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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와 질병] 오래된 감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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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와 질병] 오래된 감염

2020.01.11 09:02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인간의 면역계는 미생물총과 함께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진화했다. 육식과 요리, 발효 음식은 뇌와 인지 능력, 운동 능력의 진화와 더불어 진화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미생물총과 인간의 게놈, 다양한 환경 조건이 오케스트라처럼 협연을 펼치며 지금의 호모 사피엔스, 미생물총을 만들었다. 근원부터 따지면 무려 5억 년 전이다. 

장내 세균은 인간과 공생하며 사이좋게 사는 것 같다.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면역력이 떨어지면 정상적인 세균도 숙주를 공격한다. 반대로 면역력이 너무 세면, 정상적인 면역계가 자신을 공격한다. 균형이 핵심이다. 그렇다면 요즘 주목받는 인류의 오랜 친구는 누가 있을까? 친구인지 적인지 애매한 녀석들이다. 인류의 오랜 네 친구, 연충과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결핵균, 말라리아를 만나보자.


 문명과 감염

왠지 수렵채집인은 늘 질병에 시달렸을 것 같다. 의사도 없고, 위생 관념도 없던 시절이니 각종 전염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 죽었을 것이다. 문명이 시작된 후 의사라는 직업이 생기고, 근대 사회에 접어들어 위생의 개선과 항생제의 발명으로 인류를 괴롭히던 감염균에서 해방되는… 흔히 아는 시나리오다. 하지만 사실과 다르다. 

홍역은 홍역 바이러스에 의해서 전파되는 전염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제2군 법정 전염병으로 분류되어 있는데, 온몸에 발진이 생기는 호흡기 질환이다. 양 볼에서 발진이 시작한 후 기침과 콧물, 결막염이 나타난다. 열이 나고 발진이 온몸으로 퍼진다. 피부가 벗겨지고 다양한 합병증이 생긴다. 2000년 이전에는 사망자가 무려 75만 명에 달했다. 대부분은 회복되지만, 약 1/3의 환자에게서 위장염이나 중이염, 폐렴, 실명, 뇌염 등이 생긴다. 신경계 합병증이 나타나면 뇌염이 진행하여 두통과 경련, 혼수 등의 증상이 생기고 사망하기도 한다. 특히 임산부가 취약한데, 태아가 성장을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유산, 사산 등의 위험성이 증가한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우리의 선조는 홍역을 앓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거의 앓지 않았다. 홍역은 전염성이 매우 높은데, 일부는 죽고 일부는 면역성을 획득한다. 재감염은 대단히 드물다. 따라서 한 집단에서 한번 퍼지면 급속도로 전염된 후 사라진다. 인구가 적은 수렵채집사회에서 홍역이 널리, 오랫동안 퍼지는 일은 불가능한 것이다. 아마도 홍역은 기원후에야 인류 집단에 나타난 것으로 추정한다. 

기존의 위생 가설에 의하면 인류는 ‘너무 깨끗한’ 환경에서 살기 때문에, 바이러스 등 감염균 노출이 적어져서 알레르기를 앓는다. 그럴듯한 가설이지만 과거의 인류는 ‘조금 지저분한’ 환경에서 살았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물론 눈으로 보기에는 덜 깔끔한 환경에서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감염균도 과거에 더 많았을 것이라는 가정은 옳지 않다. 인류는 신석기 혁명 이후 정주 생활을 하고, 많은 사람이 한 곳에 모여 살게 되었다. 감염병 대부분은 이후에 생긴 것이다. 

중국의 신화에 의하면 신농씨는 농업과 의약, 약초의 신이다. 메소포타미아 신화에 나오는 네르갈은 죽음과 역병, 전염병의 신이다. 그리스 신화의 아폴론은 예언과 점술의 신이자 가축의 신이며, 의학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아버지다. 뭐 비슷한 시기에 다양한 일이 한꺼번에 일어났겠지만, 농업이나 목축은 질병을 불러온 가장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였다. 사람이 모여 살면서 덩달아 쥐도 모였다. 원래 중앙아시아의 야생에서 살던 쥐는 인간의 거주지에 슬쩍 무임승차했다. 페스트는 쥐에 사는 쥐벼룩을 타고 인간 사회에 퍼졌다. 14세기 페스트 대유행 때, 유럽에서 단 5년 만에 7500만 명이 죽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감염균은 인간의 면역계와 공진화할 충분한 시간을 가지지 못했다. 어린 시절에 적당히 감염되어야 어른이 되어 건강하다는 속설이 있다. 하지만 감염되어도 죽지 않고 살아남아야 성인이 될 수 있으니, 원인과 결과가 반대로 된 설명이다. 연구에 의하면 어린 시절에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오히려 알레르기가 촉발되기도 한다. 

 

연충

연충은 건강에 좋지 않은 기생충으로 알려졌지만, 아주 오랫동안 인간과 공생해왔다. 서구 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1947년 유럽인의 약 절반은 하나 이상의 연충에 감염되어 있었다. 현재 저개발국가의 연충 감염률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오랜 세월 동안 연충과 같이 살아오면서 연충은 인간의 면역을 견디거나 혹은 살짝 면역반응을 낮추는 식으로 적응했다. 이러한 반응은 아마 후성유전학적으로 진화했을지도 모른다. 즉 산모가 연충에 감염되면 이에 따라 면역반응이 하향 조절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건강부국에서는 연충 감염이 극히 드물다. 임산부가 감염되는 일은 사실상 전혀 없는 수준이다. 따라서 면역 반응이 오버슈팅, 즉 기대값보다 더 높게 올라가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연충은 아마도 Th2 반응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인간의 면역반응을 낮추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서 자신의 생존을 도모할 뿐 아니라, 숙주의 과도한 반응도 억제하여 같이 오래오래 살겠다는 전략이다.

 

연충은 장내 미생물총을 변화시킨다. 염증을 일으키는 박테로이데스(Bacteroides)를 줄이고 보호 효과가 있는 클로스티리디알레스(Clostridiales)을 늘린다. 박테로이데스는 장내 미생물의 15% 정도를 차지하는데, 탄수화물과 지방을 분해해주는 기능이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 비율이 높아지면 염증성 장 질환이 유발된다. 크론병을 악화시키기도 한다. 그래서 크론병 환자를 대상으로 박테로이데스를 사용하여 치료하려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일부 연충은 수지상세포의 표현형을 바꾸어서 보다 항염증 효과가 두드러지게 바꾸기도 한다. Treg 세포를 유도하여 면역반응을 바꾸는 일도 있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헬리코박터 파이오리의 컴퓨터 그래픽(www.hpylori.com.au/picturebook.html)
헬리코박터 파이오리의 컴퓨터 그래픽(www.hpylori.com.au/picturebook.html)

헬리코박터 파일로리는 위장과 십이지장에서 사는 나선형 그람 음성 간균이다. 편모가 달려서 요리조리 잘 돌아다니고 점막에 몸을 숨기기도 쉽다. 원래 위는 강한 산성의 소화액이 나오므로 미생물이 살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호주의 배리 마셜과 로빈 워런 등이 직접 자신의 몸을 이용한 연구를 통해서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밝혔다. 배양액을 마셨는데, 위궤양에 걸린 것이다. 이들은 2005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어떻게 위산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요소분해효서를 만들어 염기성을 가진 암모니아를 만들어 자신의 몸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암모니아가 위벽을 손상하므로 위염이나 위, 십이지장 궤양이 생기는 것이다. 심해지면 암도 발생한다. 곧 헬리코박터 파일로리를 잡는 항생제 요법이 개발되었다. 몇 가지 항생제를 섞어서 박멸하는 것이다. 

그러면 헬리코박터 파일로리를 잡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다.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의 몸속에서 서로 적응한 헬리코박터 파일로리다. 죄다 위염이나 위궤양, 위암이 걸리게 했다면, 아마 숙주와 같이 장렬하게 전사했을 것이다. 공진화를 통해서 인간과 같이 더불어 살기로 했을 것이다. 

콜롬비아의 한 산악 지역과 또 다른 해안 지역에 사는 두 집단은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감염률이 같다. 그런데 산악지역 집단의 위암 발생률은 해안 지역보다 25배나 높았다. 어째서 이런 차이가 발생한 것일까? 산악지역에 사는 주민은 주로 아메리카 원주민의 후손이었다. 반면에 해안 지역에 사는 주민은 주로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끌려온 집단이었다. 그런데 산악지역 원주민의 몸에는 주로 유럽과 아시아인에게서 많이 발견되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가 살고 있었다. 해안 지역 원주민은 아프리카 유래의 균이 주로 있었다. 즉 산악지역 원주민은 유럽 정복자로부터 건너온 헬리코박터 파일로리에 적응할 시간이 부족했다. 이러한 이유가 높은 위암 발생률로 이어진 것이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는 Treg를 유도하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감염이 알레르기를 줄여준다는 보고가 있다. 

헬리코박터와 연충은 인류와 오랜 시간 같이 지낸 친구다. 그렇다면 둘 사이에도 모종의 친분이 생기지 않았을까? 친구의 친구는 친구니까 말이다. 이 두 친구는 농업 혁명 이전부터 인간과 같이 살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지속하고 있다. 그러나 연충이 서구 사회를 중심으로 사라지기 시작했고, 비교적 최근에 헬리코박터 파일로리도 사라졌다. 흥미롭게도 연충이 사라진 직후부터 헬리코박터 파일로리에 의한 위궤양과 위함이 크게 증가했다. 연충의 면역 반응 억제가 사라지면서 헬리코박터 파일로리의 위세가 커진 것이다. 

우리 몸의 면역은 다양한 감염균과 절묘한 균형을 이룬 결과인지도 모른다. 나쁜 침입자니까 그냥 박멸하면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가 줄어들면서 위염이나 위궤양은 줄었지만, 반대로 식도염이나 식도암은 늘었다는 보고가 있다.   

펠라그라와 결핵

펠라그라는 비타민 B3, 즉 니아신이나 트립토판 결핍으로 인해 발생하는 병이다. 니코틴아마이드 아데닌 다이뉴클레오타이드(NAD)나 NADH (NAD hydride)를 만드는 영양소인데, 이 영양소가 부족하면 지능이 떨어진다. 피부가 거칠고 두꺼워지므로 피부를 뜻하는 펠레와 거칠다는 뜻의 아그라를 합쳐 펠라그라(pellagra)라고 부른다. 피부염이나 설사도 생기지만 가장 중요한 변화는 치매다. 

현대 사회에서는 드물지만, 술만 마시는 알코올 중독자나 거식증 환자 등에서 간혹 발견된다. 옥수수를 너무 많이 먹으면 걸리는 병이기도 하다. 옥수수에는 비타민 B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감염균은 신석기 이후에 진화했다. 하지만 예외가 있는데 바로 결핵균이다. 결핵균의 원시적 형태는 아마 호모 하빌리스가 진화한 200만~300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이미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최소 7만 년 전에는 지금 형태의 결핵균이 나타났다. 인류가 아프리카를 떠나면서 결핵도 같이 전 세계로 퍼져갔다. 그런데 초기 결핵균은 독성이 약하고 필수 영양소를 생산하는 특징이 있다는 최근 연구가 있다. 펠라그라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수렵채집사회에서 낮은 독성을 유지하면 인류와 공생했을 지도 모른다. 물론 현대 사회의 결핵균은 조금 다르다. 인구가 증가하면서 더 강한 독성을 가진 균주가 진화했기 때문에 우리 생명을 앗아갈 수 있게 되었는지 모른다. 


 말라리아

가장 흔한 말라리아, 즉 플라시모디옴 팔시파룸은 최소 일만 년 내에 고릴라에서 인간으로 건너온 것으로 추정된다. 흔히 열대열 말라리아라고 한다(한국에는 흔하지 않다). 말라리아는 인간의 생명을 앗아가는 무서운 감염병이다. 그러나 원충에 대해서는 딱히 효과적인 면역반응이 없어서 적혈구의 모양을 비트는 방법을 사용하여 저항하는 전략이 진화했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하는 고육책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탈리아 사르데냐 섬에서는 말라리아가 박멸된 이후 다발성 경화증이 급격히 증가하는 현상이 관찰되었다. 아마도 기존에 만연한 말라리아가 조절하던 면역 반응이 악화되면서 생긴 예기치 못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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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제공
픽사베이 제공

우리는 푸른 자연을 좋아한다. 우거진 산이나 파란 해변을 보면 기분도 좋아지고 괜히 건강해지는 느낌이 든다. 에드워드 윌슨은 인간이 자연애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심리적인 부분도 있을 것이다. 해변이나 강물, 숲이 우거진 산에는 먹을 것도 많아서 좋아하는 심리가 진화했을 것이다. 하지만 기분만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 있다. 인류가 오랜 세월 동안 같이 지낸 감염성 친구 외에도, 자연환경에서 자주 접하는 물질도 서로 공진화했다는 것이다. 자연은 몸에도 좋다는 것이다. 

사실 세상에 자연이 아닌 곳이 없다. 도시도 자연이고, 스테인리스 철판과 플라스틱 그릇도 다 자연에서 온 것이다. 우라늄도 자연에서 캔 것이다. 하지만 원시의 인류가 살던 통상적인 생태 환경을 ‘자연’이라고 좁게 정의하면 문제가 달라진다. 비과학적인 자연 우월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나 좀 더 객관적으로 생각해보자. 정말 시골이 도시보다 좋다면, 그냥 ‘자연은 좋다’라는 막연한 주장보다는 구체적인 과학적 근거를 찾아야 한다. 그렇다면 소위 ‘자연’이 면역계에 좋은 진화적 이유를 찾아보자. 

 

참고자료

-Wertheim, J. O., & Kosakovsky Pond, S. L. (2011). Purifying selection can obscure the ancient age of viral lineages. Molecular biology and evolution, 28(12), 3355-3365.
-Yoo, J., Tcheurekdjian, H., Lynch, S. V., Cabana, M., & Boushey, H. A. (2007). Microbial manipulation of immune function for asthma prevention: inferences from clinical trials. Proceedings of the American Thoracic Society, 4(3), 277-282.

-Sicinschi, L. A., Correa, P., Peek Jr, R. M., Camargo, M. C., Delgado, A., Piazuelo, M. B., ... & Schneider, B. G. (2008). Helicobacter pylori genotyping and sequencing using paraffin‐embedded biopsies from residents of Colombian areas with contrasting gastric cancer risks. Helicobacter, 13(2), 135-145.

-https://www.unicef.or.kr/news/news_view.asp?idx=8923 -http://ekjm.org/journal/view.php?number=25614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진화와 인간 사회에 대해 강의하며, 정신의 진화과정을 연구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 《진화와 인간행동》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 《마음으로부터 일곱 발자국》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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