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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탈을 쓴 손금쟁이…, 아니 지문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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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탈을 쓴 손금쟁이…, 아니 지문쟁이?

2015.05.05 18:00

죽을 때까지 뭘 해 먹고 살 것인가? 제가 항상 고민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이 나이 먹은 저도 그런데 어린 학생들은 더 하겠죠. 내가 무슨 일을 좋아하는지, 무슨 일이 적성에 맞는지 항상 궁금할 겁니다.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있는 법. 자연히 남의 적성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일로 먹고 사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아마 학생이라면 졸업하기 전에 어떤 방식으로든 적성 검사를 해볼 겁니다. 그리고 돈이 모이는 곳에는 사기꾼도 꼬이게 마련이지요.

 

istockphoto 제공
istockphoto 제공

 

 

● 지문에 적성이 새겨져 있다?
 

이번 화에서는 얼마 전에 들은 황당한 적성검사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바로 ‘지문’을 이용한 적성검사입니다. 이야기를 듣고 검색을 해 보니 꽤 오래 전부터 성행하고 있던 것이더군요. 책도 나와 있고요.
 

어떤 식으로 적성을 파악한다는 건지 관련 기관 홈페이지를 둘러봤습니다. 지문이란 무엇인가, 지문의 종류, 지문학의 역사, 지문과 유전, 지문의 민족 차이 등의 제목을 달고 그럴 듯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외국 과학자들의 이름도 여기저기 나오고요. 아무생각 없이 봤다가는 정말 과학적인 건가 싶습니다.
 

“지문이 사람마다 다르고 평생 바뀌지 않아 개인 식별에 이용된다”, “법의학 분야에서도 개인을 식별하는 데 이용된다”, “유전병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기도 하므로 진단에 쓰인다” 등 여러 가지 설명을 늘어놓는데, 틀린 말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다운증후군이나 터너증후군처럼 염색체 이상으로 생기는 유전성 질환은 비정상적인 지문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하워드 가드너의 다중지능이론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능을 하나의 능력으로 보는 게 아니라 음악, 논리, 운동 등 여러 가지 부분으로 나누어서 보는 거지요. 지능의 정의야 논쟁이 있을 수 있지만, 엄연히 실제로 있는 이론입니다.

 

지문 적성검사 기관 홈페이지에서 설명하는 건 이 정도입니다. 여러 곳을 찾아가 봤지만 비슷합니다. 자, 한 가지가 빠져 있는 걸 아시겠죠? 아주 중요한 한 가지. 바로 지문과 적성의 연관성 말입니다. 발표연도와 연구자 이름까지 명시하면서 지문에 대한 연구를 늘어놓고 있지만, 정작 지문과 적성의 관계에 대한 연구는 언급조차 없습니다.
 

istockphoto 제공
istockphoto 제공

 

● 근거 없는 원리
 

제가 파악한 이들의 논리를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지문은 유전자의 영향을 받으며 태아 발달 과정에서 환경의 영향도 받으므로 일란성 쌍둥이도 서로 다르다. 그러니까 지문을 보면 그 사람의 재능과 적성을 알 수 있다. 끝.”
 

참 쉽죠? 제대로 설명하려면 ‘그러니까’ 부분에 한참 더 근거를 달아야 합니다.
 

결국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 빠진 겁니다. 지문이 왜 적성을 알려주는지에 대해서는 과학적인 연구 결과를 근거로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문에 대한 몇 가지 ‘옳은’ 사실이나 다중지능이론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은 건 눈속임입니다. 마치 자기들 주장이 근거가 있는 것인 양 포장해 놓은 거지요. 이런 것에 속으면 안 됩니다.
 

게다가 지문이 형성되는 과정은 아직 확실히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지문이 어떻게 생기는지도 모르는데, 결과만 보고 사람의 적성을 알 수 있을까요? 지문의 곡선 형태에 따라서 안정형이니 감성형이니 창의형이니 나눠 놓았더군요. 안정형은 공무원이 좋고, 창의형은 작가나 영화감독 같은 직업이 좋고, 그런 식입니다.
 
적성을 판단해준다는 것도 참 애매합니다. 블로그에서 몇몇 후기를 읽을 수 있는데, 혈액형별 성격 같은 것과 다를 바가 없어 보입니다. 인격의 유형이나 성격의 장단점을 몇 줄의 글로 설명해주는데, 이런 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입니다.

 

하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OOO님은 상냥한 사람에게는 다정다감하나 권위적이거나 강제성을 띠는 사람에게는 반발하는 경향이 있다.” 누가 들어도 고개를 끄덕거릴 말 아닙니까? 중요한 건 정도의 차이인데, 그런 정보는 없습니다.
 

Zephyris(wikimedia commons) 제공
Zephyris(wikimedia commons) 제공

 

● 무책임한 상담은 나빠요!
 

지문 적성검사는 꽤 구석구석에 퍼져 있는 듯합니다. 어린이집이나 취업박람회에서 이 검사를 했다는 후기를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태어난 지 얼마안 된 아기를 대상으로도 하더군요. 이쯤 되면 문제가 좀 큰 것 같습니다. 잡지의 심심풀이 코너에서 한 번 해보고 웃고 넘어갈 수준의 검사를 10여 만 원씩 내고 받는다면 낭비 아닙니까. 그 돈이면 차라리 새로운 경험 하나를 해 보겠네요.
 

만약 어린 학생이 근거도 없는 지문 적성검사 결과를 믿고 그쪽으로 진로를 잡아서 노력한다면 어떡하나요. 운이 좋아서 잘 풀리면 다행이겠지만, 적성에 안 맞는 공부나 일을 억지로 하게 된다면 얼마나 괴로울까요.
 

적성을 찾는다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좋아하는 일과 잘 하는 일이 달라서 갈등을 겪기도 하지요. 나이가 든다고 해서 다 알게 되는 것도 아니고요. 저도 여전히 미래를 고민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어려운 고민을 하는 사람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무책임한 상담으로 돈벌이를 하는 건 나쁜 짓입니다.

 

 

※ 동아사이언스에서는 고호관 기자의 ‘완전 까칠한 호관씨’를 매주 수요일 연재합니다. 2013-2014년 과학동아에 연재되었던 코너로 주위에서 접하는 각종 속설, 소문 등에 대해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지 까칠한 시선으로 따져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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