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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자신을 알면 연애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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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7월 23일 14:00 프린트하기

4월은 잔인한 달. 매년 이맘때면 소년은 어디선가 주워들은 시구를 읊조리곤 했습니다. T.S.엘리엇이 무슨 뜻으로 이렇게 썼는지는 소년이 알 바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커플이 따뜻하고 화창한 봄날을 만끽하고 있는 판국에 소년은 어두침침한 방에서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함께 게임기나 붙잡고 뒹굴거리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였거든요.

 

그런데 올해는 왠지 다를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는 남들에게만 봄이었던 4월이 이번에는 소년에게도 따뜻한 햇살을 비춰줄 가능성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소개팅이나 각종 모임에 열심히 얼굴은 내민 소년은 최근 한 여인과 꾸준히 만나고 있었습니다. 온몸에 어두운 기운을 드리우고 다니던 친구들 무리 속에서 유독 소년의 얼굴만 환하게 빛났습니다. 당연히 질문 공세가 이어졌지요.

 

“야, 이쁘냐?”

 

“몇 살이야?”

 

“뭐? 얼마나 됐어? 걔가 너한테 관심은 있대?”

 

“걔 친구 중에 예쁜 애 없냐?”

 

보시다시피 질문의 수준이 높지는 않았습니다. 소년은 대충 얼버무리는 대답으로 넘어가곤 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질문 하나가 더 나왔습니다.

 

“언제 사귀자고 할 거야?”

 

pixabay.co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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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속 훈남훈녀가 기준이면 곤란해

 

사실 소년은 고민 중이었습니다. 여러 차례 만나면서 서로 상대에 대해 잘 알게 됐지만, 아직은 확신이 없었습니다. 좋은 점도 있었지만, 외모에서 몇가지 단점이 눈에 밟혔지요. ‘키가 조금만 더 컸으면 좋았을걸’, ‘웃을 때 잇몸이 너무 많이 보인다’ 등등. 사소했지만, 의외로 이런 것들이 은근히 마음에 걸렸습니다.

 

“이야~, 죽인다.”

 

친구 하나가 감탄사를 내뱉자 소년은 자연스럽게 친구들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습니다. TV에 소녀시대가 나와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어찌나 다들 예쁘고 생기발랄한지 소년도 눈을 뗄 수가 없더군요. 친구들의 푸념이 이어졌습니다.

 

“캬, 저런 여자랑 만나 보면 소원이 없겠다.”

 

“풋. 미쳤냐? 저런 애가 너랑 만나게? 주제를 알아야지. 너가 원빈처럼 생기기라도 했냐?”

 

소년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소년도 알고 있던, 그러나 애써 억누르고 있던 진실이 튀어나왔습니다. 소년은 원빈이 아니었고, 소년이 만나던 여인도 소녀시대가 아니었습니다. 둘 다 연예인처럼 예쁘고 잘 생겼을 리는 없었음에도, 소년은 무의식중에 상대 여인을 TV에 나오는 예쁜 연예인과 비교하고 있었던 겁니다. 자기와 상대방의 외모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었던 셈이지요.

 

소년은 스스로 상대방 여인에 비해 자기를 너무 높게 평가하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남들이 보기엔 둘을 놓고 누가 아깝다고 할지, 그 여자와 사귀면 혹시 자기가 손해를 보는 건 아닐지 궁금했습니다. 자꾸 이런저런 경우의 수를 따져보니 골치가 아팠습니다. 친구들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온 소년은 컴퓨터를 켜고 관련 연구를 검색했습니다.

 

pixabay.co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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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친 객관화는 화를 부른다

 

소년은 2011년 미국 UC산타크루즈 심리학과의 에일린 주브리게 교수가 발표한 논문을 찾았습니다. 자기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자기객관화)과 상대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상대객관화)이 연애에 어떤 영향을 끼치며, 그런 객관화는 미디어 노출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연구였습니다.

 

소년의 가슴을 찌르는 결과가 먼저 눈에 띄었습니다. 남자가 여자보다 상대방의 외모를 더 객관적으로 본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무의식중에 상대를 연예인과 비교하고 있던 소년은 흠칫 놀랄수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 다음 결과는 다소 위안이 됐습니다. 자기객관화와 상대객관화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는 겁니다.

 

상대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정도가 심할수록 자기 역시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는 뜻이지요. 이런 경향은 여자보다는 남자에게서 높게 나타났습니다. 여자에게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나쁜 놈이 되는 것만은 피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소년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좋은 건 아니었습니다. 자기객관화가 심할수록 연애의 만족도는 떨어졌습니다. 아무래도 자신의 외모를 객관적으로 보면 만족도와 자신감이 떨어진다는 뜻입니다. 상대객관화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자기를 얼마나 객관적으로 보는지와 상관없이 상대를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정도가 심할수록 만족도가 떨어졌습니다.

 

논문에는 TV 같은 미디어가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도 나와 있었습니다. 미디어에 많이 노출될수록 상대객관화가 심해졌지만, 반대로 자기객관화는 높아지지 않았습니다. 미디어를 많이 접할수록 상대방에 대해서만 까다로워진다는 얘기지요. 특히 야한 내용이 많은 장르일수록 이런 경향이 심해 소년을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유일하게 잡지만 자기객관화를 높였습니다. 잡지에서 멋진 패션모델을 보면 자기 자신을되돌아보게 되는 모양입니다.

 

마침내 소년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예쁜 여자 연예인을 보며 외모를 품평하던 오랜 솔로 시절이 소년의 객관성을 너무 높여 버린 겁니다. 소년은 객관성을 벗어던지고 지금 만나는 여인과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보기로 했습니다. 그런 만남이 새로운 눈을 뜨게 해줄지도 모릅니다. 적당히 포기하고 살아야 행복한 겁니다.

 

그 전에 친구들에게도 해줄 말이 생겼습니다.

 

“야, 니들 TV좀 그만 봐!”

 

 

※ 동아사이언스에서는 고호관 기자의 '완전 까칠한 호관씨'에 이어 ‘로맨틱한 호관씨’를 매주 수요일 연재합니다. 2012년 과학동아에 연재되었던 코너로 연애와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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