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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놈과 인류사]3500년 전 우물서 생을 마감한 그녀에게 무슨 일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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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놈과 인류사]3500년 전 우물서 생을 마감한 그녀에게 무슨 일 있었나

2020.06.01 18:02
'유럽 문명 뿌리' 수천년 전 서남아시아 인류역사 밝힌 고게놈 연구
지중해 북동부 고대 도시 유적 ′알라라크′의 우물에서 발견된 3500년 전 여성의 유골이다. 게놈 해독 분석 결과 3000km 떨어진 이란 동부나 중앙아시아에서 온 여성으로 밝혀졌다. 어떤 이유에서 먼 곳에서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유전체 연구로 고향과 함께 독특한 당시의 인류 이동과 교류의 단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막스플랑크 인류사과학연구소 제공
지중해 북동부 고대 도시 유적 '알라라크'의 우물에서 발견된 3500년 전 여성의 유골이다. 게놈 해독 분석 결과 3000km 떨어진 이란 동부나 중앙아시아에서 온 여성으로 밝혀졌다. 어떤 이유에서 먼 곳에서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유전체 연구로 고향과 함께 독특한 당시의 인류 이동과 교류의 단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막스플랑크 인류사과학연구소 제공

지중해 동쪽 레반트 지역은 인류 초기 문명의 발상지 중 한 곳이다. 농업과 가축화가 이 지역에서 다수 시작됐고, 초기 도시국가도 여럿 출현했다. 이곳 북쪽 끝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고대도시 알랄라크는 청동기 시대 이 일대 도시국가수도 역할을 하던 중심지였다. 이곳을 연구하던 국제연구팀은 한 구의 특이한 화석에 주목했다(위 사진). 알랄라크의 우물 바닥에서 웅크린 모습으로 발견된 여성의 유골이었다. 알랄라크의 19번째 화석이라는 의미에서 ‘ALA019’라는 일련번호가 붙은 이 유골 화석에는 생전 많은 부상을 입었음을 보여주는 흔적이 가득했다. 우물 바닥 구석에 쓰러진 듯 파묻힌 모습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폭력적이었을 가능성마저 보여주고 있었다.


특이한 것은 유전적 특징이었다. 독일과 한국, 미국, 유럽 국제공동연구팀은 이 화석을 비롯해 중부 유럽과 서아시아, 중앙아시아 등에서 발굴된 신석기 말기~청동기(약 8500~3000년 전) 사람들의 유골 110구 치아와 두개골에서 DNA를 추출해 분석해 지난달 29일 국제학술지 ‘셀’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이 과정에서 연구팀은 ALA019 화석의 유전정보가 다른 유골과 크게 다르다는 사실 발견했다. 주변의 터키 부근보다 동쪽으로 약 3000km 떨어진 중앙아시아나 이란 동부의 당시 인류와 훨씬 비슷했던 것이다.


연구의 공동교신저자인 정충원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이렇게 홀로 튀는 유전정보는 대부분 후대의 다른 시대 유골로 밝혀지는 경우가 많다”며 “방사성탄소연대측정 등을 통해 다각도로 재검토했지만, 약 3500년 전으로 밝혀져 연구한 청동기 시대의 인류가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연구 결과를 정리하면, 이 여성은 3500년 전, 약 3000km 떨어진 먼 나라에서 이곳 알라라크에 이주해 왔다. 다른 유골에서는 비슷한 유전자가 나오지 않은 것으로 보아 가족이나 동료와 이주해 오진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는 어떤 이유에서 이역만리에서 잔혹한 최후를 맞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과학은 다만 이 유골의 주인공이 중앙아시아에서 알랄라크에 이주해 왔다는 사실을 말해 줄 뿐이었다. 필립 스톡해머 독일 막스플랑크 인류사연구소(MPI SHH) 연구원은 “기록을 통해 당시 여성들이 결혼 등을 이유로 서아시아 전역을 이주했던 사실은 밝혀져 있다”며 “하지만 중앙아시아에서 온 이 여성에게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는 수수께끼로 남게 됐다”고 말했다. 


●역사 뒤안 숨겨진 개인사 밝히는 유전체학


인류나 동물의 유골이나 화석에서 DNA 파편을 찾아 해독한 뒤 유전적 특징을 밝히는 ‘고(古)유전체학’은 최근 20여 년간 발전한 새로운 학문이다. 화석에 남은 DNA 염기 파편을 미생물 등 오염을 피해 추출해 읽어들인 뒤 복원한다. 초기에는 동물 화석과 친척인류 네안데르탈인 등의 세포 내 소기관인 미토콘드리아 게놈을 해독하며 가능성을 보였고, 2010년 5월 스반테 패보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장팀이 사상 최초로 네안데르탈인의 전체 게놈 초안을 해독해 발표하면서 전성기를 열었다. 이후 데니소바인 등 최대 수십만 년 전까지 거슬러올라가는 친척인류의 게놈을 밝히며 인류 진화 역사를 새롭게 밝히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이 기술은 수 년 뒤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다. 유전자 특성을 밝히는 정밀도가 높아지면서, 상대적으로 여러 인골이나 화석 시료를 얻을 수 있는 수백~수천 년 전 인류 여러 명의 유전적 특징을 파악하는 집단유전학 연구가 가능해졌다. 이 기술 덕분에 문헌으로 남지 않은 수천 년 전 인류 집단이 언제 어디에 존재했고 이들이 어느 곳으로 이동해 섞였는지 등을 통계적으로 추적할 수 있게 됐다. 

 

터키 고고학 유적지 아슬란테페에서 발굴된 메소포타미나 유물이다. 로마사피엔자대 제공
터키 고고학 유적지 아슬란테페에서 발굴된 메소포타미나 유물이다. 로마사피엔자대 제공

2015년 독일 예나에 막스플랑크 인류사과학연구소가 설립됐고, 미국 하버드대에도 데이비드 라이히 교수가 주도하는 연구실이 세워지면서 현재 과학을 이용한 역사 연구를 이끌고 있다. 덴마크 코펜하겐대도 화제성이 강한 연구 결과를 내놓고 있고, 최근에는 중국에서도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각 연구 그룹은 유전학 전문가 외에 역사 전문가와 고고학자, 인류학자 등으로 구성돼 본격적인 융합 연구를 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막스플랑크 인류사과학연구소에 2016년부터 재직하며 주요 연구를 이끌다 지난해 서울대에 온 정 교수가 유일한 전문가다.


알랄라크의 ‘우물 속 여인’ 연구도 이런 연구 결과 나온 하나의 부수적 사례 중 하나다. 원래 이 연구는 지금의 지중해 동쪽인 레반트 북쪽 지역과 지금의 터키 지역인 아나톨리아, 그리고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인 코카서스 남쪽 지역의 신석기와 청동기 시대 인류의 이동과 섞임을 확인하기 위해 이뤄진 연구였다. 이 일대는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그리스 등 인류 초기 문명이 일궈진 곳 한 가운데에 놓여 있다. 정 교수는 “유럽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친 지역”이라며 “가장 먼저 복잡한 사회와 국가가 나타난 곳”이라고 말했다.


●도시국가와 사회 가장 먼저 등장한 서남아시아 인류집단 이동 역사 밝혀


연구팀은 이곳에서 110구의 고대 유골 시료를 확보해 약 8500~3000년 전의 인구 흐름을 정밀하게 분석했다. 정 교수는 “유럽 농부의 조상으로 추정되는 인류집단이 지금의 에게해에 존재했고, 지금의 이란과 이라크 지역 1500km에 걸쳐 있는 자그로스산맥 지역에도 다른 인류집단이 존재했다”며 “두 집단 사이에는 시석기시대인 8500년 전부터 유전적 혼합에 의해 유전적 특성이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양상이 존재했는데, 청동기 초기로 진입할 때엔 어느 지역을 가도 유전적 특성이 동일해지는 균일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밝혔다”고 말했다. 이와 별도로 약 4000년 전 자그로스 산맥에서는 후기 청동기 인류가 서진해 레반트 북쪽 인류와 섞였다. 그리고 ‘우물 속 여인’처럼 중앙아시아 또는 이란 동쪽에서 먼 거리를 이주해 온 인류의 정체도 밝혀졌다.

 

서남아시아의 인류 집단 이동과 기원을 밝힌 5월 29일 ′셀′ 논문의 핵심 내용을 요약한 지도다. 지금의 터키 부근인 아나톨리아와 이란 쪽의 자그로스산맥 부근에는 신석기시대부터 지속적인 인류 교류가 있었다. 이후 자그로스에서 레반트 지역으로 새로운 인류 이동도 추가됐다. 일부 멀리 중앙아시아나 이란 동부에서 이주한 인물도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셀 제공
서남아시아의 인류 집단 이동과 기원을 밝힌 5월 29일 '셀' 논문의 핵심 내용을 요약한 지도다. 지금의 터키 부근인 아나톨리아와 이란 쪽의 자그로스산맥 부근에는 신석기시대부터 지속적인 인류 교류가 있었다. 이후 자그로스에서 레반트 지역으로 새로운 인류 이동도 추가됐다. 일부 멀리 중앙아시아나 이란 동부에서 이주한 인물도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셀 제공

이 지역 연구는 언어 진화 연구에도 새로운 단서를 제공했다. 현재 영어 등 유럽 여러 국가가 사용하는 언어는 인도유럽어로 분류된다. 인도유럽어가 어디에서 어떻게 발생해 유럽에 퍼졌는지는 여전히 논쟁점인데, 아나톨리아 지역이 논쟁의 핵심이다. ‘쐐기문자’로 유명한, 지금은 사라진 히타이트어가 이 지역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인도유럽어가 아나톨리아를 통해 유럽에 왔다는 가설과 신석기시대 말기나 청동기시대에 스텝 지역을 통해 넘어왔다는 가설이 대립하다 스텝 가설 쪽으로 기울고 있는 추세”라며 “하지만 정작 아나톨리아와 스텝 사람의 교류가 없다는 결과가 나와 모순이 있었는데, 이번에 인류집단이 교류를 이어오며 섞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스텝 가설을 뒷받침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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