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외갓집 부엌의 소나무

카카오스토리 네이버밴드 구글플러스

2015년 09월 26일 15:00 프린트하기

소나무 -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소나무 -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솔’, 한자어로 송(松), 송목(松木), 송수(松樹)라고 쓰는 우리말 ‘소나무’는 사철 푸르러 예부터 올곧음의 상징이었다. 꿈에서조차 푸른 소나무를 보면 길몽으로 믿었던 상서로운 나무, 소나무는 집안에 아기가 태어나면 금줄에 솔잎을 끼워 탄생을 알렸던 기쁨의 나무였다.

 

그런 소나무는 비교적 오래 살아 십장생(十長生)의 하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1980년대에 나왔던 담배에 ‘솔’이라는 이름을 붙여놓고 청와대에서 당시 대통령이 그 담뱃갑을 내놓고 피워대는 모습이 공영방송 뉴스로 송출되는 진풍경이 벌어졌으니 요즘 국민 정서로는 어이없는 장면이었다.

 

그럼, 담배 이름이 아닌, 소나무의 진짜 쓰임새는 무엇일까. 왕궁과 사찰 등의 최고 건축재로 쓰였던 소나무는 배를 만들 때도 으뜸이었다. 그 전함의 우수성은 임진왜란 때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는 주장이 있다(『조선을 구한 신목, 소나무』). 무른 삼나무로 만들었던 왜군의 함선은 빠른 것은 장점이었지만 단단한 소나무로 만든 조선의 거북선이나 판옥선과 충돌했을 때 쉽게 부서져 버렸다는 것이다.

 

음식 재료로도 소나무는 다양하게 쓰인다. 꽃가루, 즉 송화(松花)는 다식(茶食)을 만들 때 첨가되며, 초여름의 여린 솔잎이나 솔방울로는 송엽주(松葉酒), 송실주(松實酒)라는 술을 빚고 그 뿌리와 옹이로도 송하주(松下酒)와 송절주(松節酒)라는 이름의 향기로운 술을 담근다.

 

송편 -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송편 -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또한 ‘송편’의 앞 글자는 송(松)자다. 소나무 떡이라는 말이다. 솔잎은 가을이 와도 단풍 들지 않는다. 상록수(常綠樹)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 한 번, 송편을 찔 때 솔잎은 노랗게 단풍 든다. 시루에서 익어가는 그 향은 또 얼마나 갸륵한가. 향신료로만 쓴 것이 아니다. 상하기 쉬운 음식 재료인 소(팥, 콩, 밤, 깨)를 넣었기에 세균 번식을 억제해야 했는데 솔잎이 제격이었다.

 

솔잎에서는 피톤치드(phytoncide)가 발산되는데 그 양이 일반 나무에 비해 10배나 된단다. 피톤치드는 식물이 미생물들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발산하는 살균 물질로서 공기 중의 세균 침입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그러니 시루에서 꺼낸 송편은 솔잎을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보관하는 것이 좋다. 솔잎을 하나씩 떼어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솔잎에 눌려 격자무늬가 새겨진 송편을 한입에 넣으면 입안 가득한 솔 향이 비로소 한가위를 모셔 오는 것이다.

 

아궁이 -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아궁이 -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나의 소나무는 외갓집 부엌에 있다. 1970년대에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방학만 오면 박하사탕 한 봉지를 들고 충북 보은으로 가는 시외버스에 서둘러 올랐다. 겨울방학 때면 읍내로 마중 나온 외할머니와 눈길을 걸어 외갓집에 도착했다. 외할머니는 꽁꽁 언 내 손을 아랫목으로 이끌었지만, 나는 곧바로 저녁밥 짓는 부엌으로 달려가 무쇠솥이 걸린 아궁이 앞에 쪼그려 앉아 불을 지폈다.

 

그때의 땔감이 바로 소나무 가지였다. 겨울나기 땔감으로 가을부터 외할아버지께서 틈틈이 지게를 지고 산에 올라가 낫으로 베어온 시든 소나무 가지들이 부엌 한쪽에 켜켜이 쌓여 있었다. 어린 손아귀로도 충분히 잡히는 그 가지를 환하게 불붙은 아궁이 속에 집어넣으면 솔잎부터 불이 번져 방사형으로 활활 타올랐다. 불장난의 재미였지만, 그렇게 나는 가만히 쪼그려 앉아 붉은 얼굴로 ‘존재의 치열한 소멸’을 오래도록 바라봤다. 돌이켜 보면, 그것으로 나는 초등교육의 방학 숙제를 다 한 셈이었다.

 

 

※ 저자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다.

 


※ 편집자주
뉴스를 보다보면 무엇인가를 분석해서 설명을 해주는 내용이 대다수입니다. 그래야 원인을 정확하게 찾고, 대책을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가끔은 고개를 들어 사물을 그대로 보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대상을 온전히 바라보면 분석한 내용을 종합할 수 있는 통찰력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시인의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는 ‘생활의 시선’을 매주 연재합니다. 편안한 자세로 천천히 읽으면서 감정의 움직임을 느껴보세요.

 

 

카카오스토리 네이버밴드 구글플러스

2015년 09월 26일 15:00 프린트하기

 

혼자보기 아까운 기사
친구들에게 공유해 보세요

네이버밴드 구글플러스

이 기사가 괜찮으셨나요?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3 + 5 = 새로고침
###
과학기술과 관련된 분야에서 소개할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 고발 소재 등이 있으면 주저하지 마시고, 알려주세요. 제보하기

관련 태그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