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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진정한 목표는 꿈과 현실의 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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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진정한 목표는 꿈과 현실의 융합

2014.12.02 16:28

전자통신 분야에서 최고였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과 현대전자(現 SK하이닉스)를 거치며 소프트웨어 개발 책임연구원으로 종사했고, 무선랜 관련 연구를 통해 벤처기업 부사장까지 올랐다.

 

그 경력이 그대로 이어지나 했더니 웬걸, 갑자기 ‘튄다’. 다문화축제 기획, 홈페이지 제작을 거쳐 지금은 라틴아메리카의 문화콘텐츠를 기획, 제작하고 소개한다. 이쯤이면 이공계 여성 인력 중 손꼽을만한 이색 경력의 소유자다. ‘융합의 시대’ 21세기에 IT와 문화예술의 접목을 꿈꾸는 서울대학교 라틴아메리카연구소 백미숙 문화기획팀장을 만났다.

 

 

어린 시절의 꿈은 쇼윈도 디스플레이 전문가

 

한국전자통신연구소 재직시절 - 백미숙 팀장 제공
한국전자통신연구소 재직시절 - 백미숙 팀장 제공
“원래 음악과 미술을 좋아했어요. 토요일마다 한 시간 거리의 공립도서관에 가서 고전문학을 1~2권씩 읽고, 미술관 전시회를 즐겨 다녔죠. 그 영향인지 친구들이 약사나 선생님을 꿈꿀 때 저는 조금 엉뚱한 미래를 설계했어요. 미대에 가서 쇼윈도 디스플레이 전문가가 되고 싶었죠.”

 

백 팀장이 회상하는 소녀 시절은 꿈과 낭만이 가득했던 시기였다. 1970년대 고도성장의 시대, 미술과 고전을 사랑했던 소녀는 당시 백화점 쇼윈도를 보며 꿈을 꿨다. 읽었던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쇼윈도 디스플레이를 하고자 했던 것. 그녀는 “지금 생각하니 그것이 바로 스토리텔링이었어요.”라고 말했다. 이 때부터 이공계 출신 문화예술가의 싹이 조금씩 자라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국 미대에 가지 못했어요. 경제적인 문제도 있었고, 불투명한 미래를 걱정한 부모님의 반대도 컸죠. 교사가 되라는 권유도 있었지만 전 생각이 달랐어요. 교사나 의사는 특별한 사명감을 가진 사람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 때 마침 학교에서 적성검사를 실시했는데 수리계산이 필요한 직업이 적합하다고 나온 거예요. 그래서 당시 막 태동하던 분야인 전자계산학과에 지원했고, 직업적 운명을 결정하는 계기가 되었죠.”

 

하지만 모든 게 운명처럼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우선 전자계산학과 출신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많지 않았다. 일반 회사의 전산실로 가고 싶지도 않았다. 미래를 대비하자는 생각에 기사자격증을 따고 교직도 이수하는 한편 공무원 준비에 힘쓰기도 했다.

 

집안 형편 때문에 휴학 위기도 찾아왔다. 고뇌와 방황으로 이어진 대학 생활 속에서 예술가를 꿈꿨던 그녀는 현실적인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그러던 그녀에게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찾아왔다. 한국전자통신연구소에 취업한 것이다

 

“전문적인 업무, 근무환경, 주변 분위기.. 그곳에서 근무하는 동안 운명이 바뀌었죠. 예술가가 꿈이던 소녀가 과학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 시작점이었죠.”

 

 

밤샘도 거뜬히, 하지만 ‘소통’은 힘들어

 

그녀의 주 업무는 우리나라만의 독자적인 통신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이 시기에 국내 최초 인터넷 예약 시스템이나 동영상 통화 시스템도 개발했다. 10년 조금 넘는 연구원 근무 기간 동안 그녀의 목표는 ‘진정한 프로가 되는 것’이었다. 필요할 경우 밤샘도 불사했다. 궂은일을 남몰래 처리하는 세심함도 보였다. 이후 남성 위주의 대기업 문화에 적응하는 데 이 때 쌓은 ‘스킬’은 큰 도움이 됐다.

 

“국가기관과 대기업, 벤처기업 연구소를 모두 경험했는데 남성 위주의 문화가 강한 곳은 대기업 연구소였어요. 특히 제가 재직했던 시기적 상황과 오랜 관행 때문에 여성 팀장이 겪는 어려움은 많을 수밖에 없었죠.”

 

백 팀장은 이공계 분야에 종사하는 여성이 “잦은 야근이나 철야, 출장 때문에 가정과 아이들에게 시간을 내기 힘든 것도 문제”라고 짚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현대전자에서 우수 직원상을 수상하고, 현대전자를 빛낸 100인 안에 선정될 만큼 능력을 인정받은 데는 여성임을 잊고 일을 처리하려는 본인의 노력과 함께 가족의 역할도 컸다. 그녀는 ”같은 연구소에 근무하던 남편과의 만남은 업무에 매진할 수 있게 한 가장 큰 행운”이라며 웃었다.

 

“남편과는 1986년 연구소에서 만났어요. 분야 특성상 동료들 대부분이 과묵하고 내성적인 편이었는데, 그의 사교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에 끌렸지요. 만난 지 1년 만에 결혼했고, 다시 1년 만에 큰 딸을 낳았죠. 같은 분야에서 근무하다 보니 철야나 출장 같은 ‘특수 상황’도 잘 이해해주는 좋은 동반자예요.”

 

가족사진 - 백미숙 팀장 제공
가족사진 - 백미숙 팀장 제공

그녀에게 시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수많은 시련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찾을 수 있듯이 그녀는 순간순간 다가온 시련의 정점에서 터닝포인트를 찾았다.

 

그녀에게 있어 가장 큰 시련은 남편의 사업 실패였다. 이로 인해 국내 암호학 박사 1호의 기술력을 가진 회사는 10년 만에 남의 손에 넘어갔다. 백 팀장은 “자신의 존재감을 찾기 위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애쓰는 남편, 한 과학자의 안타까운 모습에서 희망을 봤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안정적인 가정에서 어려움 없이 자라온 아이들도 갑자기 닥친 큰 짐을 짊어져야 했다. 하지만 비 온 뒤 땅이 굳는 법. 지속적으로 노력한 결과 부부는 다시 정상 궤도에 들어섰고, 아이들은 철이 들었다. 어쩌면 그녀가 인생에서 가장 공을 들였다는 철저한 육아 덕분인지도 모른다.

 

“육아에 있어서 만큼은 남이 아닌 저와 가장 비슷한 사람들에게 부탁하고 싶었어요. 다행히 친정 식구들이 큰 도움을 줬죠. 저 역시 근무를 제외한 모든 시간을 아이들에게 쏟았어요. 철야나 야근이 아닐 때는 퇴근 후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죠. 주변을 산책하거나 소소한 쇼핑을 하거나 서점에서 책을 고르는 것 등. 아이들과 항상 교감을 하려고 했고 그 때문인지 지금도 관계가 좋아요.”

 

 

미치지 못하면 미친다

미국(맨하탄) 체류 중 - 백미숙 팀장 제공
미국(맨하탄) 체류 중 - 백미숙 팀장 제공

 

그녀는 직장생활에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아이들을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로 키우기 위한 노력했다. 가장 현실적이고 중요한 능력은 외국어라 생각해 둘 모두 외국어고등학교로 보냈다. 인성과 사회성도 잊지 않았다. 그 덕분인지 둘 다 무사히 자라나 각 분야에서 밝은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사실 외국어는 그녀 자신부터 몸에 익힌 능력이다. 벤처기업 상무이사까지 올랐던 그녀는 모든 걸 버리고 미국으로 떠났다. 4년 동안의 늦깎이 공부를 마치고 출판사에 근무한 뒤, 그녀는 새 직함을 갖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문화예술 전문가’다.

 

“제가 일했던 IT 쪽은 매우 급속히 성장한 분야예요. 융합도 의료, 생명공학 같은 실용적인 방향이 먼저였죠. 하지만 문화예술 분야는 이제 시작이에요. 미대에 가고 싶었던 어린 소녀의 꿈이 두 분야의 접목을 통해 이뤄진 거죠.”

 

그녀의 ‘융합’은 단순히 어린 시절의 꿈을 이뤄낸 것에 그치지 않는다. 전통문화와 예술에 디지털 정보를 입힌 융합형 홈페이지 ‘인사동’을 구축해 종로구청장상을 수상한 것이 일례다. 지금은 주한 브라질문화원에서 한국에는 조금 생소할 수 있는 라틴아메리카 문화콘텐츠를 IT와 융합하기 위해 애쓰는 중이다. 소프트웨어 개발이든 문화콘텐츠 융합이든 새로운 분야를 스스로 개척하며 자신의 꿈을 이뤄가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저는 최고가 아니기 때문에 늘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거기에 잘 할 수 있다는 확신이 필요하죠. 시대의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 중이에요. 아날로그적 삶은 휴식을 위해 필요하죠. 하지만 현대 디지털 세상에서는 멈춰 있는 순간, 기술적 문맹이 되어 버립니다. ‘미치지(go) 못하면 미친다’는 마음가짐을 늘 잊지 않으려고 해요. 여기에 어학 같이 아예 다른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다면 금상첨화죠.”

 

“기술은 그 순간에만 최고를 영위할 수 있지만 인간적인 성숙도는 사람을 영원하게 만든다”고 강조한 백 팀장. 힘들고 지친 이들이 언제든 쉴 수 있는 비영리 문화 공간을 운영하는 것이 새로운 꿈이다. 그녀가 바라는 대로 “과학과 예술이 소통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마련해 융합의 새 장을 열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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