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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에서 존재로(it from b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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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에서 존재로(it from bit)

2015.03.22 18:00
과학동아(일러스트 김정훈) 제공  제공
과학동아(일러스트 김정훈)  제공

 

우주의 본질은 무엇인가? 인류문명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질문이다. 영화 <매트릭스>는 황당한 답을 내놓았다. 이 세상이 한낱 컴퓨터 게임 같은 프로그램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양자역학이 도달한 답도 어쩌면 비슷할지 모른다.

 

존 아치볼드 휠러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론물리학자다. 아인슈타인, 보어 등과 연구를 함께 했으니 얼마나 옛날 사람인지 알 수 있다. 리처드 파인만의 스승이었으며, ‘블랙홀’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말년에는 여러 형이상학적 주제를 물리학 관점에서 다뤄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휠러가 던진 ‘빅 퀘스쳔(big question)’ 몇 개를 보자.

 

“존재는 어떻게 생겨났는가?” “왜 양자인가?” “동참하는 우주?” “의미는 무엇인가?” 휠러가 이런 질문을 던졌던 것은 “모든 것이 비트(정보)에서 존재로” 귀결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비트는 정보를 상징하는 말이니, 우주 존재의 본질은 정보라는 뜻이다.

 

존 아치볼드 휠러의 모습. 휠러는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등장하는 ‘웜홀’이라는 단어의 이름을 짓기도 했다. - 뉴욕타임즈 제공
존 아치볼드 휠러의 모습. 휠러는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등장하는 ‘웜홀’이라는 단어의 이름을 짓기도 했다. - 뉴욕타임즈 제공

 

● 우주의 본질이 정보라고?


사실 이런 주장은 뜬금없이 들린다. 우주의 본질은 쿼크 아닌가? ‘초끈’이라는 말도 어디선가 들은 듯 하고. 더구나 ‘정보’는 실체가 없는 것 같은데…. 정보라고 하면 주가, 시험문제, 비밀번호, 데이터 같은 단어들이 떠오른다. 이런 것들이 어떻게 우주의 본질이 될 수 있을까? 아니 정보가 물리학의 대상이 될 수나 있는 걸까?


1948년 미국의 수학자이자 전기공학자인 클로드 섀넌은 정보를 정량적으로 기술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자, 두 가지 정보를 생각해보자. ①내일 해가 뜬다. ②내일 아이유가 은퇴한다. ①보다 ②가 가진 정보량이 많다. 더 놀랍기 때문이다.

 

수학적으로 말하면 ②가 일어날 확률이 훨씬 작아서 그렇다. 따라서 섀넌은 정보의 양이 확률에 반비례()한다고 생각했다. 더 정확히는 여기에 로그를 씌운 값()이다. 여기서 Pn은 n번째 사건이 일어날 확률이다. 결국 모든 사건에 대한 평균적인 정보량은 <>으로 쓸 수 있다. 이것은 물리학에서 잘 알려진 볼츠만의 엔트로피 공식과 같다. 이 때문에 섀넌의 정보량을 정보엔트로피라 부른다.


정보엔트로피와 볼츠만 엔트로피는 정말 같은 것일까? 볼츠만 엔트로피는 열역학 제2법칙과 관련된 중요한 물리량이다. 시간이 흐르면 뜨거운 커피는 점차 차가워진다. 식은 커피가 다시 저절로 뜨거워질 수는 없다. 열역학 제2법칙에 따라 엔트로피는 감소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질의 상태는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는 뜻이다.

 

1929년 레오 질라드는 재미있는 제안을 한다. 정보엔트로피가 볼츠만 엔트로피와 같다면 정보를 이용해 어떤 일을 하는 엔진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는 거다. 이렇게 만든 질라드 엔진을 보자. 이 엔진은 입자의 위치를 측정하는 것만으로 에너지를 얻게 된다. 커피 분자의 위치를 측정하는 것만으로 커피를 뜨겁게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질라드 엔진은 ‘아는 것이 힘’이라는 격언이 일리가 있음을 보여준다. 질라드 엔진은 최근 실험으로 입증됐다.

 

● 양자역학은 결국 정보가 결정하는가


자, 여기서 나온 ‘측정’이라는 단어에 주목해보자. 정보는 본질적으로 측정을 통해 얻는다. 양자역학에서 측정이란 관측대상의 정보가 관측자로 옮겨가는 것을 말한다. 두 개의 구멍을 지나는 전자의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자(슈뢰딩거 고양이는 누가 죽였나? 참고).

 

전자는 파동성을 갖고 있어서 두 개의 구멍을 지난 후 스크린에 복잡한 간섭무늬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전자가 어느 구멍을 지나는지 측정을 하면서 스크린을 보면, 보통의 입자와 같이 두 개의 줄을 보게 된다. 측정하는 행위가 왜 결과에 이런 영향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 파인만은 이렇게 설명한다.

 

관측하는 동안, 즉 보는 동안 전자의 궤도에 교란이 생기고 그 결과 간섭무늬가 사라진다. 이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를 염두에 둔 설명이다(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말다툼 참고). 본다는 것은 빛이 대상에 맞고 튕겨오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빛은 입자의 성질도 갖는다. 물론 우리는 빛에 맞는다고 휘청거리지 않지만, 전자같이 작은 존재는 영향을 받는다.


만약 전자의 궤도에 교란을 주지 않고도 어느 구멍을 지났는지 알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파인만의 설명에 따르면 어쨌든 교란을 주지 않았으니 간섭무늬가 나와야 한다. 하지만 1998년 게라드 렘페는 ‘네이처’에 놀라운 실험결과를 발표한다. 이 경우에도 간섭무늬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우선 교란을 주지 않고 위치를 측정하는 것이 가능한지 질문할 수 있겠다. 얼핏 불확정성원리를 위배하는 것으로 보이니 말이다. 여기서 자세한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8편(빨간 약을 먹으면 양자세계가 사라질까?)에서 다룬 양자얽힘을 이용하면 가능하다는 것만 알아두자.

 

그렇다면 교란이 없는데, 왜 간섭무늬가 사라질까? 답은 간단하다. 코펜하겐 해석에 따르면 그래야만 하니까. 측정에서 중요한 것은 교란여부가 아니라 정보라는 얘기다. 전자가 어느 구멍을 지났느냐는 정보만 얻어지면 전자는 입자로 바뀐다. 결국 양자역학은 정보만을 고려하는 듯 보인다.


이번엔 휠러의 ‘지연된 선택(delayed choice) 실험’을 살펴보자. 실험의 자세한 내용은 역시 이해하기 어려우니 그 결과가 갖는 의미에 집중하겠다. 전자는 입자이면서 파동이다. 입자라면 한 순간 한 장소에 있어야 하지만, 파동이라면 동시에 두 장소에 있을 수 있다. 측정하지 않으면 전자는 파동으로 행동하고, 측정할 때 입자가 된다.

 

따라서 전자가 두 개의 구멍을 지났다면 이미 파동이나 입자로서의 성격을 ‘결정’했다는 뜻이다. 두 구멍을 동시에 지났거나 하나만을 지났을 테니 말이다. 지연된 선택실험은 이런 예상이 틀렸음을 보여준다. 마지막 순간에 당신이 특별한 실험 장치를 추가하면 결과를 입자로 만들 수도 있고 파동으로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자가 입자, 파동 중에 하나로 결정되는 것은 구멍을 지날 때가 아니라 내가 추가 장치를 달지 말지를 결정할 때라는 것이다. 이것은 상식적으로 봤을 때 이상하다(물론 양자역학은 언제나 이상하다). 동시에 두 구멍을 지나느냐 아니면 하나의 구멍만을 지나느냐는 구멍을 지날 때 결정됐어야 하지 않을까? 답은 그렇지 않다. 입자성과 파동성은 전자가 둘로 나뉠 때가 아니라 측정할 때 결정된다. 여기서 아인슈타인의 질문이 떠오를 것이다. 달을 보지 않으면 달은 없는 것인가? 양자역학의 세계에서는 측정이 있기 전에는 아무 것도 없다. 아니, 측정이 대상을 만든다.

 

과학동아(일러스트 김정훈) 제공  제공
과학동아(일러스트 김정훈)  제공

 

● 스무고개로 풀어가는 우주


정리해보자. 정보는 에너지와 관련된다. 에너지는 물리의 모든 것이다. 참고로 질량도 에너지다. 양자역학에서 측정하기 전에는 어떤 것도 이야기할 수 없다. 아니 측정 자체가 대상을 만든다. 양자역학의 측정에서 중요한 것은 정보다. 결국 양자역학으로 바라본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스무고개라는 게임이 있다. 한 사람이 단어 하나를 머릿속에 생각하고, 다른 사람이 스무 번의 질문을 통해서그 단어를 맞추는 거다. 휠러는 양자역학을 답이 없는 스무고개에 비유했다. 질문을 받으면 아무 답이나 한다. 다만, 앞에서 한 대답과 모순이 되지 않는 대답을 해야만 한다.

 

대답들이 쌓이면서 하나의 개념으로 답이 수렴해간다. 답은 미리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질문을 통해 만들어져 가는 것이다. 20개의 질문이 모두 끝나면 질문과 답의 목록과 가장 근접한 개념이 얻어진다. 스무고개의 질문을 양자역학에선 측정이라 볼 수 있다. 대답은 측정을 통해 얻은 정보다. 실제 양자우주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다. 그렇다면 우주에 실체나 본질은 없다. 질문과 답, 측정과 정보만이 있을 뿐이다.


 

istockphoto 제공
istockphoto 제공

차일링거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정보다. 이것은 우리의 *감각인상이며, 우리가 제기한 질문에 대한 대답들이다. 실재는 그 다음에 오는 2차적인 것이다. 실재는 우리가 얻는 정보로부터 도출된다.” 이런 이야기가 이상하다고 느껴지면 당신은 정상이다.

 

아직 물리학자들조차 정보우주가 정확히 뭔지 모르고 있다. 실험적 증거가 없음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양자역학의 모든 미스터리는 우리를 평행우주나 정보우주와 같은 기괴한 결론으로 이끈다.

 

* 감각인상 : 감각기관에 의해 직접적으로 경험되는 정신적, 생리적 인상 혹은 효과

 

● 이상한 것은 양자역학이 아니라 인간이다


지난 1년간 양자역학에 대한 글을 연재했다. 양자역학은 인간이 만든 그 어떤 과학이론보다 정확하고 완벽하다. 모든 현대 첨단과학의 기저에는 양자역학이 있다. 하지만 양자역학의 내용은 너무나 기괴하다. 어쩌면 문제는 양자역학이 아니라 우리일지도 모른다. 끝으로 코펜하겐해석의 창시자 닐스 보어의 말을 인용하며 물러난다.


“자연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알아내는 것이 물리학의 과제는 아니다. 물리학의 과제는 자연에 대해서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이다.”

 

 

※ ‘양자역학 좀 아는 척’은 이번 편을 마지막으로 마무리됩니다. 그동안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김상욱 교수
KAIST 물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부산대 물리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양자과학, 정보물리, 통계물리 등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영화는 좋은데 과학은 싫다고?’가있으며, 과학대중화와 관련한 여러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swkim0412@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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