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바로가기본문바로가기

동아사이언스

빛 파장이 일주리듬 조율한다

통합검색

빛 파장이 일주리듬 조율한다

2015.04.27 18:26

“모네, 당신은최근작 ‘노적가리’로 저를 너무도 놀라게 하는군요. 저는 당신의 그림들을 프리즘으로 해서 벌판을 바라보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니, 그림들이 절 그렇게 만들고 있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입니다.”
 
- 스테판 말라르메가 클로드 모네에게 보낸 편지에서

 

 

프랑스 화가 클로드 모네의 ‘노적가리’ 연작 가운데 두 작품. 왼쪽은 여름 맑은 날이고 오른쪽은 가을 해질녘이다. - 위키피디아 제공
프랑스 화가 클로드 모네의 ‘노적가리’ 연작 가운데 두 작품. 왼쪽은 여름 맑은 날이고 오른쪽은 가을 해질녘이다. - 위키피디아 제공

 

눈(eyes)은 창조론자들이 진화론을 공격할 때 단골메뉴였다. 눈처럼 정교한 구조가 진화하려면 오랜 기간 기능이 없는 과도기 형태를 거쳐야하는데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는 것. 물론 진화론자들도 시뮬레이션까지 동원해 눈의 진화가 가능하다고 반박했다. 영국의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눈먼 시계공’은 이 싸움에서 진화론자들의 승리를 상징하는 책이다.

 

눈은 주위 사물의 형태를 뇌가 재구성할 수 있게 실제와 기하학적 상관관계, 즉 위상 정보를 보존한 빛(광자)을 감각해 전달하는 기관이다. 즉 여기에서 빛은 물체의 형태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매개체인 셈이다. 이런 수단이 꼭 빛일 필요는 없다. 박쥐나 기름쏙독새는 소리(음파) 정보를 재구성해 주위 사물을 ‘본다’.

 

진화의 관점에서 빛이 형태의 정보를 주는 매개체가 된 건 이차적인 일이다. 빛 자체의 유무를 판단하는 감각시스템이 먼저 생겨났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멜라놉신 같은 빛수용체는 개구리 피부세포에서 처음 발견됐다. 생명체가 빛의 존재유무를 안다는 건 지구의 자전, 즉 24시간 주기에 따라 살아갈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 빛의 유무가 일주리듬을 갖게 하지만…

 

많은 동물들이 빛으로 형태정보를 얻은 기관을 진화시키면서 빛의 존재유무를 파악하는 기능까지 통합했지만 그럼에도 둘은 여전히 별개의 영역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2000년 무렵 밝혀져 놀라움을 안겨줬다. 즉 생쥐나 사람의 망막에는 ‘사물을 보기 위해’ 정보를 수집해 전달하는 빛수용체를 지닌 막대세포와 원뿔세포와는 별개로 멜라놉신이라는 빛수용체가 있는 감광신경절세포가 존재한다. 이 세포는 빛의 존재유무에 대한 정보를 후두엽의 시각처리영역이 아닌 시각교차상핵(SCN)의 일주리듬조절영역으로 보내 우리 몸이 지구의 자전에 맞춰 리듬을 유지하게 한다.

 

눈에서 막대세포/원뿔세포와 감광신경절세포가 분업을 한다는 사실이 2002년 밝혀진 뒤 이어지는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흥미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즉 막대세포나 원뿔세포가 빛을 감지해 내보낸 정보 가운데 일부가 감광신경절세포로도 들어갔던 것. 즉 감광신경절세포는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멜라놉신이 감지한 빛 정보 뿐 아니라 막대세포나 원뿔세포가 감지한 빛 정보까지도 시각교차상핵으로 보내 일주리듬을 세팅하는 자료로 쓰이게 한다는 말이다.

 

 

2_사람에서 이미지를 보는 빛수용체는 네 가지가 있는데 각각 파장에 따른 흡수패턴이 다르다. 형태를 보는 막대세포에서 발현하는 로돕신(점선)은 최대 흡수 파장이 498나노미터이고 색을 보는 원뿔세포에서 발현하는 아이오돕신은 세 종류가 있는데 각각 최대 흡수 파장이 420, 534, 564나노미터다. 최근 발표된 동물실험 결과를 보면 파란색에 민감한 빛수용체가 있는 원뿔세포가 일주리듬에 관여할 가능성이 있다.  - 위키피디아 제공
사람에서 이미지를 보는 빛수용체는 네 가지가 있는데 각각 파장에 따른 흡수패턴이 다르다. 형태를 보는 막대세포에서 발현하는 로돕신(점선)은 최대 흡수 파장이 498나노미터이고 색을 보는 원뿔세포에서 발현하는 아이오돕신은 세 종류가 있는데 각각 최대 흡수 파장이 420, 534, 564나노미터다. 최근 발표된 동물실험 결과를 보면 파란색에 민감한 빛수용체가 있는 원뿔세포가 일주리듬에 관여할 가능성이 있다.  - 위키피디아 제공

 

동물은 왜 일주리듬을 정하는데 이처럼 중복된 정보를 필요로 할까 고민하던 과학자들은 다양한 환경을 만들어 실험을 했고 그 결과 흥미로운 결과를 얻었다. 즉 빛수용체들은 저마다 감도가 다른데 빛이 미미할 때는 가장 민감한 막대세포의 로돕신이 반응해 일주리듬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 빛이 조금 더 강해지면 원뿔세포의 아이오돕신이 주로 반응한다. 빛이 충분히 많아져야 멜라놉신이 임무를 교대한다.

 

영국 맨체스터대의 생물학자들은 이 과정에 원뿔세포까지 관여하는 건 지나친 중복이 아닌가하는 의문을 제기했다. 즉 멜라놉신이 둔감해 빛이 미약할 때가 걱정이라면 막대세포의 로돕신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원뿔세포는 형태에 대한 정보보다는 색에 대한 정보를 주는 게 주된 존재이유다. 즉 우리는 원뿔세포 덕분에 세상을 컬러로 지각하는 것이다.

 

포유류 대부분은 2색형 색각, 두 가지 원뿔세포가 있다. 즉 짧은 파장인 파란색에 민감한 세포와 긴 파장인 노란색에 민감한 세포다. 따라서 어떤 대상에서 눈으로 들어오는 빛의 파장 분포에 따라 그 대상의 색깔이 파랑에서 노랑사이 어딘가로 정해진다. 예외적으로 사람을 포함한 일부 영장류에서 노란색에 민감한 빛수용체의 유전자 중복과 돌연변이가 일어나 녹색에 민감한 빛수용체와 빨간색에 민감한 빛수용체로 분화했다. 그 결과 우리는 3색형 색각을 지니게 됐고 세상은 훨씬 더 다채로워졌다.

 

● 여명일 때 짧은 파장 비율 상대적으로 높아

 

그렇다면 원뿔세포가 일주리듬을 결정할 때 관여한다면 빛의 유무에 대한 정보뿐 아니라 빛의 파장에 대한 정보도 이 과정에서 중요하다는 뜻이 아닐까. 아직 해가 뜨기 전인 여명에서 해가 뜨고 질 때까지인 낮, 그리고 일몰 이후 완전히 깜깜해지기 전인 땅거미까지를 보면 빛의 세기(양)가 변화할 뿐 아니라 빛의 파장 분포도 바뀐다. 즉 여명일 때와 한낮에는 파란빛과 노란빛의 상대적인 비율이 다르다는 말이다.

 

해가 뜨기 전에도 주변 형태를 파악할 정도로 빛이 존재하는 상태를 여명이라고 한다. 이 기간에는 낮에 비해 짧은 파장의 빛(파란 계열)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 위키피디아 제공

해가 뜨기 전에도 주변 형태를 파악할 정도로 빛이 존재하는 상태를 여명이라고 한다. 이 기간에는 낮에 비해 짧은 파장의 빛(파란 계열)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 위키피디아 제공

 

대표적인 인상주의 화가로 집요하게 빛의 본질을 탐구한 클로드 모네는 시간대나 날씨, 계절에 따라 동일한 대상도 전혀 다른 색으로 보인다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스럽게 인식하고 1890년 ‘노적가리’ 연작을 발표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하늘은 파랗고 노적가리는 누렇다’는 도식적인 사고를 반성하는 계기가 됐을 뿐 아니라 특정 시점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남에도 대상이 하나라고 인식하는 데 전혀 거부감이 없는 지각체계의 놀라운 융통성을 발견하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2색형 색각인 생쥐를 대상으로 빛의 파장분포가 일주리듬 형성에 정말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봤다. 즉 ‘자연모방조건’에서는 어두웠다 밝아질 때, 즉 밤에서 낮으로 넘어갈 때 여명과 한낮, 땅거미의 효과를 재현했다. 여명 즉 해가 뜨기 전에는 태양에서 직접 오는 빛은 없고 주변에서 반사된 빛인데 상대적으로 짧은 파장, 즉 파란색의 비율이 높다. 반면 일단 해가 뜨면 가시광선의 중간인 노란색 영역의 비율이 크게 늘어난다. 한편 비교군인 빛의 유무 조건은 동일한 파장 조성의 빛이 비춘다. 지금까지 해온 일주리듬 실험 조건이다.

 

시각교차상핵의 뉴런 활성을 측정한 결과 자연모방조건의 여명일 때 짧은 파장에 민감한 원뿔세포의 정보를 받은 뉴런이 긴 파장에 민감한 원뿔세포의 정보를 받은 뉴런보다 더 많이 활성화됐다. 반면 비교군에서는 이런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시각교차상핵에 전달된 이 미묘한 차이가 일주리듬 형성에도 영향을 미칠까.

 

두 그룹 모두 낮과 밤을 재현한 빛의 정보에 따라 일주리듬을 유지하고 있어 얼핏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면밀히 조사하자 다른 점이 드러났다. 예를 들어 체온은 늘 똑같은데 아니라 일주리듬에 따라 오르내리는데 체온이 가장 높은 시점을 측정하자 자연모방조건일 때가 비교군보다 평균 31분 늦었다. 또 시각교차상핵의 뉴런 발화의 전체적인 패턴을 봐도 두 집단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즉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시간대가 평균 1.5시간이나 달랐던 것. 이런 차이가 생리적으로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밝혀낸다면 원뿔세포가 일주리듬에 기여하는 역할을 좀 더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연구는 시각에서 대상의 형태에 더해 색상의 정보까지 알기 위해 진화했다고 생각한 원뿔세포의 원래 목적이 일주리듬이라는 원초적인 생리기능을 정교하게 조정하는 것일지도 모름을 시사한다. 세상을 다채롭게 만든 색의 등장은 원뿔세포 진화의 부수적인 효과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연구결과를 담은 논문은 4월 17일자 학술지 ‘플로스 생물학’에 실렸다.

 


 

이 기사가 괜찮으셨나요?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댓글 0

14 + 8 = 새로고침
###
    과학기술과 관련된 분야에서 소개할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 고발 소재 등이 있으면 주저하지 마시고, 알려주세요. 제보하기

    관련 태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