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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파리는 경쟁자 앞에서 더 뜨거운 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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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31일 14:37 프린트하기

 

Drosophila melanogaster - 위키미디어 제공
Drosophila melanogaster - 위키미디어 제공

얼마 전 불법 정력제(일명 가짜 비아그라)가 대거 유통되어 문제된 적이 있다. 흥미롭게도 이런 약이 필요없는 종이 있다. 초파리 수컷은 엉뚱한 곳에서 정력을 얻는데, 음식도 아니고 어떤 냄새도 아니다. 바로 다른 수컷들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대 생리학과 김우재 박사팀이 초파리 수컷은 경쟁자가 보일 때 교미를 더 오래한다는 연구 결과를 신경학회지 ‘뉴런’ 12월호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초파리 수컷의 교미 시간에 영향을 주는 요인을 찾기 위해 초파리를 여러 집단으로 나눠 다양한 환경에서 성장시켰다. 한 그룹은 초파리들을 한 마리씩 격리하거나, 거울을 보며 혼자 크도록 했다. 여러 수컷을 함께 키우기도 하고, 투명한 막 너머로 암컷과 수컷을 볼 수 있도록 한 집단도 만들었다. 눈이 희거나 붉은 초파리와 함께 키우기도 했다. 그 뒤 각 집단별로 교미 시간을 비교했다.

 

그 결과 혼자 큰 수컷보다 다른 수컷과 함께 큰 수컷의 교미 시간이 5분 정도 길었다. 또 혼자 큰 수컷보다는 거울이나 투명 막 너머로 다른 초파리들을 보며 성장한 수컷들의 교미 시간이 길었다. 한편 흰 눈의 초파리들과 자란 수컷보다 빨간 눈의 초파리들과 자란 수컷의 교미 시간이 길었다.

 

연구팀은 이 실험을 통해서 시각 자극만으로 초파리의 교미 시간이 변하는 것을 확인했다. 특히 초파리들이 움직이는 빨간 점(눈)을 경쟁자로 인식해 교미 시간이 길어진다고 결론을 냈다. 연구팀은 이 현상을 ‘LMD(Longer-Mating-Duration, 길어진 교미 시간)’라고 부르고, LMD의 신경학적인 원인을 연구했다. 우선 LMD는 시각 자극만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이를 담당하는 신경회로를 분석했다. 그리고 PDF와 NPF라는 신경세포 단백질과 그 수용체들의 조합에 의해 LMD가 조절됨을 밝혀냈다. 이에 관여하는 신경세포는 초파리 뇌의 10만여 개 세포 중에서 18개에 불과했다.

 

김우재 박사는 “수컷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는 일로, 이러한 교미 시간 변화는 종족 보존의 전략일 것”이라며, “이번 연구는 하등동물인 초파리가 복잡한 환경을 인식하면서 행동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고 말했다. 또 “초파리 연구를 통해 사회성도 신경학적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김우재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수컷 초파리는 다른 수컷들과 같이 살 때 더 ‘수컷다워’진다. 그렇다면 암컷들에게 둘러싸인 경우는 어떨까? 안타깝게도 이성과 살면서도 교미를 못하는 초파리는 빨리 죽는다는 연구도 나왔다.

 

김우재 박사와 비슷한 시기에 미국 미시건대 분자생리학과 크리스티 젠드론 박사팀은 수컷 초파리를 암컷 페로몬에 지속적으로 노출시킨 채 교미를 못하게 했더니 수명이 줄었다는 연구 결과를 ‘사이언스’ 11월 29일자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초파리 유전자를 조작해 몸은 수컷이지만 페로몬과 냄새는 암컷과 같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이들을 정상 수컷과 함께 지내도록 했다. 정상 수컷들은 암컷 페로몬을 감지하고 교미를 시도했으나 잔인하게도 번번이 실패했다. 그 결과 정상 수컷들의 지방이 줄고, 수명은 10% 이상 짧아졌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수컷 페로몬을 내는 암컷과 정상 암컷을 같이 두었더니, 정상 암컷이 빨리 죽었다.

연구팀은 이들의 뇌가 받는 자극을 분석하고, 기대와 보상에 대한 불균형적인 자극이 노화를 촉진했다고 결론 내렸다. 젠드론 박사는 “쉽게 말해서 초파리는 계속되는 좌절 때문에 단명한 셈”이라며 “이번 연구 결과는 실패에 대한 뇌의 반응이 건강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 사람도 그럴까?
초파리의 LMD를 보면 경쟁이 비단 나쁜 것만은 아닌 듯하다. 경쟁이 공정하기만 하다면 말이다.

 

사람의 마음도 삼각관계일 때 더 불타오르는 것이 비슷한 연유 아닐까. 최근에 막을 내린 드라마 ‘상속자들’에서 김탄(이민호)과 최영도(김우빈)의 불꽃 튀는 경쟁이 인기였다. 차은상(박신혜)을 향한 두 남자의 애정 표현은 너무 과해서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였다.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여자에게 용기를 내어 고백하는 남자의 말은 세상을 다 줄 것처럼 청산유수다. 이런 것도 초파리처럼 머릿속의 무엇인가가 ‘길어지는’ 현상 아닐까?

 

그래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깔끔히 포기하자. 좌절한 청일점 초파리처럼 단명하기 싫다면, 어서 제짝을 찾아 나서야 하겠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홀로 좌절하고 있는 솔로들에게 심심한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김선희 기자

sunn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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