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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실험실’, 서울 모 대학원 피해학생 심층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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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26일 17:37 프린트하기

과학자의 부푼 꿈을 안고 두드린 대학원의 문.
처음엔 모든 게 신기하고 좋았다. 그러다 서서히 알게 된 교수님의 ‘나쁜 버릇’.
시도 때도 없이 일을 시키고 폭언이나 욕도 하기 시작했다.
모두, 들어가기 전엔 모르던 일이다. 대학원 입학을 앞두고 적지 않은 이공계 지망생이 고민하는 이 문제,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대학원은 인권의 사각지대인가. 국가인권위원회가 전국 1209개 대학원의 학생 1906명을 조사해 11월 13일 발표한 ‘대학원생 연구환경에 대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교수로부터 폭언․욕설에 시달리거나(10%), 구타를 당하는(1.2%) 학생이 있었다. 성차별(6.1%), 성희롱(3.7%), 성추행(2.0%)을 당하는 학생도 있었다.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가 14개 대학원 총학생회와 함께 전국 대학원생 235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뒤 2014년 10월 29일 발표한 ‘대학원생 연구환경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언어․신체․성적 폭력을 당한 학생이 총 31.8%에 이른다. 학생들은 왜 이런 ‘지옥의 실험실’에 제발로 들어간 걸까.
 
[부당한 대우, 협박하는 교수… ‘지옥의 실험실’ 피할 방법 있을까]
1. ‘지옥의 실험실’, 서울 모 대학원 피해학생 심층인터뷰

2. ‘지옥의 실험실’에 제발로 들어가는 학생들
3. 부당해도 억울해도 탈출하기 어려운 ‘지옥의 실험실’ 실체

 

GIB 제공
GIB 제공

대학원 실험실(랩)을 고르는 과정에서 고민이 많았다. 학부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박사과정 선배들은 한사코 자기 랩에 오지 말라며 손사래를 쳤다. 어떤 랩이 좋은지 정보를 얻기 힘들었다. 마침 관심 있는 주제를 연구하는 랩에서 인턴을 뽑아 지원했다. 인턴기간 동안 선배들은 좋은 이야기만 해줬다. 나중에 들어보니 내가 교수와 친한 줄 알고 그랬다고 한다.


지도교수님은 밥도 종종 사주시며 따뜻하게 대해주셨다. 일부 선배들이 교수님께 혼나고 주눅 들어있는 모습을 봤지만, 그건 그 선배들이 일을 잘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일만 잘하면 그런 일을 겪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인턴이 끝나고 석사에 지원했을 때도 교수님은 내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여기서 4~5년 더 연구해도 좋겠다는 판단이 섰고, 교수님의 권유로 석·박사 통합과정으로 전환했다.


● “잘해주시다가 돌변…나중엔 학위로 협박”


석박통합이 확정된 뒤로 교수님은 달라졌다. 하루가 다르게 실적압박의 강도가 세졌다. 작업을 서두르다보니 실수가 늘었고, 교수님의 화도 잦아졌다. 내게 “ADHD 환자”라며 “정신병원에 가봐라”는 욕도 서슴없이 퍼부었다. 일도 많았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아침 9시30분에 출근해 밤 8~10시에 퇴근했다. 토요일 오후에 일을 시키고 “월요일 아침에 보자”고 할 때도 종종 있었다. 그럴 때면 꼼짝없이 일요일에 나와야 했다.


하루에 많으면 4~5번씩 회의를 했다. 교수님을 만날 때마다 위장이 쫄렸다. 소화가 안 되고, 위장이 주먹 만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병원에 가보니 만성출혈성위염이라고 했다. 술을 끊고 약을 먹어도 낫질 않았다. 마침 공포기억에 대한 논문을 읽었는데, 논문에 나오는 쥐가 꼭 내 꼴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선배들이 늘 주눅 들어있던 이유도 그제야 보였다. 일단 대체로 생계유지가 안 되고 있었다. 교수님은 입학할 때 100만 원씩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50만 원밖에 주지 않았다. 부모님께 용돈을 받는 사람은 괜찮았지만, 아닌 선배들은 상당한 빚을 지고 있었다. 학위를 받는 시간도 다른 랩보다 오래 걸렸다. 한 선배는 박사과정만 8년째 하고 있었다. 특수기계를 다루는 사람인데, 손재주가 좋아서인지 교수가 내보내기 싫어하는 듯했다. 논문을 수십 번 수정하는 동안 속절없이 시간이 흘렀고 선배는 탈모에 시달렸다. 선배들을 보니 랩에 계속 남아있어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랩을 졸업하고 취직이 잘 안 된다는 사실도, 그동안 랩을 다니다 그만둔 사람이 절반을 넘는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았다.


폭언과 압박에 시달리며 1년 넘게 버틴 끝에, 지도교수를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교수님 입에서 당장 “배신자”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네가 연구실을 옮기면 내가 뭐가 되냐”고 했다. 연구실을 옮기는 게 그렇게 큰 죄인지 모르겠지만, 불가능해 보였다.


그럼 석사만 하고 졸업하겠다고 했다. 교수님은 집요하게 박사까지 하라고 강요했다. 나중에는 석사학위를 인질로 잡고 협박을 했다. 제1저자로 진행하고 있던 논문에서 내 이름을 빼고 동시에 학위를 주지 않겠다고 했다. 그래도 박사 진학을 거부하자 “극단주의자”, “인간말종” 등 험악한 말들이 쏟아졌다.


내가 연구를 하는 이유를 곱씹어봤다. 과학을 정말 하고 싶었던 이유는 ‘행복하기 위해서’였다. 지금 난 행복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행복하기 힘들 것 같다. 석사도, 과학도 포기하고 그만두려 한다.

 

 

※ 편집자 주
취재원 보호를 위해 여러 명의 사례를 섞었습니다.

 

 

※ 더 많은 과학기사를 2015년 12월호 과학동아에서 만나보세요.

 

 


변지민 기자

her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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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26일 17:37 프린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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