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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를 쓴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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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를 쓴다는 것

2016.01.16 18:00

일기(日記)란 무엇인가. 어느 날 겪은 경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적어놓는 개인의 기록, 짧게 말하면 ‘하루의 기록’이다. 일기는 왜 쓰는가, 혹은 왜 안 쓰는가. 쓰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안 쓰는 이유는 단순할 것이다. 쓰기 싫으니까. 하지만, 그 이유를 다시 물으면 여러 대답이 나오지 않을까. 써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 쓸 시간이 없으니까,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몰라서, 학생 때 그 숙제 때문에 지긋지긋해져서 등등.

 

pixabay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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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경우는 마지막 대답에 해당되었다. 의무교육 6년 내내 방학 숙제 목록에 빠지지 않았던 일기를 떠올리면 말이다. 많은 학생들이 그랬듯이 개학 전날 한나절에 한 달 분량을 물에 콩나물 헹구듯 해치워야 했으니. 그나마 나는 남의 것을 베끼지는 않았지만 날씨 표시가 큰 골치였던 불편한 기억이 어른이 돼서까지 ‘일기’라는 글쓰기가 내 무의식에 억압으로 작용했으리라. 그래서 나는 일기를 전혀 쓰지 않고 살았다.

 

1년 만에 그만뒀지만, 재작년 7월 7일에 집 동네에 작은 맥줏집을 열었다. 내가 손님이라면 즐겨 가고 싶은 콘셉트로 맥줏집을 차렸다. 영업을 마친 새벽이면 블라인드를 내리고 문을 닫고 음악을 선곡해 볼륨을 높여놓고는 혼자 앉아 맥주를 마셨다. 그 정적이 참 좋았다.

 

그렇게 2주를 보내던 어느 날, 갑자기 외로웠다. 대화 상대가 없었다. 그렇다고 새벽 두세 시에 누구를 불러낼 수도 없는 노릇. 말이 고파졌던 것이다. 말의 허기를 음악과 맥주만으로는 달랠 수 없었다. 그날, 스마트폰 메모 앱(App)을 열어 처음으로 자발적인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날 다녀간 손님들에 대해 기록했다. 그 기록들은 에피소드의 이야기가 되었다. 그제야 말의 허기가 가셨다. 일기를 쓰는 동안 외로움도 사라졌다.

 

일기를 쓴다는 것은 말을 하는 것이다. 대화를 하는 게 아니라 혼잣말을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상대의 기분과 관심과 이해력을 고려하고 배려해 말을 고를 필요가 없으며 예의상 호의적일 이유도 없다. 그래서 일기는, 글은 어떤 식으로든지 스스로에게 진실하고 자유를 부여하는 행위다. 그리고 그런 글들을 SNS나 인터넷에 올려 공개할 때 누군가 ‘좋아요’를 터치하면 공감을 확인하게 된다.

 

pixabay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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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란 어떤 강제에 의해, 숙제 검사를 받기 위해 쓰는 일이 될 때 일기장 앞에 있는 사람을 경직되게 만든다. 그 억압은 자발적이고 자유롭게 스스로에게 진실한 말을 꺼내지 못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일기 쓰기’가 교육적으로 꼭 필요하다면 초등학생에게 이렇게 유도해보면 어떨까?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일기를 쓰되, 하루에 한 줄씩만 쓴다.” 어떤 학생은 질문할 것이다. “두 줄 쓰면 안 돼요?” “그럼, 너는 두 줄 써.” 딱 한 줄이기에, 많은 학생들은 일기를 쓸 것이다. “오늘은 재미있게 놀았다.” “저녁 반찬이 맛있었다.” “누나와 싸웠다.” 위선이 아니니, 선생님은 모든 학생에게 빨간색 나이테 다섯 개씩 표시해준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은 한 줄로는 부족한 걸 느끼게 될 것이다. 이를테면, 어떤 아이가 친구 두 명과 함께 동네 배드민턴장에 운동하러 갔다. 라켓은 두 자루. 한 아이가 놀던 중 토라져서 자기 라켓을 가지고 귀가해버린다. 그래서 남은 두 아이는 라켓 한 자루만 가지고 셔틀콕을 친다. 한 아이는 라켓으로, 한 아이는 슬리퍼로.

 

지켜보고 있던 한 아저씨가 자신의 라켓을 빌려준다. 라켓을 빌려 쓴 아이가 그날 일기를 쓴다. “오늘은 친구 둘과 배드민턴을 쳤다.” 그런데 다음 얘기가 남아 있는 것을 아이는 알고 있다. 그래서 한 줄 더 쓴다. “그런데 길동이가 자기 라켓을 가지고 가버렸다.” 이야기는 더 남아 있다. 한 줄 더 쓴다. “어떤 아저씨가 라켓을 빌려주지 않았으면 재미없을 뻔했다.”

 

일기 쓰기, 글쓰기란 이런 것이다. 말을 꺼내놓은 이상, 더 하고 싶은 말, 남은 말을 참지 않고 자연스레 하게 되는 욕망을 낳는다. 그 혼잣말은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진심을 말하는 글쓴이를 다음 말의 징검다리로 데려간다. 문제는 그 첫 다릿돌에 말의 발을 내딛느냐 마느냐일 뿐이다.

 

 

※ 저자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다.

 


※ 편집자주
뉴스를 보다보면 무엇인가를 분석해서 설명을 해주는 내용이 대다수입니다. 그래야 원인을 정확하게 찾고, 대책을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가끔은 고개를 들어 사물을 그대로 보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대상을 온전히 바라보면 분석한 내용을 종합할 수 있는 통찰력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시인의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는 ‘생활의 시선’을 매주 연재합니다. 편안한 자세로 천천히 읽으면서 감정의 움직임을 느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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