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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은 학생이자 노동자, 계약의 경계 명확해야 '갑질' 사라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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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1월 28일 16:00 프린트하기

화학연구실. 영국웰컴트러스트 제공
화학연구실. 영국웰컴트러스트 제공

“학교에 우리 학교에도 인권 기구가 있는지 물어봤을 뿐이에요. 다른 대학에서 ‘대학원생 권리장전’이 선포되거나 인권센터가 생길 거라는 기사를 보구요. 그런데 지도교수가 대뜸 자퇴를 하는 게 낫겠다고 하더라구요. 알고보니 대학본부가 지도교수에게 제가 인권기구를 문의했다고 귀띔을 한 겁니다. 그 이후 저는 연구실에서 이뤄지는 일에서 모두 배제됐어요. 논문지도도 제대로 못받았어요. 졸업은 한 학기 미뤄졌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죠?”

 

이달 3일 출범한 ‘대학원생 119’에 들어온 대학원생의 제보다. 대학원생 119는 직장내 갑질을 제보받아 상담을 제공하는 ‘직장갑질 119’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이 공동으로 출범시킨 대학원생 인권침해 제보 및 상담 서비스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올해 7월부터 시행되지만 대학원은 ‘직장’이 아니라는 편견 때문에 대학원생 상당수가 '갑질'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대학원생 119에 대한 대학원생의 반응은 서서히 뜨거워지고 있다. 네이버 밴드를 개설한 지 20일 차인 23일 기준 밴드 내 가입자 수는 180여 명으로 늘었다. 대학원생 119는 익명으로 운영되지만, 교수나 선임연구원이 들어올 수 없도록 가입신청을 받을 때 학과와 연락처를 묻고 운영진이 일일이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다. 밴드에 가입한 180명이 넘는 대학원생은 복잡한 절차를 거쳐서라도 제보를 하기 위해 가입할 정도로 목소리를 낼 창구가 절박했던 셈이다.

 

“제보를 하고 나면 나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가 우려를 많이 하십니다. 고발이 정말 필요하신 분들은 우리가 돕겠습니다. 단순히 토로하실 분도 괜찮습니다. ‘여러분의 목소리가 세상을 바꾼다‘는 표어가 실제로 이뤄진다는 게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9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시민청 내 카페에서 만난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구슬아 지부장과 신정욱 사무국장은 대학원생 119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대학원생 119는 33만명에 이르는 전국 대학원생이 갑질의 사각지대에 놓여 목소리를 낼 창구가 없다는 문제에서 출발했다. 노조 내에서 대학원생 119를 담당하고 있는 신 사무국장은 “직장갑질 119 측에서 대학원생 제보가 자주 들어온다는 연락을 해줬다”며 “직장갑질 119 내 분회를 만들어보자고 한 것이 대학원생 119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19일 기준 160여 명이 대학원생 119 밴드에 가입했다. 신 사무국장은 “내부에서 자신들의 얘기가 쏟아져 나온다”며 “변호사들과 익명으로 토론하는 사람들도 생겼다”고 말했다. 신 사무국장에 따르면 갑질 사례 중 4건은 현재 법률 검토에 들어간 상황이다.

 

“사안이 심각하고 피해 사항이 크며 이를 제보한 개인이 대응하고 싶다면 노무사 및 변호사들과의 상담을 통해 직접 구제에 나섭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그 사례를 모아 개인을 식별할 정보를 제거한 후 유형화를 시켜서 사회에 알릴 겁니다. 사회적으로 이슈화될수록 문제를 해결하는 통로가 열리는 겁니다” 대학원생 119를 통해 들어온 갑질 제보의 처리 기준에 대한 신 사무국장의 설명이다.

 

● "학교가 '학생노동자'라는 개념 인정해야 정착시켜야"

 

이달 9일 오후 1시 서울시청 내 카페에서 만난 대학원생노동조합 구슬아 지부장(왼쪽)과 신정욱 사무국장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승한 기자 shinjsh@donga.com
이달 9일 오후 1시 서울시청 내 카페에서 만난 대학원생노동조합 구슬아 지부장(왼쪽)과 신정욱 사무국장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승한 기자 shinjsh@donga.com

“갑질 교수의 연구실을 보면 교수가 마치 대학에 고용된 하청업체 사장처럼 돼 있습니다. 학생들은 학교에 속하고 학교본부가 사장, 교수가 중간관리자 역할을 해야 합니다. 노조를 결성한 이유가 돈을 많이 달라거나 하는 게 아닙니다. 학교가 학생을 학생노동자로 인정하고 학생으로 공부한 지점과 노동자로 일한 지점을 구분해 학생노동자의 권리를 지켜주라는 겁니다.”

 

지난 2017년 12월 23일 출범한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은 '대학원생은 노동자’라는 의식을 출발점으로 하고 있다. 서울 6개 대학의 대학원생의 모임으로 시작했던 노조는 현재 전국 23개 대학에서 대학원생 200여 명이 노조활동비를 내고 지지하는 모임으로 커졌다. 1년이 조금 넘는 기간동안 활동하며 성균관대 조교 대량해고 시도를 막는 등 대학원생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힘써 왔다고 노조 측은 밝혔다. 지난해 촉발된 미투운동 과정에서도 대학원생 피해자에 대한 상담을 진행했다. 피해자가 속한 학교본부에 항의해 가해 교수의 징계를 끌어내기도 했다.

 

지난 1년여 간 많은 활동을 벌였지만 대학원생 노조로서 현실적인 고민은 있다. 아직까지 대학원생 노조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가입률이 저조하기 때문이다. 특히 장시간 연구실에서 일하며 노동자와 같은 삶을 사는 이공계 대학원생들의 참여율이 상대적으로 저조하다. 노조에 따르면 이공계 대학원생의 참여율은 조합원의 15%에 머물고 있다. 

 

대학원생 노조가 갓 출범한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대학원생 노조 활동이 성숙기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다.  2001년에만 이미 미국 전역에서 3만8750여명의 대학원생이 노조에 가입해 활동했다. 미국의 대학원생 노조는 조교로 일하는 교육노동자로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한다. 노조가 학교 측과 단체협약을 통해 임금단체협상, 노조원의 건강보험 가입을 책임진다.

 

미국 대학원생 노조가 협약을 맺는 대상은 교수가 아니라 학교다. 예일대의 대학원생 노조 선언 문에는 ‘노조는 학생과 지도교수의 관계가 아니라 우리가 일하는 기관과의 관계에 관심을 갖는다’고 명시돼 있다. 교수와 대학원생 관계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을 가르치는 조교로서 노동자의 권리를 찾는 것이다.

 

전국대학원생노조도 ‘학생노동자’라는 지위를 학교로부터 인정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 사무국장은 “한국 사회는 학생과 노동자를 분리해서 인식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대학원생이 ‘학생’신분이 되면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해 4대 보험을 받지 못한다. 반면 ‘노동자’라는 신분으로 인식되면 학생이 받을 수 있는 장학금을 받지 못하는 식이다. 이 둘을 하나로 결합해 봐야 한다는 게 대학원생노조의 주장이다.

 

대학원생들 사이에서도 학생노동자라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2016년 국가인권위 대학원생 연구환경평가 실태조사에 따르면 대학원생 중 57.8%가 자신을 학생노동자라고 여긴다고 답했다. 구 지부장은 “현대 사회에서 단일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대학원생노조는 대학원 사회에 끊이지 않는 인권침해 및 노동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2017년 12월 설립되었다. -대학원생노조 제공
대학원생노조는 대학원 사회에 끊이지 않는 인권침해 및 노동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2017년 12월 설립되었다. -대학원생노조 제공

구 지부장은 학교가 대학원생을 노동자로 만든 원인 중 하나로 연구과제중심제도(PBS)를 꼽았다. PBS는 연구 수주와 예산을 연계시켜 연구비 안에서 인건비와 운영비를 처리하도록 한 제도다. 연구개발의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목표로 1997년 당시 과학기술처가 도입했다. 연구과제에서 인건비가 나오다 보니 대학원생은 자신의 연구주제와 관계없는 과제를 맡거나 행정업무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신 사무국장은 “PBS때문에 내가 하고픈 연구를 하고 싶어도 프로젝트 목표나 방향성에 따라서 다른 일을 하게 된다. 노동자의 특성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학원생노조는 이런 과정에서 교수가 인건비를 조정할 권한을 가지면서 연구실 내 권력 관계도 강화됐다고 본다. 구 지부장은 “교수가 돈에 관여하며 지급한 돈을 다시 되돌려받는 ‘페이백’이나 유용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생겼다”고 말했다. 

 

대학이 PBS제도 하에 대학의 책임을 방조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구 지부장은 “교수들도 프로젝트 수주와 랩 운영을 혼자 도맡아야 하는 PBS가 힘들다는 사람들이 많다"며 “대학원생도 교수도 힘들고 대학만 편한 제도”라고 말했다.

 

이들은 학교와 대학원생 간의 ‘계약’을 통해 경계를 명확히 해야 해법이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PBS를 통해 학생과 교수가 대학의 편의대로 묶이는 것이 아니라 조교나 행정업무의 경우 대학이 직접 학생을 고용하는 구조여야 한다는 것이다. 구 지부장은 “학업과 노동간의 경계를 정하는 게 바로 ‘계약’"이라며 "회사에 다니다가 대학원을 들어온 사람들은 계약 같은 사회의 정돈된 시스템이 대학원에 없다는 데 충격을 받곤 한다”고 말했다.

 

대학원생 노조도 경계를 명확히 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학교 측은 어떤 시도도 하고 있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 구 지부장은 “모든 걸 학업으로 정의하면 대학이나 교수에게는 불편한 점이 없다”고 지적했다. 신 사무국장은 “직장생활에서도 근로 중 휴게시간 같은 휴식시간을 근로생활과 구분하기 위해 노력한다”며 “대학원생의 연구와 연관성이 먼 일은 충분히 구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각 대학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맺는 것이 목표라고 제시했다.  대학원생총학생회와 시민단체와 달리 노조는 단체교섭권 같은 고유한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대학원생을 노동자로 인정하는 제도와 장학제도 간 교통정리를 위해서 정치권에도 이를 정리해 주길 요구할 계획이다. 신 사무국장은 “정치권에는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며 “제도적으로 얼마나 잘 풀어낼 것인가가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연구실 문화도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여성의 성차별 문제를 수면 위로 올렸던 미투운동이 큰 힌트가 됐다.  신 사무국장은 “나쁜 갑질 교수들만 있는 것 같지만 우리를 후원하는 좋은 교수도 많다”며 “문화를 바꾸는 것은 대학원생119를 만들면서도 기대하는 점”이라고 말했다.

 

●대학원생 119에 제보된 갑질 사례

 

직장갑질 119와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이 공동으로 내놓은 대학원생 119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제공
직장갑질 119와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이 공동으로 내놓은 '대학원생 119'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제공

"명절만 되면 '그'의 요구를 떨칠 수 없었다"

금품 갈취부터 학생 월급 유용까지 다양한 갑질 사례들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은 대학원생 119에 들어온 갑질 제보 중 일부를 이달 22일 공개했다. 인권 전담 기구가 있다는 질문만으로 불이익을 받은 대학원생의 제보가 그중 하나다. 대학원생 119 측은 대학원생의 기본권 및 학습권을 침해하는 경우, 논문지도를 빌미로 금품을 갈취하는 경우, 연구비 유용, 교수에 의한 대학원생의 연구 저작물 도용 등 유형도 다양했다고 밝혔다.

 

학생에게 끊임없이 금품을 요구한 사례도 있었다. 대학원생 119에 전달된 다른 제보에 따르면 한 교수는 스승의 날이나 명절 때는 물론이고 매번 논문지도로 대학원생이 연구실을 방문할 때마다 집요하게 금품을 요구했다. 작게는 고급 다과부터 크게는 홍삼액 같은 건강보조식품, 상품권까지 나날이 원하는 품목도 다양하다고 제보자는 덧붙였다. 자칫 선물을 준비하지 못하기라도 하면 교수는 “내가 요새 돈 나갈 데가 많아 형편이 어렵다”며 노골적으로 부담을 줬다. 제보자는 이 사실을 학교 측에 알렸으나 아무런 조처가 취해지지 않았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지도교수가 대학원생들의 월급 통장과 카드를 걷어가 학생 월급을 연구비 입찰을 위한 뒷돈으로 썼다는 제보도 있었다. 이 교수는 이 돈을 실험실 비품이나 지인의 선물을 사는 데 썼고, 대학원생에게는 통장의 들어온 돈의 절반도 못 미치는 돈만 돌아왔다고 제보자는 밝혔다.

 

직장갑질 119에도 제보가 이어지고 있다. 한 제보자는 5년 동안 교수에게 8000만원이 넘는 돈을 빼앗겼다고 주장했다. 이 제보자에 따르면 지도교수는 연구실 방장으로 하여금 연구원과 대학원생의 통장을 관리하게 했다. 통장에 돈이 쌓이면 일정액을 교수의 통장으로 입금했다.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현금으로 돈을 찾아 교수 통장에 입금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 교수 아래의 10명이 넘는 대학원생 모두가 비슷한 일을 당했다. 대학원을 그만둔 대학원생은 통장에 남은 돈 전액을 보내지 않으면 행정소송까지 하겠다는 협박까지 당했다고 털어놓았다.

 

이 교수의 갑질은 이게 다가 아니었다. 자녀의 등하교와 숙제 모두 대학원생의 몫이었다. 자녀가 대학원생이 되자 자기소개서, 포트폴리오, 논문 연구작업에까지 대학원생이 동원됐다. 갑질의 피해자였던 제보자는 결국 박사학위도 따지 못한 채 10년간의 대학원 생활을 접었다고 대학원생 119 측은 전했다.

 

대학원생에게 행해지는 이런 갑질은 일부만이 겪는 일은 아니다. 2018년 9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이철희 의원과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이 실시한 ‘대학원 연구인력의 권익강화 관련 설문’에 따르면 대학원에 갑질이 존재한다고 밝힌 대학원생은 응답자 197명 중 74.1%(146명)을 차지했다.

 

대학원생들은 한 번 대학원에 들어오면 진로변경이 어렵기(62.4%)에 불이익에 대한 우려로 갑질 제보 및 해결에 나서기 어렵다. 2015년 9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이상일 의원이 제출한 보고서에는 부당처우를 경험한 대학원생들의 91.6%가 부당행위를 신고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원생119 측은 “교수사회에 만연한 갑질과 비리의 책임은 교육당국에 있다”며 “직장갑질119에 제보된 연구비 갈취, 자녀숙제 갑질 교수의 비위 행위는 최소 15년 이상 계속됐지만 학교와 교육당국은 갑질과 비리를 방치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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