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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은 우리를 강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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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은 우리를 강하게 한다

2015.09.22 18:00

“우리 여기까진 것 같아.”

소년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 뒤로 오간 대화는 꿈속에서 벌어진 일처럼 기억이 명료하지 않았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소년의 연애가 끝났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슬프다거나 화가 난다기보다는 멍한 느낌이었습니다. 회의감도 느꼈습니다. ‘다시는 연애 같은 건 하지 않을 거야!’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소년은 불도 안 켠 방에 한동안 우두커니 앉아 있었습니다.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어찌어찌 며칠을 보냈습니다. 습관적으로 여자친구에게 전화할 뻔한 적도 있었지만, 꾹 눌러 참으며 견뎠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소년의 머리가 다시 맑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분노와 죄책감, 실망감, 허무함 따위가 사그라지면서 다시 학구적인 소년으로 돌아왔습니다. 소년은 정신을 추스르고 이제 과거가 돼버린 연애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아쉽게 끝났지만, 그래도 배울 건 있지 않겠어요?

 

pixabay.co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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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경은 우리를 괴롭고 강하게 만든다

2003년 학술지 ‘인간관계’에 실린 미국 미네소타대 연구팀의 논문이 소년의 눈에 띄었습니다. 연인과 헤어지는 경험이 미래의 연애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지를 조사한 연구였습니다. 대상은 연인과 헤어진 지 9개월이 채 되지 않은 대학원생 92명이었습니다. 헤어지기 전 평균 연애 기간은 13개월이었고, 이들의 54%는 자기가 끝냈으며, 30%는 차였고, 16%는 서로 합의하고 헤어졌습니다.

참가자들이 가장 긍정적이었다고 언급한 사례는 ‘내면의 성장’에 해당했습니다. 스스로 성숙했다는 것이지요. “나 스스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깨달았다”거나 “내가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방법을 배웠다”와 같은 대답이 나왔습니다.

 

두 번째로는 ‘주위 환경’과 관련된 긍정적인 변화가 생겼다는 답변이 많이 나왔습니다. 가족과 관계가 더 좋아졌다거나 더 나은 성적을 받았다는 변화가 이에 해당했습니다. 의사소통 능력처럼 인간관계에 필요한 기술이 좋아졌다는 답변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연애 상대를 판단하는 능력은 거의 성장하지 않았습니다. 연구팀은 실험 전 헤어진 경험이 다음번에 더 나은 연애 상대를 고르는 데 도움이 되는 변화를 일으킬 거라고 가정했습니다. 결과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잘 안 맞는 연인 때문에 고생을 하고도 또 비슷한 사람과 만나 연애를 하는 까닭이 이것일까요? 소년은 사람의 심리란 참으로 알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헤어진 이유도 성장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개인적인 이유로 헤어진 사람들은 그다지 성장하지 않았다고 답변했습니다. 주위 환경때문에 헤어진 사람들만이 많이 성장했다고 했지요. 연구팀은 헤어진 이유와 괴로움의 관계도 조사했습니다. 괴로움은 헤어진 이유가 상대방이나 주위 환경에 있을 때 더 컸습니다. 자기 때문에 헤어졌을 때는 괴로움이 그다지 크지 않았고요. 아마도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이유로 헤어졌을 때 더 괴로운 모양입니다.

헤어진 이유 중에 가장 눈에 띄는 건 환경이었습니다. 연애 도중 주위 환경이 문제가 되는 경우는 흔합니다. 그런데 사귀는 중에 생기는 문제가 환경 탓일 때는 오히려 덜 괴롭게 느꼈습니다. 헤어지는 이유가 환경 탓일 때만 더 괴로운 거지요. 그리고 환경 때문에 헤어진 사람만 더 괴로워했고, 더 성장했습니다. 괴로움과 성장 모두에 크게 기여하는 유일한 이유였습니다.

 

pixabay.co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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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애는 성장의 디딤돌

소년은 헤어지고 며칠 동안 수시로 후회했습니다. 먼저 헤어지자고 말을 꺼낸 건 소년이었지만, 과연 잘하는 짓인지 자기 자신도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소년은 ‘전’ 여자친구도 자기처럼 괴로워하는지 궁금했습니다. 논문에 따르면 누가 먼저 헤어지자고 했는지는 성장이나 괴로움에 별 영향을 끼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전 여자친구도 소년만큼 괴로워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남녀 모두 괴로워하는 정도는 비슷했습니다. 그런데 성장하는 정도는 여자가 남자보다 컸습니다. 소년은 그 부분을 읽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남자들이란. 도무지 배우는 게 없군.’ 같은 남자지만 너무한 것 아닌가요?

그래도 소년은 로맨틱 가이가 되기로 결심하고 노력해온 지난 1년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전략, 힘들면서도 달콤했던 연애, 쓰라린 실연의 아픔에서 (비록 여자보다는 덜할지 몰라도) 많은 걸 배웠습니다. 말로 표현하거나 글로 쓰긴 어려울지 몰라도 이런 지식과 경험은 1년 전과는 분명히 다른 소년을 만들었습니다.

소년은 달력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12월. 곧 새로운 해가 시작됩니다. 소년은 아직 젊었습니다. 앞으로도 분명히 어떤 여자를 만날 것이고, 또 헤어질 것이며, 그러다 운명의 상대를 만나면 결혼해 가정을 꾸릴 것입니다.

 

소년이 꿈꿨던 로맨틱 가이는 단시간에 도달하는 목표도 아니고, 도달한다고 해서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앞으로 연애를 겪을 때마다 소년은 더욱 성숙할 겁니다. 희망 찼던 첫 연애가 끝나고 얼마 뒤 소년은 마침내 방문을 열고 밝은 세상으로 다시 한 걸음 내디뎠습니다.

 

 

※ '로맨틱한 호관씨'는 이번 편을 마지막으로 마무리됩니다. 그동안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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