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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교육 논쟁] 수학 교육, 줄일 게 아니라 흥미롭게 만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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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9월 16일 17:00 프린트하기

여러 해 전에 케냐의 마사이족 학교에 들렀다. 아이들이 좁은 교실에서 수학을 공부하고 있었고, 앞마당엔 원조기구가 파 줬다는 우물이 있었다. 하루에 백 리쯤은 우습게 걷는 아이들을 보며 교사가 한마디 했다.

 

평원에서 소떼를 몰아야 하는데 쓸데없이 셈이나 가르친다고 부모들이 애들을 학교에 안 보내더니, 수업 후에 우물에서 물을 한통씩 퍼가게 했더니 보낸단다. 그래 물은 꼭 필요하지. 수학보다 물이 이해가 쉬운 건 어디나 똑같다.

 

그 아이들은 수와 기호가 난무하는 칠판보다 평원에서 소를 보는 게 더 행복할지 모른다. 그런 삶도 물론 나쁘지 않다. 그렇지만, 그 수와 기호 너머에 어떤 신세계가 있을지, 그걸 가지고 자신의 삶과 공동체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그 가능성도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물 때문에 억지로 셈을 배우던 아이들 중 일부는, 고대 문명이 수와 모양을 다루던 방법과 뉴턴이 천체의 운동을 이해하려 만든 미적분을 깨우칠 것이다. 서로 연관 없어 보이는 사실들의 논리적 관계를 규명하고 유의미한 결론에 다다르는 ‘생각의 기술’을 익히기도 할 것이다. 자신의 조국에 과학기술의 토대를 만들지도 모른다.

 

GIB 제공
GIB 제공

남의 일인 줄 알았다. 교육을 통해 얻는 가치를 체험해 보지 못해서 생기는 일이려니 했다. 그런데 맙소사. 세계 14위의 경제대국에서도 벌어지는 일이었다. 마사이 부모보다는 수준이 높아서, 통계 숫자로 무장했다.

 

뜬금없이 ‘고등학생 60%가 수포자’라더니, 6개국 비교 자료를 제시하며 한국 초등학교는 26.9%를 더 가르친다는 주장도 등장했다. 4명 중 한 명이 수포자라는 최근 EBS 조사와도 다르고, 숫자가 널뛰기한다. 이 모든 게 너무 많이 가르치는 탓이니 일단 덜 가르치자는 보도가 나오더니, 교육부는 수학 교육과정의 20% 삭감을 발표했다.

 

해괴하다. 논리적으로 충돌하는 숫자가 난무한다. 초등학생의 27.3%가 수학이 어렵다고 하더니, 36.5%가 수학을 포기했다 한다.

 

그럼 9.2%는 수학이 쉬운데도 포기한다고? 그럼 어렵거나 내용이 많아서가 아니라, ‘열심히 배워서 어디에 쓰지’라거나, ‘그거 몰라도 사는데 지장 없어서’ 때문인 걸까? 그렇다면, 내용을 줄이는 게 이 문제의 해결과 어떤 인과관계가 있을까?

 

교습 항목에서 우리 중학교가 독일보다 8.3% 더 많이 가르친다지만, 항목을 쪼개거나 합치면 독일이 더 많은 제멋대로 비교다. 최대공약수를 독일은 안 가르친단다. 독일 수학자에게 얘기했더니 초등학교에서 약수와 배수를 가르치는데 뭔 소리냐고 펄쩍 뛴다.

 

큰 개념에 작은 개념들이 포함되는 속성은 무시하고, 항목이 따로 없으면 안 배운다고 거두절미 결론 내린 것이다. 자세히 안 들여다 본 사람들은 소수점까지 있는 숫자들이니 뭔가 엄청난 비교 연구를 통해 나온 거려니 생각할 수밖에.

 

아이들의 삶의 질에 대한 우려는 타당하다. 수학을 포기까지 하는 이유가 내용이 많아서라는 판단도 일견 그럴 듯하다. 하지만 비논리적이다. 학습량과 소위 수포자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없다. 지난 30년 동안 교과과정 개편 때마다 교과 내용은 줄었는데 체감하는 수학 어려움증은 늘었다. 이게 지금의 교과 내용이 과다하기 때문이라면, 그럼 이전에 교육받은 세대는 다 초인들인가?

 

내용을 줄일수록 수학을 어려워하거나 포기하는 아이들은 늘어났다면, 더 줄이면 문제가 사라질 거라는 결론은 너무나 비논리적이지 않나? 내용을 아무리 줄여도 문제풀이만 하면 수학은 여전히 재미없다. 반복적인 문제풀이 교육 방식은 60만 명을 일렬로 세우는 입시제도 탓이다. 한 문제 틀리면 등급이 우수수 떨어지니 어쩌겠는가.

 

교과 내용을 더 줄이면, 그래도 승부를 가려야 하는 아이들은 ‘실수하면 죽는다’라는 각오로 ‘실수 안하기 사교육’으로 내몰린다. 수학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재미없어서, 피해서 갈 방법이 있다면 다 포기하고 싶지 않겠나? 게다가 현재의 입시제도는 이런 회피방법을 제시하고 있지 않은가?

 

결국 30년 동안 교과 내용이 줄면서 빤한 내용을 가지고 문제만 반복해서 푸는 현상은 더 심화됐고, 그래서 수학은 더 재미없어지고 싫은 과목이 됐다고 보는 게 논리적이다. 그 와중에 대학진학률은 높아지고 입시 민감증도 덩달아 늘어서, 입시문제 잘 푸는 문제반복풀이가 수학교육의 전부로 자리 잡은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개별 교사의 특성에 맞는 평가가 좋지만, 입시에 민감한 학부모들은 공정성을 이유로 표준화된 시험을 요구한다. 단순암기가 아닌 생각의 훈련을 위해서 서술식 과정 평가를 강화해야 하지만, 역시 채점의 공정성과 형평성에 대한 깊은 불신이 이를 가로 막는다.

 

결국 ‘60만 명 줄 세우기’에서 비롯된 시험 점수의 강력한 영향력이 줄어들지 않는 한 ‘반복해서 문제만 풀기’ 때문에 벌어지는 수학혐오증은 존재감을 더 할 수밖에 없다.

 

미적분을 고등학교에서 가르치지 말자는 주장도 나왔다. 문과생은 어차피 필요하지 않고 이과생은 대학에 가서 배우면 된단다. 심화미적분은 대학의 1학년 미적분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내용이니 대학 교육의 선행학습이란다. 미국의 경우는, 이공계에 진학하는 학생들만 대학 학점을 선이수하는 AP과정을 운영하고 있으니, 미적분은 대학과정이라고도 했다.

 

깊이 있는 수리논리학으로 언어학의 패러다임을 바꾼 노엄 촘스키 같은 사람은 모른 척 하자. 수학과 통계학을 체계적으로 도입해서 근대적 의미의 공중보건을 정립한 나이팅게일도 무시하자.

 

그래도 어쩌겠는가. 빅데이터의 활용이 일상화되고 새롭게 출현하는 직업들이 이런 소양을 요구하면서, 전통적으로 문과 학생들이 진출하던 홍보와 마케팅, 선거 전략과 공공정책 등의 분야에서도 데이터와 수의 이해가 주요 자질로 부상하는 시대다.

 

데이터를 다루자니 통계와 최적화이론 등이 중요하고, 미적분은 그 토대가 된다. 문과 아이들에게 이런 거 가르치지 말자는 주장은, 그들의 인생에서 선택지를 턱없이 줄이는 게 된다. 아이들 미래고 뭐고 일단 어려운거 다 빼고 조금만 가르치자는 주장의 무모함과 파괴성에 전율한다.

 

나이팅게일이 군대 내의 사망 원인을 조사해 나타낸 다이어그램.
나이팅게일이 군대 내의 사망 원인을 조사해 나타낸 다이어그램.

대학과 고등학교의 미적분이 똑같다는 주장은 틀렸다고 단언할 수 있다. 특정 몇 군데 대학에서 시간강사를 한 경험으로 대학의 수학교육을 논하는 것은 위험해 보인다. 대학마다 지향하는 인재상이 다르므로 대학 교과과정은 표준화 될 수 없고, 상대적 비교도 고도의 연구 전문성을 요함을 아예 모르는 것 같다.

 

교재는 논리적 완결성을 위해서 기본부터 시작하지만, 대학들은 교재에서 고등학교 부분을 대부분 빼고 가르친다. 이전보다 수학의 준비가 부족한 대학생들이 늘면서 고육책으로 재교육하는 부분이 늘어난 건 사실이다.

 

그리고 미국의 AP 과정이 이공계에 진학하는 학생을 위한 것이라는 주장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지 모르겠다. 미국은 대학 진학률이 낮아서 수평비교는 힘들지만, 대학 진학하는 학생들만 비교하면 한국의 미적분보다 높은 수준의 AP 미적분을 수강한다.

 

문이과 구별이 희박해서 음대와 미대에 진학하는 학생들도 AP 미적분을 수강하곤 한다. 고등학교 자체적으로 AP과목을 가르치고, 학교에 특정 과목이 없는 경우만 근처 대학에 가서 수강하기도 할 뿐이다.

 

독자적이고 비판적인 ‘생각의 능력’을 갖춘 시민의 양성은 교육의 주요 가치이고, 논리적 추론을 거쳐 결론을 이끌어 내는 수학은 사색의 재료이자 도구이다. 넘치는 각종 데이터에서 사실과 주장을 구별하는 능력은 지식인의 필수 소양이 되었다. 내용을 줄이고 대신 핵심 내용을 깊이 있게 가르치자고 하지만, 교과과정은 생각의 재료이다. 재료를 부족하게 주고 생각의 깊이를 기대할 수 없다.

 

반복적인 문제풀이를 줄여서 학습 부담을 줄이되, 아이들이 폭넓은 내용을 재미있게 배우고, 자신의 미래 설계와 연계하도록 돕는 게 포인트다. 내용을 줄이는 게 아니라 흥미롭게 만드는 게 초점이 돼야 한다. 문제풀이 반복을 줄이면 추가 시수도 필요 없다.

 

아이들의 생각의 재료에는 다른 과목도 필요하고 다 시수는 필요하니 수학만 더 필요하다고 우기는 건 억지다. 두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는 역사성의 도입이다. 수학 개념이 문명사에서 출현한 배경과 시대적 상황을 보여주자. ‘미적분 출현 당시의 유럽 상황을 논하라’ 같은 에세이 숙제의 도입도 좋다. 수학은 독서와 작문 과목이 될 수 있다.

 

둘째는, 활용성의 도입이다. 그게 어디에 쓰이는지, 왜 아이들의 미래에 중요할지, 그걸 알면 펼쳐질 새로운 미래의 가능성을 보여주면, 수학은 어느새 흥미진진해진다.

 

실제로 구현하려면 콘텐츠가 필요하다. 수학의 역사와 활용에 대한 다양한 읽을거리를 개발해야 하고 관련한 수학문화강연도 늘려야 한다. 수학 에세이 주제의 예시도 모아야 한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수준의 흥미진진한 수학 다큐멘터리도 만들어져서 에세이 숙제의 재료가 되면 어떨까? 문제풀이보다 백 배는 재미있으면서 평가에 반영되고, 그거 쓰다 보면 ‘수학이 왜 나왔는지’와 ‘어디에 쓰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마사이족에게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마실 물은 필요하다. 하지만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에서 각자의 꿈을 이루도록 준비시키는 교육도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가.

 

 

<[수학교육 논쟁] 최수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수학사교육포럼 대표의 반대의견 보기>

 


박형주 아주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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