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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은 내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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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은 내 운명

2014.12.09 15:41

벌침, 즉 봉침은 민간과 한방에서 관절염 등에 오랫동안 사용되어 온 약이다. 이때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 바로 침을 통해 전달되는 벌의 독인 ‘봉독’이다. 벌은 침을 사용하고 죽기 때문에 한 마리 당 한 번밖에 얻을 수 없는 귀한 약이다. 이런 봉독의 과학적인 효능과 약리기전을 규명하고, 살아있는 벌에서 봉독을 꺼낼 수 있는 장치를 개발한 여성이 있다. 이 여성은 봉독이 가진 독성분을 줄이고 인체에 딱 맞는 약으로 쓸 수 있는 봉독정제법도 만들었다. 민간요법을 산업화하고 수출까지 성공한 국립농업과학원 한상미 농업연구사가 그 주인공이다.

 

봉독 등 다양한 양봉산물의 성분 및 기능성 연구를 위한 실험실 - 한상미 농업연구사 제공
봉독 등 다양한 양봉산물의 성분 및 기능성 연구를 위한 실험실 - 한상미 농업연구사 제공

 

 

농학은 여학생에게 딱 맞는 학문

 

“사실 이과학생들은 의대나 약대를 선호하죠. 하지만 전 농학에 큰 매력을 느꼈어요. 학문의 융합이 떠오르는 시대이기도 했고요. 농생물학을 하는 사람은 ‘돈을 받지 않는 의사’라고 할 수 있거든요. 주위에서도 그렇고, 저 스스로도 비전 있는 학문 분야라고 생각해서 진학했어요.”

 

농학에 매력을 느낀 여고생은 농학을 공부하기 위해 대학에 진학했다. 그렇게 들어간 학과의 3분의 2가 남자였다. 당시 농대는 보수적인 성향이 강했다. 학과에 여성 교수가 한 명도 없을 정도였다. 여학생이 아무리 성적이 뛰어나도 교수들은 남학생을 제자로 키우고 싶어했다. 한 연구사는 “능력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여학생은 열외를 시키는 경우가 많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연구사는 여학생들에게 농학을 권하고 싶어 한다.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농학 분야는 이공계 중에서 여학생에게 가장 잘 맞아요. 힘을 쓸 일이 적고, 오염물질을 취급하는 경우도 거의 없어요. 먹거리와 관련이 있다 보니 여성들이 연구 소재를 발견하기도 더 수월하죠. 앞으로 열정을 가진 친구들이 농업에 관심을 많이 가져주면 좋겠어요.”

 

실제로 여성 특유의 감각은 그녀가 ‘대박’을 칠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살아있는 벌에서 봉독을 꺼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응용할 방법을 찾던 그녀는 화장품으로 눈을 돌렸다. 한 연구사가 개발한 원료봉독화장품은 국내는 물론 해외 수출 성과까지 냈다. 열악한 양봉농가의 소득을 높였을 뿐만 아니라, 농업과 의약을 접목한 농업의 새로운 가치 창출로 인정받는 연구다.

 

봉독 등 다양한 양봉산물 생산 연구를 위한 시험(양봉장) - 한상미 농업연구사 제공
봉독 등 다양한 양봉산물 생산 연구를 위한 시험(양봉장) - 한상미 농업연구사 제공

 

 

현장 일이 가장 보람차

 

농학은 그녀가 평생 매진할 분야지만, 첫 직장은 농학이 아닌 생명공학연구원이었다. 농학 연구를 위해 생명공학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농학에는 생명공학이 접목되어야만 하는 상황이었어요. 그 당시 생명공학이 모든 연구의 기본이기도 했죠. 그래서 하나의 도구로서 생명공학을 익힐 필요가 있었죠.”

 

생명공학연구원에서 익힌 ‘기본기’는 그녀가 농업에 화장품이나 의약 등 다른 분야를 접목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융합의 시대’를 꿰뚫어 본 여고생의 혜안이 계속 빛나고 있던 셈이다. 그녀는 “농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열등감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어떤 분야보다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고, 만족도가 높다”라고 농학의 장점을 설파한다.

 

“다른 과학 분야보다 농학이 더욱 보람 있는 이유는 연구를 현장에서 바로 접목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이는 농가 소득 증대로 이어질 수 있어요. 농사의 효율성을 추구하면서 경제적으로 이득을 높일 수 있죠. 농업인분들을 직접 대면하면서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은 정말 즐겁고 보람 있어요.”

 

여성이 기피할 수 있는 현장 활동에서 더 큰 보람을 느낀다는 한 연구사. 그녀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인정받는 농업 기술력 보유국이 되기를 희망한다.

 

2년에 한번씩 개최되는 세계양봉학회에서 봉독연구결과 발표(아르헨티나) - 한상미 농업연구사 제공
2년에 한번씩 개최되는 세계양봉학회에서 봉독연구결과 발표(아르헨티나) - 한상미 농업연구사 제공

세계에서 인정받는 한국 농업을 위해

 

“이제는 농업도 생산량보다는 기술력으로 승부해야 하는 시대에요. 쌀이 없어서 못 먹는 경우는 없잖아요. 앞으로 세계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제가 연구한 양봉뿐만 아니라 다른 기술도 더 발굴해야 해요. FTA에 폐쇄로만 대응할 것이 아니라, 우리 농산물을 세계로 수출할 수 있도록 농업 기술력을 키우고 또 인정받아야 하죠.”

 

한 연구사는 아직 미혼이다. “결혼을 일부러 하지 않은 것은 아닌데, 연구에 매진하다 보니 이렇게 됐다”며 웃는다. 그녀는 “결혼으로 얻는 만족감도 있겠지만, 연구를 통해 얻는 만족감이 훨씬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아마도 누군가와 함께 하며 얻는 안정감보다 농학 연구에 몰두하며 얻는 만족감이 더 큰 것 같다.

 

농학에 누구보다 큰 열정을 가지고 있는 그녀. 우리나라 농업 기술이 세계에 우뚝 서는 그날까지 그녀의 ‘농학 사랑’은 끊임없이 새로운 불을 지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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