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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처럼 아름다운 눈결정에 담긴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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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1월 18일 17:54 프린트하기

pixabay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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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만들어내는 공기는 정말 창조적인 천재다. 진짜 별이 떨어져 내 외투 위에 머무른다하더라도 더 놀랍지는 않을 것이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오겡끼데스까?(잘 지내세요?)”
“(약하게) 오겡끼데스까?”(메아리)
“와타시와 겡끼데쓰.(난 잘 지내요.)”
“(약하게) 와타시와 겡끼데쓰?”

 

1995년 개봉한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러브레터’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다. 여주인공 와타나베 히로코(나카야마 미호)는 연인 후지이 이츠키가 죽은 뒤 2년이 지난 어느 날 이츠키가 조난된 산을 찾은 히로코는 아침 눈이 수북이 쌓인 숲 속에서 이런 안부 인사를 외친다.  필자에게 ‘러브레터’는 감성적인 스토리뿐 아니라 화면의 서정적인 아름다움으로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작품의 배경이 되는 홋카이도(북해도) 오타루의 눈 덮인 겨울 풍경은 일품이다.

 

 

주인공 히로코(나카야마 미호)가 ‘오겡끼데쓰까?’를 외치는 영화 ‘러브레터’의 그 유명한 장면. - 네이버 영화 제공
주인공 히로코(나카야마 미호)가 ‘오겡끼데쓰까?’를 외치는 영화 ‘러브레터’의 그 유명한 장면. - 네이버 영화 제공

 

요즘 필자는 예술 속의 수학을 다룬 책을 번역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한 장이 눈에 관한 내용이다. 눈송이, 정확히 말해 눈결정(snow crystal)은 자연의 예술작품으로, 눈결정의 대칭성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1611년 요하네스 케플러는 후견인인 신성로마제국 황제 루돌프2세에게 새해선물로 줄 ‘모서리가 여섯인 눈송이에 대해On the Six-Cornered Snowflake’라는 제목의 소책자를 썼다는 내용이다.

 

케플러는 눈결정의 모서리가 왜 여섯인가를 설명하려고 시도했지만 (지금의 관점에서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는 이런 특징이 나올 수밖에 없는 자연의 법칙이 있는가에 대해 논했다. 즉 다른 식으로도 생길 수 있지만 미래의 어떤 목적을 위해 이처럼 여섯 모서리를 지닌 형태가 됐을지도 모른다. 케플러는 ‘눈송이의 이런 규칙적인 패턴이 무작위로 존재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라고 썼다.

 

이 부분을 번역하고 며칠 뒤 과학저널 ‘네이처’(2015년 12월 17일자)를 뒤적거리다 신간 코너에서 ‘The Snowflake: winter's frozen artistry(눈송이: 겨울의 얼어붙은 예술성)’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눈 부분을 번역하면서 궁금증만 더 해진 필자는 얼른 책을 주문했고 연초 도착했다.

 

눈결정 연구로 유명한 미국 칼텍 물리학과 케네스 리브레히트 교수와 그의 아내이자 자연공원 관리자인 레이첼 윙의 공저로, 책에 실린 아름다운 눈결정 사진 수백 점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한동안 시간가는 줄 몰랐다. 책은 여덟 장에 걸쳐 눈결정의 모든 걸 얘기하고 있는데, 굉장히 흥미로우면서도 필자가 눈에 대해 얼마나 아는 게 없었는지 깨닫게 했다. 이 책의 내용 가운데 몇 가지를 소개한다(아쉽게도 저작권 문제로 눈결정 사진은 싣지 못한다).

 

●80년 전 일본 물리학자가 눈결정 키우는데 성공

 

먼저 용어 문제로 책 제목에서는 snowflake를 썼지만 이는 엄밀히 말해 눈결정을 말하는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snowflake는 눈결정을 뜻하기도 하지만 눈결정이 여럿 모여 있는 상태인 눈송이를 뜻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snow crystal’이라는 용어는 어감이 딱딱하기 때문에 책에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는 한 snowflake는 눈결정을 뜻한다고 얘기한다. 그런데 이런 용법이 우리말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snowflake의 ‘flake’는 박편을 뜻하는 반면(따라서 결정과 맥락이 통한다) 눈송이의 ‘송이’는 둥근 덩어리를 뜻하기 때문이다.

 

눈결정을 언급한 가장 오래된 문헌은 기원전 135년 중국(한나라)의 학자 한영이 남긴 그의 저서 ‘한시외전’이다. “풀과 나무의 꽃은 보통 잎이 다섯 장(따라서 오각형)이지만 눈은 항상 육각형이다”라고 쓰고 있다. 반면 유럽에서는 1555년에야 눈결정에 대한 언급이 처음 나왔다. 그럼에도 눈결정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한 건 유럽인으로 앞에 언급한 케플러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유명한 경구를 남긴 르네 데카르트다. 데카르트는 1637년 발표한 저서 ‘기상학’에서 맨눈으로 관찰한 눈결정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한편 영국의 로버트 훅은 막 발명된 현미경으로 눈결정을 관찰해 직접 그린 그림을 1665년 저서 ‘마이크로그라피아(Micrographia)’에 실었다. 과학책으로 최초의 베스트셀러였던 이 책에 실린 그림을 통해 사람들은 눈결정이 얼마나 다양한가에 대해 알게 됐다. 최초로 눈결정 사진을 찍은 사람은 미국 버몬트주 제리코의 농부 윌슨 벤틀리로 1885년 불과 열아홉 살에 직접 제작한 카메라로 눈결정 사진을 찍는데 성공했다. 벤틀리는 45년동안 5000점이 넘는 눈결정 사진을 포착했다.

 

 

로버트 훅의 1665년 저서 ‘마이크로그라피아(Micrographia)’에 실린 눈결정 그림
로버트 훅의 1665년 저서 ‘마이크로그라피아(Micrographia)’에 실린 눈결정 그림

 

 

버몬트의 농부 윌슨 벤틀리가 찍은 눈결정 사진. - 제리코역사학회 제공
버몬트의 농부 윌슨 벤틀리가 찍은 눈결정 사진. - 제리코역사학회 제공

 

이런 노력으로 눈결정의 형태적 특징을 알 수 있었지만 어떻게 다양한 형태의 눈이 만들어지는가는 여전히 미스터리였다. 눈결정이 만들어지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 관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많은 과학자들이 실험실에서 눈결정을 만들려고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러다 80년 전인 1936년 마침내 실험실에서 눈결정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지금까지도 가장 위대한 눈결정 연구가로 여겨지는 일본의 물리학자 나카야 우키치로(中谷 宇吉郎)가 이 일을 해냈다.

 

1900년 생인 나카야는 명문 도쿄대에서 당시로는 최첨단 분야인 X선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고생하다가 오지인 홋카이도대에 간신히 자리를 잡았다. 실험설비도 연구비도 없던 이곳에 넘치도록 있는 건 눈이었다. 우연히 벤틀리의 눈결정 사진을 본 나카야는 본격적으로 눈결정 연구에 뛰어들었다.

 

실험실에서 눈결정을 키우려고 갖은 시도를 하던 나카야는 1936년 3월 12일 마침내 토끼털을 써서 눈결정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때까지 눈결정을 만드는데 실패한 건 결정핵이 많아 온전한 눈결정으로 채 자리기도 전에 서로 닿아서였는데, 토끼털에는 기름기가 있어 결정핵이 적었던 것이다. 나카야는 온도와 습도의 조건을 달리해 눈결정을 키웠고 그 결과 그 유명한 ‘눈결정 형태학 도표(snow crystal morphology diagram)’(나카야 도표로도 불린다)를 완성했다.

 

 

일본 물리학자 나카야 우키치로는 실험실에서 온도와 습도 조건을 바꿔 다양한 형태의 눈결정을 만든 뒤 이를 도표로 정리했다.
일본 물리학자 나카야 우키치로는 실험실에서 온도와 습도 조건을 바꿔 다양한 형태의 눈결정을 만든 뒤 이를 도표로 정리했다.

 

나카야 도표를 보면 우리가 전형적인 눈결정이라고 생각하는 잔가지가 있는 육각형 별 형태는 여러 눈결정 가운데 하나임을 알 수 있다. 또 육각기둥이나 심지어 바늘처럼 생긴 눈결정도 있다. 필자에게 가장 미스터리한 현상은 온도 범위로 눈결정의 형태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 즉 0℃에서 영하3℃ 사이에서 형성되는 눈결정과 영하10℃에서 영하22℃ 사이에 형성되는 눈결정의 패턴이 비슷한데 그 사이(영하3℃에서 영하10℃)에서 전혀 엉뚱한 형태의 눈결정이 만들어진다. 영하 22℃ 이하에서 만들어지는 눈결정의 모양과 비교하면 영하3℃에서 영하10℃ 사이의 그림과 영하10℃에서 영하22℃ 사이의 그림이 바뀐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가?’
이 현상을 ‘발견하고’ 궁금해 할 독자들을 위해 얘기하면 놀랍게도 과학자들이 여전히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고 한다. 즉 세로축, 즉 습도에 따른 눈결정 형태의 변화는 그럴듯하게 설명할 수 있지만 가로축, 즉 온도에 따른 변화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우리가 전형적인 눈결정으로 생각하는 가지가 많은 육각형 별 형태는 도표에서 보다시피 영하15℃ 부근 습도가 높은 조건에서 만들어진다. 습도가 낮아질수록 육각형의 장식이 단순해지다가 결국에는 작은 육각형 박판 형태가 된다. 거꾸로 말하면 눈결정은 물분자가 결정화된 작은 육각형 박판으로 시작해 여기에 물분자들이 계속 달라붙으면서 성장한다는 말이다. 결국 주변 공기에 물분자가 충분하면, 즉 습도가 높으면 눈결정이 더 크고 복잡한 형태로 자란다는 말이다.

 

눈결정이 육각형 형태의 결정을 이루는 건 물분자들이 결정격자를 이룰 때 육각형 형태를 띠기 때문이다. 즉 결정의 형태에는 분자의 배열이 반영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왜 눈결정은 단순한 육각형 박판이나 기둥이 아니라(물론 그런 것도 있다) 여섯 방향으로 뻗친 가지에 잔가지가 붙어있고 그 잔가지에 또 잔가지가 붙어있는, 즉 일종의 프랙탈 구조까지 보이는 복잡한 형태의 결정으로 자라는 걸까.

 

●습도 높을수록 복잡한 형태 나와

 

저자들은 구름에서 눈결정이 자랄 때 주변 습도의 변화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즉 수증기, 공기 중의 물분자가 달라붙으면 결정 주변은 상대적으로 건조해지므로 습도의 기울기가 생긴다. 그 결과 바깥쪽에서 물분자가 확산되는데 초기 결정이 육각형 박판이므로 모서리쪽이 조금이라도 더 물분자 농도가 높고 따라서 더 빨리 자란다. 그 결과 모서리에서 가지가 뻗치는 것. 눈결정이 육각 대칭 형태를 띠는 이유도 결정의 중심을 기준으로 거리에 따라 습도의 기울기가 생기므로 같은 거리에서는 환경도 거의 같기 때문이다.

 

반면 습도가 낮은 환경에서는 결정이 천천히 자라 평형상태가 유지되므로 육각형 박판이 커지기만 한다. 반면 영하3도에서 영하10도의 육각기둥 또는 육각바늘 형태의 눈결정 생성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얼굴이 똑같은 사람이 없듯이 눈결정도 다 다른 이유는 구름에서 눈결정이 만들어질 때(보통 수십 분이 걸린다) 대류에 따라 결정이 움직이면서 미세환경이 끊임없이 바뀌고 그 변화가 결정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한편 눈이 부족한 스키장에서 만드는 인공눈(artificial snow)은 사실 눈이 아니다. 즉 자연의 눈은 구름의 기체(수증기)에서 고체(눈결정)가 만들어지는 과정인 반면(따라서 나카야가 실험실에서 만든 눈결정은 인공눈이 아니라 ‘합성눈(synthetic snow)’이라고 부른다), 인공눈은 고압의 공기가 나오는 출구에 미세한 물방울(액체)을 분사해 순간적으로 얼려 만든다. 즉 인공눈은 눈결정이 아니라 작은 얼음알갱이라는 말이다. 흥미롭게도 설원에서 펼치는 스포츠 중에서는 선수들이 천연눈보다 인공눈을 선호하는 종목이 있는데, 천연눈이 폭신폭신한데 비해(특히 잔가지가 많은 육각형 별 형태) 인공눈은 단단하기 때문이다.

 

사실 필자는 ‘러브레터’를 영화관에서 본 게 아니라 수년 전 29인치 브라운관 TV로 봤다. 화면비율이 4:3이었으므로 16:9인 LCD TV로 치면 27인치 화면으로 본 셈이다. 그런데 요 며칠 ‘러브레터’가 재개봉하고 있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됐다. 4시 35분 영화로 예약을 했는데 벌써 네시가 다 돼 간다. 그림설명을 다는 걸 고려하면 시간이 촉박하다. 빨리 원고를 넘기고 영화관에 가 히로코가 두 손을 입 앞에 모으고 설산을 향해 안부를 묻는 장면을 제대로 감상해야겠다.

 

※ 필자소개
강석기.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4권, 2012~2015),『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2014)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2013), 『가슴이야기』(201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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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1월 18일 17:54 프린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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