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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으로는 ‘슴부심’을 채울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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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으로는 ‘슴부심’을 채울 수 없어요~

2015.04.21 18:00

‘슴부심’ ‘슴지컬’ ‘슴케팅’……. 이런 말 들어 보셨나요. 앞엣것부터 ‘ 슴가+자부심 ’, ‘ 슴가+피지컬 ’, ‘ 슴가+마케팅 ’입니다. ‘ 슴가 ’는 ‘ 가슴 ’이라고 대놓고 쓰기 그러니까, 혹은 검열을 피하려고 거꾸로 쓰기 시작해서 굳어진 단어고요. 뜻이야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슴부심이라고 하면 가슴이 커서 느끼는 자부심을 말하는 거지요. 이런 말이 예사로 쓰이는 걸 보면 가슴이 중요하긴 한가 봅니다. 너도 남자면서 남의 얘기처럼 하지 말라고요? 흠흠. 어쨌든 가슴을 크고 예쁘게 만들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하는 여성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과학동아(일러스트 김명진) 제공
과학동아(일러스트 김명진) 제공

● ‘가슴 확대’ 한의사의 먹튀
 
최근에 한 뉴스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침으로 가슴을 키워 주는 시술을 전문으로 하던 한의원 하나가 돌연 폐업을 하고 원장이 잠적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환자에게 수백만 원씩의 시술비를 미리 받아 챙겼으니 소위 ‘먹튀’를 한 셈입니다. 이 한의원 원장이 ‘렛미인’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도 출연해 유명세를 타던 사람이었기에 충격은 더 컸습니다.
 
피해자에게도 각자 안타까운 사연이 있을 테지만, 그것보다는 근본적인 의문이 떠오르더군요. 과연 침으로 가슴을 크게 만들 수 있을까요? 일단 제 머릿속의 사이비 과학 경보장치는 왱알왱알 경고음을 발했습니다. 간단히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았습니다. 광고, 광고성 기사, 믿음직스럽지 않은 출처에서 나온 속설 정도뿐 제대로 된 연구 결과는 찾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다 이번 잠적 사건의 주인공인 한의사가 저자로 참여한 논문을 찾았습니다. 2008년 대한침구학회지에 실린 ‘20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자흉침의 유방확대효과에 대한 임상연구’, 2010년 같은 곳에 실린 ‘30~40대 기혼여성을 대상으로 한 자흉침의 유방확대효과에 대한 임상연구’입니다.
 
그러면 의학적인 근거가 있는 게 아닌가 싶지만, 고작 논문 몇 개 갖고는 근거로 삼기 어렵습니다. 사람에게 적용하는 일인데 그러면 쓰나요. 수많은 연구 논문과 임상실험이 쌓여야 비로소 확신을 갖고 환자에게 처방할 수 있지 않을까요?
 
논문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전문 연구자가 아닌 제가 보기에도 허술한 구석이 있는데요, 일단 6cm 길이의 ‘매선’이라는 것을 침을 이용해 대흉근 부위에 있는 혈자리에 매입한다고 합니다. 매선이 뭔가 해서 찾아보니 몸 안에서 저절로 분해되는 성분으로 만든 약실이라고 합니다. 어디서는 한약재를 묻혔다고도 하고, 어디서는 실이 녹으면서 지속적으로 자극을 준다고 하기도 해 작용 원리가 애매합니다. 연구 대상은 저자가 운영하는 한의원에서 시술을 받은 여성 중 20명입니다. 수가 너무 적지요.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 도대체 원리가 뭐야?
 
횟수는 총 10회로 생리로 인한 가슴 크기 변화가 측정에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10~14일 주기로 시술했다고 합니다. 대략 4개월에 걸쳐서 시술을 받은 셈입니다. 시술 전 윗가슴둘레와 밑가슴둘레를 측정했고, 10회 시술 후 차이가 평균 약 6cm에서 8.5cm로 늘었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브래지어 규격으로 한 컵 정도 확대 효과가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뿐입니다. 이렇게 침을 놓아 봤더니 커졌더라입니다. 4개월 동안 환자의 체중 변화 기록도 없습니다. 체중도 가슴 크기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나요? 학교 다닐 때도 배우는 실험군, 대조군 같은 것도 없습니다. 이중맹검, 무작위 비교 실험 같은 건 안중에도 없나 봅니다. 침만으로도 해 보고, 가짜 혈자리에도 놓아 보고, 매선이라는 실에 약을 묻힌다면 가짜약도 묻혀 보고 해야 제대로 된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원리도 그렇습니다. 의학이 다른 과학에 비해서 원리보다는 효과가 중요한 건 사실이지만, 그걸 감안해도 너무 모호합니다. “자흉침을 통해 자입한 매선의 물리적·화학적 효과가 유방 주변 氣의 흐름을 원활히 하고 그에 따라 神·精에까지 영향을 미쳐 유방 및 대흉근의 기능뿐 아니라 구조인 形을 변화시킨 것으로 사료되며”라고 쓰여 있더군요.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기’는 그렇다 쳐도 이것만 봐서는 어떤 원리인지, 어떤 효과인지 감도 오지 않습니다. 아무리 약실이라고 하나 가슴에 삽입한다고 하니 가슴이 커진 게 아니라 사실은 이물질에 반응해 부은 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듭니다.
 
● 효과는 글쎄? 시술비는 고액
 
무엇보다 관련 연구가 너무 적습니다. 생명과학 및 의학 논문 데이터베이스인 PUBMED에서 ‘acupuncture breast enlargement(침술 가슴 확대)’로 검색하니 중국어 논문 2개가 나왔습니다. 동일인이 비슷한 시기에 냈더군요. 제가 못 찾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용어를 바꾸고 구글학술검색을 이용해 봐도 거의 더 나오지 않았습니다. 국내에서는 2013년에 나온 논문이 하나 더 있습니다. 앞선 논문보다는 약간 더 자세하지만, ‘일개 한의원의 증례 연구’일 뿐이라고 한계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침을 이용한 가슴확대 시술은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방법입니다. 이걸 갖고 몇백만 원씩 받았으니 장사는 잘한 셈이네요. 가슴확대뿐 아니라 요즘에는 주름제거, 리프팅 등 침을 이용한 미용법도 성행하고 있습니다. 콜라겐 생성을 돕는다느니 전류를 흘려서 신경을 자극한다느니 주장하지만 역시 입증되지 않은 얘깁니다. 목숨이 경각에 달려서 지푸라기라도 붙잡는다면 모를까, 확실하지도 않는 시술에 기백만 원을 들인다는 건 너무 아깝지 않나요.
 

 

※ 동아사이언스에서는 고호관 기자의 ‘완전 까칠한 호관씨’를 매주 수요일 연재합니다. 2013-2014년 과학동아에 연재되었던 코너로 주위에서 접하는 각종 속설, 소문 등에 대해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지 까칠한 시선으로 따져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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