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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첨가물 유화제 알고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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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첨가물 유화제 알고보니…

2015.03.09 18:00

며칠 전 모 방송사 다큐멘터리 작가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모유에 대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데 몇 달 전 필자가 번역한 ‘가슴이야기’란 책을 보고 몇 가지 묻기 위해 연락을 한 것이다. 모유에 팝스(POPs, 잔류성유기화합물)가 포함되기 쉬운 이유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젖을 현미경으로 보면 작은 기름방울이 물에 분산돼 있는 상태라고 무심코 말했는데 의아해 하는 눈치다.

 

“구글에서 ‘milk & microscope’를 쳐보시면 이미지가 나올 겁니다.”

 

통화를 마치고 나서 ‘혹시 안 나올 수도 있나…’라는 생각이 들어 검색해봤다. 다행히 이미지가 많았다. 고등학교 때 화학을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은 뿌연 물 같이 보이는 젖을 확대해 보면 이런 물방울(실제로는 기름방울)이 떠 있는 상태라는 게 놀랍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수용액에 미세한 기름방울이 떠 있거나 기름에 물방울이 분산돼 있는 상태를 ‘유화(emulsion)’라고 부르는데, 젖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왔다.

 

1_우유의 현미경 사진(4200배). 우유는 수용액에 기름방울(지방과립)이 분산된 유화 상태로 지방과립의 크기는 대체로 3~5마이크로미터다. 우유가 이런 상태로 안정하게 존재할 수 있는 건 천연유화제인 인지질과 단백질 덕분이다. - The Weston A. Price Foundation 제공

우유의 현미경 사진(4200배). 우유는 수용액에 기름방울(지방과립)이 분산된 유화 상태로 지방과립의 크기는 대체로 3~5μm다. 우유가 이런 상태로 안정하게 존재할 수 있는 건 천연유화제인 인지질과 단백질 덕분이다. - The Weston A. Price Foundation 제공

● 우유와 로션은 같은 상태

 

알다시피 물과 기름은 서로 섞이지 않는다. 따라서 지방이 4% 내외인 모유를 그릇에 짜면 위에 기름 층이 떠 있어야 한다. 정말 그렇다면 엄마 젖가슴 안에 물(당과 단백질이 포함된)과 유지방이 따로 저장돼 있다가 아기가 젖을 빨 때 절묘하게 비율에 맞춰 나온다는 말이다. 물론 소젖(우유)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물과 기름이 섞이지 않는 건 표면장력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액체나 고체를 이루는 분자 사이에 친화력이 클 경우 표면에 놓이는 분자들은 반쪽이 다른 물질 또는 공기에 노출되므로 열역학적으로 불안정한 상태가 된다. 따라서 이런 물질은 표면적이 가장 작은 상태로 존재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표면장력이 큰 물과 표면장력이 작은 기름을 섞으면 결국은 두 층으로 분리되는데(보통 기름이 비중이 낮기 때문에 위에 뜬다), 두 물질이 층을 이루는 게 물의 입장에서 표면적을 최소화하는 배치이기 때문이다. 젖에는 이런 구조적인 딜레마를 해결한 절묘한 ‘구조’를 한 분자가 들어있다. 한쪽은 물과 친하고 다른 쪽은 기름과 친한 구조를 한 인지질이나 단백질 분자다. 결국 젖은 표면이 이런 분자들로 덮인 작은 유지방 방울이 분산된 액체가 됐다.

 

 

2_물과 기름은 섞이지 않는다(A). 그런데 막대로 세게 저어주면 기름이 작은 방울로 분산되면서 물과 섞여 뿌연 액체가 된다(B). 유화제가 없을 경우는 기름방울이 뭉치면서 바로 원래 상태로 돌아가지만(C), 유화제가 기름방울 표면을 덮고 있을 경우 이 상태가 오래 유지될 수 있다. 많은 가공식품에 유화제가 들어있는 이유다.  - 위키피디아 제공
물과 기름은 섞이지 않는다(A). 그런데 막대로 세게 저어주면 기름이 작은 방울로 분산되면서 물과 섞여 뿌연 액체가 된다(B). 유화제가 없을 경우는 기름방울이 뭉치면서 바로 원래 상태로 돌아가지만(C), 유화제가 기름방울 표면을 덮고 있을 경우 이 상태가 오래 유지될 수 있다. 많은 가공식품에 유화제가 들어있는 이유다. - 위키피디아 제공

젖의 기름방울 속에는 유지방뿐 아니라 기름에 잘 녹는 비타민A, E, K 등 각종 영양성분이 녹아있고 유감스럽지만 팝스처럼 유해한 분자 대다수도 여기에 들어있다. DDT, PCB, 트리클로로에틸렌, 디벤조퓨란 등 많은 분자들이 지용성이기 때문이다.

 

물과 기름의 혼합물이 유화 상태가 되게 만들어주는 분자를 ‘유화제(emulsifier)’라고 부른다. 사실 젖이 투명하지 않고 희게 보이는 게 바로 미세한 기름방울이 분산돼 있다는 증거다. 유지방 방울은 지름이 수 마이크로미터 내외로 가시광선의 파장인 0.4~0.7μm보다 크기 때문에 빛이 산란돼 불투명해져 하얗게 보이는 것이다.

 

매일 아침 얼굴에 바르는 로션이나 크림도 유화 상태다. 현미경으로 보면 젖과 비슷한 모습이라는 말이다. 단지 기름의 비율이 더 높아 기름방울이 더 크고 이를 안정화시키기 위한 원료들이 이것저것 들어가다 보니 더 걸쭉할 뿐이다.

 

사실 우유뿐 아니라 많은 식품이 유화 상태로 존재한다. 우유는 원래부터 그런 상태이지만 대부분의 가공식품은 사람들이 여러 식재료를 섞어 제품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유화제를 첨가한다. 가공식품 대부분이 설탕물에 기름을 섞은 상태라고 볼 수 있으므로 유화제 없이는 1년 정도의 유통기한을 버틸 수 없다. 성분표시란을 보면 ‘유화제’가 없는 제품을 찾기가 쉽지 않은 이유다.

 

물론 유화제는 합법적인 식품첨가물로 달걀에서 추출한 레시틴 같은 천연분자도 있고 사람들이 합성한 분자도 있다. 유화제 대부분은 그라스(GRAS), 즉 일반적으로 안전하다고 간주되는(generally regarded as safe) 물질로 분류돼 있다. 사실상 사용량에 제한이 없다는 말이다.

 

● 선천적으로 장이 약할수록 영향 많이 받아

 

학술지 ‘네이처’ 3월 5일자에는 식품첨가물로 쓰이는 유화제가 장염이나 대사증후군을 일으킬 수 있다는 동물실험 결과가 실렸다. 미국 조지아주립대 생의과학연구소 앤드류 지워츠 교수팀은 식품의 유화제로 널리 쓰이는 CMC(carboxymethylcellulose)나 P80(polysorbate-80)이 1% 농도로 들어있는 물을 마신 생쥐와 그냥 맹물을 마신 생쥐 사이의 차이를 조사했다. 1% 농도는 가공식품에 들어있는 유화제 수준이다.

 

12주 동안 비교 실험을 한 결과 유화제를 탄 물을 먹은 생쥐들은 맹물을 먹은 생쥐에 비해 대장을 덮고 있는 점막층이 얇아졌고 장내미생물의 분포도 달라졌다. 그 결과 약간의 염증증상이 생겼고 몸무게가 10% 정도 더 나갔다. 그리고 포도당불내성 같은 초기 당뇨 증상이 나타났다.

 

 

식품과 화장품에 널리 쓰이는 유화제 P80의 분자구조. 왼쪽은 극성을 띠어 물과 친하고 오른쪽은 비극성으로 기름과 친하다.  - 위키피디아 제공
식품과 화장품에 널리 쓰이는 유화제 P80의 분자구조. 왼쪽은 극성을 띠어 물과 친하고 오른쪽은 비극성으로 기름과 친하다. - 위키피디아 제공

다음으로 선천성면역계와 관련이 있는 유전자가 고장난 생쥐를 대상으로 같은 실험을 했다. 즉 사이토카인인 인터류킨10(IL10)을 만들지 못하는 Il10-/- 생쥐와 톨유사수용체5 유전자가 고장이 난 Tlr5-/- 생쥐로 이들은 염증성 장질환에 취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관찰 결과 원래 장이 약한 변이쥐들은 유화제에 더 민감하게 반응해 80% 이상에서 장염 증상이 나타났다(대조군은 40% 대). 체중이 증가하고 포도당 대사에 이상이 나타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필자는 유화제가 직접 점막에 영향을 미쳐 이런 결과가 나왔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장내미생물이 없는 무균생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을 보니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즉 이 녀석들은 맹물을 먹으나, 유화제를 탄 물을 먹으나 별 차이가 없었다. 대신 앞에 실험한 쥐들의 분변을 이식하자 차이가 나타났다. 즉 맹물을 먹은 쥐의 분변을 이식받은 쥐와 유화제를 탄 물을 먹은 쥐의 분변을 받은 쥐의 점막이나 체중 패턴이 이식한 쥐들과 비슷하게 나온 것. 유화제는 장내미생물을 통해서 인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다.

 

맹물(왼쪽)과 유화제인 CMC(가운데), P80(오른쪽)이 1% 들어있는 물을 먹은 생쥐의 장벽 단면의 공초점현미경 사진. 파란색이 상피세포, 녹색이 점막, 빨간색이 장내미생물이다. 맹물을 먹은 생쥐의 경우 장내미생물이 상피세포에 접근하지 못하지만 유화제를 탄 물을 먹은 생쥐의 경우는 점막이 얇아져 꽤 가까이 침투했음을 알 수 있다.  - 네이처 제공
맹물(왼쪽)과 유화제인 CMC(가운데), P80(오른쪽)이 1% 들어있는 물을 먹은 생쥐의 장벽 단면의 공초점현미경 사진. 파란색이 상피세포, 녹색이 점막, 빨간색이 장내미생물이다. 맹물을 먹은 생쥐의 경우 장내미생물이 상피세포에 접근하지 못하지만 유화제를 탄 물을 먹은 생쥐의 경우는 점막이 얇아져 꽤 가까이 침투했음을 알 수 있다. - 네이처 제공

유화제가 인체의 건강에 좋은 방향으로 장내미생물에 영향을 준다면 좋았을 텐데 생태에 관련된 일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인위적인 변화의 결과는 십중팔구 더 나쁜 쪽으로 일어나기 마련인가보다. 연구자들은 동물실험이라는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이를 바탕으로 흥미로운 가설을 제안했다.

 

즉 20세기 후반기 들어 비만과 염증성 장질환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가파르게 상승한 배후에는 가공식품이 식단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급격히 늘어난 것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는 것. 즉 가공식품 속의 유화제가 장내미생물의 조성을 바꾸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체중 증가를 일으키고(이번 동물실험에 따르면 유화제가 식욕을 촉발하는 장내미생물의 비율을 높여 숙주인 생쥐가 더 많이 먹게 한다) 선천적으로 장이 약한 사람들에게 염증성 장질환을 유발했다는 것.

 

그리고 유화제가 가공식품에 사실상 제안 없이 쓰일 수 있게 안전한 식품첨가물로 허가가 난 건 수십 년 전 시험법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즉 당시는 급성독성과 발암성 여부에만 신경을 썼기 때문에 염증이나 비만 같은 애매한 증상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는 것. 이는 또 다른 식품첨가물인 인공감미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사람에 대한 임상연구가 진행돼봐야겠지만 비만이나 특히 염증성 장질환으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은 평소 식단에서 가공식품이 차지하는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사실 이번 연구가 아니더라도 1년 동안 겉모습이 변함없게 하기 위해 이것저것 집어넣은 가공식품이 부엌에서 신선한 제철 식재료로 만든 음식과 건강면에서는 비교가 안 될 거라는 건 생활상식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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