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바로가기본문바로가기

동아사이언스

“그녀가 날 사랑하도록 프로그래밍했나요?”

통합검색

“그녀가 날 사랑하도록 프로그래밍했나요?”

2015.01.18 18:00

UPI 코리아 제공
UPI 코리아 제공

2014년 6월 러시아의 유진 구스트만이 세계 최초로 튜링테스트를 통과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튜링테스트란 영국 과학자 앨런 튜링이 1950년에 제안한 시험으로 벽이나 모니터 등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해 상대방이 인간인지 인공지능(AI)인지 분간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만약 다수의 사람들이 AI를 실제 인간이라고 착각한다면 해당 AI는 튜링테스트를 통과한 것이 된다. 유진 구스트만은 러시아 연구진이 개발한 AI로 우크라이나에 살고 있는 13세 소년으로 설정돼 있다.


유진이 비록 튜링테스트를 통과하긴 했지만 영화나 소설에서 본 ‘진짜 AI’라고 하기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어린 소년이란 설정 덕분에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어수룩한 답변을 하고도 AI임이 들통 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본보 기자가 “우크라이나에 가본 적 있니?(Have you been to Ukraine?)”라고 질문을 던지자 유진은 “우크라이나? 가본 적이 없어요(Ukraine? I've never been there)”라며 엉뚱한 대답을 했다.


유진은 아직 부족함이 많지만 몇 년 더 흐르면 청산유수와 같은 화법으로 사람들을 속일 AI가 조만간 등장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등장한 AI가 튜링테스트를 가볍게 통과한다고 해서 인간에 가까운 진짜 지능을 가졌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 단지 뛰어난 검색 기능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원하는 대답을 들려주도록 프로그램된 것은 아닐까.


이달 21일 개봉하는 영화 ‘엑스 마키나’는 튜링테스트 다음 수준의 시험, 이른바 ‘포스트 튜링테스트’를 다루고 있다.

  

● 그녀가 날 좋아하도록 프로그래밍했나요?


영화 속 세계 최고의 검색엔진 회사 ‘블루북’ 회장 네이든(오스카 아이작 분)은 젊고 유능한 프로그래머 칼렙(돔널 글리슨 분)을 광활한 자연 풍경 속에 위치한 자신의 저택으로 불러들인다. 사실 이 저택은 회장의 지하 비밀 연구소다.

 

네이든은 칼렙에게 이곳에서 보고 들은 모든 사항을 외부로 발설하지 않는다는 조건에 동의하라고 요구한다. 정기적으로 자신이 보유한 데이터 내용까지 검사 받아야 한다는 항목에 칼렙은 주저하지만 네이든은 만약 동의할 경우 인류 역사에 큰 획을 그을 연구에 참여하게 될 것이란 말로 그를 유혹한다. 결국 보안 서약서에 서명한 칼렙은 창문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지하 연구소에 갇힌 매혹적인 여성 휴머노이드 ‘에이바(AVA)’를 만난다.


칼렙에게 주어진 과제는 일주일 동안 에이바가 보여주는 인격과 감정이 진짜인지 프로그래밍된 것인지 밝혀내는 것. 직접적인 접촉은 불가능하며 칼렙은 유리벽 너머로 에이바를 관찰하고 대화하며 에이바가 가진 자아가 진짜인지를 분간해내야 한다.


칼렙은 능수능란한 에이바의 대화능력에 감탄한다.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자 에이바는 슬픈 표정으로 유감이라고 말하는 놀라운 공감능력을 보였고, 3일 째가 되자 칼렙은 급기야 에이바가 자신에게 호감을 갖게 됐다고 믿는다.


“그녀가 날 좋아하도록 설정(programming)했나요?”


칼렙의 질문에 네이든은 이렇게 답한다.


“남성을 좋아하도록 설정했지. 네가 여자를 좋아하도록 설정됐듯.”

 

 

“그녀가 날 좋아하도록 설정(programming)했나요?” “남성을 좋아하도록 설정했지. 네가 여자를 좋아하도록 설정됐듯.” - UPI 코리아 제공
“그녀가 날 좋아하도록 설정(programming)했나요?” “남성을 좋아하도록 설정했지. 네가 여자를 좋아하도록 설정됐듯.” - UPI 코리아 제공

 

 

UPI 코리아 제공
UPI 코리아 제공

● 튜링테스트를 넘어서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칼렙과 에이바가 대화를 나누던 도중 정전이 된다. 실험과정을 녹화하는 폐쇄회로(CC)TV가 먹통이 된 틈을 타 에이바는 칼렙에게 “네이든을 믿지 말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칼렙은 이 실험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에이바는 파괴될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칼렙은 자신을 부른 네이든은 물론 자기 자신의 존재조차도 제대로 믿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칼렙은 과연 에이바의 인격이 잘 짜여진 프로그램의 결과인지, 아니면 진정한 인공지능인지 구분할 수 있을까.


자연스러운 대화는 물론 수 만 명의 남성들과 동시에 사랑을 나눈 AI가 출현한 영화 ‘그녀(2013년 개봉)’까지 나온 시점에서 65년 전에 만들어진 튜링테스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느껴진다면 이 영화에 주목하자. 튜링테스트에서 한 단계 더 진화한 ‘포스트 튜링테스트’는 어떤 형태가 돼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하게 될 것이다.  

 

 

이 기사가 괜찮으셨나요?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댓글 0

4 + 2 = 새로고침
###
    과학기술과 관련된 분야에서 소개할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 고발 소재 등이 있으면 주저하지 마시고, 알려주세요. 제보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