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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메뚜기들은 왜 떼를 이루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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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9월 01일 18:00 프린트하기

  임금이 없지만 모두 질서정연하게 나아가는 메뚜기
  - ‘구약성경’, 잠언 30:27

 

  요즘은 워낙 친환경 농산물이 흔하지만 십수 년 전만해도 농약을 치지 않아 벼가 익는 논에서 메뚜기를 다시 볼 수 있게 됐다는 게 뉴스가 되기도 했다. 별 일이 없었다면 다음 주 이른 추석을 맞아 고향 풍경을 전하며 벼 잎에 메뚜기가 붙어 있는 장면이 클로즈업된 배경화면이 나왔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난 주 해남에서 벌어진 엽기적인 사건 때문에 농촌 가을 풍경의 정겨움과 풍요로움을 상징하던 메뚜기에 대한 이미지가 180도 바뀌었다. 바로 메뚜기 떼의 출몰 때문이다. 다행히 재빠른 대처로 거의 제압되었다지만 TV 화면에서 농작물 주변에 ‘쫙 깔린’ 적갈색의 수많은 메뚜기들은 솔직히 좀 혐오스러웠다.

 

 

전남 해남군 산이면 덕호리 간척지에 출몰한 풀무치 떼의 모습. 벼와 잡곡류의 잎과 줄기를 갉아 먹으며 피해를 주고 있다.  - 채널A 제공
전남 해남군 산이면 덕호리 간척지에 출몰한 풀무치 떼의 모습. 벼와 잡곡류의 잎과 줄기를 갉아 먹으며 피해를 주고 있다.  - 채널A 제공

  우리가 메뚜기라고 부르는 곤충은 여러 종을 포함한 통칭으로 이번에 문제가 된 풀무치는 전형적인(필자 생각에) 메뚜기다.

 

  시골에 살던 어린 시절 벌레를 좀 무서워하던 필자도 메뚜기만은 겁이 없이 잡고는 했다. 그런데 풀무치의 몸은 보통 풀과 비슷한 녹색(귀엽다)이거나 회갈색(이건 좀 그렇다)으로 기억하는데, 이번 풀무치 떼는 등이 시커멓고 배와 다리가 적갈색이라서 꽤 징그럽다.

 

  도대체 해남의 메뚜기 떼는 어디서 왔을까. 또 풀무치라는데 왜 몸의 색깔이 이렇게 다를까. 혹시 환경오염으로 유전적 변이가 일어난 ‘괴물’일까.

 

○무질서에서 질서로

  사실 동물들이 엄청난 숫자가 모여 한 무리를 이루는 현상은 메뚜기뿐 아니라 다른 곤충이나 새, 물고기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예전 해외 화제의 영상에서 중국에서인가 쥐들이 떼로 몰려드는 장면을 본 적도 있다. 흥미롭게도 이런 현상을 설명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은 생물학자가 아니라 수학자나 물리학자들인데, 대표적인 이론이 ‘자기 추진 입자(self-propelled particle, 줄여서 SPP)’ 모형이다.

 

  이 모형의 전제는 간단하다. 즉 입자는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고 그 방향은 가장 가까운 주변 입자의 방향에 따라 업데이트된다. 즉 자신의 방향에 가장 가까운 주변 입자의 방향의 값이 합쳐져 재조정되는 것. 이를 ‘가장 가까운 이웃 규칙(nearest neighbor rule)’이라고 부른다. 

 

 

자기 추진 입자 모형이라는 물리학 이론으로 메뚜기 떼의 형성을 설명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2006년 ‘사이언스’에 실렸다. 군대 행진처럼 열을 맞춰 같은 방향으로 이동하는 이집트땅메뚜기 떼의 모습. - Ralf Peveling/바젤대 제공
자기 추진 입자 모형이라는 물리학 이론으로 메뚜기 떼의 형성을 설명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2006년 ‘사이언스’에 실렸다. 군대 행진처럼 열을 맞춰 같은 방향으로 이동하는 이집트땅메뚜기 떼의 모습. - Ralf Peveling/바젤대 제공

  SPP 모형은 1995년 물리학 학술지 ‘피지컬리뷰레터스’에 처음 발표됐는데, 이 모형에 따르면 입자의 밀도에 따라 3가지 상(phase)이 존재하고 특정 밀도에서 전이가 일어난다. 온도가 내려감에 따라 수증기(기체)가 물(액체)과 얼음(고체)으로 상전이가 일어나는 것과 비슷하다.

 

  즉 입자의 밀도가 낮을 때는 기체처럼 각 입자는 제멋대로 움직이는 무질서상태다. 그러다가 밀도가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입자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게 되는데 시간에 따라 방향이 바뀐다. 밀도가 더 올라가면 어느 순간 이런 패턴이 바뀌면서 이제 입자들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뿐 방향이 더는 바뀌지 않는 질서상태가 된다. 따라서 입자들의 이동속도와 같은 속도로 카메라가 따라가며 촬영하면 입자들이 마치 고체처럼 보인다. 연구자들은 다양한 동물에서 보이는 무리의 움직임을 SPP 모형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2006년 학술지 ‘사이언스’에는 무리를 잘 만드는 메뚜기로 유명한 이집트땅메뚜기(desert locust)의 개체 밀도 변화에 따른 움직임 패턴을 분석한 논문이 실렸다. 그 결과는 SPP 모형의 시뮬레이션 결과와 거의 일치했다. 연구자들은 도넛처럼 생긴 공간에 메뚜기를 넣고 비디오로 촬영한 뒤 각 개체의 움직이는 방향을 분석해 비교했다. 완전히 같은 방향일 때는 상관관계가 1이나 -1이고(시계방향이냐 반대방향이냐에 따라) 제멋대로 움직일 경우 평균하면 0이 나올 것이다.

 

  평방미터 면적으로 환산해서 5~17마리인 저밀도 조건에서는 시간에 따라 상관관계값이 제멋대로였고 평균하면 0이 나왔다. 그런데 메뚜기를 좀 더 집어넣어 25~62마리가 되자 움직임에 변화가 일어났다. 즉 처음에는 각자 제멋대로 움직이다 어느 순간 한 방향(예를 들어 시계방향)으로 움직였던 것. 그러나 100초쯤 지나자 갑자기 방향이 바뀌면서 반대 방향으로 일제히 움직였다. 그리고 이런 패턴이 반복됐다. 여기에 메뚜기를 더 넣어 74마리 이상이 되자 메뚜기들은 한 방향으로 움직일 뿐 더 이상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

 

  SPP 모형의 컴퓨터시뮬레이션 결과와 똑같은 패턴이다. 결국 성서에도 기록된 메뚜기 떼의 질서정연함은 간단한 물리학 모형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SPP 모형의 ‘가장 가까운 이웃 규칙’에 해당하는 메뚜기의 생리반응은 무엇일까.

 

○세로토닌 수치 변화가 필요충분조건

이집트땅메뚜기 떼가 형성되는 과정. 밀도가 낮을 때는 홀로 지내고 몸색깔도 녹색이다(A). 밀도가 높아지면서 서로 가까워지면서 자극을 주고받아(B) 가슴신경절에서 세로토닌 분비가 늘어난다(C). 그 결과 메뚜기들이 집단행동을 선호하게 되고(D) 몸색깔도 노란계열로 바뀐다(E). 성체가 된 메뚜기들은 떼로 날아다니며 농경지를 초토화한다. - 사이언스 제공
이집트땅메뚜기 떼가 형성되는 과정. 밀도가 낮을 때는 홀로 지내고 몸색깔도 녹색이다(A). 밀도가 높아지면서 서로 가까워지면서 자극을 주고받아(B) 가슴신경절에서 세로토닌 분비가 늘어난다(C). 그 결과 메뚜기들이 집단행동을 선호하게 되고(D) 몸색깔도 노란계열로 바뀐다(E). 성체가 된 메뚜기들은 떼로 날아다니며 농경지를 초토화한다. - 사이언스 제공

  2009년 ‘사이언스’에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한 논문이 실렸다. 밀도에 따른 메뚜기 행동변화의 생리적 메커니즘의 핵심은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serotonin)이라는 것. 세로토닌은 우울증과 관련해 대중에게도 익숙한 이름이라 곤충에서 이 이름이 나와 당황한 독자들도 있겠지만, 사실 세로토닌은 진화적으로 오래된 물질로 많은 동물들이 공유하고 있다.

 

  메뚜기의 경우 서식밀도가 올라가 주변에 다른 메뚜기가 보이고 메뚜기의 체취(페로몬)가 느껴지면 가슴신경절에 있는 세로토닌 분비 세포가 활성화된다는 것. 그 결과 생리적 변화가 일어나 형태와 행동이 바뀐다. 즉 이집트땅메뚜기의 경우 평소 홀로 살 때는 천적의 눈에 잘 안 띄게 주변 환경과 비슷한 녹색계열인 반면 떼를 이루는 걸 선호하는 모드가 되면 몸색깔도 노란색 계열로 바뀐다. 그리고 짝짓기 때가 아니면 다른 메뚜기를 보면 피하던 녀석들이 서로를 향해 모여들게 된다.

 

  연구자들은 세로토닌 수치 증가가 결정적인 요인이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두 가지 실험을 했다. 즉 페로몬 같은 외부 자극 없이 세로토닌을 주사해 행동변화가 일어나는지 확인했더니 정말 따로 노는 걸 좋아하던 녀석들이 같이 어울렸다. 다음으로 세로토닌의 작용을 방해하는 물질을 넣은 뒤 페로몬 같은 자극을 주는 실험을 했더니 예상대로 무리를 이루려하지 않았다.

 

  결국 메뚜기가 떼를 이루는 데는 세로토닌의 수치 증가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 따라서 세로토닌의 작용을 방해하는 물질을 살포하면 메뚜기 떼를 ‘해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로토닌은 대부분의 동물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신경전달물질이기 때문에 설사 효과가 있다고 해도 함부로 쓰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무작정 살충제를 뿌려대는 것도 최선의 방제대책은 아닐 것이다.

 

○생물적 방제 가능성 있어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PNAS)’ 1월 28일자에는 메뚜기 떼를 효과적으로 흩뜨릴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논문이 실렸다. ‘꿩 잡는 게 매’라고 살충제 같은 화학물질이 아니라 천적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논문에서 소개하는 천적은 쥐나 개구리처럼 메뚜기를 잡아먹는 동물이 아니라 메뚜기에 기생하는 미포자충이다.

 

  중국과 미국의 연구자들은 해남에 등장한 메뚜기 떼인 풀무치(Locusta migratoria)를 대상으로 미포자충 파라노세마 로쿠스티(Paranosema locustae)에 감염됐을 때 무리가 해체되는 메커니즘을 밝혔다. 앞서 말했듯이 메뚜기 밀도가 높아지면 페로몬이 작용해 세로토닌 수치가 올라가고 형태 및 행동 변화가 일어나다. 그런데 사실 페로몬을 만드는 건 메뚜기가 아니라 메뚜기 장에 살고 있는 장내미생물이다.

 

  그런데 메뚜기가 파라노세마에 감염되면 장이 산성화되고 활성산소농도가 높아지고 면역계가 교란되면서 페로몬을 만드는 장내미생물의 생장이 억제된다는 것. 그 결과 페로몬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고 따라서 세로토닌의 수치도 줄어들어 결국 집단행동을 하는 성향이 사라져 원래의 개인주의자로 돌아간다. 결국 메뚜기는 형태나 행동이 장내미생물이나 기생생물에 따라 바뀌는 ‘좀비’ 신세라는 말이다. 아무튼 파라노세마를 이용한 생물적 방제 시스템은 꽤 그럴듯해 보인다.
                           
  그런데 왜 메뚜기(또는 장내미생물)는 서식밀도가 높아질 때 행동 패턴의 극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걸까. 이는 환경변화에 대한 적응으로 설명할 수 있다. 즉 기후변화 등의 요인으로 개체수가 늘어날 경우 기존의 행동패턴을 유지한다면 전체적으로 단위 면적 당 개체수가 늘어난다. 그러면 개체 간 먹이(풀)에 대한 경쟁이 치열해지고 천적의 입장에서는 매일매일이 잔칫날이다.

 

  이 경우 차라리 더 밀집해 무리를 이루는 게 유리하다. 즉 수억 마리가 떼로 움직이며 한 지역의 먹이를 다 먹어치운 뒤(몸무게가 1~2그램인 메뚜기는 하루에 자기 몸무게만큼 먹는다!)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는 행동패턴을 갖는 것이다. 그 결과 천적에게 먹힐 가능성도 줄어들고(천적도 메뚜기처럼 모여 따라다니기는 어려우므로) 한 영역에 머물러 먹이를 두고 경쟁할 필요도 없다. 물론 메뚜기가 지나간 자리는 초토화된다.

 

  외국에서나 일어나는 일인 줄 알았던 메뚜기 떼의 등장이 우리나라에서도 관찰돼 많은 사람들이 놀랐을 것이다. 부디 내년에는 이런 일이 생기기 않아 메뚜기가 다시 수확의 계절을 상징하는 정겨움과 넉넉함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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