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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사라진 과학계 별들](15)의학계의 계관시인 ‘올리버 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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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사라진 과학계 별들](15)의학계의 계관시인 ‘올리버 색스’

2016.01.05 07:00

연말마다 마지막 과학카페에서 필자는 ‘과학은 길고 인생은 짧다’라는 제목으로 그해 타계한 과학자들의 삶과 업적을 뒤돌아봤습니다.
 
2015년도 한 해도 여러 저명한 과학자들이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이번에도 이들을 기억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과학저널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부고가 실린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네이처’에는 ‘부고(obituary)’, ‘사이언스’에는 ‘회고(retrospective)’라는 제목의 란에 주로 동료나 제자들이 글을 기고했는데 이를 바탕으로 했습니다.
 
올해 ‘네이처’에는 18건, ‘사이언스’에는 4건의 부고가 실렸습니다. 두 저널에서 함께 소개한 사람은 두 명입니다. 두 곳을 합치면 모두 20명이나 되네요. 이들을 사망한 순서에 따라 한 사람씩 소개합니다.

 
★올리버 색스(1933. 7. 9 ~ 2015. 8.30) 의학계의 계관시인 잠들다

 

평생 음악을 사랑했던 색스는 음악과 뇌를 주제로 책 ‘뮤지코필리아’를 썼다(2008년 출간). 2010년 나온 한글판 표지. - 교보문고 제공
평생 음악을 사랑했던 색스는 음악과 뇌를 주제로 책 ‘뮤지코필리아’를 썼다(2008년 출간). 2010년 나온 한글판 표지. - 교보문고 제공

저널리스트나 전문 작가가 아닌 과학자나 의사 가운데 가장 글을 잘 쓴다는 올리버 색스(Oliver Sacks)가 지난 8월 30일 타계했다. 대표작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1985년 출간)를 비롯해 십여 권이 우리말로 번역돼 있을 정도로 국내 독자층도 두텁다.

 

1933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색스는 부모가 의사였고 집안에 의사, 과학자, 발명가 등 ‘이과’ 친척들이 많았다. 색스는 어린 시절 화학자를 꿈꾸었는데, 텅스텐 채굴 사업을 하던 삼촌 데이브의 별명인 ‘엉클 텅스텐’을 제목으로 한 회상기(2001년)를 쓰기도 했다. 그럼에도 옥스퍼드대 퀸스칼리지에서 의학을 공부했고 1960년대 초 미국으로 건너갔다.

 

1965년 뉴욕 베스아브라함병원에 취직한 색스는 그곳에서 특이한 환자들을 보게 된다. 1920년대 유행한 수면병(기면성뇌염)에 걸려 수십 년 째 식물인간 상태로 입원해 있는 환자들로, 색스는 이들에게 L-도파라는 파킨슨병 치료제를 투여했고 놀랍게도 이들은 수십년 만에 깨어났다.

 

이때의 경험을 쓴 책이 ‘깨어남’(1973년)이다. 러시아의 저명한 신경심리학자 알렉산더 루리아는 이 책을 읽고 색스에게 편지를 보내 격려하며 환원주의 현대의학에 밀려 사라진 신경학 서사(neurological narrative), 즉 질병통계가 아니라 개별 환자의 사례에 초점을 맞춘 19세기 전통을 부활시켜달라고 당부했다. 두 사람은 루리아가 사망한 1977년까지 서신을 주고받았다. 참고로 색스의 첫 책은 1970년 출간한 ‘편두통’이다.

 

만능 스포츠맨인 색스는 1974년 노르웨이에 혼자 여행을 갔다가 산 중턱에서 황소를 만나 도망치다 추락해 신경계 장애로 왼쪽 다리를 쓰지 못하는 큰 부상을 입는다. 자신의 환자들에게서 보아온 증상을 체험하고 쓴 책이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1984년)이다.

 

그리고 이듬해 그 유명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출간해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보통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기괴한 신경질환을 지닌 환자들을 등장시켜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일상의 삶이 뇌와 몸의 정교한 조율의 결과임을 역설적으로 깨닫게 하는 이 책에서 색스는 신경질환을 ‘장애에 직면한 몸이 새로운 평형을 찾으려는 시도’로서 해석하고 있다.

 

2005년 어느 날 시야에 이상을 느낀 색스는 병원을 찾았고 안구흑색종이라는 희귀한 암 진단을 받았다. 레이저와 방사선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왼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2010년 출간한 ‘마음의 눈’에 이때의 절박한 체험을 고스란히 담았다.

 

비록 눈 하나는 잃었지만 건강을 회복해 다시 왕성하게 활동하던 그에게 올 초 다시 이상이 느껴졌다. 진단결과 암이 간으로 전이돼 돌이킬 수 없는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색스는 ‘뉴욕타임즈’ 2월 19일자에 ‘나의 삶(My Own Life)’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는데, 자신이 회복될 가망이 없음을 담담히 인정하면서 그동안의 삶에 감사하고 있다.

 

지난 4월 그의 자서전 ‘온 더 무브’가 출간됐고(한글판은 2016년 1월 초에 나올 예정이다) 그의 유작이 됐다. 지난 11월 ‘Gratitude(감사)’가 출간됐다. 색스는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글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무엇보다도 난 이 아름다운 행성에 살고 있는 감수성이 있는 존재이자 생각하는 동물로 그 자체가 엄청난 특권이자 모험이었다.”

 

<캡션>
15_평생 음악을 사랑했던 색스는 음악과 뇌를 주제로 책 ‘뮤지코필리아’를 썼다(2008년 출간). 2010년 나온 한글판 표지. (제공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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