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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초의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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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초의 과학

2015.10.12 18:00

카나비스(대마)는 화합물의 보물상자다.

- 로저 퍼트위, 영국 애버딘대 약학자

 

필자는 사회과학 서적을 거의 읽어보지 않았고 특히 법에 관해서는 그나마 간접적으로 연관된 책인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수년 전 읽은 게 전부이지만 요즘은 이쪽 책도 좀 읽어봐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어떤 범죄에 대해 증거가 확실할 경우 누가 재판을 해도 동일한 결과가 나온다고 생각했는데(자연과학의 법칙처럼) 최근 뉴스를 보면 그게 아닌 것 같기 때문이다. 똑같은 범죄를 놓고도 판사의 성향(취향)에 따라 판결이 180도 바뀌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1심에서 중형을 받아도 ‘혹시나’하는 기대감, 즉 어떤 취향의 판사에게 배당되느냐에 따라 대폭 감형을 받을 수도 있으므로 2심, 3심까지 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취향은 판사 개인뿐 아니라 국가 차원에도 존재한다. 즉 어떤 나라들에서는 아무 문제가 안 되는 반면 어떤 나라들에서는 범죄로 취급되는 행위가 꽤 있다. 음주, 동성애, 간통, 매춘 같은 것들이다. 심지어 껌 씹는 것도 불법인 나라가 있다. 싱가포르에서는 껌을 씹다 걸리면 1000싱가포르달러(약 80만 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합법적으로 껌을 씹으려면 치과 의사의 처방을 받아 약국에서 사야한다.

 

절도나 강도, 살인 같은 보편적인 범죄를 저질러 법정에 서면 할 말이 없겠지만, 나라나 문화의 취향에 따라 범죄로 분류된 행동을 하다 잡히면 좀 억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범죄가 아닌 행위를 범죄로 규정한 나라에서는 범법자에 관대한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지난 2월 간통법이 폐지되면서 이제 우리나라도 간통이 범죄가 아니지만, 수년 전부터 거의 적용되지 않았던 게 그런 예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합법인 음주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이슬람 국가들은 이를 어길 경우 강력하게 처벌한다.

  

● 마리화나가 합법인 유일한 나라는?

 

국가의 취향에 따라 범죄 여부와 처벌 강도가 결정되는 또 다른 사례가 대마초(마리화나)다. 우리나라는 마리화나 흡입은 물론 소지만 해도 강력한 처벌을 내리지만 다른 나라들도 다 그런 건 아니다. 자국 내 일자리가 없어 영어강사를 하러 우리나라에 온 영어권 젊은이들이 마리화나를 피우거나 소지하다가 적발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 눈에는 엄청난 일처럼 보이지만 이 친구들은 좀 당황스러울지도 모른다. 자국에서도 불법인 건 맞지만 최근 수년의 우리나라 간통죄처럼 소량 소지하는 건 신경도 안 쓰기 때문이다.

 

 

대마(삼)는 맥주의 원료로 쓰이는 홉과 가까운 식물이다. 대마에 대한 식물학적 연구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상태로, 식물학자에 따라 대마를 한 종(Cannabis sativa) 또는 두 종(C. sativa와 C. indica) 또는 세 종(앞의 두 종에 C. ruderalis)으로 분류한다. - 위키피디아 제공
대마(삼)는 맥주의 원료로 쓰이는 홉과 가까운 식물이다. 대마에 대한 식물학적 연구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상태로, 식물학자에 따라 대마를 한 종(Cannabis sativa) 또는 두 종(C. sativaC. indica) 또는 세 종(앞의 두 종에 C. ruderalis)으로 분류한다. - 위키피디아 제공

현재 마리화나가 완전히 합법화 된 나라는 남미의 우루과이가 유일하다(2014년부터). 하지만 세계적으로 마리화나 규제가 느슨해지고 있어서 미국의 경우도 지난해부터 4개 주와 컬럼비아특별구(워싱턴DC)에서는 합법이다. 네덜란드에서는 완전 합법은 아니지만 이미 1976년 마리화나를 가벼운 약물(soft drug)로 지정해 카페 같은 지정된 장소에서 흡입할 수 있게 법을 바꿨다. 이러다보니 현재 대부분의 유럽국가들은 개인이 마리화나를 소량 갖고 있을 경우 처벌하지 않는다고 한다.

 

 

마리화나에 대한 각국의 입장. 현재 우루과이와 미국의 네 주와 워싱턴DC가 공식적으로 합법화했고 네덜란드, 방글라데시, 북한도 사실상 합법화한 곳이다(파란색). 또 많은 나라들이 불법이지만 처벌은 않거나(주황색) 종종 방치한다(분홍색). 그러나 우리나라를 비롯해 많은 나라에서 여전히 강력하게 불법으로 규제하고 있다(빨간색).  - 위키피디아 제공
마리화나에 대한 각국의 입장. 현재 우루과이와 미국의 네 주와 워싱턴DC가 공식적으로 합법화했고 네덜란드, 방글라데시, 북한도 사실상 합법화한 곳이다(파란색). 또 많은 나라들이 불법이지만 처벌은 않거나(주황색) 종종 방치한다(분홍색). 그러나 우리나라를 비롯해 많은 나라에서 여전히 강력하게 불법으로 규제하고 있다(빨간색).  - 위키피디아 제공

 

법률 지식이 전혀 없는 필자가 왜 뜬금없이 마리화나 얘기를 하나 의아한 독자들이 있을 텐데, 학술지 ‘네이처’ 9월 24일 자에 실린 특별부록 ‘카나비스(Cannabis)’를 읽고 나서 든 생각이다. 카나비스는 대마의 학명(속명)이다. ‘네이처’가 18쪽을 할애해 대마를 다룬 건 우리가 마약으로만 알고 있는 대마가 의약품으로 잠재력이 클 뿐 아니라 신경과학을 연구하는 데도 커다란 영감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 대마가 20세기 초 마약으로 지정되면서 연구가 제한됐다가 최근 들어 규제가 느슨해지면서 연구가 좀 더 자유로울 수 있는 상황으로 바뀌는 것도 작용했을 것이다.

 

중국 후한시대의 명의 화타의 초상. 화타는 대마 추출물을 마취제로 써서 환자를 수술했다고 한다. - 위키피디아 제공
중국 후한시대의 명의 화타의 초상. 화타는 대마 추출물을 마취제로 써서 환자를 수술했다고 한다. - 위키피디아 제공

대마(大麻)의 우리말 이름은 삼이다. 같은 식물임에도 삼이라고 부르면 삼베, 즉 천이 떠오르는 반면 대마라고 부르면 대마초가 연상된다. 흥미롭게도 영어에서도 같은 식물을 두고 섬유나 기름의 측면에서는 ‘hemp’이라는 이름을 쓰고 마약의 측면에서는 ‘marijuana(마리화나)’라는 이름을 쓴다. ‘네이처’ 특별부록에서 제목으로 학명인 카나비스를 쓴 이유일 것이다.

 

● 의료용 사용 4700년 역사

 

인류와 카나비스의 관계는 구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가장 오래된 고고학 증거로는 타이완에서 발견된 1만 년 전 끈이다. 즉 인류는 튼튼한 마의 섬유로 끈이나 천을 만들었고 기름이 풍부한 씨앗을 먹었다.

 

카나비스가 의약품으로 사용된 최초의 예는 기원전 2700년 중국의 전설상의 제왕인 신농씨로 기록돼 있다. 즉 신농씨가 알려준 여러 처방들이 구전돼 오다 200년 경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이라는 책으로 정리됐는데, 이 가운데 카나비스도 들어있다. 이 무렵 활약한, ‘삼국지’에도 나오는 의사인 화타(華佗)는 카나비스 추출물로 환자를 마취한 뒤 수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뒤에 나오겠지만 현재 카나비스 의학 연구에서 가장 핫한 분야가 진통제다.

 

 

이처럼 오래 전부터 카나비스의 추출물은 의약품으로 쓰여 왔는데 20세기 들어 마약으로서의 부작용이 부각되면서 재배와 사용이 불법화됐다. 그 결과 다른 어떤 약용식물보다도 연구가 부진해 불과 50여 년 전까지도 카나비스에서 어떤 성분이 향정신성 작용을 일으키는지조차 모르는 상태였다.

 

‘의약용 카나비스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스라엘 헤브루대의 화학자 라파엘 머슐럼(오른쪽). 1964년 마리화나에서 향정신 작용을 일으키는 주성분인 THC를 발견했다. - 앨런 샤커포드 제공
‘의약용 카나비스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스라엘 헤브루대의 화학자 라파엘 머슐럼(오른쪽). 1964년 마리화나에서 향정신 작용을 일으키는 주성분인 THC를 발견했다. - 앨런 샤커포드 제공

이런 세계적인 조류에 역행하는 나라가 한 곳 있었으니 바로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은 카나비스가 오랫동안 약용식물로 쓰인 역사를 인정해 카나비스 연구를 막지 않았고 그 결과 카나비스를 연구하고 싶어 하는 과학자들이 이스라엘로 모여들었다. 올해 85세인 이스라엘 헤브루대의 화학자 라파엘 머슐럼 교수는 의약용 카나비스 연구의 선구자로 오늘날 ‘의약용 카나비스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 1964년에야 향정신 효과 성분 규명

 

1930년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태어난 머슐럼은 1949년 이스라엘로 이주했다. 1960년대 바이츠만연구소에서 카나비스의 활성성분을 찾은 연구를 시작했고, 1964년 마침내 향정신 작용을 일으키는 주성분인 THC(tetrahydrocannabinol)을 발견했다. 그 전해에는 CBD(cannabidiol)의 구조를 밝히기도 했다. 두 분자는 오늘날 의약용 약물로 폭넓게 연구되고 있다.

 

추가 연구 결과 카나비스에는 THC와 CBD 같은 독특한 구조의 분자들이 100여 가지나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들을 아울러 카나비노이드(cannabinoid)라고 부른다. 참고로 최초로 분리된 카나비노이드는 카나비놀(cannabinol)로 1899년 영국의 화학자들이 규명했는데, 향정신 효과는 미미하다. 한편 카나비노이드가 아닌 분자들도 400여 가지나 존재한다. 한마디로 카나비스는 천연화합물의 보고인 셈이다.

 

1980년대 THC의 향정신 작용 메커니즘을 연구하던 과학자들은 놀라운 발견을 한다. 즉 뇌에서 THC에 결합하는 수용체를 발견한 것. CB1(cannabinoid receptor type 1)이라고 명명된 이 수용체의 존재는 우리 몸에서 카나비노이드와 비슷한 신호분자를 만들고 있음을 강력하게 시사했다. 마리화나를 피울 때 쾌감을 전달하는 게 존재 이유가 아니라는 말이다. 마치 모르핀이 결합하는 수용체가 원래는 우리 몸이 만드는 엔돌핀 같은 내인성모르핀의 타깃인 것처럼.

 

● 1980년대부터 의약품으로 쓰여

 

과학자들의 예상대로 1992년 내인성카나비노이드(endocannabinoid)인 아난다미드(anandamide)가 발견됐다. 이듬해에는 두 번째 카나비노이드 수용체인 CB2가 발견됐다. CB1이 주로 뇌에 존재하는 것과는 달리 CB2는 주로 면역계에 존재했다. 이런 발견들이 이어지면서 과학계에서 외면받던 카나비스가 서서히 주류과학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근 들어서 카나비스의 규제가 완화되면서 의약용 카나비스 연구가 탄력을 받고 있다.

 

1992년 최초로 발견된 내인성카나비노이드인 아나다미드의 분자구조. 내인성카나비노이드는 신경조절물질로 지금까지 150여종이 알려져 있다.  - 위키피디아 제공
1992년 최초로 발견된 내인성카나비노이드인 아나다미드의 분자구조. 내인성카나비노이드는 신경조절물질로 지금까지 150여종이 알려져 있다.  - 위키피디아 제공

사실 카나비노이드는 1980년대부터 의약품으로 쓰이고 있다. THC를 조금 변형한 분자인 나빌론(nabilone)과 드로나비놀(dronabinol)은 화학치료를 받은 암환자들의 구토방지제로 쓰이고 있다. 드로나비놀은 에이즈 환자의 식욕부진을 개선하는 효과도 있다. 한편 CBD(카나비디올)의 경우는 특정한 유형의 뇌전증(간질)에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별부록의 한 기사를 보면 기존의 어떤 약물도 듣지 않아 매주 300여 차례의 발작을 일으키는 5세 여아에게 CBD의 함량이 높은 추출물을 먹이자 3년이 지난 지금 발작 빈도가 한 달에 한 차례 수준으로 떨어진 사례가 나온다.

 

한편 영국 GW제약(이번 특별부록의 스폰서)은 2005년 다발성경화증 환자들이 보이는 근육경직을 치료하는, 입안에 뿌리는 약물 나빅시몰스(nabiximols, 상표명 사티벡스(Sativex))를 출시했는데 현재 27개 나라에서 승인을 받았다. 참고로 나빅시몰스는 THC와 CBD가 비슷하게 들어있는 카나비스 품종의 식물체에서 추출한 약물이다. 이 회사는 현재 나빅시몰스를 암환자용 진통제로 3상 임상시험을 하고 있다. 한편 THC와 CBD로 뇌종양(신경교종암)을 치료하는 2상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고 THCV라는 또 다른 카나비노이드로 유형2 당뇨병을 치료하는 임상도 진행되고 있다. 심지어 CBD로 정신분열증을 치료하는 임상도 진행되고 있다.

 

● 우리 몸에서 가장 흔한 수용체

 

모르핀도 의약품으로 변신해 강력한 진통제로 쓰이고 있으므로 카나비노이드라고 해서 의약품이 안 될 건 없지만 어떻게 이처럼 다양한 질병에 대해서 가능성이 검토되고 있는 것일까. 이를 이해하려면 카나비노이드 분자가 결합하는 타깃, 즉 카나비노이 수용체를 알아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카나비노이드 수용체 2종이 밝혀졌는데, 우리 몸에 폭넓게 분포할 뿐 아니라 다른 어떤 수용체 시스템보다도 그 숫자가 많다. 따라서 이를 타깃으로 하는 내인성카나비노이드는 신경조절물질(neuromodulator)일 것이다. 즉 특정 뉴런에 국한돼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신경계 전반에 걸쳐 작용한다는 말이다. 지금까지 확인된 내인성카나비노이드 관련 물질은 150가지가 넘는다.

 

85세임에도 여전히 연구에 열심인 라파엘 머슐럼 교수는 내인성카나비노이드 시스템이 기억과 정서반응, 학습 등 광범위한 기능에 관여한다며 “이처럼 다양한 내인성카나비노이드의 존재가 개인차를 설명할 수 있다. 즉 이들 화합물 사이의 상대적인 비율 차이가 각 개인의 성격차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추측하기도 했다. 결국 내인성카나비노이드 시스템을 건드리는 카나비노이드 약물 역시 종류와 조성비율에 따라 다양한 약효를 내는 것으로 보인다. 바꿔 말하면 의약용 카나비스 연구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말이다.

 

그런데 문득 이런 의문이 든다. 불과 50여 년 전에는 그렇게 심하게 마리화나를 규제하던 나라들이 왜 최근 들어 고삐를 늦추는 것일까. 그것도 과학을 선도하는 서구의 나라들에서? 이는 마약으로서의 마리화나의 폐해가 아편 같은 강력한 마약에 못 미친다는 걸 인정한 게 아닐까. 여러 정황상 그런 것 같다.

 

특별부록의 기사를 봐도 마리화나의 문제로 가장 심각하게 다루는 게 청소년들의 과다흡입에 따른 인지력 발달저하 측면이다. 캐나다 캘거리대의 매튜 힐 교수는 마리화나가 정신분열증을 유발한다는 속설에 대해 근거가 희박하다는 최근 연구결과들을 소개한 기고문을 싣기도 했다.

 

마리화나를 피워본 적이 없어 그 효과가 어떤 건지 짐작할 수도 없는 필자로서는 아직 판단이 서지 않지만, 식품의약국(FDA) 같은 어마어마한 조직이 있는 미국에서 몇몇 주들의 마리화나 합법화(개인 구매량에 제한은 있다)를 방치하는 현실을 보면, 우리가 ‘선악의 문제’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많은 일들이 실은 ‘취향의 문제’일 뿐이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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