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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가루는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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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가루는 무죄!

2015.03.24 18:00
동아사이언스 제공
동아사이언스 제공

 

저는 면 요리를 몹시 좋아합니다. 특히 날씨가 추워지면 따뜻한 국물이 있는 국수가 자주 생각나지요. 다니는 길에 못 보던 국수 가게가 생기면 꼭 가서 맛을 보곤 합니다. 사실 국수만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 만두, 수제비 등 밀가루로 만든 음식은 거의 다 좋아합니다. 왜 하필 밀가루가 아니라 쌀이 주식인 나라에서 태어났는지 한탄한 적도 많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발끈할 때가 많습니다. 밀가루가 몸에 좋지 않으니 피하라는 이야기가 많이 들리거든요. 살 빼고 싶으면 밀가루 먹지 마라. 피부 좋아지려면 밀가루 먹지 마라. 한약 먹을 땐 밀가루 먹지 마라. 아니, 무슨 밀가루가 봉입니까? 왜 이렇게 밀가루를 못살게 구는 걸까요?
 

● 당신이 못 먹는다고 나쁜 음식은 아니다
 
이번 편에서는 밀가루가 정말 안 좋은지 따져 볼 겁니다. 시작은 사심이지만, 과학적인 근거로 따져볼 테니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일단 밀가루가 건강에 좋지 않다고 하는 이유를 살펴봤습니다. 가장 화제가 되는 것은 글루텐이더군요. 그렇지 않아도 ‘글루텐프리’ 파스타 광고를 본 기억이 납니다. 글루텐이 들어 있지 않아 건강한 파스타라고 합니다.
 
글루텐은 밀가루에 들어 있는 단백질입니다. 반죽을 쫄깃하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이 성분 덕분에 밀가루로 빵도 만들고 면도 만들고 하지요. 그런데 글루텐을 왜 뺀다는 걸까요? 글루텐이 건강에 나쁘다는 사람들은 글루텐을 인체가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주장은 일부 맞고 일부 틀립니다. 글루텐을 먹지 못하는 사람은 분명히 있습니다. 밀 알레르기, 글루텐불내증, 셀리악병이 있을 경우 그렇습니다. 밀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밀가루를 먹을 수 없습니다. 글루텐불내증이 있는 사람은 글루텐을 먹었을 때 두통, 소화장애 등을 겪을 수 있습니다. 셀리악병은 선천성 질병으로, 이 병이 있는 사람은 소장에서 글루텐을 소화시키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모두 ‘의학적으로’ 글루텐을 먹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밀 알레르기나 셀리악병이 있는 사람은 1% 미만으로 소수입니다. 글루텐불내증은 정확한 수치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글루텐을 못 먹는 사람이 있다”는 것과 “글루텐이 건강에 나쁘다”는 건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땅콩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도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땅콩이 건강에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체질이야 개인에 따라 다른 것이니 알아서 식단을 조절하면 될 문제입니다.

 

pixabay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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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루텐프리 식단으로 살 못 빼
 
지난해 ‘영양 및 식이요법 학회지’에 글루텐프리 식단이 일반인에게 끼치는 영향을 정리한 논문이 실렸습니다. 글루텐에 대한 몇 가지 통념에 대한 실제 과학적 증거가 있는지 제시하고 있습니다. 먼저 비만에 대한 내용입니다. 셀리악병이 있는 사람이 글루텐프리 식단으로 생활할 경우, 체중이 늘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평소에 글루텐 때문에 소화가 잘 안 됐을 테니, 당연한 결과로 보입니다. 게다가 글루텐프리 식단이 칼로리는 더 높은 경우도 있습니다. 글루텐 소화에 무리가 없는 사람의 경우 체중이 변한다는 연구결과는 아직 없습니다. 글루텐프리 식단이 체중 감소에 좋다는 건 사실이 아닙니다.
 
건강은 어떨까요. 글루텐프리 식단이 일반인에게 유익한 영향을 끼친다는 증거는 아직 없습니다. 반대로 오히려 글루텐프리 식단이 건강에 좋지 않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글루텐프리 식단은 통곡물과 섬유소 부족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합니다. 암이나 심혈관계 질환을 예방하는 유익한 장내 세균을 줄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항간에는 글루텐이 우유 단백질인 카세인과 함께 자폐증이나 정신분열증을 유발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험 결과, 글루텐과 카세인을 뺀 식단으로 생활해도 증상이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과학적인 근거도 발견되지 않아 결국 인정받지 못한 주장입니다.
 

pixabay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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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빵과 면을 사랑한다면 밀가루를 의심하지 말라
 
밀가루가 건강에 좋지 않다고 주장하는 근거로는 이 외에도 몇 가지가 더 있습니다. 농약 투성이라거나 당지수가 높아 혈당을 빠르게 올린다는 등입니다. 우리가 주로 먹는 수입 밀가루가 농약 투성이인지는 제가 정확히 알기 어렵습니다. 다만 수입 밀가루를 대상으로 잔류 농약 검사를 하고 있을 텐데, 왜 기준치 이상의 농약이 검출됐다는 소식이 없을까요?

 

당지수 이야기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밀가루로 만든 빵류가 당지수가 높은 건 사실이지만, 감자나 우리 주식인 흰 쌀밥도 마찬가지로 높습니다. 그렇다고 쌀밥이 몸에 나쁘다고 이야기하나요?
 
글루텐프리 식단이 유행하는 건 상술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헐리우드 여배우 같은 사람들이 글루텐프리 식단으로 살을 뺐다고 주장하면서 인기를 끌고 있지만, 글루텐이 중요한 건 아닙니다. 글루텐이 있건 없건 많이 먹으면 찌고 적게 먹으면 빠지는 거지요. 게다가 이 사람들은 값비싼 트레이너와 함께 운동도 하지 않겠어요?
 
과학적인 근거만 따져 보면 몸에 특별한 이상이 없는 한 굳이 글루텐, 그리고 밀가루를 피할 이유가 없습니다. 사실 국수 마니아로서 제가 가장 걱정하는 건 밀가루가 아니라 나트륨입니다. 면과 국물에 나트륨이 꽤 많이 들어있기 때문이지요. 나트륨 섭취에는 조심을 하겠지만, 앞으로도 전 면식수행에 힘쓸 생각입니다. 밀가루를 사랑하는 모든 분들께 밀가루를 의심하지 말라고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뭐든지 많이 먹으면 살찐다는 건 알아 두시고요.
 

 

※ 동아사이언스에서는 고호관 기자의 ‘완전 까칠한 호관씨’를 매주 수요일 연재합니다. 2013-2014년 과학동아에 연재되었던 코너로 주위에서 접하는 각종 속설, 소문 등에 대해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지 까칠한 시선으로 따져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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