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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체면’과 과학 발전을 맞바꾼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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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16일 18:00 프린트하기

 

 

한 해를 행복하게 정리해야 할 시점에 씁쓸한 소식이 연이어 날아들었다. 정치적 싸움 때문에 국가의 백년대계인 과학기술 사업들이 잇따라 제동이 걸리고 있다.

 

우선 ‘한국형 달탐사 사업’이다. 달탐사 사업은 이달 4일 국회에서 내년도 예산 410억 원을 전액 삭감했다. 달 탐사선을 개발하고 연구할 과학자들에게 관련 예산을 10원 한 푼도 지원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다.

 

국회 상임위까지 통과했던 예산이 갑자기 전액 삭감된 건 무슨 까닭일까.

 

달탐사 예산은 정부 예산안이 국회에 제출된 이후 뒤늦게 추가로 예산안이 국회에 넘어왔기 때문에 일부 야당 의원이 날치기로 예산을 따 내는 ‘쪽지 예산’이라며 제동을 걸었다.

 

이미 미래부가 몇 년 전부터 계획해왔던 사업을 예비타당성조사가 지연돼 제출 기한이 늦었다는 이유로 제동을 건 것이다. 복잡한 사정을 얼마나 이해했는지 모르지만, 한 번 쪽지예산으로 낙인찍은 사업을 그대로 통과시키기에는 체면 문제와 직결됐을 것이다.

 

예산안 제출 기한이 늦어진 점을 두고는 이런 저런 말들이 많다. 우리나라의 첫 번째 달 궤도선 시험발사 목표는 2017년이다. 이 시기가 대선이 있는 해와 겹치는 만큼 일각에서는 정치적 이벤트라는 논란이 불거졌고, 예비타당성 조사를 비롯해 여러 모로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는 현장에서 나오는 이야기와는 사뭇 다르다. 달 궤도선 시험발사를 2017년으로 잡은 이유는 미국항공우주국(NASA)과의 협력 때문이다. 미국은 2017년 달에 탐사선을 보낼 계획인데, 이 때 우리 탐사선을 미국 발사체에 실어 달까지 보내는 방안이 논의돼 왔다. 우리 입장에서는 한국형발사체 개발이 완료되지 않은 만큼 미국의 발사체를 이용해 우리가 만든 궤도선을 미리 시험해 볼 수 있다면, 이만큼 좋은 기회도 없다.

 

하지만 이번 예산 백지화로 NASA와의 협력은 불투명해졌다. 달 탐사선을 직접 개발할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당장 내년부터 2017년 달 궤도선 시험발사를 목표로 1단계 사업에 착수할 예정이었다.

 

예산 전액 취소 이후 항우연은 내후년에 예산이 회복되면 최대한 앞당겨 일정에 맞추겠다고 발표했지만,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달 탐사선을 1년 이상 앞당겨 개발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결과적으로 국익에도 반하는 결정이 이뤄진 셈이다. 더구나 우리 사정으로 NASA와의 협정을 이행하지 못하게 된다면 이는 향후 협력에도 악영향을 미칠 게 분명하다.

 

같은 날 ‘과학도시’의 타이틀을 달고 있는 대전에서도 씁쓸한 일이 벌어졌다. 대전시가 도시철도 2호선으로 자기부상열차를 도입하기로 한 결정을 뒤엎고 지상을 달리는 트램을 도입하기로 발표했다.

 

대전시는 전임 염홍철 시장 재임 시절 대덕연구단지 내 한국기계연구원(기계연)이 개발한 ‘도시형 자기부상열차’를 대전시 도시철도 2호선으로 도입하는 방안을 확정했다. 자기부상열차는 우리 기술진이 개발한 미래형 교통수단을 대전에 도입함으로써 더 발전된 철도기술을 개발할 기틀을 마련하려는 목적에서 나왔다.

 

지금까지 기계연이 개발한 자기부상열차 1호기는 대전 엑스포과학공원을 연결하는 체험노선에 운행 중이며, 이보다 성능이 우수한 2호기는 인천시 도입이 완료돼 개통을 목전에 두고 있다. 새로 개발한 3호기가 대전시에 도입된다면 운행과정에서 다시금 노하우를 얻어 더 성능이 뛰어난 4호기 열차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장기간에 걸친 계획은 대전시의 이번 결정으로 차질이 불가피 할 전망이다. 권선택 시장은 비용과 효율성, 관광자원 면에서 트램을 지지하고 있다. 이 방식도 최근 첨단기술이 여럿 나와 있지만 원리적으로는 수십년 전부터 운행하던 노면 전철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전시는 “대전이 관광도시로서 발전하는 데 큰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과학도시로서 대전의 가치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이 문제는 과학자들도 우려를 표하고 있다. 대덕연구단지 소재 과학기술출연연 기관장들과 대학 총장 22인은 11일 “최근 재확정된 대전도시철도 2호선 트램 건설방식에 대해 다시금 검토를 촉구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대전시는 시민 의견 수렴 과정에서 자기부상열차 선호도가 70% 정도로 나타난 사업을 왜 트램으로 바꾼 것일까. 속내는 알기 어렵지만 대전시는 확정됐던 사업을 원점으로 되돌린 탓에 여러 부작용마저 떠안아야 할 상황이 됐다. 이미 정부 평가까지 끝난 사업을 되돌리면서 예비타당성 조사를 다시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가 왜 달에 가야 하느냐’는 타당성 논란을 지금 꺼내는 일은 너무 해묵은 이야기이다. 외국의 우주 기술에 기대지 않고 자주적으로 우주개발에 나서기로 이미 결정한 이상, 달 탐사는 피할 수 없는 과제다. ‘값싼 트램을 두고 왜 자기부상열차를 건설해야 하느냐’는 주장을 지금 관철시키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이후 계속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주장해 왔다. 대전시도 대덕특구와의 상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대전시민과 대덕특구 간 상생발전을 위한 선포식’을 가진 것이 불과 지난 달의 일이다. 입으로 과학의 중요성을 말해 왔다면, 적어도 눈 앞까지 다가온 가까운 미래 만큼은 대비해야 정책결정자로서 올바른 판단이 아닐까. 

 

우리가 달탐사선과 자기부상열차를 버린 바로 그날, 일본은 외계 소행성을 찾아갔다가 다시 지구로 돌아올 새 우주 탐사선 ‘하야부사2’를 우주로 쏘아 올렸다. 분명 가슴 벅차 할 인류의 새 도전이지만, 이 소식이 무척이나 씁쓸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는 우리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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