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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바람 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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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바람 폈지?

2015.09.15 18:00

지난번에 티격태격한 뒤로 소년은 불안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전화를 해도 예전 같지 않고, 주말을 맞아 소년이 만나러 간다고 하면 피곤하다거나 다른 이유를 들어 회피하는 일도 종종 생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친구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너 여자친구 있냐? 소개팅 안 할래?”라고 물었습니다. 소년은 거절하려고 했지만, 뜻밖에도 하겠다는 말이 입에서 흘러나왔습다. 소년은 내가 왜 이러나 싶었지만, 어물쩍거리는 사이 연락처가 오갔습니다.

 

곧 다시 전화가 울렸습니다. 이번에는 여자친구였습니다. 소년은 방금 일어난 일을 들키기라도 한 듯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그동안 바빠서 미안했다며 주말에 만나서 재미있게 놀자는 전화였습니다. 그 주말 마침내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는 소년의 심장은 마치 첫 데이트를 하러 갈 때처럼 두근거렸습니다.

 

소년의 걱정과 달리 여자친구는 환하게 웃으며 소년을 반겨줬습니다. 최근에 다소 어색했던 분위기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요. 소년도 마음을 풀고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미안하지만 친구에게 전화해 소개팅을 못하게 됐다고 확실히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pixabay.co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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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춰도 티가 나

 

그런데 어느 순간 소년은 여자친구의 귀걸이가 낯설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무심한 듯 물어봤지요.

 

“그거 어디서 났어? 못 보건 건데.”

 

“응? 아, 이, 이거 얼마 전에 길에서 샀어.”

 

“그래? 예쁘네….”

 

소년은 얼마 전에 읽은 논문이 떠올랐습니다. 2001년 캐나다 캘거리대 연구팀이 ‘사회 및 개인의 관계’라는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으로, 사람들이 연애 상대를 속이는 것에 대한 연구였습니다. 재미있게도, 사람들은 자신이 실제보다 더 잘 상대방을 속이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연애 상대를 속이는 일에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갖는다는 뜻이지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소년을 반겼을 때의 과장스런 태도, 평소와 달리 소년의 썰렁한 개그에 호들갑스럽게 반응한다는 점에서 위화감이 느껴졌습니다. 처음에는 그동안의 어색한 분위기를 무마하려는 노력이라고 생각했지만, 소년의 마음 속에서는 슬슬 의심이 피어올랐습니다.

 

“근데, 오빠는 괜찮아? 오랜만에 만났는 데, 정신도 딴 데 팔고 있는 것 같고….”

 

“아, 아니야. 오랜만에 만나니까 긴장돼서 그래.”

 

소년은 흠칫 놀랐습니다. 몰래 하려던 소개팅 때문에 어색해하는 게 티가 나긴 났나봅니다. 그렇게 ‘화기애매’한 가운데 소년은 여자친구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설마하며 찝찝한 마음을 달래고 있는데, 며칠 뒤 결국 진상이 드러났습니다.

 

한 친구가 전화를 걸어 조심스럽게 말하길, 지난 토요일에 일이 있어서 소년의 여자친구가 사는 도시에 갔다가 다른 남자와 길을 걷는 모습을 봤다는 겁니다. 그냥 친구나 아는 사람일 수도 있다고 소년이 말했지만, 친구에 따르면 둘은 팔짱을 끼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토요일이면 소년이 여자친구와 만나기 바로 전날이었습니다.

 

 

pixabay.co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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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이거 용납 못해

 

그 뒤로 일어난 일은 다시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었습니다. 평소 조용하던 소년이 언성까지 높이자 여자친구는 결국 모든 것을 실토했습니다. 아직 심각한 사이는 아니고 하도 만나자고 해서 어쩌다 만나준 거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소년은 분노했습니다.

 

소년이 계속 비난하자, 여자친구도 따라서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소년이 잘못한 일이 줄줄 흘러나왔고, “오빤 다른 여자 만난일 없어?”라는 말이 나오자 소년은 말문이 막혔습니다. 아직 만난 건 아니지만 소개팅건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소년은 혹시 자기가 속이 너무 좁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럴 때 어떻게 할까. 속이 상해 컴퓨터를 두드리고 있을 때 미국 마르켓대 연구팀의 논문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2008년 ‘북미심리학회지’에 발표된 논문으로 연애 상대가 바람을 피웠을 때 어떤 상황에서 용서하고 용서를 하지 않는지를 조사했습니다.

 

먼저 습관적으로 바람을 피울수록 용서를 받기 어려웠고, 사과를 하면 용서받기 쉬웠습니다. 상식적인 결과였습니다. 상대방의 바람을 직접 발견하는지 다른 사람을 통해 알게 되는지는 용서와 별 상관이 없었습니다. 흔히 다른 사람을 통해 알게 되면 더 화가 난다는 속설은 옳지 않았습니다.

 

성별에 따른 차이도 의외였습니다. 연구팀은 여자가 남자보다 용서를 더 잘할 거라는 가설을 세웠지만, 결과는 반대였습니다. 기존 연구에 따르면 남자가 여자보다 더 질투가 심했거든요. 연구팀은 남자가 질투가 심한 것은 상대방이 성적인관계를 맺었을 때만이라며 후속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소년은 어떻게 했을까요? 여자친구의 말이 맞다면 심각한 사이는 아니고, 소년도 소홀했던 점이 있으니만큼 한 번쯤 눈감고 넘어갈 수도 있었습니다. 소년도 소개팅을 수락했으니 거의 바람을 피운 셈이니까요. 소년은 심호흡을 한 뒤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 동아사이언스에서는 고호관 기자의 ‘로맨틱한 호관씨’를 매주 수요일 연재합니다. 2012년 과학동아에 연재되었던 코너로 연애와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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