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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 열차 속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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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 열차 속의 풍경

2016.01.09 18:00

지난 늦가을부터 새로운 밥벌이를 하러 일주일에 두세 번 서울에 나간다. 집을 팔아 집 동네에 차렸던 작은 맥줏집이 365일 만에 망해버리고 동면하듯 칩거하고 있던 내가 안쓰러웠는지 친구가 말했다. “집에만 틀어박혀 있지 말고 일거리를 만들어볼 테니 서울에 나와서 일하지그래?” 엄마 손에 이끌려 앙버티다가 작은 보폭으로 종종걸음 치는 꼬마처럼 친구가 출판사 사무실에 마련해준 책상으로 향하는 것이다.

 

wikipedia 제공
wikipedia 제공

 

오늘도 마을버스를 타고, 경의선 전동 열차로 갈아타고 그곳으로 가는 중이다. 지금 내가 스마트폰 메모 앱(App)에 오른손 엄지로만 쓰고 있는 [생활의 시선] 연재 원고의 절반 이상은 이 열차 안에서 씌어졌다. 잠시 오른손을 내려놓고 승객들 사이에 섞여 서서 익숙한 열차 안의 풍경을 둘러본다. 절반이 넘는 승객들이 방금 전의 나처럼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남은 절반 중 절반의 사람들은 눈을 감고 있으며, 또 다른 승객들은 창밖에 눈길을 주고 있거나 일행과 나지막이 대화를 나눈다.

 

승객이 스마트폰을 가로로 잡고 있으면 대부분은 이어폰을 꽂고 드라마를 보는 사람이거나 게임에 몰두한 사람이다.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거나 의류 등의 온라인 쇼핑몰을 검색하는 승객은 대부분 여성들인 듯하며, 간혹 뉴스 기사나 페이스북 등의 SNS(Social Network Service) 정보를 읽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아주 드물게, 소설책인지 산문집인지 창공의 갈매기 같은 책의 양 날개를 펼치고 있는 젊은 여성 승객도 있다.

 

평소 열차 안의 표본 풍경 너머 아득한 곳에서 과학과 인문학 분야의 책들을 주로 발간하는 친구의 작은 출판사의 살림은 곤궁하다. 그나마 이 사회에서 함께 숨 쉬고 있는 소수의 독자들이 그 출판사의 문 앞에서 양팔을 들어 올려 금방이라도 쏟아지려는 셔터를 지주(支柱)처럼 떠받치고 있는 셈이다. 소수이지만, 그 소통의 의미와 사회적 가치 때문에 친구는 오래전에 전세에서 월세로 옮기면서도 오늘도 출판사에 불을 켜고 백수인 나까지 불러내는 것이다.

 

다르게 산다는 것. 다양하게 산다는 것. 등치(等値)되는 말일 것이다. 전자는 개인이 선택한 삶일 테고, 후자는 그 사회의 풍경화이다. 만약 어느 화가가 전동 열차 안의 지금-이곳 풍경을 그림으로 그린다면 얼마나 단조로울까. 나는 잠시 눈을 감는다. 이 익숙한 풍경을 지우고 상상한다.

 

flickr(Jude Lee) 제공
flickr(Jude Lee) 제공

 

바로 앞에 앉은 여학생이 왼쪽 무릎 위에 윤동주 유고 시집 [초판본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를 펼치고 오른쪽 무릎에는 노트를 펼쳐 몽당연필로 시를 필사하고 있다. 그 옆자리에는 머리를 짧게 깎은, 래퍼(rapper)가 꿈인 남학생이 자신이 작사, 작곡한 노래를 목소리는 내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입 모양으로만 열중해 부르고 있다. 건너편 창가에 선 아주머니는 창밖의 들판을 바라보다가 모병제로 군복무 중인 아들에게 보낼 손편지 초안을 수첩에 적고, 테니스 라켓을 멜가방에 꽂은 할아버지 국회의원은 선 채로 작은 아령을 손에 쥐고 숫자를 헤아리며 근력 운동을 한다.

 

나는 눈을 뜬다. 이어서 적는다. 눈으로 본 풍경은 앞서 다 적었으니, 마음으로 본 풍경을 옮겨 적는다. 하지만 그 풍경은 당장은 실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믿는다, 우리라는 개인들이 자신만의 삶의 가치를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선택해 실현할 때, 그리하여 ‘다양성’이라는 가치가 각양각색의 무늬가 되어 우리 사회의 풍속도를 채색한다면 눈 감고 보았던 풍경이 비로소 눈앞에 펼쳐질 거라고. 그 믿음이 없다면 세상살이는 얼마나 쓸쓸한가.

 

 

※ 저자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다.

 


※ 편집자주
뉴스를 보다보면 무엇인가를 분석해서 설명을 해주는 내용이 대다수입니다. 그래야 원인을 정확하게 찾고, 대책을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가끔은 고개를 들어 사물을 그대로 보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대상을 온전히 바라보면 분석한 내용을 종합할 수 있는 통찰력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시인의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는 ‘생활의 시선’을 매주 연재합니다. 편안한 자세로 천천히 읽으면서 감정의 움직임을 느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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