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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알파고 '바둑이'와 싸운 바둑 고수 "AI에 배우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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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알파고 '바둑이'와 싸운 바둑 고수 "AI에 배우는 느낌"

2019.09.08 15:13
이달 6일 서울 서초구 더케이호텔에서 ‘2019 한국 슈퍼컴퓨팅 컨퍼런스 및 국가과학기술연구망 워크숍(KSC & KREONET 2019)’ 부대행사로 이영구 프로 9단(오른쪽 화면)과 국산 바둑 인공지능(AI) 바둑이의 대결이 열렸다. 바둑이를 개발한 이주영 고등과학원 계산과학부 교수(왼쪽)가 대국을 지켜보고 있다. 조승한 기자 shinjsh@donga.com
이달 6일 서울 서초구 더케이호텔에서 ‘2019 한국 슈퍼컴퓨팅 컨퍼런스 및 국가과학기술연구망 워크숍(KSC & KREONET 2019)’ 부대행사로 이영구 프로 9단(오른쪽 화면)과 국산 바둑 인공지능(AI) 바둑이의 대결이 열렸다. 바둑이를 개발한 이주영 고등과학원 계산과학부 교수(왼쪽)가 대국을 지켜보고 있다. 조승한 기자 shinjsh@donga.com

“백(바둑 인공지능 ‘바둑이’)의 불계승입니다”

 

인간과 인공지능(AI)의 대결은 이번에도 기계의 승리로 끝났다. 이달 6일 서울 서초구 더케이호텔에서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주최로 열린 ‘2019 한국 슈퍼컴퓨팅 컨퍼런스 및 국가과학기술연구망 워크숍(KSC & KREONET 2019)’ 부대행사로 열린 이영구 프로 9단과 국산 바둑 AI 바둑이의 대결은 바둑이의 불계승으로 끝났다. 불계승은 바둑에서 승부의 추가 기울었을 때 상대방이 포기하는 경우 계산을 하지 않고도 이긴 것을 뜻한다.

 

바둑이는 이주영 고등과학원 계산과학부 교수가 개발한 국산 바둑 AI다. 2017년 초 이세돌 9단과의 대국에서 세계에 인공지능의 시대를 알린 구글 딥마인드의 바둑 AI ‘알파고’에 기초를 뒀다. 2017년부터 개발돼 늦게 바둑 AI 전쟁에 뛰어들었지만 성적은 좋다. 지난해 7월 텐센트 AI 바둑 세계대회에서 7위를 차지한 데 이어 올해 4월 중국에서 열린 보소프트컵에서는 2등을 차지하며 능력을 과시했다.

 

이 교수는 “지난해부터 이미 프로기사와 대국하면 두 판을 두면 한 판은 이기는 실력을 갖췄다”고 말했다. 바둑이는 그래픽 처리장치(GPU) 4대를 활용해 1초에 7000수를 평가할 수 있다. 1초에 10만수를 읽는 능력을 갖췄던 알파고보다는 능력 면에서는 떨어져 보이지만 조합최적화 기법을 활용해 효율성을 높였다는게 이 교수의 셜명이다.

 

이번 대국은 돌을 추가로 놓지 않고 두는 호선바둑으로 진행됐다. 이 9단이 흑돌을, 바둑이가 백돌을 잡았다. 기존 바둑에서는 늦게 놓는 백이 불리한 것을 감안해 백에게 6.5집을 덤으로 준다. 하지만 이번 대국은 기존 룰 대신 흑에게 8.5집을 줬다. 이달 기준 한국 리그 10위를 차지하고 있는 이 9단이 15집의 덤을 받은 상태로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바둑이의 승이었다. 바둑이는 초반만 해도 이득을 등에 엎고 단단한 수를 구사한 이 9단에게 끌려가는 듯 보였다. 바둑이는 60수까지도 자신의 승리확률을 10%로 계산했다. 이 교수는 바둑이의 기풍에 대해 “바둑이는 시작에서 너무나 불리하다 보니 최대한 싸움을 피한다”며 “싸움을 할 수 없이 해야할 때는 도마뱀 작전이라고 꼬리만 딱 내 주면서 약간 이득을 보며 조금씩 따라간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의 말대로 바둑이가 불리하던 하변을 갑자기 버리고 우상변의 급소를 하나하나 찔러가기 시작하면서 경기가 급격하게 뒤집혔다. 이 교수는 “바둑이는 응수타진을 많이 한다”며 “상대방이 보면 그냥 여기저기 두는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응수타진은 상대의 반응을 보고 후속 수를 도모하는 수다. 바둑이의 수에 이 9단이 밀려가다 보니 어느새 중반부를 넘어 120수를 진행했을 때 바둑이가 계산한 승리 가능성은 90%였다.

 

이 9단은 대국이 끝나고 “사람끼리 두면 잘 안두는 수를 둬 모르는 걸 배우는 느낌이다”고 소감을 밝혔다. 실전에서 바둑이의 수를 활용할 수 있겠냐는 질문에 이 9단은 “사람은 수읽기에서 AI처럼 깊게 생각을 못하기 때문에 실전에서 사용하려면 연구가 많이 필요하다”면서도 “바둑두면서 둬 볼만한데 하는 생각은 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바둑이는 모든 수를 국지적으로 두지 않고 전체 단상을 보고 둔다”고 말했다.

 

대국이 끝나고 이영구 9단(가운데)이 대국 해설을 맡은 홍민표 9단(왼쪽)과 이주영 고등과학원 계산과학부 교수와 복기하고 있다. 조승한 기자 shinjsh@donga.com
대국이 끝나고 이영구 9단(가운데)이 대국 해설을 맡은 홍민표 9단(왼쪽)과 이주영 고등과학원 계산과학부 교수와 복기하고 있다. 조승한 기자 shinjsh@donga.com

이 교수는 단백질의 구조를 계산해 예측하는 ‘단백질 접힘’과 새로운 소재의 물성을 계산과학을 통해 예측하던 연구자다. 그가 뒤늦게 바둑 AI에 뛰어든 것은 딥마인드가 바둑 AI를 개발한 이유를 설명한 자료를 보고 나서다. 이 교수는 “딥마인드는 알파고에 대해 설명하면서 ‘단백질 접힘’, ‘새로운 소재 개발’과 같은 연구를 하겠다고도 했다”며 “30년 이상 연구한 분야를 바둑 AI가 한다는 사실에 놀라 AI 연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딥마인드의 새 AI인 ‘알파제로’를 보면 바둑 AI의 미래를 알 수 있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이 교수는 “프로바둑기사는 적어도 10년 이상의 전문지식을 쌓지만, 알파고 팀이 알파고 제로를 만들 때는 바둑에 대한 지식은 하나도 갖지 않았다”며 “사활, 축, 단수 등 바둑 지식을 하나도 가르치지 않고 바둑에서 아무도 도달하지 못한 ‘알파’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제는 바둑 뿐 아니라 생물학, 물리학 분야에서 전문지식을 쓰지 않는 ‘제로’ 상태에서 최고가 될 수 있다는 게 알파제로의 뜻”이라며 “이제까지 AI 시대가 오냐 오지 않냐를 둘러싸고 말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정말 AI 시대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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