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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쉬워져도 사교육 못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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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쉬워져도 사교육 못 잡는다

2015.08.19 14:06

최근 ‘수포자(수학 포기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교육시민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중심으로 현행 수학 교육이 수포자를 양산한다며 수학 학습량을 줄이고 쉽게 가르쳐야 수학에 대한 흥미도를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 거세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찮다. 쉽게 조금만 가르치는 것으로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동아사이언스는 논쟁의 주요 쟁점을 짚어보며 한국 수학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점검하는 기획 기사를 3회에 걸쳐 싣는다.
 
#1. 수학 흥미도 1위 국가는 수학 후진국
#2. 수학용어, 일상어로 바꾸면 더 어려워
#3. 수학 쉬워져도 사교육 못 잡는다   

 

동아일보 제공
동아일보 제공


“인성학원이라고 아세요? 인성면접에 대비하는 학원입니다. 어떻게 대답해야 면접관에게 착한 학생으로 보일 수 있는지 알려주는 거지요. 수학을 쉽게 만들면 사교육이 없어질 거라고 생각하세요? 사교육은 거기에 맞게 대응할 겁니다.”


수학 학원 강사 경력 13년차인 박모 씨(39)는 최근의 수학 교육 논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교과 과정이 바뀌면 그에 맞춰 새로 강의를 만들어야 하는 게 성가실 뿐 학생들의 수학 부담이 줄어서 일거리가 없어질 걱정은 전혀 하고 있지 않았다.


● 교육 과정 줄었지만 사교육비는 늘어나


학습량이 줄면 사교육이 따라 준다는 근거는 없다. 우리나라는 이미 지난 몇 년 동안 교육과정을 개정할 때마다 수학 학습량을 줄여왔다. 고등학교의 경우, 과거에는 필수였던 과목들이 선택과목으로 바뀌면서 실질적인 학습량이 줄었다. 


예를 들어, 2007 개정 교육과정의 문·이과 공통 필수과목 수학I의 ‘행렬과 연립 일차 방정식’과 ‘그래프’, 이과 필수과목 기하와 벡터의 ‘벡터’, ‘일차변환과 행렬’은 2009 개정 교육과정에서 이과 선택과목 고급수학I으로 이동했다.


그럼에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4년 사교육비 규모는 7년 전인 2007년에 비해 오히려 더 커졌다. 수학 과목의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사교육을 받지 않은 학생 포함)는 2007년 초등학교 4.2만원, 중학교 7.3만원, 고등학교 7.2만원에서 2014년 각각 4.5만원, 10.9만원, 9.3만원으로 증가했다. 


● 우리나라가 너무 많이 가르친다고?


외국과 비교하면 어떨까.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더 많이, 더 빨리 가르치기 때문에 사교육이 성행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우리나라와 미국(캘리포니아 주와 뉴욕 주), 일본, 싱가포르, 영국, 독일, 핀란드의 수학과 교육과정을 비교분석한 결과 “우리나라 초등학생들은 선진국보다 평균 18.3개 항목(26.9%)을, 중학생들은 17.5개 항목(29.2%)을 더 이르게 배우거나 많이 접하고 있다”고 지난 5월 발표했다. 


그러나 이 조사 결과에는 맹점이 있다. 발표 자료를 살펴보면 교육과정의 학습량을 모두 항목 수로 비교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학습량이 우리나라가 많은 비율(%)을 우리나라가 빨리 배우는 항목 수와 우리나라에만 있는 항목 수를 더하고, 여기서 우리나라가 늦게 배우는 항목 수와 비교 대상 국가에만 있는 항목 수를 뺀 값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계산한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 교육과정의 소단원 항목을 기준으로 비교 대상 국가의 교육과정에 이 소단원이 있는지, 있다면 몇 학년에 등장하는지를 알아본 수치다. 국가마다 과목과 대단원, 소단원을 다르게 분류한다는 점을 반영하지 못한다. 또 같은 소단원이라도 배우는 양이 서로 다를 수 있다는 점도 간과했다.


김명환 서울대 수리과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소단원을 세세하게 나누는 편”이라며 “교육과정 항목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실제로는 배우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항목 수만 세어서는 정량적인 분석을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박제남 인하대 수학교육과 교수도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이공계의 경우 대학교까지 유기적으로 연결된 수학의 일부만을 비교해 우리나라가 많다고 주장하는 것은 결론을 정해놓고 조사한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 난이도가 아니라 남보다 앞서야 하는 게 원인


지난 달 교육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이 발표한 ‘2015 개정 수학과 교육과정 시안’에는 시험 문제를 어렵게 내지 못하게 막는 ‘평가 유의사항’도 포함돼 있다. 박형주 포스텍 수학과 교수는 “난이도가 낮은 시험에서는 조금만 실수해도 등수가 밀려나기 때문에 학생들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소모적인 경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사교육의 목적이 실수를 하지 않는 쪽으로 바뀔 뿐이라는 것이다.


수능 수학이 지속적으로 난이도가 낮아지는 바람에 상위권 변별을 위한 만점방지용 문항은 더 어려워졌지만, 여전히 변별력을 확보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물수능’이라 불리고 있는 201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는 주로 이과생이 선택하는 수학 B의 1등급 커트라인이 만점이었다. 1개만 틀려도 2등급으로 밀려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박경미 홍익대 수학교육과 교수는 “수험생 중에는 쉬운 문항을 빨리 풀고 남은 시간을 활용해 고난도 문제를 원시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암기 위주의 과도한 사교육을 줄이려면 과정과 활동 중심의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박형주 교수도 “논리 전개 과정을 정확히 이해해야만 해결할 수 있고, 단순히 유형을 암기해서는 풀 수 없는 서술형 문제 위주의 평가로 가야 수학 교육을 정상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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