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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88] 마이마이로 이선희 노래 듣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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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88] 마이마이로 이선희 노래 듣던 시절

2015.11.20 18:00

1988년 쌍문여고는 경주로 수학여행을 갔습니다. 단체 대절 고속버스를 타고 불국사로, 석굴암으로 우르르 다니다 저녁에 숙소에 돌아와서 장기자랑 행사를 하는 모습이 저의 고등학교 시절 수학여행 기억과 거의 다를 바 없더군요.

 

덕선이는 장기자랑 대회에서 1등을 하기 위해 친구들과 소방차의 ‘어젯밤 이야기' 안무를 열심히 연습합니다. 같이 나가기로 한 두 친구가 다쳐서 대회에 나갈 수 없게 되자 같은 시기, 같은 곳으로 수학 여행 온 옆 동네 남학교에 다니는 선우, 정환, 동룡을 대리 출장시켜 기어코 1등상을 받아냅니다.

 

덕선의 장기자랑 - tvN
덕선의 장기자랑 - tvN '응답하라 1988' 제공

 

● 88년 그 시절 완소 아이템 마이마이

 

덕선이가 이렇게 1등을 하려고한 건 바로 상품으로 걸린 휴대용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 ‘마이마이' 때문이었습니다. 마이마이! 비록 소니 워크맨의 간지에는 미치지 못 했지만, 언제 어디서나 나만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마이마이는 80~90년대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대표 완소 아이템이었습니다 .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라는 이름은 너무 어색하죠? 사실 가장 익숙한 말은 바로 ‘워크맨'일 겁니다. 일본 소니가 1979년 내놓은 휴대용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의 상표가 ‘워크맨’입니다. 워크맨은 휴대용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라는 제품군을 만들었고 스스로 그 대명사가 됐습니다. 소니를 단순한 전자 회사에서 문화를 창조해 낸 회사로 만들었지요. 오늘날 애플처럼요.

 

소니는 원래 프레스맨이라는 소형 카세트 테이프 녹음기를 생산하고 있었습니다. 소니의 일부 기술자들이 이걸 재생 전용으로 개조해 들고 다녔고, 소니를 창업한 모리타 아키오 사장이 그 모습을 보고 들고 다닐 수 있는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 제품을 구상했다고 합니다. 소니 공동 창업자인 이부카 마사루가 잦은 출장길에 비행기 안에서 오페라를 듣고 싶어 제품 개발을 제안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초기 워크맨은 녹음 기능도 없애고, 스피커도 없애 헤드폰으로만 들을 수 있게 했습니다. 불편한 제품이었지만, 핵심 기능만 넣었기에 들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작게 만들 수 있었고 폭발적 인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1979년 발매된 소니의 최초 워크맨 TPS-L2 - flickr(Mike Licht) 제공
1979년 발매된 소니의 최초 워크맨 TPS-L2 - flickr(Mike Licht) 제공

 

● 세상을 바꾼 워크맨

 

1979년 판매된 워크맨은 이후 세계적으로 2억대 이상 팔린 초대형 히트 상품이 되었습니다. 제품도 성공했지만, 사람들이 음악을 듣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 버리고 젊은 세대에 새로운 문화와 생활 양식을 만들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는 제품입니다. 

 

그 이전까지 음악은 거실에서 가족과 함께, 다방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듣는 것이었습니다. 3040 이전 세대라면 커다란 전축이 거실에 놓여있던 풍경이 기억나실 겁니다. 워크맨의 등장과 함께 어디서나 - 방에서나, 출근길 버스 안에서나, 공원에서 조깅을 할 때나 - 헤드폰을 끼고, 세상과 분리된 나만의 음악을 듣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더 많은 곳에서 더 많은 음악을 들을 수 있으니 음악 시장 확대에도 기여했지요. 다른 사람 신경 쓰지 않고 개성에 맞는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어 음악의 다양성에도 기여하지 않았을까요? 음악은 청소년과 청년층에 빼놓을 수 없는 문화로 자리잡았습니다.

 

응답하라 1988 첫 회를 보면 서울대학교에 다니는 큰언니 보라가 헤드폰을 귀에 꽂고 이선희 앨범이 담긴 카세트 테이프를 들으며 잠든 장면이 나옵니다. 자세히 보면 ‘Goldstar’라는 상표가 보입니다. 좁은 반지하집에서 동생과 방을 함께 쓰는 보라에게 헤드폰은 자신만의 세계로 가는 통로 아니었을까요? 그리고 덕선이가 자기만의 그렇게 마이마이를 갖고 싶어했던 것에도 같은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삼성전자가 마이마이를 내놓은 것은 1981년이었습니다. 워크맨에 비해 2년 정도 늦었죠. 발매 당시 가격은 7만5000원이었습니다. 금성사(현 LG전자)의 ‘아하', 대우전자의 ‘요요'도 시장에 뛰어들었고, 산요 아이와 파나소닉 등 일본 제품도 있었습니다. 작은 기기 안에서 정교하게 작동하는 모터와 좋은 음질을 구현하기 위한 음향 기술 등이 품질을 갈랐습니다. 삼성과 금성은 젊은층을 겨냥한 대대적 마케팅에 나섭니다. 

 

이후 음악을 듣는 저장 매체가 카세트 테이프와 LP레코드에서 CD로 바뀌면서 휴대용 CD 플레이어가 등장합니다. 소니는 미니디스크라는 포맷도 만들었지만 별 호응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디지털 포맷으로 더 많은 음악을 더 좋은 음질로 저장하는 CD는 음악 시장을 통째로 바꾸었고, 휴대용 CD 플레이어를 들고 다니는 사람도 많아졌습니다.

 

파나소닉 CD플레이어 - wikipedia 제공
파나소닉 CD플레이어 - wikipedia 제공

 

● 음악의 지각 변동- MP3의 등장

 

하지만 디지털 포터블 음악을, 나아가 음악 시장 전체를 통째로 바꿔버린 것은 바로 90년대말부터 본격적으로 보급된 MP3였습니다.

 

MP3 포맷은 파일 크기를 줄이면서 들을만한 수준의 디지털 음원을 가능케 했습니다. 여러 소리가 함께 울릴 때, 인간의 귀는 큰 소리만 인식하고 작은 소리는 듣지 못 합니다. 이를 이용해 사람이 잘 듣지 못 하는 소리는 인코딩 과정에서 제거해 버려 파일 크기를 줄이는 것이 MP3 포맷의 원리입니다.

 

그 과정에서 음질 손실은 불가피하죠. ‘청각 마스킹'이라 불리는 이 원리는 1900년 경부터 이미 알려져 있었지만, 1980년대 말을 전후해 독일 프라운호퍼연구소 등에서 개발에 속도가 붙었고, 영상 압축 기술 표준 규격인 MPEG의 일부로 표준화되었습니다. MP3는 음질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파일 크기는 CD의 10분의 1 정도로 줄일 수 있었습니다.

 

용량이 작고 무한 복제가 가능한 MP3 포맷이 나오고 인터넷 망이 보급되면서 음악 소비의 중심은 급격히 PC와 인터넷으로 바뀌었습니다. 1997년 MP3 재생 소프트웨어 ‘윈앰프'가 나와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P2P 서비스 ‘냅스터'로 사람들이 공짜로 음악을 얻을 수 있게 되면서 100년 가까이 번성해 오던 음악 업계는 궤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습니다. 음악은 공짜라는 인식이 생긴 것도 이때죠.

 

MP3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휴대용 기기도 나오면서 기존 워크맨이나 CD플레이어를 빠르게 대체합니다. 플래시 메모리나 하드디스크를 사용, 훨씬 작은 기기에 많은 음악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 세계 최초의 MP3플레이어 제품은 바로 우리나라 새한정보시스템의 ‘MP맨'이었습니다. 1998년이었습니다. 이어 아이리버가 등장해 세계 시장을 휩쓸어버립니다.

 

새한정보시스템이 출시한 세계 최초 MP3플레이어
새한정보시스템이 출시한 세계 최초 MP3플레이어 'MP맨' - wikipedia 제공

 

하지만 우리나라의 전성 시대는 너무나 허무하게 끝나버렸습니다. 2001년 애플이 아이팟을 내놓은 겁니다. 쉽고 직관적인 인터페이스, 어여쁜(?) 디자인, 아이튠스 뮤직스토어와 연계한 편리한 원클릭 음악 구매 기능으로 시장을 제패합니다. 아이팟으로 확실히 재기에 성공한 애플은 이후 아이폰을 내놓으면서 오늘날 우리가 보는 애플로 성장합니다.

 

애플 MP3플레이어 - flickr(SOCIALisBETTER) 제공
애플 MP3플레이어 - flickr(SOCIALisBETTER) 제공

 

오늘날에는 더 이상 MP3 파일도 다운로드하지 않죠. 빨라진 무선 통신망을 이용해 언제 어디서나 스마트폰에서 스트리밍 방식으로 음악을 듣습니다. 스트리밍은 파일을 원할 때 실시간으로 쏴 주는 방식입니다. 무선 인터넷 속도가 느리던 몇년 전만 해도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올해로 워크맨이 탄생한지 36년이 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음악을 듣는 기기, 음악을 저장하는 매체, 음원의 형태 등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축에서 스마트폰으로, 거실에서 손끝으로 음악의 중심이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워크맨이 탄생시킨 트렌드 - 휴대용 기기로 언제 어디서나 자기만의 음악을 원하는 대로 듣는다 - 만은 변하지 않고 이어지고 있습니다. 덕선 이모는, 적어도 음악 듣기에 있어서는, 우리의 조상인 셈입니다. 

 

 

※ 필자소개
한세희. 연세대를 졸업하고 전자신문에서 기자 생활을 하며 인터넷, 소셜 미디어, 모바일 등의 분야를 열심히 취재했다. 인터넷과 모바일 기술의 발달 속에서 변화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관심이 크다. 기술과 세상의 변화를 따라다니며 쉽게 풀어쓰고 싶어한다. 요즘은 조직에 얽매이지 않고 잉여 인간 체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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