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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대호’] 호랑이의 귀환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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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대호’] 호랑이의 귀환을 기다리며

2015.12.17 10:23
2015년 12월 16일 개봉하는 영화 ‘대호’ 조선에 마지막 남은 호랑이와 그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 &credit 제공 제공
2015년 12월 16일 개봉하는 영화 ‘대호’ 조선에 마지막 남은 호랑이와 그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 &credit 제공 제공

<편집자 주> 영화 ‘대호’가 개봉했습니다. 지리산에 살고 있던 마지막 호랑이를 잡으려는 일본군과 ‘산군(호랑이 중의 호랑이를 호칭하는 말)’을 지키려는 어느 사냥꾼(최민식)의 이야기입니다. ‘대호’ 덕분에 호랑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이에 조선 시대에 살았던 호랑이의 삶에 대해 알려드립니다. 매일 업데이트 되는 소식, 놓치지 마세요~!

 

영화 ‘대호’가 개봉을 앞둔 가운데 한국 호랑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과연 한국에서 호랑이는 어떻게 살고, 어떻게 사라졌을까.  - (주)동아사이언스 제공
영화 ‘대호’가 개봉을 앞둔 가운데 한국 호랑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과연 한국에서 호랑이는 어떻게 살고, 어떻게 사라졌을까. - 과학동아 2013년 8월호, 전규만 그림

“각종 기록을 보면 호랑이는 조선시대까지도 한반도에 흔했다. 인적이 드문 산이 아니라 강가 수풀에서도 태연히 놀거나 사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이런 상태로 호랑이는 수천 년 동안 한반도에서 한민족과 더불어 살았다. 그런데 지금은 호랑이를 전혀 볼 수 없다. 어떤 일이 벌어졌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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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많던 호랑이는 다 어디로 갔을까

 

농지 개간과 사냥에 시달리던 호랑이는 결국, 19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는 시기에 한반도의 중남부 지역에서 사실상 절멸했다. 19세기 후반 샤를 달레 신부는 ‘한국 천주교회사’에서 “(한반도) 북쪽의 두 도를 빼놓고는 거의 어디나 산이 일궈져서 호랑이는 제 굴에서 쫓겨나 그 수가 훨씬 적어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개항 이후 조선을 찾은 많은 외국인들은 조선의 호랑이를 찾아 함경도, 평안도를 향해야 했다.

이 시기 남한 지역에서 호랑이가 절멸하게 된 원인은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먼저 일제의 해수구제정책이다. 일제는 호랑이 사냥을 위해 조직됐던 포수가 항일의병이 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무기 소지를 불법화했는데, 이 때문에 호랑이, 늑대 등의 맹수로 인한 피해가 다시 급격히 늘어났다. 이에 따라 일제는 한반도의 곳곳에 헌병을 파견해 맹수를 잡아들였다.

 

○ 17세기 후반부터 줄어든 호랑이, 일제시기에 절멸

 

하지만 해수구제정책에서 일본의 실제 역할은 미미했다. 경주 대덕산에서 호랑이를 잡은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이 호랑이는 사실 조선의 포수가 사냥한 것인데, 일본의 헌병이 가로채서 자신의 공으로 보고했다. 게다가 이 호랑이 가죽을 일본 천황 가에 충성의 표시로 바치고, 이를 보통학교 국어 독본에 실어 일제와 천황 가에 대한 충성을 요구했다.

 

1921년 경주 대덕산에서 호랑이를 잡은 모습(왼쪽)과 구한말 조선 포수의 모습(오른쪽) - 동아일보 제공
1921년 경주 대덕산에서 호랑이를 잡은 모습(왼쪽)과 구한말 조선 포수의 모습(오른쪽) - 동아일보 제공

 

일제는 서구 열강의 자본가들의 호피 수집도 지원했다. 제국주의의 우월성을 선전하면서 조선인들의 독립의지를 말살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앞장 선 것은 영국과 미국의 성공한 실업가들이었다. 1903년 전라도를 찾아 해남과 진도 일원에서 사냥한 영국의 포드 바클레이 일행, 1922년 함경도에서 호랑이를 잡은 루스벨트 일행 등이 그 예다. 일본의 민족적 색채를 드러낸 제국주의자도 있었다. 야마모토 타다사부로는 임진왜란에서 활약한 일본 장수 가토 기요마사의 후예임을 자처하면서 ‘호랑이 정벌군(정호군, 征虎軍)’을 조직해 함경도, 금강 산록, 전라도 일대에서 호랑이를 사냥했고, ‘정호기(征虎記)’라는 책까지 남겼다. 하지만 이들 사냥에는 대부분 조선의 명포수나 지역 주민들이 참여했다.

 

마지막으로 한국전쟁 뒤에 생긴 휴전선은 한반도에서 호랑이와 표범이 절멸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한반도의 남부 지역에 살았던 호랑이와 표범의 대부분은 17세기 후반 이래 백두대간에 형성된 생태축을 따라 이동해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휴전선으로 생태축이 인위적으로 단절되자 호랑이와 표범은 더 이상 남한 지역에 살아갈 수 없게 됐다.

 

○ 호랑이의 귀환을 기다리며

 

남한에 살던 호랑이 가운데 가장 마지막으로 사진을 남긴 것은 1921년 경주 대덕산에서 잡힌 호랑이다. 하지만 1930년대까지 호랑이를 잡았다는 다른 공식 기록도 적지 않다. 해방 이후에도 남한에서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제보도 있었고, 1960년대 초반에는 합천의 가야산 일원에서 표범이 잡혀 당시 동물원이 있던 창경원에 옮겨진적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야생의 한국 호랑이와 표범은 이렇게 우리의 곁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아직도 아직도 연해주와 만주에는 한반도를 포효하던 호랑이의 중심무리가 살아 있고, 백두산 일원에 살아있다는 주장도 있다.

 

호랑이의 존재는 한반도 생태계의 건강성을 보여주는 지표다. 또 한국인은 호랑이가 존재하는 생태 환경속에서 살며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켜왔다.

 

이제 한반도에서 호랑이를 복원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때다. 물론 넘어야 할 난관이 많다. 하지만 문화와 생태, 환경, 그리고 복잡하고 섬세한 문제도 해결해 내는 현대 과학의 발전 덕분에 호랑이 복원은 실현 가능한 꿈이 돼가고 있다. 호랑이의 귀환을 기다려본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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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동아 원문 “조선 초기 호랑이는 물가에 살았다” 보러가기☜

 

 

<필자 소개>

김동진 전 서울대 수의대 BK부교수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강사이자 (사)한국범보전기금 인문학술이사, 인간동물문화연구회 공동연구원이다. 전 서울대 BK 연구교수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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