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바로가기본문바로가기

동아사이언스

수학 용어, 일상어로 바꾸면 더 어려워

통합검색

수학 용어, 일상어로 바꾸면 더 어려워

2015.08.17 22:00

최근 ‘수포자(수학 포기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교육시민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중심으로 현행 수학 교육이 수포자를 양산한다며 수학 학습량을 줄이고 쉽게 가르쳐야 수학에 대한 흥미도를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 거세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찮다. 쉽게 조금만 가르치는 것으로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동아사이언스는 논쟁의 주요 쟁점을 짚어보며 한국 수학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점검하는 기획 기사를 3회에 걸쳐 싣는다.

 

#1. 수학 흥미도 1위 국가는 수학 후진국

#2. 수학용어, 일상어로 바꾸면 더 어려워

#3. 수학 쉬워져도 사교육 못 잡는다   

 

 

송경은 기자 제공
송경은 기자 제공

연산, 기수, 서수, 기하, 소인수분해, 무리수와 유리수···. 지난 5월 28일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주최한 ‘6개국 수학 교육과정 국제 비교 컨퍼런스’에서 수학 용어가 도마에 올랐다. 토론자로 나선 국내 일간지의 한 기자는 생소하고 어려운 수학 용어 때문에 수학이 암기과목이 됐다고 지적했다. 수학을 가로막는 장벽이 된 용어를 일상적인 말로 바꿔서 학생들이 의미를 쉽게 알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 일상어가 오히려 오개념 주입할 수도


이 주장은 인터넷 상에서 많은 공감을 사고 있다. 그러나 수학 용어를 일상어로 바꾸는 데는 한계가 있다. 박형주 포스텍 수학과 교수는 “어려운 개념을 가능한 한 쉽게 표현하는 일은 필요하지만, 제한된 어휘만으로 수학의 다양한 개념을 정의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적인 수학 용어가 어느 정도는 꼭 필요하다는 뜻이다.


수학 개념을 담고 있는 용어를 일상어로 바꿀 때의 문제점도 있다. 박경미 홍익대 수학교육과 교수는 "일상어의 원래 의미가 간섭을 일으켜 학생들에게 오히려 잘못된 개념을 심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부채꼴’은 부채 모양이라는 일상어다. 수학에서는 원에서 반지름 두 개와 호 하나로 둘러싸인 영역을 뜻한다.


그런데 부채 모양을 떠올리다보면, 부채꼴의 중심각이 180°보다 작은 경우만 떠올리기 쉽다. 중심각이 180°보다 큰 부채꼴은 우리가 흔히 아는 부채와 모양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처럼 새로운 전문 용어로 수학 개념을 정의해 주는 게 더 정확할 때가 있다.


● 수학 용어의 맥락을 가르치자


자연수의 비율(분수)로 나타낼 수 있는 수와 그 수의 음수를 포함하는 유리수(有理數; 이치가 있는 수)는 영어의 ‘Rational Number’(합리적인 수)를 직역한 것이다. 수를 세는 개념(자연수)에서 출발해서 다다를 수 있으니 합리적이라는 뜻이다.


또한 영어에서 비율을 뜻하는 ‘ratio'와 합리적인 것을 뜻하는 ’rational'은 모두 논리를 뜻하는 그리스어 ‘logos'에서 유래한 말이다. 자연수의 비율로 나타낸다는 것은 곧 자연수를 합리적으로 다룬다는 의미다. 이런 이유로 유리수의 집합을 비율을 뜻하는 라틴어 ’quotiens'의 첫 글자인 Q로 표시하기도 한다. 반대로 자연수의 비율로 얻어낼 수 없는 수는 합리적이지 않은 수(Irrational Number), 즉 무리수(無理數; 이치가 없는 수)라고 한다.


1과 자기 자신으로만 나눠지는 정수인 ‘소수(素數; 근본이 되는 수)’도 마찬가지다. 영어의 ‘Prime Number'(주요 수)를 직역한 것이다. 모든 자연수를 소수의 곱으로 나타낼 수 있기 때문에 소수는 자연수를 구성하는 주요 수라는 뜻이다. 박 교수는 “수학 용어가 생소하게 느껴지는 건 언어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그 용어가 만들어진 이론적·역사적 배경을 몰라서”라며, “수학 용어의 어원과 그 개념이 생긴 시대적 배경을 교육 과정에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스토리텔링 수학, 진짜 이야기를 들려줘야


현행 수학 교육과정에 이와 같은 내용이 없는 건 아니다. 수학을 쉽고 재미있게 가르치자는 취지로 도입한 스토리텔링 수학 교과서는 수학 개념을 이야기로 가르치는 게 목적이다.


그러나 현재 교과서에 실린 이야기는 수학 개념의 배경이나 역사를 알려주기에 충분하지 않다.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도 수학 개념은 남지 않는 일이 벌어진다. 중학교 스토리텔링 수학 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홍창섭 경희고 수학 교사는 “수학 교사들이 정해진 단원에 맞춰 이야기를 끼워 넣다 보니 내용이 억지스러워지는 경우가 생겼다”고 말했다.


특히 초등학교 1~2학년군의 교과서는 이제 막 한글을 배우고 있는 아이들에게 장문의 독해력까지 요구하고 있다. 아래 예를 보자.


“(···) 일개미들은 열심히 먹이를 모으고, 개미집을 파고, 집을 고치는 등 부지런히 일하고 여왕개미는 알만 낳는답니다. 개미집은 수많은 작은 방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개미집에는 알이 83개 있었습니다. 여왕개미가 알을 더 낳았는데 알이 90개보다 적었습니다. 여왕개미는 알을 몇 개 더 낳았습니까? 개미집에는 개미가 56마리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웃 마을 개미 9마리 중 몇 마리가 개미집으로 들어왔더니 60마리보다 많아졌습니다. 9마리 중 몇 마리가 개미집으로 들어왔습니까? (···)”

 

개미는 아이들에게 흥미로운 소재지만, 길고 어려운 글을 정확하게 이해한 뒤에야 대소 관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김명환 서울대 수리과학과 교수는 “지금처럼 수학 개념을 어렵게 꼬아 놓기만 한 스토리텔링 수학은 오히려 수학 개념의 학습을 방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홍 교사는 “어원이나 역사적 배경 등을 잘 설명해 주면 학생들이 어려운 용어 때문에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일은 거의 없다"며 "오히려 수학 용어를 억지로 줄이는 바람에 학생들이 개념을 익히는 데 방해를 받는 면도 있다"고 말했다.  

 

 

이 기사가 괜찮으셨나요?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댓글 0

19 + 10 = 새로고침
###
    과학기술과 관련된 분야에서 소개할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 고발 소재 등이 있으면 주저하지 마시고, 알려주세요. 제보하기

    관련 태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