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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토불이 과학연구 노벨상 거머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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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06일 18:00 프린트하기

작은 알약을 받아든 사람들의 얼굴에서 환한 미소가 피어오르던 순간을 나는 영원히 잊을 수 없다.

- 윌리엄 캠벨

 

2014년 서아프리카를 휩쓴 에볼라 역병은 지구촌 보건정책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치사율 40%에 이르는 무시무시한 신종 전염병이지만 못사는 나라의 풍토병이었기 때문에 40년 가까이 동안 간헐적으로 발생했음에도 치료약이나 백신 개발이 지지부진하다 지난해 급격하게 퍼지자 부랴부랴 연구에 뛰어드는 모습에서 ‘사람 보다는 돈’이라는 냉혹한 현실을 깨닫게 했다.

 

그래서였을까.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은 주로 가난한 사람들이 큰 혜택을 받은 항기생충 의약품을 개발한 연구자들에게 돌아갔다. 상의 절반은 회선사상충증(Onchocerciasis, 일명 하천 실명(river blindness))과 림프사상충증(lymphatic filariasis) 치료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아버멕틴(Avermectin)을 발견하는 데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일본의 오무라 사토시 기타자토대 명예교수와 아일랜드 출신의 윌리엄 캠벨 미 드류대 교수가 받았다. 나머지 절반은 전통 약초인 개똥쑥(중국명 靑蒿(청호))에서 말라리아 치료제 성분인 아르테미시닌(Artemisinin)을 분리해낸 중국의 투 유유 전통의학연구원 교수가 받았다.

 

●1980년대 최고의 동물의약품

 

먼저 아버멕틴부터 보면 시작은 1960년대 후반 일본 기타자토연구소에서 근무하던 오무라 사토시의 연구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생물학과 천연물화학을 공부한 오무라 박사는 일본 각지의 토양을 채취해 항균성분을 만드는 미생물을 찾고 배양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1971년 방문연구원으로 미국 웨슬리안대 막스 티슬러 교수팀에 머물렀는데, 티슬러는 교수로 부임하기 전에 미국의 거대 제약회사 머크의 연구소(MDRL) 책임자였다. 항생물질 연구에 관심이 많았던 티슬러는 오무라의 토양미생물 컬렉션에 관심을 보였고 기타자토연구소와 머크연구소 사이에 다리를 놓아줬다.

 

오무라는 토양미생물 가운데서도 스트렙토미세스속(streptomyces)에 관심이 많았는데, 유명한 항생제인 스트렙토마이신도 여기서 발견했다. 오무라는 수천 가지 시료에서 유효 물질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50여 균주를 골라 힘들게 배양조건을 찾아나갔다.

 

머크연구소의 기생충전문가 윌리엄 캠벨은 오무라 교수(1975년 기타자토대로 옮겼다)로부터 받은 균주를 갖고 기생충에 감염된쥐를 대상으로 약효실험을 했다. 그의 목표는 동물의 기생충약을 찾는 것. 그 결과 한 균주에서 탁월한 효과가 있었고 추가 실험을 통해 아버멕틴이라는 분자가 활성을 띤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얘기를 들은 오무라 교수는 아버멕틴을 만드는 균주에 스트렙토미세스 아버멕티니우스(Streptomyces avermectinius)라는 학명을 붙여줬다.

 

쥐에 이어 기생충에 감염된 양, 돼지, 개에서도 탁월한 효과를 보였다. 연구자들은 아버멕틴의 분자 구조를 조금씩 바꿔 약효가 더 강한 물질이 있나 찾았고, 이중결합 자리 하나에 수소를 첨가한 분자(이버멕틴, Ivermectin)가 정말 효과가 더 좋다는 걸 발견했다. 머크사는 1978년 미 농무부의 시판 승인을 받고 이버멕틴을 이보멕(Ivomec)이라는 상표명으로 내놓았다. 동물 기생충 구제에 탁월한 효능을 보인 이보멕은 1980년대 최고의 동물의약품 자리에 오르며 머크에 막대한 이익을 가져왔다.

 

● 거대 제약회사는 비정하다?

 

1977년 어느 날 캠벨은 이버멕틴이 말의 사상충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실험결과를 검토하다 주목할 발견을 한다. 말에 감염하는 사상충(Onchocerca cervicalis)과 사람의 회선사상충증을 일으키는 사상충(Onchocerca volvulus)이 같은 속으로 가까운 종이라는 사실이었다. 이는 이버멕틴이 사람의 기생충 질병을 치료하는데도 효과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캠벨은 상사에게 인간 기생충을 구제하는 약물을 개발하고 싶다는 메모를 전했고 몇 단계를 거쳐 당시 연구소 소장이던 로이 바겔로스(Roy Vagelos)의 수중에 들어갔다. 바겔로스는 캠벨에게 직접 연구를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1979년 회사의 연구개발심사위원회에서 캠벨은 이버멕틴이 회선사상충증 치료제가 될 수 있다는 데이터를 발표했다.

 

바겔라스
아버멕틴의 유사체인 이버멕틴이 인간기생충약으로 개발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미국 거대제약회사 머크의 CEO 로이 바겔로스. - 화학유산재단 제공

1975년 미국 워싱턴의대 교수에서 머크사 연구담당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바겔로스는 생화학자로 콜레스테롤저하제 메바코를 개발한 실력자다. 미국 와튼스쿨의 마이클 유심 교수가 1998년 출간한 책 ‘리더에게 결정은 운명이다’의 1장 주인공인 바로 바겔로스다. 책에서는 동물의약품 이버멕틴이 인간의약품이 되는 과정이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다.

 

“우리는 처음부터 그 프로젝트의 채산성이 의심스럽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가 그렇게 생각한 것은 신약을 구매할 잠재고객이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사람들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훗날 바겔로스의 회고처럼 성공적인 동물의약품을 인간에까지 적용하려다가 만에 하나 부작용이라도 나면 동물시장까지도 흔들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사진의 격렬한 반대에도 바겔로스는 프로젝트를 밀어붙였다. 수백만 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는 연구원들의 희망을 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1980년 열대병전문가인 모하메드 아지즈의 지휘아래 서아프리카 주민들을 대상으로 1차 임상시험이 실시됐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사상충에 감염되면 극심한 피부가려움과 각막염증으로 결국 실명하게 돼, 강(매개 곤충인 흑파리 서식지)을 낀 마을에는 실명자가 가득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주민들은 알약 하나를 먹고 다음날부터 가려움증이 사라지는 기적을 체험하고 환호했다.

 

1985년 머크사의 대표가 된 바겔로스는 1987년 이버멕틴의 시판을 위한 승인절차에 들어갔다. 그러나 약값 책정을 두고 이사회는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한 알에 최소 3달러는 돼야 하는데 이 약이 필요한 사람들은 꿈도 꿀 수 없는 금액이다. 게다가 아프리카 오지 마을에 약품을 전달하는 것도 문제다.

 

프랑스 식약청(과거 아프리카 식민지였던 나라들의 보건 업무를 대행해주고 있는)에 승인을 신청한 상태에서 바겔로스는 비용을 지불할 기관을 찾아다녔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이런 와중에 임상책임자 아지즈가 “신약을 서부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들에게 기부하자”고 공식 건의했다.

 

바겔로스는 프랑스 식약청의 승인을 하루 앞 둔 1987년 10월 21일 이사회에 알리지 않고 기자회견을 열어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신약을 무료로 나눠주겠다고 선언했다. 바겔로스는 훗날 “나는 기적의 신약을 실험실의 선반 위에서 썩혀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렇게 해서 이버멕틴이 인간의약품(상표명은 멕티잔(Mectizan))으로 다시 태어났다.

 

1989년 윌리엄 캠벨은 서아프리카 토고를 방문해 멕티잔 배급 현장을 지켜봤다. 앞에 인용한 문구는 이 광경을 회상하면서 캠벨이 한 말이다. 1987부터 1997년까지 10년 동안 멕티잔 무상 공급으로 머크가 입은 손실은 2억 달러(약 2300억 원)에 달한다. 그러나 과학자들의 열정과 사명감, 집념 덕분에 가난한 나라 사람들 수천만 명이 혜택을 누렸고(1년에 한  두 알만 먹으면 된다!) 시각상실을 숙명처럼 기다려온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 현재 세계보건기구(WHO)는 2020년에는 림프사상충증을, 2025년에는 회선사상충증을 완전히 박멸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 중국과학자 노벨상수상은 마오쩌둥 덕분?

 

인류 역사에서 악명 높은 기생충 전염병인 말라리아는 지금도 매년 50만 여명이 목숨을 잃는 무시무시한 질병이다. 무엇보다도 아직 백신이 개발되지 않아 ‘모기장’이 가장 확실한 예방책인 게 현실이다. 그나마 1980년대 말라리아 치료제 아르테미시닌이 나오지 않았다면 상황은 훨씬 더 나빴을 것이다.

 

2013년 출간된 ‘Know 말라리아, No 말라리아’라는 재미있는 제목의 책(저자 이동찬 씨는 용인외국어고등학교 교사인 것 같다)의 5장 ‘기적의 약을 찾기 위해’를 보면 아르테미시닌 발견의 뒷얘기가 나와 있는데 꽤 흥미롭다. 먼저 말라리아약 개발의 역사를 잠깐 돌아보자.

 

수천 년(기록만 따져서) 동안 말라리아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구대륙의 사람들은 남아메리카 주민들이 키나라는 나무의 껍질을 열병의 치료제로 이용한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됐다. 그 뒤 프랑스 화학자들이 키나 껍질에서 유효성분을 분리해냈는데, 이게 바로 퀴닌(Quinine)이다. 제1차 세계대전 때 퀴닌을 구하지 못해 남부유럽 전장에서 고생한 독일은 말라리아약 개발에 뛰어들었고 1932년 메파크린(mepacrine)을 합성하는데 성공했다.

 

그 뒤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역시 말라리아약이 부족해 고생하던 미국은 새로운 말라리아약 개발에 착수해 혁신적인 치료제 클로로퀸(Chloroquine)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클로로퀸은 스위스의 화학자 폴 헤르만 뮐러가 합성한 살충제 DDT(모기 소탕)와 짝을 이뤄 말라리아 박멸에 나섰다. 그러나 두 약물에 대해 내성을 지니는 개체들(말라리아원충과 모기)이 나오기 시작하고 DDT의 환경유해성이 부각돼 사용이 금지되면서 1960년대 들어 말라리아는 다시 만연하기 시작했다.

 

당시 베트남 전쟁에 관여하고 있던 중국은 자국병사들의 말라리아 감염으로 골치가 아팠다. 결국 1967년 새로운 말라리아 치료제를 찾는 ‘프로젝트 523’이 출범했다. 이 대형 프로젝트에는 500명이 넘는 과학자와 의사들이 동원됐는데 연구에 전념할 수 있게 많은 혜택을 받았다. 당시는 문화대혁명 기간으로 지식인들도 삽과 괭이를 들고 들판으로 달려가던 때였다.

 

프로젝트의 핵심은 중국 전통의학에서 쓰이는 약초에서 말라리아약을 찾는 일이었다. ‘Know 말라리아, No 말라리아’에 따르면 여기에선 “고대 중국 의학이 서양 의학보다 더 우수하다”는 마오쩌둥의 신념이 반영됐다고 한다.

 

당시 중국전통의학연구원에 있던 투 유유 교수는 중국 의학문헌을 섭렵했고 그 결과 열병을 다스리는 처방에 청호(靑蒿)라는 약재가 즐겨 쓰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자들은 문헌에 기록된 방식으로 청호 추출물을 얻어 항말라리아 효과를 시험했지만 결과가 들쭉날쭉했다.

 

고민하던 투 교수는 1600여 년 전인 340년 당시 중국 동진의 도사(연금술사)이자 의약학자였던 갈홍(葛洪)이 남긴 기록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 즉 통상적으로 약재는 은근한 불에 오랜 시간 달이지만 청호의 경우는 잎을 찬 물에서 우려내라고 써있었던 것. 투 교수팀은 에탄올을 이용해 추출하던 기존 방법 대신 차가운 에테르(유기용매)를 써서 청호 추출물을 얻었다. 그리고 동물실험을 한 결과 말라리아 기생충이 100% 죽었다. 투 교수팀은 이 추출물에서 유효성분을 분리해 청호소(靑蒿素)라고 불렀다. 바로 아르테미시닌이다.

 

중국 동진시대의 도학자이자 의약학자였던 갈홍. 투유유 교수는 갈홍이 남긴 문헌에서 개똥쑥 추출법의 영감을 얻어 아르테미시닌을 분리하는데 성공했다. 일본의 문헌에 있는 갈홍의 모습. - 위키피디아 제공
중국 동진시대의 도학자이자 의약학자였던 갈홍. 투유유 교수는 갈홍이 남긴 문헌에서 개똥쑥 추출법의 영감을 얻어 아르테미시닌을 분리하는데 성공했다. 일본의 문헌에 있는 갈홍의 모습. - 위키피디아 제공

투 교수팀은 이 놀라운 연구결과를 1985년 발표했지만 서구 의학계의 시선을 싸늘했다. 재현실험을 통해 효과를 확인한 뒤에도 임상시험을 거쳐야 한다며 즉각적인 상용화에 반대했다.

 

반면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처방에서 청호를 써온 걸 아는 중국으로서는 인체안전성에 자신이 있었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아르테미시닌이 새로운 말라리아치료제로 세상에 나왔고, 증가추세로 돌아섰던 말리리아는 지난 15년 사이 환자수가 다시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현재 아르테미시닌은 너무나 소중한 약물이기 때문에 이 약물에 내성을 갖는 말라리아 원충이 나오는 걸 막기 위해 단독으로 쓰지 않고 다른 약과 섞어 쓰고 있다. 이를 ‘아르테미신 기반 조합 요법’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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