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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노벨생리의학상은 ‘노르웨이판 퀴리 부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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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노벨생리의학상은 ‘노르웨이판 퀴리 부부’에게

2014.10.13 18:00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모세르 부부)가 하루 종일 붙어다는 건 아니랍니다.
- 에드바르드 모세르, 2014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요즘은 그렇지 않겠지만 필자가 대학을 다닐 때만해도 캠퍼스 커플(CC)이 흔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대학원에 들어가자 실험실마다 커플이 한 두 쌍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특히 본교 출신 남학생과 다른 대학 출신 여학생 사이에 눈이 맞는 경우가 많았다. 낯선 환경에 어떻게 적응할지 걱정하던 여학생이 실험장비 사용법을 비롯해서 사소한 일까지도 자신을 챙겨주는, 똑똑하지만 아직 여자친구가 없는 실험실 동료(주로 선배나 동기)에게 쉽게 마음을 연 결과일까.

 

캠퍼스 커플과 실험실 커플의 가장 큰 차이점은 결혼으로 맺어지는 확률일 것이다. 전자가 매우 낮은 반면 후자는 꽤 높다. 실험실 커플의 나이가 결혼 적령기에 더 가까운데다 하루 종일 실험실에서 일하면서 상대의 일상 모습을 지켜보며 불확실성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커플이 깨지면 서로 불편해지므로(한 명이 실험실을 떠나는 경우도 있다) 갈등이 생기면 바로 갈라지는 CC와는 달리 웬만하면 참고 넘기는 것도 한 이유일 것이다. 어찌 보면 실험실 커플은 사내 커플과 비슷하다.

 

●실험실 커플 증가 추세

 

학술지 ‘네이처’ 6월 26일자에는 ‘친밀한 협력자’라는 제목으로 심층 기사가 실렸다. 실험실 커플을 포함해 일과 사랑을 함께 한 과학자 커플 네 쌍을 소개하는 내용이다. 당시 필자는 ‘뜬금없이 왜 이런 기사를 실었지?’라고 생각하며 읽지 않고 지나갔는데 지난 6일 노벨 생리의학상 발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수상자 세 명 가운데 두 명이 바로 실험실 커플이었기 때문이다.

 

부랴부랴 저널을 꺼내 기사를 봤는데 아쉽게도 기사에 등장한 네 커플 가운데 수상자 부부는 없었다. ‘네이처’가 뜬금없이 이런 기사를 낸 걸 보면 당시 기획자가 ‘촉이 왔던 것’ 같은데, 약간 덜 온 것 같다. 만일 당시 취재원 섭외에서 이번 수상자 부부를 포함했다면 글을 쓴 케리 스미스라는 작가는 그리스 비극에 나오는 예언자 테레시아스의 반열에 오르지 않았을까.

 

기사에서는 2010년 미국 국립과학재단에서 조사한 보고서를 언급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박사학위를 받은 과학자의 4분의 1 이상이 과학이나 공학 분야에서 일하는 배우자를 두고 있다고. 1993년에는 이런 비율이 5분의 1이었다고 한다. 필자생각에 이공계 여학생의 비율이 높아진 게 주요 원인이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도 비슷한 경향을 보이지 않을까.

 

필자는 위의 통계보다도 과학자 커플을 고용하는 미국의 연구소들도 늘고 있다는 얘기에 더 놀랐다. 즉 2008년 미국의 9000개 기관을 조사한 결과 커플을 고용한 비율이 13%로 1970년대 3%에 비해 급증했다는 것. 우리나라 같으면 부당 고용이라고 말이 많을 것 같은데 서구에서 이런 배려가 있다는 게 뜻밖이었다. 미국은 워낙 땅덩어리가 넓다보니 주말부부가 아니라 연말부부가 될 가능성도 있어서 그럴까.

 

●무명 대학 동시 채용 제의 받아들여

 

‘네이처’도 6월 26일자 기사에 아쉬움이 있었는지 10월 9일자에 2014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모세르 부부의 스토리를 네 쪽에 걸쳐 자세히 다뤘다. 대중들도 알기 쉬운 ‘뇌 GPS’로 비유되는 격자세포(grid cell)를 발견한 공로로 수상한 이들 부부는 1983년 노르웨이 오슬로대에서 처음 만나 2년 뒤 일찌감치 결혼했다. 남편 에드바르드(Edvard Moser)는 1962년 생, 아내 마이브리트(May-Britt)는 한 살 아래인 1963년 생이다.

 

2014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모세르 부부의 2010년 모습. 1983년 대학 캠퍼스에서 만나 지금까지 30여 년 동안 동고동락해왔다. - 카블리연구소 제공
2014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모세르 부부의 2010년 모습. 1983년 대학 캠퍼스에서 만나 지금까지 30여 년 동안 동고동락해왔다. - 카블리연구소 제공

대학에서 뭘 공부할까 고민하던 두 사람은 뇌에 관심을 갖게 되고 대학의 유명한 교수인 전기생리학자 페르 안데르센에게 찾아가 연구할 프로젝트를 달라고 졸랐다(대단한 학부생들이다!). 당시 기억에 관여하는 뇌 부위인 해마의 뉴런 활성을 연구하고 있던 안데르센 교수는 성가신 이들에게 해마를 얼마나 절제해야 새로운 환경을 더 이상 기억할 수 없게 되는지 알아보라는 과제를 줬다. 이 실험을 하면서 모세르 부부는 놀라운 발견을 하는데, 해마가 균일한 조직이 아니고 한쪽이 공간기억에 더 중요하다는 것.

 

중간에 가정을 꾸리느라 그랬는지 두 사람은 1990년에야 학부 졸업을 했고 안데르센 교수 밑에서 1995년 나란히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박사후과정으로 이번에 공동수상자가 된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의 존 오키프(John O'Keefe) 교수 실험실에 들어갔다. 오키프 교수는 1970년대 쥐의 해마에서 장소세포(place cell)를 발견한 신경과학자다. 특정 장소에서만 발화되는 뉴런이라서 이런 이름을 붙였다.

 

유명한 교수 밑에서 연구할 수 있게 된 부부는 그러나 몇 달 안 돼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트론헤임에 있는 노르웨이과학기술대에서 두 사람 다 조교수로 뽑을 의향이 있다고 알려온 것. 제안을 받아들이면 연구 분야의 주류 세계와는 멀어지는 것이었지만 둘이 함께 할 수 있다는 매력을 거부할 수 없었다. 결국 두 사람은 노르웨이과기대로 갔고 고생고생해 실험실을 꾸미고 드디어 2005년 ‘네이처’에 해마 옆 내후각피질에서 발견한 격자세포에 대한 논문을 싣게 된다.

 

기사를 보면 남편 에드바르드는 계산과 이론에 능하고 아내 마이브리트 모세르는 실험과 실험실 운영을 주로 맡았다고 한다. 서로의 장점을 조합해 시너지를 낸 결과가 노벨상수상으로 이어진 셈이다. 이 실험실에서 일한 대학원생들은 좀 고달팠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회의나 학회가 있어도 둘 가운데 한 사람만 참석하는 걸 원칙으로 해 두 사람이 다 실험실을 비우는 경우가 좀처럼 없다는 것.                           

 

●딸과 사위의 수상을 바랐던 퀴리 부인

 

과학자 커플의 대명사인 퀴리 부부. 1906년 피에르가 교통사고로 47세에 사망하면서 마리 퀴리는 힘든 나날을 보냈다.
과학자 커플의 대명사인 퀴리 부부. 1906년 피에르가 교통사고로 47세에 사망하면서 마리 퀴리는 힘든 나날을 보냈다.

모세르 부부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문득 노벨상을 받은 부부가 몇 쌍이나 될까 궁금해졌다. 당연히 퀴리 부부가 먼저 떠오른다. 물리학과 결혼했다던 노총각 물리학자 피에르 퀴리는 8세 연하인 폴란드 유학생 마리아 스트워도프스카에게 한 눈에 반해 1895년 결혼했고 아내의 박사연구과제를 돕다 방사성 현상을 발견해 아내 마리(마리아의 프랑스식 이름) 퀴리와 함께 1903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퀴리 부부의 장녀인 이렌과 사위 프레데리크 졸리오퀴리의 1940년대 모습. 두 사람은 마리 퀴리가 사망한 이듬해인 1935년 인공방사성원소 발견으로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퀴리 부부의 장녀인 이렌과 사위 프레데리크 졸리오퀴리의 1940년대 모습. 두 사람은 마리 퀴리가 사망한 이듬해인 1935년 인공방사성원소 발견으로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두 사람 사이에서 1897년 태어난 이렌은 1926년 라듐연구소에서 엄마 마리 퀴리의 조수로 있던 프레데리크 졸리오와 결혼했다. 딸과 사위가 함께 연구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말년의 마리 퀴리는 두 사람이 노벨상을 받게 되기를 누구보다도 바랐지만 과도한 방사능 노출의 후유증으로 보이는 악성빈혈로 1934년 사망했다. 이렌과 졸리오는 인공방사성원소를 만드는데 성공해 이듬해인 1935년 노벨화학상을 공동수상했다.

 

필자는 모세르 부부가 이들에 이어 세 번째라고 생각했지만 혹시나 해서 노벨재단 사이트를 살펴보다가 또 다른 부부 수상자가 있다는 걸 발견 하고 깜짝 놀랐다. 자칫 망신을 당할 뻔 했다. 주인공은 1947년 생리의학상을 받은 체코 태생의 미국 생화학자 칼 코리(Carl Cori)와 거티(Gerty) 코리 부부.

 

1896년 생 동갑으로 프라하의 독일대학에서 1920년 의학박사학위를 받은 직후 결혼했다. 1922년 미국으로 건너 간 코리 부부는 워싱턴대 의대에서 포도당 대사과정에서 중요한 분자인 포도당 1-인산을 발견했다. 그 뒤 두 사람은 체내에서 포도당이 글리코겐으로 전환되는 과정과 이때 개입하는 인슐린의 역할에 대해 연구를 계속했다. 1957년 아내 거티가 세상을 떠난 뒤 남편 칼은 여생동안 무척 힘들어했다고 한다. 칼 코리는 1984년 사망했다.

 

1947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수상한 코리 부부. 1896년 생 동갑으로 모국인 체코에서부터 함께 연구를 해 미국에 건너와 꽃을 피웠다. - 노벨재단 제공
1947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수상한 코리 부부. 1896년 생 동갑으로 모국인 체코에서부터 함께 연구를 해 미국에 건너와 꽃을 피웠다. - 노벨재단 제공

이 밖에도 노벨상을 받은 부부가 한 쌍 더 있는데, 이 경우는 공동수상이 아니라 따로따로 받았다. 즉 1974년 경제학상을 받은 스웨덴의 경제학자 군나르 뮈르달(Gnnar Myrdal)과 1982년 평화상을 받은 알바(Alva) 뮈르달 부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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