태에서 불과 3일 만에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응오이의 보고서에 따르면 환자 26명 가운데 14명이 죽었고 8명이 아프고 4명이 도망쳤다. 응오이는 병원을 떠나며 수녀들에게 세 가지를 당부했다. 즉 환자는 무조건 입원시키고 사망자는 공동묘지에 묻고 물을 끓이라는 것. 의사가 떠나고 이틀 뒤인 19일 베아타 수녀가 숨을 거뒀다. 마침내 정부는 자이르국립대의 교수 두 명을 얌부쿠로 파견했다. 미생물학자인 린탁(Lintak)과 역학자(epidemiologist)인 오몸보(Omombo)로 이들은 6일 일정으로 방문했지만 끔찍한 광경에 하루 만에 철수했다.

 

  한편 16년 동안 대통령 모부투 세세 세코의 주치의로 일하던 미국인 윌리엄 클로우스(William Close) 박사는 아프리카를 해방시킬 영웅에서 독재자와 축재자로 변해가는 대통령 모습에 염증을 느끼고 미국에서 여생을 보낼 농장을 알아보고 있었다. 그런데 자이르의 보건부 장관 응고웨테 키켈라(Ngwété Kikhela) 박사가 전화를 해 미국의 도움을 청했다. 클로우스는 즉시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연락을 해 얌부쿠 사태를 알렸다.

 

  급히 자이르로 돌아온 클로우스는 대통령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수습 과정에 대통령 전용기를 써도 된다는 허락을 얻는다. 한편 보건부 장관의 요청으로 킨샤사의 의사 세 명으로 구성된 조사단이 파견됐다. 자이르인 보건관리인 크루바 박사와 벨기에인 선교 의사인 장-프랑수아 루폴 박사, 프랑스인 선교 의사인 질베르 라피어 박사다. 이들은 현장조사를 하며 환자와 사체의 몸에서 시료를 채취했다. 

 

●물음표 바이러스 ‘???? 바이러스’

 

  이 무렵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세계보건기구(WHO) 바이러스 분과를 맡고 있던 폴 브레는 수단 남부 마리디(Maridi)라는 지역에서 이상한 역병이 돌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브레는 수단의 상황이 자이르의 얌부쿠와 비슷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카르툼(수단의 수도)의 관리들에게 마리디 환자의 혈액과 조직 시료를 채취해 빨리 보내라고 재촉했다. 만일 두 질병이 같은 것이라면 이는 치명적인 재앙이 두 나라에 걸쳐 퍼져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10월과 11월에 걸쳐 자이르와 수단에서 시료가 왔고 WHO는 이를 미국과 영국, 벨기에, 서독, 프랑스로 보냈다. 자이르의 시료를 받은 벨기에 앙베르대의 젊은 바이러스학자 페터 피오트(Peter Piot) 박사는 황열(yellow fever)의 일종으로 추정된다는 WHO의 코멘트에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한다.

 

  그러나 실험을 할수록 의구심이 커졌다. 먼저 황열 바이러스 항체에 대해 음성 반응이 나왔다. 즉 황열은 아니라는 뜻이다. 장티푸스 항체에 대해서도 음성이었다. 동료 귀도 반 데르 그뢴이 원숭이 세포 배양액에 시료 한 방울을 넣자 11일 이내에 세포들이 죽었다. 이 사실을 보고받은 벨기에 정부는 실험을 중단하고 시료를 위험한 생체시료를 다루는 설비가 있는 외국의 실험실로 보내라고 지시했다.

 

  피오트는 모르는 척 전자현미경 실험을 진행했는데, 물음표(?)처럼 생긴 이상한 바이러스가 보였다. 발견의 흥분을 감추지 못한 피오트는 이 미지의 바이러스를 ‘???? 바이러스’라고 불렀다. 그러나 WHO에서 모든 연구를 중단하고 즉각 시료를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로 보내라는 메시지가 오자 순순히 이를 따랐다. 이제 WHO는 이 괴질이 마르부르크(Marburg)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마르부르크 출혈열은 1967년 독일 도시 마르부르크의 한 연구소에서 아프리카 원숭이를 다루던 연구원 세 사람이 처음 증상을 보였고 조사 결과 바이러스가 원인으로 밝혀졌다. 그 뒤 유럽의 여러 연구소에서 원숭이를 다루던 연구자들이 감염됐고 일부가 사망했다. 훗날 에볼라 바이러스의 게놈을 분석한 결과 정말 마르부르크 바이러스와 가까운 사이라는 게 밝혀졌다. 둘은 필로바이러스(filovirus), 즉 길쭉한 필라멘트 입자 바이러스에 속한다.

 

  한편 벨기에 앙베르대의 책임자인 스테판 패틴(Stefan Pattyn) 박사는 바이러스가 설치류에도 치명적이라는 실험 결과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결국 더 이상 실험을 할 수 없게 된 패틴과 피오트는 자청해서 자이르 현장으로 떠난다. 

 

  미국 CDC는 자이르의 시료를 분석한 결과 마르부르크와 비슷한 바이러스가 원인으로 보인다는 보고서를 10월 10일 WHO에 알렸고 WHO는 그에 따라 조치를 한 것. 이런 위험한 시료를 취급할 수 있는 곳은 미국 CDC와 영국 포턴다운(Porton Down)뿐이다. 포턴다운에서는 지오프리 플랫(Geoffrey Platt)이 수단에서 온 시료를 분석했는데 ‘형태적으로는 마르부르크와 비슷하지만 항체적으로는 다른’ 미지의 바이러스라고 결론내렸다.

 

●상황 파악 위해 몸을 던진 과학자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WHO는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의 바이러스학자 피에르 시로(Pierre Sureau) 박사를 자이르 킨샤사로 급파해 정부를 도와 사태를 수습하게 했다. 한편 미국 CDC의 칼 존슨(Karl Johnson) 박사, 조엘 브레먼(Joel Breman) 박사도 자이르에 왔다. 10월 18일 응고웨테 보건부 장관이 주관하는 ‘국제 위원회’ 첫 모임이 열렸다. 그 결과 피오트와 시로, 브레먼이 벨기에인 선교 의사 루폴과 함께 다음날 붐바 지역으로 떠나기로 결정됐다.

 

1976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에서 에볼라 발생 대책을 논의하는 장면. 가운데가 급성 전염병 분과 책임자인 칼 존슨 박사이고 오른쪽이 조엘 브레먼 박사다. 두 사람은 얼마 뒤 자이르로 가서 사태 파악과 수습에 최선을 다한다. - CDC 제공
1976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에서 에볼라 발생 대책을 논의하는 장면. 가운데가 급성 전염병 분과 책임자인 칼 존슨 박사이고 오른쪽이 조엘 브레먼 박사다. 두 사람은 얼마 뒤 자이르로 가서 사태 파악과 수습에 최선을 다한다. - CDC 제공

  붐바에 하루 체류하고 얌부쿠에 도착한 일행은 병원을 폐쇄한 채 절망해 있는 수녀들을 위로한 뒤 피오트와 시로, 마르셀라 수녀가 한 조가 돼 다음날부터 현장조사에 들어갔다. 마을을 방문해 환자의 혈액을 채취하는 과정에서 이들은 현지인들이 현명하게 대처하고 있다는 것 깨달았다. 즉 교역을 멈추고 환자와 가족들은 격리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었던 것. 첫날 조사를 마친 결과 최악의 상황은 지나간 것 같았다.

 

  킨샤사에서 사실상 조사단을 이끌고 있는 CDC의 칼 존슨은 괴질의 매개체(reservoir)를 찾는 일과 진단법을 찾는 일, 얌부쿠(자이르)와 마리디(수단)의 관계를 규명하는 게 시급하다고 판단하고 즉각 조치를 취했다. 벨기에에서 킨샤사로 급파된 반 데르 그뢴은 혈액이 신종 바이러스에 감염됐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면역형광법을 개발했다. 즉 바이러스에 감염된 원숭이 세포에 혈액을 떨어뜨렸을 때 항원항체 반응이 일어나면 혈액에 항체가 있다는, 즉 감염됐다는 뜻이다.

 

  한편 얌부쿠 조사단원인 CDC의 브레먼은 병원의 주사기가 감염 확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추측했다. 즉 병원에는 주사기가 다섯 개 뿐이었고 이걸로 매일 300~600명의 환자를 상대했던 것. 물론 주사 전에 제대로 소독을 하지 않았다.

 

  한편 시에라리온에서 라사열(Lassa fever)을 연구하고 있던 CDC의 조 맥코믹(Joe McCormick)은 존슨의 부름을 받고 자이르와 수단의 접경 지역을 조사하는 임무를 맡았다. 서로 600km가 넘게 떨어진 두 곳에서 거의 같은 시기 벌어진 역병의 관계를 규명하는 게 목적이다. 놀랍게도 그 사이에 사는 사람들은 얌부쿠의 역병에 대해 모르는 것 같았고 그런 증상을 보이는 사람에 대한 얘기도 들을 수 없었다. 그리고 국경 지대는 워낙 오지로 교류도 미미한 것 같았다.

 

  국경을 넘어 수단 은자라(N'zara)에 도착한 맥코믹은 이곳의 역병도 수그러들고 있음을 확인하고 수일에 걸쳐 환자들의 혈액시료를 채취했다. 한편 이 무렵 얌부쿠에서는 대대적인 역학 조사가 이뤄져 550곳이 넘는 인근 마을의 3만4000여 가족을 조사했고 442명의 혈액시료를 채취했다. 또 바이러스 매개체를 찾기 위해 곤충과 동물 시료도 모았다.

 

  11월 6일 자이르의 보건부 장관 응고웨테는 그간의 조사결과를 집계해 발표했다. 358명이 감염돼 325명이 사망해 치사율이 90.7%에 이른다는 것. 역대 전염병 가운데 두 번째에 이르는 가공할 수치다. 참고로 최악의 전염병은 광견병으로 치사율이 100%다! 응고웨테는 이 역병을 일으킨  신종 바이러스에 에볼라 바이러스(Ebola virus)라는 이름을 붙였다. 병이 처음 나타난 지역을 흐르는 에볼라 강을 따서 붙인 이름이다.

 

  한편 조사를 마치고 16일 얌부쿠로 이동한 맥코믹은 두 곳의 역병이 에볼라 바이러스가 일으켰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서로 관계가 없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리고 수단의 에볼라가 좀 덜 심각한 것 같다고 언급했다. 사람들은 맥코믹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훗날 사실로 드러난다. 맥코믹은 1983년 발표한 논문에서 게놈분석을 통해 자이르의 에볼라 바이러스와 수단의 에볼라 바이러스는 서로 다른 유형임을 밝혔다.

 

  사실 수단에서의 에볼라 발생 시기는 자이르보다 두 달 가량 빨랐던 것으로 확인됐다. 즉 은자라의 면직공장의 한 노동자가 6월 27일 발병했고 7월 6일 사망했다. 수단의 에볼라는 전염성이 커서 마리디 병원의 직원 가운데 3분의 1 이상이 감염돼 41명이 사망했다. 11월 20일까지 284명이 발병해 151명이 사망해 53%의 치사율을 보였다. 둘에 한 명이 죽는 엄청난 역병이지만 90%가 넘는 자이르 에볼라에 비하면 훨씬 낮은 수치다.

 

  조사단은 위생상태가 엉망인 면직공장을 샅샅이 뒤져 박쥐, 쥐, 바구미, 거미 등 많은 동물을 채집해 조사했지만 에볼라 바이러스를 검출하지는 못했다. 이후 10여 년 동안 과학자들은 수많은 동물을 잡아 조사를 했지만 박쥐 몇 마리에서 항체 양성 반응이 나왔을 뿐 감염된 동물을 찾지 못했다. 따라서 책에서도 에볼라 바이러스의 기원은 여전히 미스터리라고 쓰고 있다. 참고로 2005년 학술지 ‘네이처’에는 과일박쥐가 에볼라 바이러스 보균체일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실제로 현재 에볼라가 창궐하고 있는 서아프리카 사람들은 과일박쥐를 잡아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방역당국은 박쥐를 먹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다.
 
●실수로 주사 바늘에 찔려 감염되기도

 

  현재 미국에서는 라이베리아에서 에볼라 환자를 치료하다 감염된 켄트 브랜틀리 박사의 본국 소환을 두고 말이 많다고 한다. “미 정부가 경악할 권력남용을 하고 있다”는 비난에 CDC의 토머스 프리든 소장은 “미국 시민은 미국에 돌아올 권리가 있다”며 자신들을 믿고 공포감을 떨쳐내라고 당부했다. 지난 2일 특별기편으로 조지아주 도빈슨 공군기지에 착륙해 애틀란타의 에모리대학병원 내에 있는 CDC로 이송된 브랜틀리 박사가 방호복 차림으로 구급차에서 내리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몇몇 종교단체가 서아프리카로 의료봉사단을 보내겠다고 해 이들의 출국을 막아달라는 청원이 청와대 게시판을 도배하고 있다고 한다. 만에 하나 의료봉사를 하다 감염이 되면 정부로서는 곤혹스러울 것이다. 물론 이런 환자를 수송할 특별기도 없지만, 설사 미국에서 빌려준다 하더라도 과연 국내로 데려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만에 하나 이렇게 들어온 환자를 통해 국내로 에볼라가 확산되면 그 공포와 혼란을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있는 매뉴얼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우리로서는 미국 같은 결정을 내린다는 건 너무 위험한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책을 보면 1976년 당시 영국 포턴다운에서 에볼라 바이러스 사고가 실제 발생했는데, 그 과정이 정말 영화속의 한 장면이다. 바이러스학자 지오프리 플랫은 한 달 째 수단에서 보내온 시료에서 바이러스의 실체를 밝히는 연구를 극도로 조심해가면서 수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11월 5일 아침, 바이러스의 병원성을 보기 위해 실험동물에 시료를 주사하는 작업을 하던 플랫은 실수로 주사기를 놓쳤는데 불운하게도 바늘이 엄지손가락 손톱 위 피부를 살짝 스쳤다.

 

  화들짝 놀란 플랫은 손가락을 살펴봤고 피는 나지 않았지만 부랴부랴 소독액에 담근 뒤 사건을 보고했다. 안절부절하며 6일을 보낸 11월 11일 자정 무렵, 체온이 갑자기 올라가면서 플랫은 오한을 느꼈다. 전자현미경으로 혈액을 관찰한 결과 ‘????바이러스’가 존재했다. 당국은 즉시 인근 코페츠우드병원으로 플랫을 격리시켰고 입원환자 160명은 영문도 모른 채 짐을 싸 다른 병원으로 옮겨졌다. 한편 영국 정부는 포턴다운을 폐쇄하고 직원 다수를 가택에 격리시켰다.   

 

  49일 동안의 집중치료를 받고 플랫은 목숨을 건졌다. 첫 한 주가 고비였는데, 체온이 40도를 넘기도 했다. 의료진은 당시 막 개발된 인간 인터페론을 비롯해 모든 수단을 동원했는데 자이르 킨샤사에서 급송한 소피의 혈장을 주사하기도 했다. 공식적인 첫 사망자인 마발로의 아내인 소피는 병에서 살아남았기 때문에 혈액에 에볼라 바이러스 항체가 있을 것이므로 혈장이 치료제 역할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플랫의 상태는 너 나빠졌고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다행히 11월 20일부터 상태가 호전됐다. 그리고 포턴다운이나 플랫의 친지 가운데 감염자가 없는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

 

  1977년 크리스마스에 파리의 안락한 아파트에서 피에르 시로 박사는(사태가 진정된 뒤 파스퇴르연구소로 복귀했다) 얌부쿠 선교 병원의 마르셀라, 제노베바, 마리에트 수녀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편지에서 수녀들은 당시의 참담함을 회상하며 시로 박사에 감사를 표시하고 있다. 마치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을 먼 과거의 일처럼. 에볼라는 그 뒤에도 수년 간격으로 돌아왔고 38년이 지난 2014년 유례없이 기세를 떨치고 있다는 걸 꿈에라도 생각했다면 결코 그런 편지를 쓰지는 못했을 것이다.

 

  박사님, 1978년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최근 며칠 동안 저희들은 지난해 사건들과 저희에게 좋은 기억을 남겨준 박사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저희들은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선생님께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감히 올 생각을 못할 때 선생님은 저희를 돕기 위해 기꺼이 오셨으니까요. 이제 일상의 삶으로 돌아왔습니다. 이곳엔 자이르인 의사 한 사람이 머무르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벨기에인 자원봉사자 네 명과 수녀 한 사람이 병원 재건을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학생들도 학교로 돌아와 시끌벅적합니다.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 애정을 보내며.

마르셀라 수녀, 제노베바 수녀, 마리에트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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