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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복원, 정말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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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복원, 정말 필요할까

2015.02.02 19:10

포식자가 중요할 수는 있지만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 오스왈드 슈미츠, 미국 예일대 생태학자

 

필자는 어릴 때 작은아버지가 들려준 얘기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작은아버지가 일월산의 토목공사 현장에서 일할 때 하루는 동료와 산길을 가다 수십 미터 앞에 표범이 천천히 걸어가는 걸 봤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는데 표범이 한번 쓱 눈길을 주더니 무시하고 갈 길을 갔다고.

 

어릴 땐 그 얘기가 진짜라고 생각했지만 나이가 들어 우리나라에 표범이 멸종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야기의 신빙성이 확 떨어졌다. 필자가 대학생 때로 기억하는데 명절날 기어이 이런 말을 꺼내고야 말았다.

 

“저, 삼촌. 옛날에 보셨다는 표범이 혹시 살쾡이 아니었을까요?”


“야, 내가 표범하고 살쾡이도 구분 못하냐?”

 

작은아버지는 답답하다는 얼굴표정을 지었지만 아무튼 그 뒤로도 필자는 그 얘기를 믿지 못했다. 그런데 2년 전 TV에서 ‘한반도 표범은 살아있다’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이젠 다큐멘터리로 특종을 터뜨리나’라고 내심 의아해하면서 보다가 깜짝 놀랐다. 우리나라에서 표범이 서식할 유력한 후보지 가운데 하나로 바로 일월산이 소개된 것이다.

 

최근에도 표범을 목격했다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보면서 작은아버지가 40여 년 전 표범을 본 게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한반도 표범은 언제 나오나 기다렸지만 제목과는 달리 제작진들은 국내에서 표범을 찾지 못했다(같은 종이 러시아에 살고 있다는 명분으로 이런 낚시성 제목을 단 것 같다). 

 

우리나라 깊은 산속 어딘가에 호랑이나 표범 같은 대형 맹수류가 살고 있다는 설정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그래서인지 아직까지도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찾는 사람들이 있는가보다. 그럼에도 성과가 없자 이제 한반도에 살았던 맹수류와 같은 종을 들여와 자연 방사하는 ‘복원’ 사업이 실질적인 대안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 환경부는 반달곰, 산양, 여우에 이어 늑대를 복원하는 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고라니와 멧돼지 개체수가 급증해 생태계를 교란하고 농가에도 큰 피해를 주는 상황에서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를 들여와 먹이사슬의 균형을 맞추겠다는 명분도 있다. 생태학 교과서에 충실해 보이는 환경부의 해법에 다들 박수를 칠 것 같은데 반론도 만만치 않다.

 

● 늑대 한 무리가 1년에 소 17마리 죽여

 

무엇보다도 늑대가 가축과, 심지어 사람도 공격할 수 있다는 게 주된 이유다. 비록 맹수이지만 잡식성에 먹이가 부족한 겨울에는 동면하는 반달곰과는 달리 늑대는 육식에만 의존할 뿐 아니라 겨울에도 먹이활동을 해야 한다. 또 이동성이 좋기 때문에 행동반경이 반달곰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다. 따라서 늑대 복원이 ‘성공’해 생태계의 구조에 영향을 줄 정도가 되면 사람과 부딪치는 건 불가피하다는 말이다.

 

 

1_늑대는 집단 공격으로 체중이 1톤 가까이 나가는 들소에게도 덤벼든다. 늑대 무리가 아메리카들소와 대치하고 있는 장면.  - 위키피디아 제공
늑대는 집단 공격으로 체중이 1톤 가까이 나가는 들소에게도 덤벼든다. 늑대 무리가 아메리카들소와 대치하고 있는 장면. - 위키피디아 제공

 

 

동서를 막론하고 옛날 이야기를 보면 늑대는 하나같이 악역으로 나온다. 특히 목축 문화권에서는 늑대로 인한 피해가 만만치 않았고 이런 현상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실제 지난 2011년 학술지 ‘생태환경경계’에 캐나다 앨버타 주에서 늑대 한 무리(열 마리 내외) 당 매년 평균 소 17마리를 죽인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참고로 앨버타 주에는 늑대 6000여 마리가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 세계적으로 늑대가 사람을 공격해 죽이는 사고가 매년 몇 건씩 보고되고 있다.

 

이런 ‘비용’에도 불구하고 여러 나라에서 늑대를 보호하고 심지어 늑대가 사라진 곳에 늑대를 들여와 복원시키는 사업까지 하는 건 최상위 포식자의 자리인 먹이사슬의 꼭대기가 채워져야 생태계의 균형이 이뤄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 모든 동식물은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는 지난날의 오만함에 대한 반성도 한 몫 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 ‘네이처’(3월 13일자)에는 생태계 완성의 화룡정점이 대형 포식자라는 상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기사가 실렸다. ‘늑대의 전설(Legend of the wolf)’이라는 제목의 기사는 뜻밖에도 우리가 성공적인 복원 사례라고 듣고 있는 옐로스톤 늑대 복원이 정말 그런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최상위 포식자의 복원사업이 진짜 매력적인 이유는 생태계 균형 회복 때문이 아니라 커다랗고 위험하면서도 멸종 위기에 몰린 맹수류에 대한 사회의 흥미 때문이라는 것.

 

 

1995년 옐로스톤국립공원에 늑대가 복원된 뒤 엘크 개체수(왼쪽)와 늑대 개체수(오른쪽)의 변화 추이. 늑대복원이 생태계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 네이처 제공
1995년 옐로스톤국립공원에 늑대가 복원된 뒤 엘크 개체수(왼쪽)와 늑대 개체수(오른쪽)의 변화 추이. 늑대복원이 생태계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 네이처 제공

대형 포식자가 생태계 균형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관점을 ‘하향식연쇄효과(top-down trophic cascade)’라고 부른다. 한마디로 포식자가 초식동물의 개체수를 조절해야 식물의 씨가 마르지 않는다는 것. 2001년 학술지 ‘생물보존’에 실린 미국 오레곤주립대 윌리엄 리플 교수팀의 옐로스톤 늑대복원 사례연구가 이 입장을 지지하는 유명한 논문이다.

 

600년 전만 해도 북미대륙에는 회색늑대가 무려 200만 마리가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유럽인들이 진출하면서 목축에 방해가 되는 늑대를 무자비하게 사냥하면서 개체수가 급감해 1926년 무렵 옐로스톤 일대에서 늑대가 자취를 감췄다.

 

생태학자들의 노력과 야생 늑대 복원에 호의적인 여론 덕분에 1990년대 들어 일부 현지 주민들의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1995년 캐나다 앨버타에서 들여온 늑대 14마리를 방사했고 이듬해에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에서 들여온 17마리를 추가로 풀었다. 이들은 나름 잘 적응해 2009년에는 14무리에 100여 마리에 이르렀다. 그 뒤 다소 줄어 2014년 현재 10무리 83마리라고 한다.

 

2001년 논문은 늑대복원이 포플러나무의 생장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결과를 싣고 있다. 1920년대 늑대가 사라지자 대형 사슴인 로키산엘크의 개체수가 늘어나면서 어린 포플러 나무가 남아나지 못해 숲의 4~6%를 차지하던 포플러가 20세기 말에는 1%로 줄어들었다. 그런데 늑대가 돌아오면서 늑대가 주로 다니는 개울가 주변의 포플러의 키가 커졌다는 것. 연구팀은 그 뒤 버드나무와 미루나무에서도 같은 패턴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이처럼 포식자의 행동이 생태계에 연쇄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설명을 ‘행동연쇄가설(behavioural-cascade hypothesis)’라고 부른다. 필자가 보기에도 꽤 그럴듯한 설명 같다.

 

그런데 2010년 이런 해석에 의문을 제기하는 연구결과가 학술지 ‘생태학’에 실렸다. 미국 와이오밍주 어류 및 야생동물연구단위의 매튜 카우프먼 박사팀은 리플 교수팀의 조사 지역을 다시 조사한 결과 포플러 개체 사이에 차이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엘크의 개체수가 줄어든 게 어느 정도 늑대 때문이기도 하지만 회색곰의 공격이나 극심한 가뭄으로 인한 먹이 부족, 겨울철 국립공원을 벗어난 엘크를 대상으로 한 사냥 등 다른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결과라고.

 

즉 100년 전에는 늑대가 옐로스톤 생태계에 중요한 축이었지만 늑대가 사라지고 70년 동안 생태계가 근본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도입을 하더라도 옛날의 질서까지 복원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호주의 생태학자 벤 앨런은 “커다란 늑대나 곰이 환경파수군 역할을 한다는 생각은 매력적”이라며 “사람들은 미담을 좋아하기 마련”이라고 촌평했다.

 

● 공존에는 대가가 따른다

 

각국의 보호 정책으로 유럽의 대형 포식자 개체수가 늘고 분포 범위가 늘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지난해 발표됐다.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큰곰, 스라소니, 울버린, 회색늑대. 짙은 파란색은 상주 영역이고 옅은 파란색은 간헐적으로 발견되는 지역이다. - 사이언스 제공
각국의 보호 정책으로 유럽의 대형 포식자 개체수가 늘고 분포 범위가 늘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지난해 발표됐다.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큰곰, 스라소니, 울버린, 회색늑대. 짙은 파란색은 상주 영역이고 옅은 파란색은 간헐적으로 발견되는 지역이다. - 사이언스 제공

대형 포식자를 보호하거나 복원하는 정책의 낭만성 뒤에는 상당한 사회적 비용이 따른다. 학술지 ‘사이언스’ 2014년 12월 19일자에는 유럽에서 수십 년 동안 추진해온 맹수류 보호 정책의 결과를 평가한 논문이 실렸다. 즉 대형 맹수류인 큰곰과 스라소니, 회색늑대, 울버린(대형 족제비류)의 개체수가 꾸준히 늘어나면서 자연공원처럼 격리된 지역뿐 아니라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공간에서 살고 있는 개체도 늘고 있다는 것.

 

논문만 보면 이보다 더 나을 수는 없지만 역시 대가는 치루고 있다. 예를 들어 노르웨이에서 순록 목축을 하는 사미족 사람들은 스라소니와 울버린 때문에 순록이 많이 희생됐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2011년 정부로부터 120억 원을 받아냈다. 이는 순록 고기를 팔아서 번 돈의 3분의 2나 된다. 이에 대해 몇몇 생태학자들은 죽은 순록 대다수는 개체수 과잉과 급격한 기후변화가 원인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한편 ‘사이언스’ 논문에서도 대형 맹수류의 개체수가 증가하면서 사람과 공존하기 위한 조치가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즉 가축을 보호하는 전통적인 방법(개, 울타리, 양치기)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맹수류가 감전사하지 않을 정도의 충격을 주는 전기울타리 등 새로운 기술에도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 또 오래 전 대형 맹수류가 사라져 사람들이 공존의 노하우를 잊어버린 상황에서 서식지 확대나 복원으로 다시 등장할 경우 사회적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대형 포유류와의 공존이 관념의 영역인 도시 사람들은 찬성하지만 당사자인 시골 사람들은 반대한다는 것.

 

북미는 물론 유럽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땅이 좁고 대신 인구밀도는 훨씬 높은 우리나라에서 대형 포식자를 도입해 생태계를 정상화시킨다는 계획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우리나라의 숲에서 대형 포식자가 사실상 사라진지 반세기가 넘게 지났지만 숲은 그 어느 때보다도 울창하다.

 

우리의 경우 숲 파괴의 일등공신은 초식동물이 아니라 사람이었는데 화석연료가 보급되고 건축이나 가구용 목재를 수입하면서 사실상 숲이 방치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평지가 사실상 없기 때문에 야생 대형 초식동물이 없다. 고라니나 멧돼지가 늘고 있다지만 이들 때문에 숲이 황폐화되는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이런 동물들이 더 먹기 좋은 먹이인 농작물을 노리고 인가로 내려오면서 농민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 따라서 환경부의 목표대로 생태계 조절력이 있을 정도의 숫자로 늑대가 복원된다면 이들이 먹이를 따라 인가 주변을 서성일 가능성이 높고 거칠고 날쌘 야생동물보다 훨씬 쉬운 먹잇감인 가축이나 가금류에 한 번 맛을 들이면 그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이들이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대상인 사람은 법 때문에 구조적으로 이들을 공격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늑대복원 추진은 생태계 회복이 아니라 우리의 숲에도 늑대가 살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게 진짜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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