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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길고 인생은 짧다 [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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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길고 인생은 짧다 [1회]

2014.12.22 18:00

“뭐라도 열심히 해봐라. 고생하고 힘이 드는 것은 두려워할 일이 아니야. 사람은 어차피 병들어 죽는 거다.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지쳐서 죽는 건 매한가지야.”

- 모옌, ‘모두 변화한다’

 

지난 두 해 마지막 과학카페에서 필자는 ‘과학은 길고 인생은 짧다’라는 제목으로 그해 타계한 과학자들의 삶과 업적을 뒤돌아봤다. 시간은 강물처럼 흘러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2014년도 며칠 남지 않았다. 올 한 해 동안에도 여러 저명한 과학자들이 유명을 달리했다. 이번에도 마지막 과학카페에서 이들을 기억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과학저널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부고가 실린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했다. ‘네이처’에는 ‘부고(obituary)’, ‘사이언스’에는 ‘회고(retrospective)’라는 제목의 란에 주로 동료나 제자들이 글을 기고했는데 이를 바탕으로 했다.

 

올해 ‘네이처’에는 13건, ‘사이언스’에는 6건이 실렸다. 그런데 연초에는 지난해 말 타계한 과학자들을 소개한 글이어서 올해 사망한 과학자만 치면 ‘네이처’가 10건, ‘사이언스’가 4건이다. 두 저널에서 함께 소개한 사람은 한 명뿐이다. 결국 두 곳을 합치면 모두 13명이 된다. 이미 과학카페에서 다룬 사사이 요시키(194회)를 뺀 12명을 사망한 순서에 따라 2회에 걸쳐 소개한다.

 

 

<1> 알레얀드로 자파로니 (1923. 2. 27 ~ 2014. 3. 1)

붙이는 멀미약에서 DNA칩까지 개발한 생화학자

 

 

알레얀드로 자파로니. - Chemical Heritage Foundation 제공
알레얀드로 자파로니. - Chemical Heritage Foundation 제공

“자파로니가 이끈다면 전 따라가겠어요.”

 

제약업계의 미다스의 손 알레얀드로 자파로니(Alejandro Zaffaroni)는 우루과이의 수도 몬테비데오에서 태어나 대학을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해 1949년 로체스터대에서 생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자파로니는 미 국립보건원(NIH)에서 스테로이드화합물을 연구했다. 콜레스테롤이나 성호르몬이 바로 스테로이드다. 자파로니가 소속된 팀은 스테로이드 호르몬인 코티솔을 최초로 합성했다.

 

자파로니는 멕시코의 작은 제약회사 신텍스로 자리를 옮겨 스테로이드 연구를 계속했는데, 이곳에는 오스트리아 태생의 미국인 동갑내기 화학자 칼 제라시가 스테로이드 연구를 이끌고 있었다. 세계 최초로 경구피임약(활성 프로게스테론)을 만든 곳이 바로 신텍스다. 자파로니는 1962년 캘리포니아 팔로알토에 설립된 신텍스의 미국 지사 책임자가 됐다.

 

스테로이드 피부연고를 연구하던 자파로니는 스테로이드의 상당 부분이 피부를 통해 흡수돼 혈관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약물전달시스템을 본격적으로 연구한다. 1968년 자파로니는 알자(ALSA)라는 회사를 설립해 붙이는 멀미약 개발을 시작으로 금연패치 등 다양한 붙이는 약물을 시장에 내놓아 성공을 거뒀다. 2001년 알자는 123억 달러(약 13조 원)에 존슨앤존슨에 매각됐다.

 

이제 연구자에서 사업가로 변신한 자파로니는 놀라운 화술로 뛰어난 과학자들을 영입했는데, ‘네이처’에 부고를 쓴 제인 쇼도 1970년 자파로니에게 픽업돼 1994년까지 알자에서 일한 사람이다. 자파로니는 신약개발을 좀 더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1988년 아피맥스(Affymax)라는 회사를 설립해 컴퓨터 칩을 만드는 마이크로어레이 기술을 도입해 조합화학이라는 영역을 개척했다.

 

1991년 아피맥스에서 분사한 아피메트릭스(Affymetrix)에서 만든 제품이 그 유명한 DNA마이크로어레이(칩)이다. DNA칩은 오늘날 빅테이터 게놈연구를 상징하고 있다. 2000년 자파로니가 만든 마지막 회사인 알렉자(Alexza)는 담배처럼 약물을 흡입하는 형식의 불안증상 치료제를 개발해 지난해 미국 식품의약국 승인을 얻었다고 한다. 자파로니는 상상력과 실행력이라는 좀처럼 묶이기 어려운 재능을 동시에 지녔던 천재가 아니었을까.

 


<2> 더글라스 콜맨 (1931.10. 6 ~ 2014. 4. 16)

비만 유전학의 토대를 쌓은 생화학자

  

 

더글라스 콜맨. - Françoise Gervais/잭슨연구소 제공
더글라스 콜맨. - Françoise Gervais/잭슨연구소 제공

대공황으로 전 세계가 시름하던 1931년 캐나다 스트랫퍼드에서 태어난 콜맨은 실직한 부모가 뒷산에서 잡은 토끼와 다람쥐로 연명하며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다행히 가정 형편이 나아져 맥마스터대에서 화학을 공부하고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생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잭슨연구소에 취직한 콜먼은 서로 연관성이 있어 보이는 두 가지 열성돌연변이 생쥐를 연구한다. ob라고 부르는 한 변이체는 중증 비만에 경증 당뇨병을, db라고 명명한 또 다른 변이체는 경증 비만에 중증 당뇨병을 보였다.

 

콜맨은 두 유전자가 같은 대사경로에 관여할 것으로 추정하고 약간 엽기적인 실험을 진행했다. 즉 ob생쥐를 정상생쥐나 db생쥐와 외과수술로 혈관이 연결되게 만들었는데(이를 ‘병체결합’이라고 부른다), 그 결과 ob생쥐가 먹이를 덜 먹고 살이 빠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로부터 콜맨은 ob생쥐의 혈액에는 식욕을 억제하는 어떤 성분이 없다고, 즉 ob유전자는 이 물질을 만드는데 관여한다는 가설을 내놓았다.

 

한편 db생쥐와 병체결합으로 연결된 정상생쥐는 극도의 식욕부진으로 굶어죽었다. 이에 대해 콜맨은 db생쥐는 식욕억제물질을 인식하는 수용체 유전자가 고장났다고 해석했다. 즉 수용체가 없어 반응을 안 하다 보니 몸에서 식욕억제물질을 과다하게 만든다는 것.

 

콜맨으로서는 안타깝게도 거의 한 세대가 지난 1994년 마침내 가상의 식욕억제물질의 실체를 밝힌 사람은 미국 록펠러대의 제프리 프리드먼 교수였다. 프리드먼 교수는 ob유전자가 아미노산 167개로 이뤄진 작은 단백질을 암호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 단백질, 즉 식욕억제호르몬을 렙틴(leptin)이라고 명명했다. 물론 db유전자 역시 콜맨의 예상대로 렙틴 수용체를 암호화했다.

 

흥미롭게도 렙틴은 주로 지방세포에서 만들고 db유전자는 뇌의 시상하부에서 발현된다. 즉 식욕은 에너지 상태를 파악한 몸이 주는 정보를 토대로 뇌가 판단을 내린 결과라는 말이다. 렙틴의 발견은 지방조직이 단순히 여분의 에너지를 지방의 형태로 저장하는 창고가 아니라 몸의 대사를 조절하는 동적인 조직임을 보여줬다. 또 식욕조절에 실패해 비만이 된 사람들을 무조건 의지력의 문제로 비난할 수만은 없다는 사실도 일깨웠다.

 

콜맨은 아침 7시에 출근해 오후 5시 반이면 어김없이 퇴근했는데, 가족과 저녁식사를 함께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아침형 인간인 연구원들은 아주 좋아했을 상사 아니었을까. 아쉽게도 콜맨은 혼자 연구하는 걸 좋아해 한 두 명의 연구보조원만이 그의 곁을 지켰다. 콜맨은 62세에 은퇴해 여생을 아내와 함께 세계를 여행하며 보냈다고 한다.

 


<3> 아돌프 자일라허 (1925. 2. 24 ~ 2014. 4. 26)

18세에 상어 화석 논문을 쓴 생흔화석 연구의 개척자

 

 

아돌프 자일라허. - Wolfgang Gerber 제공
아돌프 자일라허. - Wolfgang Gerber 제공

1925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인근에서 태어난 아돌프 자일라허(Adolf Seilacher)는 14살 때 처음 화석을 발견하고 18살 때 동네 바위에서 발견한 상어 화석에 대한 논문을 발표한 화석 마니아였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뒤(물론 독일군으로) 1945년 튀빙겐대에 들어가 고생물학을 공부했다.

 

대학원에서 쥐라기와 트라이아스기 화석을 연구하던 자일라허는 1951년 파키스탄의 염지대(Salt Range)를 탐사하다 초기 캄브리아기 바위에서 삼엽충이 기어간 흔적을 발견했다. 이처럼 고생물들의 활동 흔적이 화석으로 남은 걸 ‘생흔화석(trace fossil)’이라고 부르는데, 자일라허는 생흔화석이 당시 환경과 생태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걸 인식해 화석연구의 한 분야로 자리매김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1990년 교수직을 정년퇴직할 때까지 45년을 튀빙겐대에서 보낸 자일라허는 그 뒤 미국으로 건너가 예일대에서 2009년까지 머물렀다. 자일라허는 고생물의 형태에 대한 기능적 적응 관점을 비판했다. 즉 어떤 풍선이라도 물을 채우면 공처럼 부푸는 것처럼 형태 가운데 어떤 측면은 물리적 영향을 받은 것뿐이라는 말이다.

 

자일라허가 특히 흥미를 보인 생흔화석 가운데 팔레오딕티온(Paleodictyon)이라는 벌집표면처럼 생긴 육각형이 반복된 구조물이 있다. 자일라허는 과거 동물이 박테리아를 키울 농장으로 만든 구조물이라고 해석했다. 그런데 1976년 심해의 바닥에서 팔레오딕티온이 발견됐고 2003년 시료를 채취하는 탐사가 이뤄졌지만 아쉽게도 이 구조물을 만든 동물의 실체는 파악하지 못했다.

 

1984년 자일라허는 에디아카라 화석군에 대한 대담한 가설을 발표해 고생물학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에디아카라는 다세포생물이 폭발적으로 등장한 캄브리아기 직전 시대로 독특한 형태의 화석들이 발견되면서 주목을 받았다. 이들은 캄브리아기에 등장한 생물들과 연속성이 없어 실체를 놓고 여러 가설이 난무했는데 자일라허도 가세해 가장 과격한 가설을 내놓은 것. 즉 에디아카라 화석군은 캄브리아기 동물계와는 별도의 계(Kingdom)라고 주장하고 ‘벤도비온트(Vendobionta)’라고 명명했다. 자일라허는 벤도비온트가 그 뒤 완전히 절멸했다고 주장하지만 에디아카라 화석군의 실체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 중이다.

 

자일리허는 대학생 때 고생물학자인 프리드리히 폰 후에네 교수에게서 카메라루시다를 이용해 화석 그림을 그리는 법을 배웠다. 카메라루시다는 프리즘과 거울을 써서 대상의 이미지를 종이에 비추는 장치다. 자일리허는 그 뒤 카메라루시다를 써서 그린 아름다운 화석 그림 수천 점을 남겼다.

 

 

자일라허가 카메라루시다를 써서 직접 그린 삼엽충과 그 이동흔적인 생흔화석을 묘사한 그림. - ‘Trace Fossil Analysis’ 제공
자일라허가 카메라루시다를 써서 직접 그린 삼엽충과 그 이동흔적인 생흔화석을 묘사한 그림. - ‘Trace Fossil Analysis’ 제공

 
<4> 제럴드 구럴닉 (1936. 9. 17 ~2014. 4. 26)

힉스 메커니즘을 제안했지만 노벨상은 타지 못한 물리학자

 

 

제럴드 구럴닉. 힉스 메커니즘을 가장 먼저 생각한 그로서는 논문이 늦어진 게 아쉬울 따름이다. - Mike Cohea/브라운대 제공
제럴드 구럴닉. 힉스 메커니즘을 가장 먼저 생각한 그로서는 논문이 늦어진 게 아쉬울 따름이다. - Mike Cohea/브라운대 제공

1964년 힉스 메커니즘을 제안한 6명의 물리학자 가운데 한 명인 미국 브라운대 제럴드 구럴닉(Gerald Guralnik) 교수가 강의 직후 심장마비로 쓰러져 78세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미국 아이오아주 시더폴스에서 태어난 구럴닉은 MIT에서 학부를 마치고 하버드에서 괴짜 과학자인 월터 길버트 밑에서 입자물리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32년생으로 불과 네 살 연상인 지도교수 길버트는 한마디로 천재로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전설적인 이론물리학자 압두스 살람의 지도아래 박사학위를 받고 1956년 하버드대에 자리잡았다. 그런데 곧 물리학에 만족을 못하고 당시 막 뜨는 분야인 분자생물학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결국 1977년 길버트는 DNA염기서열분석법을 개발했고 이 공로로 1980년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힉스 메커니즘을 제안한 물리학자 6명 가운데 프랑수아 앙글레르와 피터 힉스 두 사람만 2013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는데(당시 5명이 살아있었다), 구럴닉을 포함해 상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꽤 억울할 것이다. 즉 1964년 8월과 10월, 11월 이렇게 불과 세 달 사이에 약력을 매개하는 W입자와 Z입자 같은 기본입자에 질량을 부여하는 메커니즘을 제안하는 논문 세 편이 저명한 물리학 저널인 ‘피지컬리뷰레터스’에 나란히 실렸다. 다들 서로의 작업에 대해 모르는 상태에서 독립적으로 연구한 결과다.

 

앙글레르는 가장 먼저인 8월 31일자 논문의 저자로, 지난 2011년 타계한 로버트 브라우트 교수와 함께 썼다. 두 번째인 10월 19일자 논문은 단독 저자로 힉스 메커니즘을 증명하는 방법이 힉스입자의 발견임을 시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11월 16일자 세 번째 논문은 영국 임페리얼칼리지의 구럴닉, 칼 헤이건, 톰 키블의 작품으로 힉스 메커니즘을 가장 심도있게 다뤘다고 평가되고 있다.

 

1963년 박사후연구원으로 스승의 스승인 살람이 있던 영국 임페리얼칼리지에 간 구럴릭은 여기서 스승과 동갑인 톰 키블을 만났는데, 너무 바빴던 스승과는 달리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구럴릭은 힉스 메커니즘에 관한 통찰을 얻게 되고, 이듬해 오랜 친구인 칼 헤이건이 임페리얼칼리지에 합류하면서 함께 논문 초고를 완성한다. 둘은 논문을 키블에게 보내 조언을 구했는데, 당시 우체국 파업으로 의견 교환이 지체되면서 결국 ‘피지컬리뷰레터스’에 논문을 투고할 때(1964년 10월 12일), 키블 교수는 앙글레르와 브라우트의 논문이 이미 나왔고 힉스의 논문이 나올 예정임을 알게 된다.

 

결국 세 사람밖에 줄 수 없는 노벨상 규정에 따라 2013년 노벨상 위원회는 논문 발표 순서에 따라 앙글레르와 힉스를 선정한 뒤 구럴닉, 헤이건, 키블 가운데 나머지 한 사람을 고르려다가 포기하고 두 사람만 선정한 것으로 보인다.

 

구럴닉의 스승인 월터 길버트. 1964년 이휘소의 논문을 반박하는 논문을 써 피터 힉스가 힉스 메커니즘을 생각하는데 영감을 줬지만, 정작 제자 구럴닉에게는 도움을 되지 못했다. - 위키피디아 제공
구럴닉의 스승인 월터 길버트. 1964년 이휘소의 논문을 반박하는 논문을 써 피터 힉스가 힉스 메커니즘을 생각하는데 영감을 줬지만, 정작 제자 구럴닉에게는 도움을 되지 못했다. - 위키피디아 제공

구럴닉으로서는 아이러니인 게 당시 스승 길버트 교수의 관심이 잠깐 입자물리학으로 돌아오면서 결국 피터 힉스가 힉스 메커니즘을 생각해내게 해줬다는 것. 1964년 3월 아베 클라인과 이휘소는 비상대성 조건에서 골드스톤정리(자발적 대칭성 깨짐의 결과 질량이 없는 입자가 나온다는 가설)가 틀렸다는 논문을 발표했는데, 이를 본 길버트가 이들이 틀렸다며 논문을 썼다. 당시 길버트는 이미 삼 년째 분자생물학 논문을 쓰고 있었다. 그러다 1962년 다시 입자물리학(자발적 대칭성 깨짐)에 관심을 가지면서 두 분야 연구를 병행하고 있었다.

 

이휘소의 논문을 반박한 1964년 6월 22일자 논문이 길버트가 쓴 입자물리학 분야의 마지막 논문이었다. 7월 16일 이 논문을 입수한 힉스는 여기서 영감을 받아 힉스 메커니즘을 고안해 7월 31일 논문을 완성한다. 그러나 이 논문이 유럽입자물리학연구소에서 발행하는 ‘피직스레터스’에 게재가 거절되고, 힉스는 이를 보완하면서 힉스입자 아이디어를 추가한 논문을 ‘피지컬리뷰레터스’에 보낸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해 7월 구럴닉은 학회 참석차 이탈리아 코모호수에 머무르던 스승 길버트를 방문했다. 당시 이들이 서로 진행 중인 연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면 아직 ‘기회’가 있었을 텐데 그저 가족끼리 담소만 나누다 헤어졌다고 한다. 노벨상 수상자인 길버트야 약간 아쉬운 정도겠지만, 구럴닉으로서는 회한이 남는 순간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한편 힉스 메커니즘 등장은 당시 답보상태였던 전자기력과 약력을 통합한 약전자기이론 진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즉 스티븐 와인버그와 살람은 셸던 글래쇼가 제안한 모형에 힉스 메커니즘을 결합해 약전자기이론의 결함을 해결했고 이 업적으로 세 사람은 1979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살람으로서는 제자의 제자 덕을 좀 본 셈이다.

 

구럴닉은 물리학 전반에 대해 관심이 많아 강력을 설명하는 양자색역학과 복잡계를 설명하는 카오스이론, 입자물리학의 최전선인 끈이론 연구도 진행했다. 그럼에도 힉스 메커니즘에 대한 자신의 기여가 제대로 평가되지 못한 데 대해서는 늘 불만이었다고 한다(힉스 메커니즘이라는 이름부터가 나머지 다섯 명에게는 맘에 들 리가 없다). ‘네이처’ 6월 5일자에 부고를 쓴 사람은 1964년 논문의 공저자인 톰 키블이다.

 


<5> 게리 베커 (1930. 12. 2 ~ 2014. 5. 3)

인간 행동에 경제학의 방법론을 도입한 경제학자

 

 

게리 베커 - 시카고대 제공
게리 베커 - 시카고대 제공

경제학의 지평을 넓힌 199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게리 베커(Gary Becker)는 1930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프린스턴대에서 학부를 마치고 시카고대에서 1955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지도교수는 저명한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으로 역시 1976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다.

 

베커는 경제학의 방법론을 정치적 행동이나 인종불평등 같은 사회 문제에 적용했는데, 박사학위 논문 제목이 ‘차별의 경제학’이다. 이에 따르면 인종차별은 비용이 드는 행동이기 때문에 경쟁을 도입하면 약화시킬 수 있다고 한다. 대놓고 인종차별을 해대는 회사가 만일 독점이라면 맘에 안 들어도 별 수 없이 그 제품을 써야하지만 대안(다른 회사들)이 있을 경우 외면하면 되기 때문이다.

 

1960년대 베커는 당시 심각한 문제였던 인구증가가 가까운 미래에 적어도 선진국에서는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켰다. 자녀의 양과 질은 반비례 관계이기 때문에 교육수준이 높아질수록 자녀수는 줄어들기 마련이라는 논리였다. 즉 나라가 부유해질수록 자녀 숫자는 줄어든다는 것.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한 얘기지만 당시로는 무책임한 얘기처럼 들렸을 것이다.

 

베커는 가족, 패션, 광고, 중독, 건강, 정치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평생 논문과 책을 썼다. 사랑, 혐오, 이타주의 등 인간의 여러 본성도 효용을 최대화하려는 인간의 합리적인 의사결정의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게 그의 관점이었다.

 


<6> 제럴드 에델만 (1929. 7. 1 ~ 2014. 5. 17)

뇌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려고 했던 면역학자

 

 

제럴드 에델만. - 강석기 제공
제럴드 에델만. - 강석기 제공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부고가 함께 실린 유일한 사람인 제럴드 에델만(Gerald Edelman)은 1929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1954년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의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임상의 대신 연구자의 길을 택해 1960년 록펠러대에서 면역학 연구로 이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에델만은 항체의 구조를 연구했는데, 항체가 무거운 사슬(H)과 가벼운 사슬(L)로 이루어진 ‘Y’자 구조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업적으로 항체의 항원결합자리 구조를 밝힌 로드니 포터와 공동으로 1972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면역학을 연구하면서 ‘나와 너’라는 주제에 심취한 에델만은 연구의 지평을 넓혀 다세포생물에서 세포 사이의 상호작용에 관여하는 ‘세포유착분자(cell adhesion molecule, CAM)’를 발견했다. 그 뒤 뇌과학 분야로 진출한 에델만은 신경계가 면역계와 비슷하게 작동할 것이라고 추정하고 1977년 ‘신경다윈주의(Neural Darwinism)’를 제창한다.

 

즉 에델만이 항체의 구조를 밝히기 전까지 항체의 다양성은 항원과의 상호작용 결과라는 해석이 우세했다. 즉 항원을 만난 항체들은 거기에 맞게 구조가 변형돼 훗날 같은 항원을 만나면 바로 결합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에델만은 항체의 인식과정이 학습이 아니라 선택임을 밝혔다. 즉 우리 몸에는 유전자재조합으로 이미 수백 만 종의 항체가 존재해 외부 항원이 침입하면 그에 결합하는 구조를 띠는 항체를 생산하는 면역세포가 왕성하게 분열하게 된다는 것.

 

마찬가지로 신경회로의 발달 역시 선택을 통해 이뤄진다는 게 신경다윈주의의 핵심이다. 일란성쌍둥이라도 삶을 살아가는 경험이 다르므로 신경회로의 배선을 전혀 다르다는 말이다. 에델만의 신경다윈주의는 복잡한 개념이라 아직 결론적인 평가를 할 수는 없지만 신경가소성 등이 발견되면서 힘을 얻고 있다고 한다.

 

1981년 스스로 만든 ‘신경과학연구소’에서 일하며 에델만은 대중을 위한 뇌과학 교양과학도서도 여러 권 썼다. 이 가운데 ‘뇌는 하늘보다 넓다’ 등 세 권이 우리글로 번역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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