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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T, 그 영욕(榮辱)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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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4월 20일 18:07 프린트하기

포유류에게 급성독성이 미미하고 사람에게 미치는 만성독성은 아직 불확실한) DDT를 대신해 파라티온(유기인계 살충제) 같은 유독한 물질이 쓰인다는 건 넌센스다. DDT가 야생생물에 미치는 장기적인 영향에 대한 증거가 나오고 있다고 할지라도.
- 케네스 드브와, 미국 시카고대 독성학자

 

스위스의 화학자 폴 헤르만 뮐러는 우연한 발견 하나로 노벨상을 거머쥐었을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하고 수많은 새들의 목숨을 빼앗았다. 1939년 스위스 제약회사 가이기(훗날 합병을 거쳐 노바티스가 된다)에서 일하던 뮐러는 1874년 오스트리아의 화학자 오트마 자이들러가 처음 합성한 DDT라는 분자가 강력한 살충효과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뮐러는 좀 더 효과적인 DDT를 합성법을 개발했고 당시 마땅한 살충제가 없어 고민하던 인류에게 DDT는 놀라운 선물이 됐다. 게다가 제2차세계대전이 터지면서 비위생적 환경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지내다보니 여기저기서 전염병이 창궐했고 전장이 열대지역으로 확산되면서 병사들은 말라리아로 고통받았다. 이때 혜성처럼 나타난 DDT가 이 모든 상황을 정리했다. 우리나라도 한국전쟁으로 위생상태가 엉망이 됐을 때 미국이 가져온 DDT로 큰 덕을 봤다. 지금도 나이 지긋한 어른들은 옷 속으로 DDT를 뿌려대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DDT의 분자구조. - 위키피디아 제공
DDT의 분자구조. - 위키피디아 제공

아무튼 인류에게 이런 놀라운 선물을 안겨준 공로로 뮐러는 1948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참고로 DDT의 창조자 자이들러는 1911년 61세로 사망했다.

 

● 본격 독성실험을 한 최초의 화합물

 

화학의 역사에 관심이 많지 않은 독자들은 DDT가 이렇게 잘 나가던 때도 있었나 싶을 것이다. 대중들의 뇌리에 DDT하면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 떠오를 것이고 그 여파로 시장에서 퇴출된 끔찍한 살충제(농약) 정도로 기억되지 않을까. 미국의 과학사가 프레더릭 로웨 데이비스가 지난해 펴낸 책 ‘Banned’는 DDT를 중심으로 살충제의 역사와 독성학의 성립과정을 되돌아보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필자는 적어도 DDT가 더 이상 혐오스럽게는 느껴지지는 않았다.

 

저자는 살충제가 대량으로 쓰이게 된 배경인 19세기 후반 농업혁명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농기계가 보급되고 화학비료가 널리 쓰이면서 농업이 산업이 되자 생산성 향상이 중요해졌고 그 결과 농지의 규모가 커졌고 작물이 획일화됐다. 그러나 엄청난 수확도 그렇게 오래가지 못했다. 해충이 창궐했기 때문이다. 손으로 일일이 벌레를 잡을 규모가 아니었기 때문에 농민들은 해충을 퇴치할 농약을 갈구했다. 천연농약인 제충국제(pyrethrum)가 있었지만 양도 적고 너무 비쌌다.

 

학술지 ‘사이언스’ 3월 13일자에는 과학사가 프레더릭 로웨 데이비스의 책 ‘Banned’에 대한 서평이 실렸다. 왼쪽 위에 사진은 1963년 6월 4일 미국 상원 청문회에 출석해 증언하고 있는 레이첼 카슨의 모습이다.  - 사이언스 제공
학술지 ‘사이언스’ 3월 13일자에는 과학사가 프레더릭 로웨 데이비스의 책 ‘Banned’에 대한 서평이 실렸다. 왼쪽은 1963년 6월 4일 미국 상원 청문회에 출석해 증언하고 있는 레이첼 카슨의 모습이다.  - 사이언스 제공

이때 등장한 게 중금속계 살충제인 비소납과 파리그린(Paris green)이다. 농민들은 안도했지만 워낙 유해한 물질이라 시간이 지나면서 토양오염과 중독 등 문제점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1910년 미국에서 살충제법(Insecticide Act)이 통과되면서 살충제가 관리되는 시대에 들어갔지만 큰 변화는 없었다.

 

1937년 미국에서 독성학의 역사에 분기점이 되는 사건인 ‘일릭서 설파닐아미드 비극(Elixir Sulfanilamide tragedy)’이 일어났다. 항생제인 설파닐아미드를 먹기 좋게 디에틸렌글리콜(diethylene glycol)이라는 용매에 녹여 액체 제형으로 만들어 ‘일릭서 설파닐아미드’라는 상표명으로 시장에 내놓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한 것. 사태를 파악하고 약물을 회수(908.5리터 가운데 863리터)할 때까지 93명이 사망한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 정부는 약물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시스템을 구축하게 된다.

 

미 식품의약국과 시카고대 약학과 부설 독성연구소가 주축이 돼 진행한 연구는 독성학을 독립된 학문분야로 정립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예를 들어 실험동물의 절반이 죽을 때 투여량인 LD50(반수치사량)이 바로 이때 개발된 개념으로 어떤 물질의 독성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이렇게 독성학 방법론이 구축된 상태에서 본격적으로 연구에 들어간 물질이 바로 DDT다.

 

앞서 소개했듯이 1940년대 화려하게 등단한 DDT는 전쟁 뒤에도 큰일을 해냈다. 즉 미국 남부에서 매년 수백만 명을 괴롭히던 말라리아를 1950년 완전히 퇴출시킨 것. 비슷한 시기 남유럽에서도 DDT가 말라리아를 퇴치했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라고 농민들이 권고량의 몇 배가 되는 DDT를 뿌려대면서(특허가 만료된 물질이라 여러 회사에서 생산했고 그 결과 가격이 쌌다) 여기저기서 문제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미국 정부는 DDT가 건강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조사에 들어간 것.

 

염소계탄화수소인 DDT(정식 이름은 디클로로디페닐트리클로로에탄)은 천연에는 존재하지 않는 분자다. 곤충의 이온 채널을 교란해 신경계를 망가뜨려 강력한 살충효과를 지니지만 척추동물에는 독성이 적고 특히 사람에게는 더 그렇다. 살충제로는 바람직한 특성이다. 반면 생분해가 잘 안 돼 반감기가 길고(토양 환경에 따라 짧게는 22일에서 길게는 30년 까지) 지용성이라 동물의 몸(지방조직)에 축적되는 문제가 있다.

 

한편 염소계탄화수소와 함께 즐겨 쓰이던 유기인계 살충제 역시 조사의 대상이 됐다. 유기인계(organophosphates) 살충제는 원래 독일이 2차세계대전 중에 신경가스로 개발되던 분자로 ‘살충력도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면서 용도가 바뀐 것. 따라서 척추동물에 대한 독성은 염소계탄화수소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하다. 예를 들어 급성경구독성을 보면 DDT는 LD50이 250mg/kg인데 비해 유기인계 살충제인 TEPP는 2mg/kg이나 된다.

 

그럼에도 환경에 노출되면 며칠 내에 분해되기 때문에 축적이 되는 걱정은 훨씬 덜 하다. 일장일단이 있다는 말이다. 아무튼 당시 독성학자 대다수는 염소계탄화수소보다 유기인계 살충제를 더 위험하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실제로 유기인계 살충제에 노출되거나 음료로 잘못 알고 마셔 사망하는 사고가 잇달아 발생했다.

 

● 독성학자들 우려가 현실로

 

이런 와중에 1962년 레이첼 카슨이 주간지 ‘뉴요커’에 살충제의 폐해를 고발한 글을 3회에 걸쳐 연재하고 이를 바탕으로 이해 가을 ‘침묵의 봄’이라는 책을 냈다. 이듬해 CBS에서 동명의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여기에 출연한 카슨은 일약 스타가 됐고 책은 100만 권 넘게 팔렸다. 1년 사이 대중은 두 가지 용어에 익숙해졌는데, 하나는 생태학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DDT다.

 

카슨이 책에서 DDT를 집중적으로 거론한 건 맞지만 곳곳에서 유기인계 살충제의 위험성도 언급했다. 이런 상황에 깊은 인상을 받은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환경문제를 다룰 자문위원회를 구성했고 카슨 역시 1963년 6월 4일 상원 청문회에 출석해 증언하기도 했다. 여러 관계자들의 의견을 청취한 위원회는 잔류성 독성 살충제를 단계적으로 폐지할 것을 건의했다.

 

이런 와중에 1967년 환경보호기금(EDF)이 설립됐고 DDT를 퇴출하는 운동에 들어간다. EDF는 DDT를 퇴출하지 않는다며 미국 환경보호청(EPA)을 대상으로 소송에 들어갔고 EPA는 6개월에 거쳐 심사를 벌였지만 윌리엄 러켈스호스는 청장은 DDT가 인간의 건강과 야생생물에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다며 DDT의 등록 말소를 거부한다.

 

그러나 논쟁이 수그러들기는커녕 더 확산됐고 결국 EPA는 7개월에 거쳐 청문회를 진행했고 1972년 러켈스호스는 마침내 ‘공중 보건을 위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DDT를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EDF와 화학업계는 즉각 소송을 걸었는데 그 사유는 물론 달랐다. EDF는 예외조치를 둔 것에 대해서, 화학업계는 사용금지 차체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했다.

 

당시 독성학의 성립에 공헌한 과학자들은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는데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DDT를 퇴출시킬 경우 그보다 훨씬 해로운 유기인계 살충제가 빈자리를 채울 게 확실시됐기 때문이다. 러켈스호스도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런 결정은 궁극적으로 정치적인 판단”이라며 그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개탄했다.

 

아무튼 1972년 DDT 퇴출은 환경론자들에게는 역사적인 승리로 기억되고 있고 실제 DDT가 사라지면서 멸종위기에 몰렸던 대머리독수리의 개체수가 복원되는 등 바람직한 효과가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나 저자는 책에서 카슨이 살아있었다면(카슨은 1964년 사망했다) 이런 사태변화를 보고도 별로 반가워하지 않았을 거라고 쓰고 있다. 즉 카슨이 바랐던 건 유독한 살충제의 사용을 체계적으로 줄일 수 있는 시스템의 구축이었지 살충제의 종류만 바뀌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DDT가 퇴출된 뒤 대중의 살충제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지면서 DDT보다 훨씬 더 해로운 유기인계 살충제가 별다른 저항없이 급속히 빈자리를 메웠고 제초제 사용량도 꾸준히 증가했다. 그 결과 30년이 지난 1994년 미국의 살충제 사용량은 10억 파운드 이상으로 1964년의 5억 파운드의 두 배가 넘었고 그 가운데 절반 이상이 유기인계 살충제였다. 1990년대 미국에서는 살충제 관련 사고가 매년 1만 건 이상 보고됐다.

 

● 30년 만에 살충제 사용량 두 배로

 

또 하나의 아이러니는 DDT퇴출로 펄쩍 뛰었던 화학회사들이 결국에는 더 이익을 봤다는 것. DDT는 특허가 만료된 화합물이라 여러 곳(미국에서만 15개 회사)에서 만들어 가격경쟁을 했기 때문에 이문이 얼마 안 남았지만 유기인계 화합물(40여 종)은 대부분 특허가 있어 더 비싸게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DDT를 희생타 삼아 대중의 관심에서 한 발 벗어난 화학회사들은 유기인계 살충제를 팔면서 짭짤하게 수익을 올렸고 수십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농약중독으로 목숨을 잃거나 병을 얻었다. 결국 미국 정부는 1996년에야 유기인계 살충제의 심각성을 재인식하고 대대적인 조사에 들어갔고 2006년 대부분의 유기인계 살충제도 사용이 금지됐다.

 

3_1972년 DDT퇴출로 멸종위기에 몰린 흰머리독수리의 개체수가 다시 회복됐다. 이 결과는 DDT퇴출의 가장 극적인 효과로 거론되고 있다.  - 사이언스 제공
1972년 DDT퇴출로 멸종위기에 몰린 흰머리독수리의 개체수가 다시 회복됐다. 이 결과는 DDT퇴출의 가장 극적인 효과로 거론되고 있다.  - 사이언스 제공

‘침묵의 봄’이 상징하듯 DDT가 조류, 특히 미국을 상징하는 흰머리독수리 같은 맹금류에 치명적인 살충제이지만 유기인계 살충제도 만만치 않았다. 1997년 발표된 글에 따르면 미국에서 매년 새 6700만 마리가 살충제에 중독돼 죽는 걸로 추정됐는데 유기인계 살충제인 모노크로토포스가 특히 조류에 독성이 큰 걸로 나타났다. 또 추가적인 연구결과 유기인계 살충제라고 해서 다 분해가 빠른 것도 아니어서 인체에 남아 인지력을 떨어뜨리고 내분비교란물질로서 역할을 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저자는 ‘Banned’라는 책을 통해 카슨을 비판하거나 DDT를 옹호하려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카슨이 ‘침묵의 봄’을 통해 설득력있게 살충제의 폐해를 고발해 사람들에게 생태계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다만 ‘침묵의 봄’이 촉발한 환경운동이 카슨의 부재 속에서 DDT라는 특정 살충제를 퇴출시키는 걸 지상과제로 삼으며 전개되다보니 결과적으로는 문제의 본질을 놓쳤고 정치적인 승리는 거두었을지 몰라도 인류의 건강과 환경을 위해서는 오히려 더 해로운 결과를 낳게 했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필자는 저자의 입장에 100%로 공감할 수는 없지만 나름 타당한 면도 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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