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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컴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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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3월 01일 18:00 프린트하기

과학동아(일러스트 김정훈) 제공
과학동아(일러스트 김정훈) 제공

 

컴퓨터란 무엇일까? 컴퓨터로 무얼 할 수 있는지 설명할 수는 있어도,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컴퓨터는 말 그대로 ‘컴퓨트(compute) 하는 것’이다. 계산기란 말이다. 여기에 동의 못할 사람도 있을 거다. 컴퓨터로 동영상을 볼 수 있고, 음악도 들을 수 있고, 게임도 할 수 있지 않은가? 이런 만능기계를 계산기라고 부르는 것은 컴퓨터에 대한 모독이다. 그러나 사실 이 모든 것은 계산에 불과하다.

 

● 음악도 동영상도 모두 숫자다
 
음악 듣는 것을 생각해보자. 음악은 소리의 일종이다. 소리라는 것은 공기의 진동, 정확히는 공기밀도의 진동이다. 공기밀도를 시간의 함수로 기록하면 소리를 기록하는 셈이다. 즉 음악은 밀도라는 물리량, 다시 말해 숫자로 표현할 수 있다. 이 숫자들을 적절한 규칙에 따라 저장하면 mp3 파일이 된다. 이 파일을 터치하면 컴퓨터는 저장된 숫자들을 스피커의 전류로 바꿔주는 명령을 내린다. 이제 음악이 들린다.
 
동영상을 보든 냉장고의 온도를 낮추든, 역시 각각 빛이나 열과 관련된 물리현상의 일종이다. 모든 물리현상은 숫자를 써서 표현할 수 있다. 한편, 모든 명령은 언어로 표현할 수 있고 모든 언어는 숫자로 바꿀 수 있다. 영어의 경우 알파벳에 해당하는 숫자가 필요하다. A는 65, B는 66, 이런 식이다. 이것을 아스키(ASCII) 코드라고 한다. 결국 컴퓨터는 명령을 의미하는 숫자들을 물리현상의 숫자로 바꾸는 계산기에 불과하다.
 
책 읽는 것을 생각해보자. 우리가 한 글자씩 읽어 이해하듯이, 기계도 숫자를 하나씩 순차적으로 받아들여 처리한다. 이것을 컴퓨터에 적용하면 1차원으로 나열된 수의 배열을 또 다른 1차원 수의 배열로 바꾸는 셈이 된다. 이런 방식을 처음 고안한 사람이 바로 컴퓨터의 아버지 앨런 튜링이다.
 
모든 숫자는 이진법으로 표현할 수 있으므로, 컴퓨터는 0과 1만 처리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 0과 1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구현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전자식 컴퓨터는 전압이 5V면 1, 0V면 0으로 표현한다. 또는 메모리에 전하가 충전돼 있으면 1, 방전돼 전하가 없으면 0으로 정보를 저장한다. 정보의 기본 단위는 0 또는 1, 둘 중 하나의 값을 가질 수 있다. 이것을 비트(bit)라고 부른다. 정리하면 컴퓨터는 입력 비트를 출력 비트로 바꾸는 계산기다. 본질적으로 컴퓨터에 대한 논의는 이걸로 다한 셈이다. 나머지는 세부사항이다. 물론 컴퓨터 게임을 만드는 것은 어마어마한 세부사항(?)을 필요로 한다.
 
● 0과 1이 동시에 존재한다
 

앨런 튜링 - wikipedia 제공
앨런 튜링 - wikipedia 제공

1989년 데이비드 도이치는 양자역학의 원리에 따라 작동되는 컴퓨터의 가능성을 처음 제안한다. 양자역학은 하나의 비트가 동시에 0과 1을 갖는 것을 허용한다. 이것을 퀀텀비트(quantum bit), 줄여서 큐비트라 부른다. 하나의 전자가 동시에 두 개의 구멍을 지날 수 있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 코너에서 지겹게 이야기한 ‘중첩’이다. 큐비트에 기반을 둔 양자정보가 컴퓨터에 어떤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할까? 1992년 도이치는 양자역학이 0과 1을 하나씩 순차적으로 처리하는 고전적 정보처리보다 효율적임을 증명한다.
 
어떤 함수 f(x)가 있다고 하자. 함수 f(x)에 하나의 비트를 입력해 결과를 알아낼 때마다 100만 원의 사용료를 내야 한다.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는 “f(0)=f(1)인가?” 하는 것이다. 고전 정보이론에 따르면 당신은 최소한 200만 원을 내야 답을 알 수 있다. f(0)과 f(1)의 값을 각각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자역학에서는 중첩상태를 이용해 두 값을 동시에 묻는 것이 가능하다. 따라서 100만 원만 지불하면 된다! 이것이 도이치가 제안한 양자 알고리듬의 핵심 개념이다. 이제 남은 돈 100만 원으로 뭘 할지 생각해 봐야겠다.
 
1994년 피터 쇼어는 양자역학을 이용한 소인수분해 알고리듬이 고전적인 방식보다 엄청나게 효율적임을 증명했다. 현재 인터넷에서 널리 사용하는 암호화 방법은 소인수분해가 매우 어렵다는 수학적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하지만 만약 양자컴퓨터가 존재한다면 기존 암호체계가 쉽게 뚫리게 된다. 이때부터 양자컴퓨터가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국방부, 정보부, 기업 등 많은 곳에서 관심을 갖는 것이 당연하다. 이후 지난 20년간 양자컴퓨터는 물리학을 이끌어 온 가장 중요한 동력 가운데 하나였다.
 
양자컴퓨터의 가장 큰 특징은 중첩상태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동시다발적 계산이 가능하다. 그루버가 발견한 양자 찾기 알고리듬이 기존 방식보다 빠른 이유도 한꺼번에 여러 개를 탐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자컴퓨터 안에서 중첩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측정 당하지 말아야 한다. 즉 결어긋남(decoherence)을 막아야 한다(자세한 것은 ‘양자역학 좀 아는 척’ ②를 보시라). 결어긋남을 피하기가 아주 어렵다는 것이 양자컴퓨터의 실현에 가장 큰 걸림돌이다. 아무튼 양자컴퓨터는 중간 과정에서는 중첩상태를 유지하면서 연산을 수행하고, 마지막에 한 번 측정해 최종 결과를 얻는다.

 

과학동아 제공
과학동아 제공

 
● 측정하지 않고 계산하는 법
 
컴퓨터의 중요한 연산 가운데 조건 분기라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x가 1보다 크면 1을 더하고 작으면 그냥 두라는 명령문이다. 조건 분기를 하려면 결과에 따라 다른 출력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양자컴퓨터에서 미묘한 문제가 생기는 지점이다. 결과를 알기 위해서는 측정해야 한다. 하지만 측정을 하면 중첩이 깨진다. 측정하지 않고 분기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지난 호에서 다룬 EPR의 역설, 즉 벨의 상태가 필요한 이유다. 벨의 상태를 컴퓨터의 관점에서 보면, A가 0일 때 B가 1이 되고, A가 1일 때 B가 0이 되는 것이다. A의 상태에 따라 분기된 결과가 B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중첩돼 동시에 일어난다는 점이다. 벨 상태는 측정하지 않고 조건 분기하는 양자역학의 해법이다. 결국 슈뢰딩거 고양이의 중첩과 EPR 역설의 얽힘이 양자컴퓨터를 지탱하고 있다.
 
● 양자컴퓨터는 언제쯤 실현될까
 

독일군 암호를 푸는데 사용된 튜링의 ‘봄브’. - 과학동아 DB 제공
독일군 암호를 푸는데 사용된 튜링의 ‘봄브’. - 과학동아 DB 제공

2001년 IBM의 연구자들은 쇼어의 알고리듬을 사용해 15를 소인수 분해하는 데 성공했다. 15는 3×5다. 이를 위해 분자 내에 있는 원자핵스핀 7개를 이용했다. 7큐비트 양자컴퓨터인 셈이다. 물론 3×5가 15라는 것은 양자컴퓨터를 사용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우리의 목표는 큐비트의 수를 늘려 엄청나게 큰 수도 소인수 분해에 성공하는 것이다. 단지 큐비트의 개수를 늘리는 것이 기술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그런데 2011년 디-웨이브(D-WAVE)라는 회사가 128 큐비트로 만들어진 양자컴퓨터 ‘디-웨이브1’을 개발했다고 선언했다. 이어 2013년에는 성능을 대폭 향상시킨 512큐비트짜리 제품을 출시했다. 놀랍게도 NASA, 구글, 록히드 같은 기업들이 수천만 달러(수백 억 원)를 지불해 이것을 구매했다.
 
우선 디-웨이브는 일반 컴퓨터와 다르다. 최적화시키는 문제만을 풀도록 만든 특수 계산기다. 사기업이 개발하다보니 모든 정보가 공개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것이 정말 양자컴퓨터인지 많은 논란이 있다. 지난 2014년 6월 20일자 과학잡지 ‘사이언스’에는 디-웨이브를 테스트한 실험결과가 발표됐다. 기사에는 양자컴퓨터가 보여야하는 계산속도의 획기적 증가가 없다는 내용이 실렸다.

 

양자컴퓨터 칩의 모습. - 위키미디어 제공
양자컴퓨터 칩의 모습. - 위키미디어 제공

양자컴퓨터가 아닐 확률이 크다는 말이다. 디-웨이브를 고가에 구매한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학계에서는 양자컴퓨터가 실용화되기까지는 아직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가장 먼저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과학자들의 도전이 오늘도 세계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중첩과 얽힘. 양자역학이 말도 안 된다는 것을 보여 주려고 제시된 역설이었지만, 이제 우리는 이 괴상한 성질을 이용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컴퓨터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것이 ‘터미네이터’가 되지 않기만을 기원할 뿐이다(양자컴퓨터에 대한 최근의 개발 연구는 과학동아 2014년 8월호 ‘양자컴퓨터 최강자는 누구?’를 읽어보자).

 

 

※ 동아사이언스에서는 부산대 물리교육과 김상욱 교수의 ‘양자역학 좀 아는 척’을 매주 월요일 연재합니다. 2014년 과학동아에 연재되었던 코너로 양자역학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김상욱 교수
KAIST 물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부산대 물리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양자과학, 정보물리, 통계물리 등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영화는 좋은데 과학은 싫다고?’가있으며, 과학대중화와 관련한 여러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swkim0412@pusan.ac.kr

 


에디터 이한기 기자 | 글 김상욱 부산대 물리교육과 교수

swkim0412@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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