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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여, 신화가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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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여, 신화가 되어라

2015.04.25 18:00

2015년 봄, ‘사도’라는 이름의 정체 모를 거대괴물이 지구에 나타난다. 이미 지구는 한 차례 멸망한 뒤 가까스로 재건한 상태인데, 이 괴물 때문에 또 멸망하게 생겼다. 인류는 사도를 물리치기 위해 인간형 거대로봇 에반게리온을 출격시킨다.

 

Kotobukiya(Kotobukiya.co.jp) 제공
Kotobukiya(Kotobukiya.co.jp) 제공

1995년 나온 일본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 이야기다. 일본과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를 뒤흔들었던 90년대 최고의 만화로, 여지껏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20년 전 만든 SF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놀라운 상상력과 최첨단 기술이 집약돼 있다. 지금 기술로 다시 본다면 어떨까. 만화의 배경이 됐던 올해 사도가 나타난다면, 우린 에반게리온(이하 에바)을 발진시킬 수 있을까.


● 부드러운 팔과 다리에 어울리는 갑옷은?


에바는 *인조인간이다. 움직임이며 생김새가 사람과 매우 비슷하다. 눈과 이, 갈비뼈, 척추, 피, 내장까지, 있을 건 다 있다. 그런데 겉으로 보기엔 일반 로봇처럼 보인다. 살을 둘러싸고 있는 티타늄강 장갑판 때문이다.

 

티타늄은 가볍고 강도가 좋아 산업·스포츠·군사용으로 널리 쓰인다. 하지만 금속은 금속이다. 사람처럼 주먹질, 발차기, 앞돌기, 뒤돌기를 하며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에바한테 입히려면 딱딱한 티타늄만 가지고는안 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지르코늄과 티타늄, 니켈을 섞은 액체금속을 피부에 얇게 바르면, 굳은 뒤에도 신축성이 있다. - 퍼듀대 제공
지르코늄과 티타늄, 니켈을 섞은 액체금속을 피부에 얇게 바르면, 굳은 뒤에도 신축성이 있다. - 퍼듀대 제공

마침 적당한 신소재가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액체 금속이다. 지르코늄, 티타늄, 니켈을 섞어서 만든 액체 금속은 프린터처럼 인쇄를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굳은 뒤에도 사람 피부처럼 신축성이 남아 있다.

 

미국 퍼듀대 기계공학과 레베카 크래이머 교수팀은 4월 8일 ‘사이언스 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액체금속을 이용하면 접거나 휘어도 깨지지 않는 유연한 로봇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딱 에바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제 3D프린터로 얇은 금속갑옷을 만들어 에바에게 입혀주자. 좋다, 출격 준비가 됐다.


* 인조인간
에바는 최초의 사도 ‘아담’을 복제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인간과 유전적으로도 가깝다(사도도 마찬가지). 이 부분은 과학의 영역을 뛰어 넘으므로 패스.


● 늘 배터리가 모자라


갑옷만 입혔다고 다가 아니다. 움직이려면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태권V처럼 자체발전을 하면 참 좋으련만, 에바는 귀찮게도 밖에서 전원을 공급해줘야 한다. 등허리에 전원공급선을 치렁치렁 달고 다닌다. 청소기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면 코드가 뽑히는데, 치고 받고 물어뜯고 싸우는 에바의 코드가 얌전히 붙어있다면 더 신기한 일이다.


여기서부터 문제다. 에바의 내장배터리는 7년 쓴 아이폰 3G보다 빨리 닳는다. 고작 5분 버티면 끝. 짧아도 너무 짧다. 배터리가 떨어져서 적에게 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배터리가 떨어져도 가끔 ‘폭주’해 움직일 때가 있긴 하다). 많이도 말고 내장배터리로 1시간만 움직일 수 있다면 전원 걱정 없이 싸울 수 있을 텐데. 현재 기술로 이런 배터리를 만들 수 없을까.


일단 전기가 얼마나 드는지부터 계산해보자. 작년에 기아자동차가 출시한 전기자동차 ‘쏘울EV(무게 1508kg)’가 적당한 모델이다. 에바는 최소 700t으로 추정되므로, 적게 잡아도 쏘울 464대에 해당하는 전기가 필요하다. 쏘울의 최대출력은 81.4kW니까 에바를 이 정도 수준으로 한 시간 동안 움직이려면 최소 36 메가와트시(MWh)가 필요하다. 이런 엄청난 전력을 낼 수 있는 배터리가 있을까.

 

중국 허베이성 장베이에 있는 세계 최대 배터리. 축구경기장만한 건물 한 채가 전부 배터리다. - 중국국가전망공사 제공
중국 허베이성 장베이에 있는 세계 최대 배터리. 축구경기장만한 건물 한 채가 전부 배터리다. - 중국국가전망공사 제공

하나 있다. 기네스북에 오른 ‘세상에서 가장 큰 배터리’가 딱 이 용량이다. 중국국가전망공사가 2011년 우리 돈 5400억 원을 들여 만든 36메가와트시 배터리다. 리튬이온전지와 바나듐 레독스 흐름전지를 조합해 만들었다.

 

중국 허베이성에서 지역주민 1만2000명에게 풍력발전기와 태양광발전기로 만든 전기를 공급하는 용도로 쓰지만, 지구를 지키기 위해 잠시만 빌리자. 이 배터리만 있으면 한 시간 동안 마음 놓고 에바를 움직일 수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사소한 문제가 남았다. 배터리 크기가 축구경기장만하다. 로봇보다 배터리가 몇 배 큰지라, 이걸 들고 전투에 나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배터리 경량화가 시급하다.


● 싱크로율을 높이자


내장배터리 크기를 줄일 때까진 일단 코드를 꼽고 다니자. 시급한 다른 문제가 있다. 중2병에 걸린 조종사를 훈련시키는 일? 아니다. 그것도 큰일이지만 조종사와 에바를 싱크(신경접속)시키는 일에 비하면 어렵지 않다. 에바는 생각으로 움직이는 병기다. 조종석에는 달랑 손잡이 하나뿐이다. 간단한 움직임 몇 가지를 빼면 대부분 ‘뇌-로봇 접속기술(BMI)’로 에바를 조종한다. 1995년에는 그저 상상이었지만, 2015년에는 실제 현실이 된 기술이다.

 

사지마비 환자가 생각만으로 로봇팔을 움직여 음료수를 마시는 모습. - 네이처 제공
사지마비 환자가 생각만으로 로봇팔을 움직여 음료수를 마시는 모습. - 네이처 제공

조종사와 에바를 싱크시키려면, 우선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침습형으로 할 것인가 비침습형으로 할 것인가. 침습형 BMI는 조종사의 뇌에 직접 센서를 심어 신경세포의 전기신호를 모으는 방법이다. 뇌수술이 필요해 부담스럽지만 인간의 의지를 정확히 로봇에 전달할 수 있다(에바 용어로는 ‘싱크로율이 높다’).

 

비침습형 BMI는 수술을 하지 않고 두피에 센서를 붙여 전기신호를 측정하는 방법이다. 전기신호가 약해 인식률이 떨어지지만 사용이 간편하다.


두 방법을 모두 연구해본 김성필 유니스트 디자인및인간공학부 교수는 “둘 사이에 굉장한 수준 차이가 난다”고 말한다. 비침습형을 이용한 로봇이 동서남북 방향 정도밖에 못 움직이는 반면, 침습형은 임의의 각도와 속도로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

 

침습형이 훨씬 자유도가 높다. 적과 싸워야 하는 에바는 선택의 여지없이 무조건 침습형이다. 헌데 14살짜리 아이들의 뇌를 열고 센서를 부착하는 일은 못내 마음에 걸린다. 아무리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라지만…, 좀 더 안전한 방법은 없을까.


● LCL 속에서 숨을 쉬다


액체 퍼플루오로데칼린 속에서 쥐가 폐호흡을 하는 모습. - 위키미디어 제공
액체 퍼플루오로데칼린 속에서 쥐가 폐호흡을 하는 모습. - 위키미디어 제공

안노 히데아키(신세기 에반게리온 감독)는 20년 전에 이미 세련된 방법을 찾았다. LCL(Link Connect Liquid)이라는 가상의 액체를 사용해서 말이다. 조종사는 뇌에 센서를 심는 대신, 조종석에 가득 찬 액체를 들이마셔 에바와 신경접속한다(침습형 BMI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LCL은 조종사의 폐에 직접 산소를 공급한다. 이건 실제 모델이 된 물질이 있다. 퍼플루오로데칼린(C10F18)이라는 액체다. 불활성 물질인 데다 100mL에 산소를 최대 49mL까지 녹일 수 있어, 사람이 폐호흡을 하는 데 지장이 없다. 물고기처럼 액체 속에서 자유롭게 숨을 쉴 수 있다.

 

몸의 다른 부위로는 거의 흡수되지 않고, 폐에서 빼냈을 때 휘발성도 강해 금방 사라진다. 갑자기 호흡을 멈춘 환자에게 응급처치용으로 쓰려고 오래 전부터 연구돼 왔다.


현재 퍼플루오로데칼린을 동물 폐에 넣어 호흡시키는 데 성공한 단계다. 혈액에 직접 주입해 산소를 공급하는 실험은 더 앞서있다. 2013년 일본 고베대에서 환자 186명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했는데, 결과가 성공적이었다. 사람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인 셈이다. 재료가 1L에 800만 원 정도로 비싼 편이지만, 네르프(NERV, 에바를 통제하는 UN산하 특수기구)처럼 돈 많은 조직이라면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만화에서 가장 현실성 있는 부분이다.


● 양전자포 쏘려면 3×1010년 기다려야


다른 만화 주인공과 달리 에바는 무기가 별로 없다. 일단 몸 자체가 강력한 무기이기 때문이다. 손으로 조르거나 발로 차서 사도를 죽일 때도 있다(이빨로 뜯어 먹을 때도 있다). 어차피 사도에게는 AT필드라는 특수한 방어막이 있어서 무기가 있어도 효과를 보기 힘들다. 문구용 칼처럼 생긴 휴대용 무기가 유일하게 쓸모 있다. 그럼 굳이 에바를 위해 무기를 마련할 필요는 없는 걸까.


꼭 그런 건 아니다. 가끔 무기다운 무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 대표적인 게 양전자포다. 멀리 떨어진 사도를 한 방에 보낼 때 요긴하다. 양전자는 전자와 모든 성질이 같지만 전하가 반대인 입자다. 이런 입자를 반물질이라 하는데, 반물질은 물질과 만나 소멸되면(쌍소멸) 엄청난 에너지를 방출한다. 질량이 온전히 에너지로 바뀌기 때문이다. 반물질 0.5g과 물질 0.5g이 만나면 핵폭탄 하나에 맞먹는 에너지가 나온다.


현재 기술로 양전자 무기를 만들 수 있을까. 양전자 자체를 얻는 건 어렵지 않다. 원자로나 가속기에서 얻은 방사성 동위원소를 놔두면 양성자가 중성자로 변하면서 양전자가 튀어나온다.

 

문제는 보관이다. 양전자는 1마이크로초(100만분의 1초)도 안 돼서 전자와 반응해 감마선을 내며 사라진다(쌍소멸). 전자와 만나지 않게 진공상태에서 자기장, 전기장을 걸어 실린더 안에 보관할 순있다(페닝 트랩).

 

하지만 통 안에 저장할 수 있는 양전자 개수는 제한돼 있다. 같은 전하를 띤 입자끼리 서로 밀치기 때문이다. 척력을 없애려면 양전자를 반양성자와 합쳐 반수소 원자로 만들어 놓으면 된다. 이 경우 전자기장 감옥도 사라져버리기 때문에, 반수소를 보관하려면 절대 0도에 가까운 극저온을 유지해야한다. 현재 기술론 최대 1000초(약 17분)까지 보관할 수 있다.


이렇게 힘들게 굳이 반물질을 만들어야 하나 푸념이 나올 만하지만, 지구를 지킬 수만 있다면야. 헌데 진짜 문제는 별로 쓸모가 없다는 것. 핵폭탄 하나에 맞먹는 에너지를 만들려면 양전자와 반양성자를 각각 3×1023개씩 모아야 한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반양성자감속기(AD)를 이용하면 1년에 반양성자 10조(1013)개를 만들 수 있는데, 이 속도로 모으면 3×1010년이 걸린다. CERN에서 추산한 비용은 7경원(62조5000억 달러). 그냥 핵폭탄을 쓰면 안 될까.

 

Kotobukiya(Kotobukiya.co.jp) 제공
Kotobukiya(Kotobukiya.co.jp) 제공

● AT필드 무너지고 하나가 되는 순간


에바를 발진시키기 전에 마지막으로 챙길 게 있다. 에바를 가 장 에바답게 만들어주는 것, 바로 AT필드(Absolute Terror Field)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어떤 공격도 막는 강력한 방어막. 만화에 비해 한참 못 미치긴 하지만, 올해 정말 이런 방어막이 개발됐다.


3월 17일 미국 보잉사는 ‘전자기장아크를 통한 충격파완화방법 및 시스템’ 특허를 발표했다. 폭발감지센서가 포탄이 터진 뒤대기를 통해 전달되는 충격파를 인식해 플라스마 방어막을 만드는 기술이다. 충격파가 진행하는 경로에 파의 일부를 반사·굴절·흡수하는 새로운 매질을 만들어 에너지밀도를 낮추는 방식. AT필드처럼 포탄 자체를 막지는 못하지만, 포탄이 떨어진 곳 주변의 사람과 장비가 받을 충격을 줄여줄 수는 있다.


이제 됐다. 에바에게 필요한 건 얼추 갖췄다. 2015년을 맞을 준비가 된 것이다. 20년 사이 상상은 현실이 됐고, 14살 주인공 신지에 열광하던 소년은 어른이 됐다. “이미지가, 상상하는 힘이, 자신들의 미래를, 시간의 흐름을 만들어 가니까.”

 

 

※ 더 많은 과학기사를 2015년 5월호 과학동아에서 만나보세요. <과학동아 신청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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