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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형에 따른 성격? 그러니까 일본을 공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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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2월 24일 18:00 프린트하기

istockphoto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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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는 습관이 하나 있습니다. 과학이나 건강에 관한 책을 고를 때 저자가 일본인이면 일단 의심하고 드는 겁니다. 시간을 두고 지켜보다가 멀쩡한(?) 책이라는 걸 확인한 뒤에야 읽어보지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접한 괴이한 이론의 진원지가 일본이었던 경험을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가까워서일까요, 일본의 사이비 이론은 우리나라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 조선인 비하하려 혈액형 분류
 
일본의 영향을 받은 사이비 과학으로 가장 널리 퍼져 있는 게 바로 혈액형별 성격입니다. ABO식으로 나눈 혈액형에 따라 사람의 성격이 다르다는 이론이지요. 지난 2013년 최강희 전 국가대표축구팀 감독이 “수비수로는 성취욕이 강한 B형이 좋다”고 이야기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와 화제가 됐습니다. 물론 농담 삼아 한 이야기가 과장됐겠지만, 이런 농담이 흔하다는 건 혈액형별 성격 이론이 얼마나 널리 퍼져 있는지를 알려 줍니다.
 
설마 동아사이언스 독자 중에 이 이론을 믿는 사람은 없겠지요? 혹시라도 어느 정도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다면, 오늘부터 당장 생각을 바꾸시길 바랍니다. 혈액형을 떠나서 애초에 사람의 성격을 네 가지 범주로 나눈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겁니다. 흔히 A형은 소심하다고들 하지요? 그런데 모든 사람을 소심한 사람과 안 소심한 사람으로 나눌 수 있나요?
 
소심한 것도 정도의 차이가 있습니다. 대범한 것도 마찬가지고요. 소심함의 끝과 대범함의 끝을 직선으로 이어 놓으면 그 직선 위 어디에 점을 찍어도 거기에 해당하는 성격의 사람이 있을 겁니다. 혈액형보다는 좀 더 그럴듯해 보이는 MBTI는 성격을 16가지 범주로 나누는데, 이 역시 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검사입니다. 하물며 4가지로 나누는 혈액형이야 말할 것도 없지요. “당신은 OO형이야”라고 결론 내려주는 성격 검사는 제대로 된 성격 검사가 아닙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우리나라에 ABO식 혈액형 분류를 도입한 이유를 알면 농담 삼아서라도 혈액형별 성격에 대해 이야기하기 싫을 겁니다. 2013년 2월 정준영 한림대 교수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조선인의 인종적 열등성을 강조하기 위해 ABO식 혈액형 분류 연구에 집착했다는 연구 논문을 대한의사학회지에 발표했습니다.
 
당시 일본은 진화한 민족일수록 A형이 B형보다 많다는 독일의 이론에 따라 일본인이 한국인보다 우월 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A형이 더 많았거든요. 결국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목적이었던 겁니다. 이력서 같은 곳에까지 괜히 혈액형을 쓰게 만드는 게 결국 일제의 잔재입니다. 행여나 인사권자가 혈액형별 성격론을 믿는 사람이라면? 단순한 재미를 넘어 사회적으로도 피해를 끼치니 제가 까칠하게 굴만 하지요.
 

● 물이 알긴 뭘 알아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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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모토 마사루의 책 ‘물은 답을 알고 있다’도 일본산 사이비 과학으로 우리나라에서 한때 인기를 끌었습니다. 물을 얼리면서 결정구조를 관찰하는 실험을 했는데, 사랑이나 감사의 뜻을 전해주면 물의 결정이 예쁘게 된다는 겁니다. 욕을 하면 결정이 못생겨지고요.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려주면 예뻐지고, 헤비메탈을 들려주면 못생겨진다는 음악차별적인 발언도 합니다.
 
당연히 사이비 과학입니다. 물에 의식이 있다는 근거도 없고, 사랑의 파동을 물에게 보낸다는 원리도 엉터리입니다. 사이비 과학이 ‘파동’을 아무 데다 갖다 쓴다는 얘기는 몇 번째인지 모르겠군요. 어쨌든 이번에도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결정이 예쁜지 안 예쁜지에 대한 기준도 없습니다.
 
요즘에는 이 이론이 시들해졌나 했는데, 작년에 놀라운 사실을 접했습니다. 우리나라의 한 산부인과 의사가 에모토의 주장에 영감을 받아 출산에 적용한 겁니다. 태아를 둘러싸고 있는 양수로 결정 실험을 한 결과를 책으로 냈습니다. 나아가 사랑의 파동을 전해 사랑수를 만들고 이를 이용해 분만을 한다고 합니다. 이 의사는 이렇게 태어난 아기가 훌륭하게 자란다고 주장합니다.
 
사랑수를 이용해서 분만하는 게 나쁠 이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좋은 뜻으로 해도 과학이 아닌 건 아닌 겁니다. 훌륭한 아기가 태어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아무리 간절하다고 해도 물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일본에서 들어온 사이비 과학은 서점의 ‘건강’ 코너에서 특히 많이 볼 수 있습니다. 2013년 유행한 나구모 요시노리 박사의 ‘1일 1식’도 한 예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과학동아 2013년 5월호 ‘최신유행 다이어트 정말 폭풍감량 해줄까?’를 참고하시면 됩니다.
 
마지막으로 변명 비슷하게 한마디 해야겠습니다. 잠시 반일감정을 표출시켜보기는 했지만, 일본의 과학 수준을 비하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일본은 기초과학 강국입니다. 과학기술 수준도 우리나라보다 높습니다. 우리가 배워야 한다면 그건 사이비 과학이 아니라 바로 기초과학을 강하게 키우는 방법입니다.

 

 

※ 동아사이언스에서는 고호관 기자의 ‘완전 까칠한 호관씨’를 매주 수요일 연재합니다. 2013-2014년 과학동아에 연재되었던 코너로 주위에서 접하는 각종 속설, 소문 등에 대해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지 까칠한 시선으로 따져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고호관 기자

karidas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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