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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인은 식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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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인은 식인종?

2015.01.07 18:00
과학동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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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인종’이라는 말 많이 들어보셨죠. 식인종은 과연 존재할까요. 영화에는 정글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식인종에게 잡혀서 끓여 먹히거나 구워 먹히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도망쳐 나오는 장면이 많습니다. “누가 식인종이냐” 하고 물어보면, 사람들은 십중팔구 정글 등 오지에 살고 있는 원주민이라고 대답합니다. 일부 인류학자들은 여기에 하나를 추가하기도 했습니다. 바로 옛날에 살던 원시인, 네안데르탈인입니다.
 
유럽 크로아티아의 크라피나 유적은 20세기 초에 발굴된 동굴 유적입니다. 이곳에서는 수십 명의 네안데르탈인 화석이 발견됐습니다. 특히 젊은 여성과 아이들이 많았는데, 흥미로운 특징이 있었습니다. 부서진 조각들이 많았고, 두개골이나 얼굴 부위가 적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뼈 곳곳에 칼자국이 나 있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인류학자들은 이것을 식인 풍습의 흔적이라고 해석했습니다. 마침 당시 사람들은 네안데르탈인이 우락부락하고 공격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네안데르탈인이 식인종이었다는 생각은 그 후 20세기 전반에 걸쳐 널리 퍼졌습니다. 그들은 정말 식인종이었을까요.

 

과학동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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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인일까 장례일까
 
20세기 후반으로 오면서 조금씩 ‘식인종이 아니다’라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매리 러셀 전 미국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 인류학과 교수는 1980년대에, 크라피나의 네안데르탈인에게 정말 식인 풍습이 있었는지를 밝히기 위해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만약 네안데르탈인이 서로 잡아먹었다면, 화석에서 보이는 칼자국은 도축(짐승을 잡아먹기 위하여 칼로 손질하는 일)을 한 흔적과 비슷해야 할 겁니다. 하지만 식인이 아니라 2차장(시신을 처음 매장한 다음 일정 기간이 지난 뒤 뼈를 깨끗이 손질해 다시 묻는일. 한국에서도 경남 진주 등지에서 최근까지도 이뤄지고 있다)을 했다면 어떨까요. 칼자국은 장례를 위해 뼈를 손질한 자국일 것입니다.
 
러셀 전 교수는 이 사실을 확인해 보기 위해 도축과 장례라고 밝혀진 고고학 유적지에서 각각 뼈에 남은 칼자국을 수집했습니다. 먼저 후기 구석기인들이 큰 짐승을 잡아먹은 유적에서 나온 짐승 뼈의 칼자국을 모았습니다. 또 미국 인디언들의 골당(2차장을 치른 인골들을 모셔두는 곳)에서 발견된 인골의 칼자국을 모았습니다. 그런 뒤 이 자국을 크라피나 화석의 칼자국과 비교했습니다.
 

크로아티아 크라피나 유적에서 발견한 네안데르탈인 뼈화석의 스케치(가운데). 칼자국이 뼈의 끝 부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왼쪽 위 전자현미경 사진은 뼈를 받친 모루에 긁힌 자국, 아래는 칼자국이다 . 오른쪽 위는 두개골, 아래는 턱뼈의 돌도끼 자국이다. - 사이언스 제공
크로아티아 크라피나 유적에서 발견한 네안데르탈인 뼈화석의 스케치(가운데). 칼자국이 뼈의 끝 부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왼쪽 위 전자현미경 사진은 뼈를 받친 모루에 긁힌 자국, 아래는 칼자국이다 . 오른쪽 위는 두개골, 아래는 턱뼈의 돌도끼 자국이다. - 사이언스 제공
결과는 어땠을까요. 크라피나 뼈화석의 칼자국은 주로 끝부분에 있었습니다. 이것은 장례를 치른 미국 인디언들의 칼자국과 아주 비슷한 특징이었습니다. 2차장을 할 때는 시신이 많이 부패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뼈를 깨끗하게 하는 끝 마무리 작업에 칼을 씁니다. 그 결과 뼈의 중간보다는 끝 부분에 칼자국이 남지요. 반면 도축을 한 칼자국을 보면, 칼자국이 뼈의 중간에 주로 있습니다. 근육인 살코기를 저며내기 위해서는 칼을 뼈와 살이 붙은 부분에 대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크라피나의 네안데르탈인은 식인 풍습을 가졌다고 볼 수 없는 거랍니다.

 

● ‘식인종’은 착각?
 
러셀 교수가 이 논문을 발표한 1980년대에는 인류학계에 ‘식인종은 없다’는 생각이 서서히 확산되고 있었습니다. 착각 또는 오해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지요. 실제로 식인종이라는 영어 단어(cannibal)는 15세기에 아메리카 대륙의 서인도 지역에 도착한 콜럼버스의 착각에서 생겨났습니다. 콜럼버스는 당시 도착한 땅이 인도라고 믿고 원주민들은 몽골인칸의 후예라고 오해해 ‘카니바스’ 족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그리고 “카니바스족은 사람을 잡아 먹는 사람들”이라고 보고했습니다. 이야기는 유럽 전체에 퍼졌고, 카니바스 족은 식인종(캐니벌)의 보통명사가 됐습니다. 그 후 유럽의 식민지 쟁탈전이 전개되면서 식민 세력의 선두로 파견된 선교사들과 인류학자들은 가는 곳마다 식인종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기록해 논문과 책, 잡지 기사로 출판했습니다. 식인 풍습은 곧 미개인의 대명사가 됐지요.
 
그런데 20세기 후반 이 기록과 책을 꼼꼼히 살펴보자 얘기가 달라졌습니다. 수많은 기록이 그저 ‘소문’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윌리엄 아렌스 미국 스토니브룩대 인류학과 교수는 수많은 기록들을 꼼꼼히 살펴본 결과 식인종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이웃의 경쟁 부족원으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즉 “우리는 그런 짓 안 하지만, 숲 저쪽에 사는 놈들은 무지막지한 식인종들이다. 나도 잡아 먹힐 뻔 했는데 용감히 빠져 나왔지” 식이었습니다. 아무도 자신이 직접 봤다고 기록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콜럼버스에게 카니바스가 식인종이라는 정보를 전해준 것도 바로 이웃의 아라와크 족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식인종은 인류 역사상 전혀 존재한 적이 없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로 식인 풍습을 지닌 종족이 발견됐거든요. 파푸아 뉴기니에 살고 있는 포레 족입니다. 포레 족은 1940년대까지 외부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파푸아 뉴기니를 지배하던 호주에서 공무원을 파견해 인구조사를 하면서 서서히 알려졌습니다.
 
포레 족은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의 모계 친족 여성들이 시신을 다듬습니다. 시신의 손과 발을 자르고 팔과 다리의 살을 저며냅니다. 그 다음에는 뇌를 꺼내고, 배를 갈라서 장기를 들어냅니다. 그렇게 저며낸 살은 남자들이 먹고, 뇌와 장기는 여자들이 먹습니다. 여자들이 손질하는 중에 옆에서 구경하는 아이들도 먹습니다(지금은 식인 풍습이 사라짐).
 
포레 족은 왜 그런 끔찍한 장례를 치를까요? 포레 족은 죽은 사람을 먹으면 살아 있는 사람의 일부가 돼 동네에 계속 살게 된다고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다른 곳에서도 볼 수 있죠. 아마존의 야노마모 족은 죽은 사람을 화장한 뒤 그 재를 죽에 섞어 친척이자 이웃인 마을 사람들끼리 나눠 먹습니다. 비유이긴 하지만, 기독교 성찬식에서는 예수가 빵을 뜯어서 자신의 몸이라고 믿고 먹으라 하고, 포도주를 따라서 자신의 피라고 믿고 마시라 권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를 기억하라’고 합니다.

 

과학동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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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레 족의 식인 풍습은 겉으로 나타나는 끔찍한 모습을 걷어내면 그 안에는 지극히 보편적인 인간의 사랑이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식인 풍습이 이렇게 애틋하지는 않습니다. 증오에서 유발되는 식인 풍습도 있습니다. 전쟁이나 복수전에서 잡아온 상대를 죽인 다음 심장, 피 등 상징적인 부분을 먹는 행위입니다. 증오의 상대를 ‘먹어 없애 버리는’ 행위인데, 역시 역사적인 기록으로만 남아 있을 뿐, 근현대에 직접보고 기록한 예는 없습니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먹는 행위는 식생활의 일환이 아닙니다. 어떤 집단도 식생활의 한 방편으로 인육을 섭취한 예는 없습니다. 의례적 상징 행위이고 문화 관습입니다. 사랑이든 증오든, 어떻게 보면 지극히 인간적인 열정이 의례의 형식으로 표출됐을 뿐입니다.
 

● 식인은 있어도 식인종은 없다
 

현재 크라피나 유적에는 네안데르탈인이 식인 풍습을 가졌다고 보고 동상을 복원해 놨다. 오른쪽이 필자이고 왼쪽은 야코브 라도브치치 크로아티아 국립박물관장이다. - 이상희 제공
현재 크라피나 유적에는 네안데르탈인이 식인 풍습을 가졌다고 보고 동상을 복원해 놨다. 오른쪽이 필자이고 왼쪽은 야코브 라도브치치 크로아티아 국립박물관장이다. - 이상희 교수 제공
1999년 프랑스의 물라-게르시의 네안데르탈인 유적에서 칼자국이 나왔고, 스페인의 아타푸에르카 유적의 중기 플라이스토세(약 78만~12만 년전) 인류 화석에서도 칼자국이 발견됐습니다.
 
2001년에는 미국 남서부의 고인디언 유적에서 출토된 인간의 똥 화석에서 인간 살조직의 단백질이 발견됐습니다. 사람을 먹었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나온 셈입니다.
 
포레 족이나 프랑스, 스페인, 그리고 고인디언 유적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인류 역사에 식인 행위는 분명히 있었습니다. 심지어 현대 사회에서도 식인이 용납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안데스 산맥에서 비행기 추락 사고를 겪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그 예지요. 그런데 이들을 식인종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만약 2010년에 남미 칠레에서 무너진 탄광 속에 갇혔던 광부들이 극한 상황에서 비슷한 일을 했다고 해도, 도덕적인 잣대로 이들을 ‘식인종’이라 부르며 심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인류의 과거에 대해 고고학과 고인류학이 말해주는 내용 이상의 결론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식인 풍습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식인종이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 포레 족의 기묘한 질병, 쿠루


 

쿠루 병에 걸려 죽은 어머니와 슬퍼하는 딸. - 다니엘 가이두섹/노벨 재단 제공
쿠루 병에 걸려 죽은 어머니와 슬퍼하는 딸. - 다니엘 가이두섹/노벨 재단 제공
포레 족의 식인 습관이 널리 알려진 것은 기묘한 질병 때문이었습니다. 1950년대에 포레 족에서는 이상한 질병이 돌았습니다. 호주에서 파견된 조사단은 “병에 걸린 여자 환자는 몸이 극도로 쇠약해지고 일어설 수도 없게 된다. 집안에 누워서 음식을 조금 밖에 먹을 수 없으며 온 몸이 심하게 떨린다. 결국 사망한다”고 보고했습니다.


이 병은 몸이 심하게 떨리기 때문에 ‘떨린다’는 뜻의 ‘쿠루’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환자들에게서 나타나는 발작적인 웃음 때문에 ‘웃는 병’이라고도 했지요. 오지 원주민들에게서 나타나는 질병을 연구하던 다니엘 가이두섹 전 미국국립보건원 바이러스신경연구소장은 쿠루를 보고한 문서를 검토하다 “포레 족은 식인종”이라고 돼 있는 부분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쿠루와 식인풍습의 연관성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이두섹 박사는 쿠루에 주로 걸리는 여자와 아이들이 죽은 사람의 뇌를 먹었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쿠루의 원인은 먹어서 전염되는 내 속에 있는 병원체, 즉 ‘프리온’이라는 단백질이었습니다. 암 세포는 세포 분열을 통해 새로운 암 세포를 만들어 내지만, 프리온은 주변에 있는 세포를 변성시킵니다.


가이두섹 박사는 쿠루로 사망한 환자의 뇌조직을 침팬지에게 이식했습니다. 그랬더니 2년 뒤에 침팬지에게서 쿠루와 똑같은 증세가 나타났습니다. 이후 인간광우병 등 프리온에 의한 질병이 여럿 발견됐습니다. 가이두섹 박사는 최초로 프리온을 발견한 공로로 1976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습니다.


 

※ 동아사이언스에서는 미국 UC리버사이드 이상희 교수의 ‘인류의 탄생’을 매주 목요일 연재합니다. 2012-2013년 과학동아에 연재되었던 코너로 식인종, 최초의 인류, 호빗 등 인류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이상희 교수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와 미국 미시건대 인류학과를 졸업한 뒤 2001년부터 UC리버사이드 인류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전공은 고 인류학이며 인류의 두뇌 용량의 변화, 노년의 기원, 성차의 진화 등을 연구하고 있다. 암벽화, 화살촉 등 유적을 자료화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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