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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소 고정, 콩과식물만의 능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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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소 고정, 콩과식물만의 능력인가?

2015.07.13 18:00

공부를 하다보면 마음속으로는 왠지 수긍이 가지 않지만 사실이 그렇다니까 받아들이는 내용을 만나기 마련이다. 필자에게는 콩과식물의 질소고정이 그런 경우인데, 질소처럼 중요한 원소를 흡수할 수 있는 형태를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식물이 그렇게 제한적이라는 사실이 의아했다. 그렇다면 다른 식물들은 콩과식물들 덕분에 살아간다는 말인가.

 

물론 질소고정은 식물 자체가 하는 게 아니라 뿌리에 공생하고 있는 미생물 담당이다. 뿌리혹박테리아라고 부르는 이 녀석은 토양에 있는 질소분자(N2)를 암모늄이온(NH4+)으로 환원시켜 식물이 흡수할 수 있게 만든다. 물론 식물도 거저먹는 건 아니고 미생물을 위해 뿌리조직까지 변형시켜 미생물의 집이라고 할 수 있는 뿌리혹을 줄줄 달고 있고 미생물에게 영양분을 공급하기도 한다. 아무튼 콩과식물만이 미생물과 이런 놀라운 공생체계를 구축했다는 것이다.

 

화학비료가 널리 퍼지기 전이나 유기농을 지향하는 경우 밭의 지력이 쇠하는 걸 막기 위해 콩이나 밭을 번갈아 심는 농법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콩과식물이 대단하긴 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 미루나무와 버드나무도 질소고정한다?

 

학술지 ‘사이언스’ 5월 22일자에는 질소고정과 관련해 놀라운(적어도 필자에게는) 얘기를 들려주는 기사가 실렸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요세미티국립공원에서 있었던 제5회 요세미티공생연례워크숍 취재기인데, 기자는 새로운 질소고정 공생체계를 발표한 두 과학자를 조명했다.

 

먼저 워싱턴대의 식물미생물학자인 섀런 도티 교수는 미루나무와 버드나무의 잎과 줄기에서도 질소고정이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도티 교수는 두 나무가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란다는 사실을 의아하게 생각하고 식물체 시료를 얻어 거주 미생물을 분석한 결과 질소고정 능력이 있는 미생물을 다수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질소를 고정하려면 질소고정효소가 있어야 하는데, 이들 미생물의 게놈에서 질소고정효소의 유전자를 확인했다고. 또 분리한 미생물을 유기질소가 없는 배지에서 키우면 일반 미생물과는 달리 잘 자라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스로 공기 중의 질소를 고정해 흡수했다는 말이다. 참고로 질소는 아미노산과 핵산 분자의 구성원소로 질소가 부족하면 생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

 

한편 머시드 캘리포니아대의 환경미생물학자 캐롤린 프랭크 교수는 역시 척박한 땅에서 자라는 림버소나무의 잎에서 질소고정이 일어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했다. 두 사람은 질소고정이 식물계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현상일 가능성이 크고, 이를 위해 콩과식물의 뿌리혹 같은 복잡한 구조가 꼭 필요한 건 아니라고 주장한다.

 

질소가 부족한 환경에서 벼를 키울 경우 생장이 부진하다(왼쪽). 이때 미루나무와 버드나무에서 분리한 질소고정 박테리아를 접종하면 생장이 개선된다(오른쪽). 최근 콩과식물 외의 식물에서도 질소고정이 일어난다는 연구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 김형민 제공
질소가 부족한 환경에서 벼를 키울 경우 생장이 부진하다(왼쪽). 이때 미루나무와 버드나무에서 분리한 질소고정 박테리아를 접종하면 생장이 개선된다(오른쪽). 최근 콩과식물 외의 식물에서도 질소고정이 일어난다는 연구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 김형민 제공

또 질소고정을 위해 숙주식물과 정교한 공생시스템을 개발할 필요가 없는 미생물을 농작물에 뿌려줄 경우 질소비료의 사용량을 줄이는 친환경 농업도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워크숍에서 도티 교수는 미루나무와 버드나무에서 분리한 질소고정박테리아를 벼에 감염시킨 뒤 질소가 부족한 환경에서 재배한 결과 감염시키지 않은 대조군에 비해 성장이 빠르고 줄기도 많았다고 보고했다.

 

학술지 ‘작물과학’ 7/8월호에는 도티 교수가 워크숍에서 발표한 내용을 담은 논문이 실렸다. 기사를 보면 이런 주장에 대해 워크숍에 참석한 과학자들은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무엇보다도 질소고정이 그렇게 간단한 작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질소고정효소는 산소가 있으면 파괴되기 때문에 뿌리혹 내부처럼 산소농도가 희박한 조건이 필요한데 미루나무나 소나무의 줄기나 잎처럼 공개된 환경에서는 질소고정이 제대로 일어나기가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미국 워싱턴대 섀런 도티 교수팀은 워싱턴주 서부에 흐르는 스노퀼미강의 강변에 자라고 있는 미루나무(사진)와 버드나무에서 질소고정 식물내생박테리아 균주들을 분리했다. - 섀런 도티 제공
미국 워싱턴대 섀런 도티 교수팀은 워싱턴주 서부에 흐르는 스노퀼미강의 강변에 자라고 있는 미루나무(사진)와 버드나무에서 질소고정 식물내생박테리아 균주들을 분리했다. - 섀런 도티 제공

그런데 기사에 질소고정에 뿌리혹이 꼭 필요한 건 아니라는 최초의 증거가 나온 건 사탕수수의 줄기에서 질소고정이 일어나는 현상을 발견한 1990년대라는 언급이 있다. 사람의 몸 이곳저곳에 미생물이 있듯이 식물체에서 터를 잡고 사는 미생물을 ‘식물내생생물(endophyte)’라고 부르는데, 이 가운데 질소고정 능력이 있는 종류가 있다는 사실이 처음 확인된 것이다. 그 뒤 도티 교수와 프랭크 교수를 비롯한 몇몇 과학자들이 다양한 식물체에서 질소고정 능력이 있는 식물내생생물을 찾았다. 결국 질소고정은 콩과식물의 특허가 아니라는 사실이 벌써 알려졌음에도 필자가 전혀 모르고 있었던 셈이다.

 

● 항암제 탁솔, 주목에 사는 곰팡이도 만들어

 

약간 당황한 필자는 책장 한 구석에서 식물학 분야에서는 유명한 교재인 ‘타이즈와 자이거의 식물생리학(2009년 번역출간된 4판)’을 꺼내 질소고정을 다룬 부분을 읽어봤다. 자연계에서 연간 1억 9000만t의 질소가 고정되는데 이 가운데 10%만이 번개나 광화학반응 같은 비생물적 반응으로 만들어진 것이고 나머지 90%를 생물적 질소고정, 즉 질소고정박테리아가 만든 것이다.

 

그리고 100여 년 전 독일의 화학자들이 개발한 암모니아합성법으로 매년 1억2000만t의 질소가 암모니아로 추가로 고정되고 있다. 이 과정에 인류가 쓰는 에너지의 2%가 들어간다(자세한 내용은 과학카페 191 ‘아세요? 암모니아 합성에 인류 에너지의 2%가 들어간다는 사실을’ 참조).

 

책을 읽다가 질소고정 박테리아 대부분이 토양에서 독립생활을 한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숙주식물과 공생을 하면서 질소고정을 하는 박테리아는 일부라는 것이다. 따라서 주변에 콩과식물이 없을 경우에도 자연계에서는 식물들이 치명적인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2000년대 들어 인체거주미생물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인체에 대한 재정의(숙주와 미생물의 공생체라는)가 필요하다는 논의까지 있지만, 식물 역시 거주미생물과 삶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즉 사실상 모든 식물에는 식물내생생물로 불리는 박테리아나 곰팡이가 거주하면서 식물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를 들어 도티 교수팀이 미루나무에서 분리한 식물내생생물 가운데 하나인 로도토룰라(Rhodotorula graminis)라는 효모(곰팡이)는 식물호르몬인 옥신을 만들어 식물의 생장을 촉진한다. 벼 접종 실험에 쓰인 식물내생생물에 로도토룰라도 포함돼 있다. 따라서 질소고정박테리아뿐 아니라 식물호르몬 생성 효모도 벼의 생장을 촉진하는데 역할을 했을 것이다.

 

한편 장내유익균이 장내 공간을 미리 선점해 몸에 해로운 균이 들어왔을 때 공동방어에 나서는 것처럼 식물내생생물도 감염으로부터 식물체를 지킨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화합물을 만들어내는데 그 가운데 몇몇은 의약품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항암제 탁솔로 우리는 보통 주목(朱木)의 껍질에서 추출한 물질이라고 알고 있지만 주목의 껍질에 사는 식물내생곰팡이인 탁소미세스(Taxomyces andreanae)도 탁솔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이 1993년 밝혀졌다. 그 뒤 페스탈로티옵시스(Pestalotiopsis microspora)같은 주목에 사는 다른 식물내생곰팡이도 탁솔을 만든다는 사실이 추가로 확인됐다. 이는 식물과 곰팡이 사이의 유전자 수평이동의 결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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