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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만해 보여?” 양자역학의 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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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6월 30일 18:00 프린트하기

얼마 전 퇴근하던 길에 간판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양자치료기’라고 쓰여 있는 간판이었죠. 호기심이 일었지만, 무서워서 들어가 보지는 못했습니다. 모종의 의료기기를 판매하는 업체로 보였습니다. 그러자 예전에 본 광고가 하나 떠올랐습니다. 나름 인지도가 높은 배우인 길용우 씨가 아이언맨 슈트 같은 것을 입고 로켓에 매달려 하늘을 날아가는 광고였습니다.
 
그 모습만으로도 재미있는데, 심지어 광고하는 대상이 무려 ‘퀀텀 에너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길 씨가 이런 대사를 읊습니다. “퀀텀 에너지, 정말 따뜻합니다.” 광고주였던 회사 홈페이지를 찾아갔더니 퀀텀 에너지를 방출하는 기능성 물질을 만든다고 합니다. 양자물리학 원리를 이용한다는데, 저로서는 읽어봐도 원리가 뭔지 퀀텀 에너지가 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네이처 물리학 제공
네이처 물리학 제공

● 양자를 멋대로 쓰지 마세요
 
이번에 할 이야기는 양자역학의 오용에 대한 겁니다. 양자역학은 사이비과학에 참 많이 쓰입니다. 이론이 신비하기도 하고,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도 별로 없으니 속여 넘기기도 쉽지요. 게다가 영어로 ‘퀀텀’이라고 쓰면 괜히 멋까지 있어 보이잖아요. 얼마나 좋습니까.

 

양자역학을 접목시켰다는 주장은 특히 대체의학 분야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양자’와 ‘의학’으로 검색해 보니 다양한 문서가 나오더군요. 어떤 주장을 하는지 읽어 봤습니다.

 

이름에 혹할 수는 있지만, 자세히 보면 그저 그럴 듯하게 끼워 맞췄을 뿐인 문구가 풍년이었습니다. 인터넷 여기저기에 단편적인 글이 흩어져 있으니 이제부터는 양자의학을 선전하는 한 홈페이지의 설명을 위주로 따져보겠습니다.
 
“양자의학에서는 사람은 몸과 마음의 이중구조로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이렇게 시작합니다. 마음이 무엇인지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사람의 몸과 별도로 마음이 존재한다는 증거는 아직 없습니다. 여기서 마음을 영혼으로 바꿔도 무방합니다. ‘영혼이 있다’는 주장은 증거가 없다고 제가 여러 차례 했습니다.
 
“마음은 몸의 크기만 하고 그것은 몸의 공간과 중첩되면서 위치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마음과 몸이 중첩된다고 하니 왠지 양자 중첩에서 따온 것인지 의심스럽습니다. 양자 중첩이 양자역학에서 중요한 개념이긴 합니다. 전자 같은 양자는 이론적으로 가능한 모든 상태에 놓여 있고, 이를 관측하면 그 중 하나의 상태로 수렴한다는 거지요. 몸과 마음은 전혀 상관없는 얘깁니다. 혹시 양자역학의 분위기를 풍기기 위해 일부러 중첩이라는 단어를 썼는지 모르겠군요.
 

과학동아 (일러스트 권오한) 제공
과학동아 (일러스트 권오한) 제공

● 마음도 이중성이 있다?
 
어쨌든 양자의학에서는 마음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인터넷에서 이 홈페이지의 주인이 쓴 글을 더 찾아 읽어봤습니다.
 
“관찰자 효과에 대한 많은 물리학자들의 해석은 관찰하는 순간 과학자의 마음이 마치 에너지처럼 전파되어 전자에 가서 작용함으로써 입자 혹은 파동을 만드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중슬릿 실험에서 전자가 파동처럼 행동하다가 어떤 구멍을 통과했는지 관찰하는 순간 입자처럼 행동하는 현상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런데 이걸 과학자의 마음이 전자에 작용했다고 설명하네요? 관찰이라는 행위가 영향을 끼친 건 맞지만, 마음과는 무관합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전혀 없는 카메라로 관찰해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나거든요. 카메라에도 마음이 있다고 주장할 건가요?
 
이야기는 갈수록 판타지에 가까워집니다. 양자의학에서 마음은 양자와 마찬가지로 입자와 파동의 성질을 동시에 갖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마음이 파동으로 변하면 몸 밖으로 나가 다른 사람이나 물질에 영향을 끼친다고 하네요. 마음이 질병을 일으킬 수도 있고 치유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혹시 환자의 건강한 모습과 아픈 모습이 중첩돼 있을 때 의사의 마음이 환자를 건강한 모습으로 수렴하게 만들기라도 한 건가요?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요.
 

위키미디어 제공
위키미디어 제공

● 양자역학은 동네북
 
주장하는 바를 살펴보면 결국 양자역학의 개념을 피상적으로, 그리고 상당 부분 틀린 상태로 가져다 쓴 겁니다. 양자의학이 현대의학과 다른 점이라고 ‘통합주의 의학’, ‘4차원적 의학’, ‘환자 중심 의학’, ‘마음을 중시하는 유기체 의학’ 등을 내세우고 있는데, 사실 여타 대체의학에서도 다들 하는 소립니다. 양자역학과 딱히 관련도 없고요.
 
어떻게 봐도 양자역학은 겉모습을 그럴 듯하게 만들기 위한 포장지일 뿐입니다. 언젠가 우리 몸의 작동 원리를 양자 수준에서 파악할 수 있다면, 양자역학이 의학에 쓰일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소위 양자의학이라는 것은 의학계에서도 물리학계에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사이비이론일 뿐입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양자 혹은 퀀텀이라는 단어는 있어 보이기 위해서 흔히 가져다 쓰는 마케팅 용어가 됐습니다. 저희 동네에 있는 ‘양자 치료기’ 업체도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큽니다. 구글로 Quantum Medicine을 검색해 보면 외국에서도 사이비과학으로 분류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앞으로 의료와 관련해서 양자나 퀀텀이라는 단어를 보면 조심하는 게 좋습니다. 양자역학이 고생이 많네요.

 

 

※ 고호관 기자의 ‘완전 까칠한 호관씨’는 이번 편을 마지막으로 마무리됩니다. 그동안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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