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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정신으로 과학 완성하는 천생 ‘공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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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정신으로 과학 완성하는 천생 ‘공학자’

2016.01.14 18:00

“재료연. 주가 좋아. (요)모조모 살펴보아도, 정녕 자넨 구원일세.”

 

일생을 과학기술자로 살기로 결심한 사람이 있다. 서울에서 고속철도(KTX)로 3시간. 경남 창원에 자리한 재료연구소에서 만난 김종국 표면공정연구실장은 첫 만남부터 평생 과학기술로 잔뼈가 굵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창원 시청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허름한 상가 건물에 위치한 ‘남강일식’에서 김 실장은 “창원에서 가장 오래된 일식집이라는 소문이 전해져 오는 집이라 자주 찾고 있다”고 소개했다.

 

 

창원=권예슬 기자 yskwon@donga.com 제공
창원=권예슬 기자 yskwon@donga.com 제공

●입시 면접에서 “핵융합 로켓 개발 하겠다” 호언 했던 괴짜

 

고등학교 시절 그의 꿈은 ‘핵융합으로 움직이는 로켓 엔진’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서울대 원자력공학과 입시 면접에도 이렇게 외치자 당시 면접관들은 크게 웃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의 삶은 우주공학과는 다소 다른 길을 걸어 왔다. 현재 그의 전문분야는 금속 구조재 코팅이다. 대학 졸업 후 삼성전자를 거쳐 현재 재료연구소에 입사한 것은 2000년. 그 이후 한 직장에서 16년 째 근무하고 있는 셈이다.

 

김 실장이 지닌 ‘공학자‘로서의 자부심은 대화를 이어가는 내내 드러났다. 그는 “나는 과학자가 아닌 공학자이며 평생 그렇게 살아왔다”며 “최근 박사학위를 받은 연구원들은 뭔가를 만들어 내는 기쁨을 느끼기 보다 논문만 수려하게 쓰는 과학자가 되려 하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재료연 입사 초기부터 소위 ‘잘 팔리는’ 연구자 중 한 사람이었다. 2002년 삼성과 함께 디지털카메라용 유리렌즈를 코팅하는 기술을 개발했고, 당시 금액으로 기술 개발료만 10억 원에 이르는 큰 프로젝트를 운영했다. 그가 개발한 기술은 삼성에서 카메라 렌즈를 만드는데 쓰였고 월간 400만 개의 렌즈를 생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기술은 현재 쓰이지 않는다. 기술시장이 흔히 그렇듯 유리렌즈가 플라스틱렌즈로 전환되면서 당시 기술이 언제 있었냐는 듯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김 실장은 “시장 파악의 중요성을 피부로 느낀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런 그가 지난 20년 간 연구과제를 통해 연구비를 받지 않을 때에도 놓지 않고 이어온 연구가 있다. 바로 트라이볼로지(tribology) 코팅에 사용될 장비 개발이다. 실제로 김 실장이 이끄는 연구팀은 다이아몬드 만큼 단단한 탄소로 물체를 코팅할 수 있는 ‘BD1호기’ 개발에 성공했다.

 

지금 그의 최종 목표는 트라이볼로지 코팅분야 1인자가 되는 것이다. 기계장치의 마찰을 줄여 작동을 원활하게 만드는 코팅기술로 플라스마 현상을 이용한 특수기법이 자주 쓰인다.

 

김 실장은 “그래도 우주선 엔진에 사용하는 플라스마라는 물질을 가지고 연구도 진행하고 있으니 완전히 꿈을 이루진 못한건 아니겠죠”라며 미소 지었다.

 

● 新-舊 연구원의 세대 차이 메우는 것이 ‘50둥이’ 연구자의 역할

 

연구원 생활도 어느덧 16년차. 중견 연구자인 그에게는 고민이 있다. 선배 연구자들과 후배 연구자로 연구소의 고유의 업무들이 연결되지 않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김 실장은 “재료연에게 주어진 업무는 개발된 소재를 기업에 이전해 실제 상용화까지 이끄는 것”이라며 “요즘 신입 젊은이들은 그 때 그때 ‘핫(hot)’ 하다는 평가를 받는 연구주제로 관심이 쏠리고 기관의 역할도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김 실장은 연구소 생활 중 가장 행복했던 경험으로 가족과 함께 한 달 가량 떠났던 유럽 배낭여행을 꼽았다. - 김종국 재료연 표면공정연구실장 제공
김 실장은 연구소 생활 중 가장 행복했던 경험으로 가족과 함께 한 달 가량 떠났던 유럽 배낭여행을 꼽았다. - 김종국 재료연 표면공정연구실장 제공

후배들의 연구 환경과 복지를 위해 좋은 선례를 만드는 것도 ‘50둥이’ 연구자의 역할로 꼽았다. 그는 2007년 연말에 당시 연구소에선 전무후무했던 28일 장기 휴가를 떠나기도 했다. 주변에선 만류했지만 정해진 휴가를 쓸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기는 것도 올바른 일이라고 판단했다.

 

두 아들과 딸, 그리고 아내와 함께한 유럽 배낭여행을 그는 연구소 생활 중에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뽑았다. 그 덕분에  현재는 많은 연구원들이 연말에 장기 휴가를 내고 여행을 가는 일이 많아졌단다.

 

김 실장은 대화의 마지막까지 공학자로서의 자부심을 강조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첨단과 최고를 추구한다”면서 “조그마한 기술이라도 여러 대를 거치면서 갈고 닦아 나가는 장인정신 역시 우리나라 과학계에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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