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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식 칼럼]한국 교육의 미스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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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식 칼럼]한국 교육의 미스터리들

2013.05.22 10:01


[동아일보] 낙제생이 3분의1인 중학교 학력… ‘공부로 고통 받는 나라’ 맞나
대치동 기준 아닌 전체를 보는 교육정책 필요
‘공부 적게 시키겠다’는 새 정부, 정확한 현실부터 파악해야

한국인은 전통적으로 높은 교육열을 갖고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해군의 일원으로 강화도를 공격한 앙리 쥐베르의 기록에도 우리 교육과 관련된 목격담이 나와 있다. 그는 ‘강화도에는 가난해 보이는 집에도 책을 가득 쌓아 놓고 있어 우리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고 적고 있다.

이런 상식에 의문을 갖게 만드는 것이 있다. 1945년 광복 직후 한국의 문맹률 통계다. 당시 문맹률은 77.8%로 기록되어 있다. 교육열로 무장한 나라에서 글을 읽을 줄도 모르는 문맹 인구가 이처럼 많다는 것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 이 수치는 다소 과장되어 있는 듯하다. 그러나 광복 직후 대대적인 문맹 퇴치 운동이 벌어지고, 한글 보급을 위해 한글날을 공휴일로 제정한 것은 당시 문맹 인구가 심각한 수준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역사적으로 한편에서는 교육열이 어느 나라보다 뜨겁고, 다른 한편에서는 문맹자가 많은 모순적인 현상이 나타났던 이유는 무엇일까. 조선시대 이후 양반 계층을 중심으로 교육열이 높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나머지 계층에서는 그렇지 않았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1946년 53.4%에 불과하던 초등학교 취학률은 의무교육 도입으로 1958년이 되면 95.2%에 이르게 된다. 문맹률도 1966년 8.9%, 1970년 7%로 급속히 줄어들었다. 우리의 교육열이 뿌리 깊은 것이라는 인식은 ‘절반의 진실’에 불과하다.

한국 교육에서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 또 하나의 상식이 있다. 학생들이 온종일 공부에 시달리며 신음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이런 현실을 의식한 듯 ‘행복한 교육’을 강조했다. 일부 단체도 ‘좌절과 절망의 늪에 빠진 학생’ ‘시장주의와 경쟁주의에 내몰린 학교’라고 목청을 높인다. 한국의 청소년들은 세계에서 가장 불행하고 고통스럽고 슬픈 학생으로 자리매김되어 있다.

하지만 최근 통계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든다. 정부 차원에서 각종 학교 정보를 공개하는 ‘학교 알리미’ 사이트라는 것이 있다. 여기에 나와 있는 서울시 중학생들의 성적을 분석한 결과가 공개됐다. 내용은 충격적이다. 과목별로 A부터 E까지 5개 등급 가운데 하나를 주도록 되어 있는데 가장 낮은 E등급을 받은 학생들이 전교생의 3분의 1을 넘는 학교가 수두룩했다. E등급은 100점 만점에 60점 미만을 맞은 학생에게 주어진다. 옛날로 치면 낙제 점수다.

이런 학생들이 3분의 1을 넘는다는 것은 학력 저하가 심각하다는 뜻이다. 영어 과목에서는 조사대상 학교 가운데 36.9%, 수학은 52%, 과학은 52.8%가 이런 학교들이었다. 시험을 너무 어렵게 낸 탓도 아니라고 교사들은 말한다. 가장 큰 의문은 우리 학생들이 그토록 공부를 많이 한다면 왜 이 수준밖에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이 통계를 보면 우리 교육이 경쟁과 성적 지상주의에 매몰되어 있다는 지적은 실감이 나지 않는다.

박근혜정부는 학생들에게 공부를 적게 시키는 방향으로 교육정책을 세워놓고 있다. 앞으로 교육현장에는 혁명에 가까운 변화가 기다리고 있다. 선행 학습을 금지하고, 학교 시험도 교과서 안에서만 출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학력 측정을 하기 위한 전국 학업성취도 평가에서도 초등학생들을 제외했다. 중학생들에게는 진로 탐색을 위해 느슨하게 한 학기를 보내도록 하는 자유학기제를 실시할 방침이다. 한마디로 ‘모두 똑같이 적게 공부하라’는 주문이다. 이런 결정의 배경에는 우리 사회가 청소년들에게 너무 많은 학업을 강요하고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국내에서 교육에 관한 논의는 서울 대치동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대치동의 과열 사례들이 전국적인 현상인 것처럼 사람들 입에 오른다. 여론 형성도 교육열이 강한 사람들이 주도한다. 정부의 교육정책도 여기에 맞춰 이뤄지기 십상이다. 의욕이 넘치는 새 정권일수록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은 실제보다 부풀려져 있을 가능성이 있다.

공부를 최대한 조금만 하도록 하자는 박근혜정부의 방향 자체도 섣부른 것이지만 만약 그런 쪽으로 갈 때 누가 가장 피해를 보느냐를 살펴보면 허구성이 바로 드러난다. 부유층 자녀들은 정부가 공부를 적게 시키더라도 사교육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교육 여건이 떨어지고 학교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저소득층 자녀들은 매우 힘든 처지에 놓일 것이다. 오히려 정부는 저소득층 자녀에 대해서는 공부를 조금만 하라고 권유할 게 아니라, 입신출세를 위해 더 많이 하도록 대책을 세워줘야 옳다.

박근혜정부가 내세우는 ‘꿈과 끼를 키우는 교육’은 모호하고 추상적이다. 학교가 적당히 해도 그만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잘못되면 국가의 근간을 흔들게 될 것이다. 정부는 실행에 앞서 일부가 아닌 전체를 보면서 정확한 현실 파악부터 먼저 해야 한다.

홍찬식 수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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