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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이 이게 뭐냐” 고성 들리자… 실험인데도 눈끝 파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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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이 이게 뭐냐” 고성 들리자… 실험인데도 눈끝 파르르

2014.02.21 12:21


[동아일보] [말이 세상을 바꿉니다]<2부>당신을 죽이고 살리는 말
나쁜 말-좋은 말 직접 들어보니

“꼴이 이게 뭐냐? 더럽게 정말…. 얼른 옷 벗고 씻지 못해?”

목덜미에 갑자기 차가운 물방울이 떨어진 듯했다. 가슴이 답답해지고 숨은 거칠어졌다. 송곳처럼 고막을 찌르는 중년 여성의 질타는 몇 분 동안 계속됐다.

“도대체 하루에 옷을 몇 번이나 갈아입어? 짜증나 죽겠네.” 여성의 말끝이 날카롭게 올라갈 땐 종잇장에 손끝이 베인 것처럼 소름이 일었다.

평소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아이를 심하게 꾸짖는 부모의 모습을 볼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어릴 적 들었던 어른들의 꾸짖음도 떠올랐다. 30대 남성인 기자는 마치 어린아이가 된 듯한 수치심에 눈 끝이 바르르 떨렸다. 아무리 실험이라지만 귀를 틀어막고 싶은 기분이었다.

“스트레스 지수가 7등급까지 올라갔네요.” 스피커를 통해 나오던 중년 여성의 고성이 잦아들었다. 배명진 숭실대 교수(전기통신전자공학부)가 기자의 손끝에서 맥박 파동 측정기를 떼어냈다. 평온한 상태에서 측정했던 스트레스 지수는 정상 수준인 2등급. 2분여의 질타를 듣고 난 뒤에는 5단계가 뛰어올랐다. 5∼6등급은 만성 스트레스, 9∼10등급은 정신질환을 겪을 때 나오는 측정치다.

일상생활 속 듣게 되는 ‘나쁜 말’은 스트레스를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스트레스는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 다시 말해 나쁜 말은 듣는 이의 건강을 해치는 셈이다.

이 인과관계를 과학적으로 검증하기 위해 동아일보 취재진은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의 도움을 얻어 두 가지 음성 실험을 했다. 실험은 나쁜 말을 들었을 때 맥박의 파동과 뇌파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살펴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 건강 지수 ‘빨간불’

나쁜 말에 노출되는 동안 기자의 맥박 파동을 측정해 계산한 건강 지수는 100점 만점에 70점으로 나타났다. 나쁜 말을 듣기 전 점수는 88점이었다. 70점대는 주로 면역력이 저하돼 각종 질환에 걸릴 위험도가 높아진 상태일 때 나오는 수치다.

원인은 갑자기 늘어난 호르몬 때문. 인체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호르몬의 분비량을 늘린다. 급성 스트레스에 반응해 분비되는 호르몬인 코르티솔은 분비량이 늘어나면 혈압을 높이고 체중 증가 요인이 된다. 호흡이 거칠어지고 맥박의 파동도 비정상이 된다. 코르티솔의 혈중 농도가 높아지면 식욕이 증가해 비만을 초래한다. 고혈압의 위험이 높아지고 만성피로, 두통, 불면증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또한 면역 기능이 약화돼 감기와 같은 바이러스성 질환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

다음은 뇌파를 측정하는 실험. 정확한 실험 결과를 얻기 위해 첫 실험에서 받은 자극을 가라앉히고 평온한 상태로 돌아가야 했다. 눈을 감고 스피커에서 나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얼마나 열심히 뛰어놀았기에 이렇게 더러워졌을까? 엄마가 옷 깨끗이 빨아 줄 테니 내일도 씩씩하게 뛰놀렴.”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마음이 풀렸다. 2분간의 타이름이 끝난 뒤 측정한 스트레스와 건강 지수는 다시 정상 수준으로 돌아와 있었다. 목에서 느껴지던 뻐근함도 어느새 잦아들었다.

두 번째 실험은 머리에 뇌파 감지기를 두르고 진행했다. 다시 매서운 여성의 목소리가 귀를 때렸다. “야. 내가 네 빨래하는 사람이냐?” 2분간의 질타를 견뎌낸 뒤 뇌파의 변화를 살펴봤다. 뇌파를 분석한 그래프 굴곡의 일부가 눈에 띄게 치솟아 있었다. 긴장하거나 불안한 상태일 때 높아지는 뇌파인 베타파였다.

뇌는 무언가에 열중하거나 차분하게 일, 공부 등을 할 때 알파파를 높인다. 명상이나 깊은 생각을 할 때면 세타파나 델타파가 강해진다. 반면 베타파는 신경이 날카로워질 때 강한 신호를 나타낸다. 베타파가 높을 땐 주의가 산만해져 공간 지각능력과 사고, 행동능력이 낮아진다. 운전이나 섬세한 작업을 할 때 베타파가 높으면 실수를 하거나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 나쁜 말은 자신에게도 스트레스

인간이 귀로 들을 수 있는 음역대는 20에서 2만 Hz(헤르츠) 사이다. 실험에 사용된 음원의 파형을 살펴보면 중년 여성이 나긋나긋하게 말할 때는 200∼300Hz였지만 꾸짖을 때는 2∼3배인 600Hz까지 음역대가 올라갔다.

갑자기 높은 음역대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상대방의 감정 변화를 무의식적으로 감지한다. 이럴 때 인간은 경험적으로 위협을 느낀다. 사고나 폭력, 꾸짖는 상대방의 험악한 얼굴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를 들을 때와 비슷한 반응이다. 온화한 말투는 말의 속도도 느리게 한다. 반면 꾸짖을 때는 말이 빨라진다. 실험에 사용된 음원을 분석해 보니 타이르는 말은 3초간 9음절, 꾸짖는 말은 15음절이었다.

나쁜 말은 듣는 사람 뿐 아니라 하는 사람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흥분한 상태에서 상대방을 꾸짖을 땐 목소리가 커지고 말의 속도도 빨라지기 때문에 혈압이 오르고 혈액 순환에 장애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배명진 교수는 “인간의 오감(五感) 중 뇌의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청각은 외부의 자극에 가장 민감하고 중추신경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이진석 기자 ge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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